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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서울 역에서. - 여기까지 무료입니다. >
뉴서울 미리내 제약회사.
이동우 사장은 자신의 심복인 본사 미래전략실 전주학 차장을 불러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지금 뉴서울 변두리 쪽에 짓고 있는 공장이 태홍 바이오 확실하지?”
“확인하고 왔습니다. 신종로구에 20층짜리 지점 건물도 매입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새끼들이 간뎅이가 부었나?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태홍 바이오의 뉴서울 진출.
지금까지는 구례에서만 사업하던 향토 기업이라 설쳐대도 가만히 있었는데.
촌놈들이 뉴서울을 우습게 봐도 분수가 있지.
“특허청 동향은? 포자 독 해독제와 회복제 신청이 들어왔어?”
“수소문해보니 아직은 들어오지 않았답니다.”
“그래? 뉴서울 식약청은?”
“거기도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구례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약을 팔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많이 간소화됐다고 하지만 구례보다는 훨씬 엄격하고 복잡하다.
“우리 연구는 어떻게 되고 있어?”
“죄, 죄송합니다만, 이렇다 할 성과가···.”
그동안 미리내 제약 연구소에서 수도 없이 연구를 해왔다.
태홍의 해독제와 회복제를 카피하기 위해.
일단 카피만 성공하면 미리내 제약이 먼저 특허를 내면 되니까.
하지만 진전이 없었다.
같은 성분이라도 똑같지 않다는 것까진 밝혀냈다.
분명 특별한 가공 처리 과정을 거쳤다.
문제는 그게 무엇인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전주학이 이동우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오히려 놈들의 서울 진출이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왜지?”
“이곳에서 약을 팔려면 식약청 허가를 받아야 하고, 특허도 낼 게 뻔하니까···,”
“공무원 놈들 매수해서 제조식을 입수해보자?”
“네! 맡겨만 주십시오.”
이동우는 고민했다.
현재로선 그 방법이 가장 빠르겠지.
게다가 뉴서울에선 자신들이 왕이다.
거미줄처럼 깔린 인맥.
김태주, 그놈의 인맥이라 해봐야 군부 말고는 없을 터.
“조용히 추진해봐. 꼬리 남기지 말고.”
“네!”
처음 해보는 일도 아니다.
이미 특허청과 식약청엔 다달이 미리내 제약의 월급(?)을 받는 공무원들이 많이 있다.
“참! 그리고 조만간 김태주가 뉴서울로 상경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언제? 무슨 일로?”
“한 일주일 남았을 겁니다. 뉴서울 지점 방문과 공장 준공식이 목적인 듯합니다.”
“훗! 제 발로 여길 기어들어 온다는 말이지?”
뉴서울.
삼한제국 문화와 경제의 중심.
사실 제국민은 둘로 나뉜다고 해도 무방하다.
뉴서울 시민과 지방 사람.
단순히 돈만 많다고 뉴서울 시민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면 오산이다.
‘본때를 보여줘야겠군.’
그동안 태홍 바이오 촌놈들에게 함께 사업을 해보자고 수없이 러브콜을 날렸다.
하지만 굴욕만 당했다.
로열티 계약이나, OEM 위탁생산, 업계 최고의 계약서를 제시해도 번번이 거절.
진짜 많이 양보한 거였다.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줬다.
나중에 생산 노하우를 습득하면 되니까.
태홍 바이오 총괄 경영자에게 직접 접근도 해봤다.
전직 미리내 그룹 미래전략실 과장이었던 백서연, 권유가 먹힐 줄 알았다.
심지어 자신이 직접 전화까지 했다.
제조식을 가지고 오면 평생 써도 다 못 쓸 돈을 주겠다.
그러나 그녀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결국 전화번호를 차단당하기까지.
이렇게 어이없이 무시당한 적이 있었나?
‘쯧쯧, 이래서 노비들은 잘 대해주는 게 아니야.’
최연소 과장까지 달아줬는데, 그 은혜는 모른 척 내팽개치고, 이젠 그룹의 적이 되어버린 년이다.
좋다.
이참에 얼굴이나 보자.
“확실한 일정 알아봐.”
“네!”
“마중 한번 나가보자고.”
촌놈이 뉴서울로 상경하는 데 가만히 있으면 쓰나?
신고식 제대로 치르게 해줘야지.
※ ※ ※
백서연은 태홍 바이오 총괄경영자 신분이지만 동시에 김태주의 개인비서이기도 했다.
‘준공식 일정은 맨 뒤로 미뤄야겠어.’
회장님께서 특허가 나올 때까지 뉴서울에 머무른다고 하셨으니, 준공식은 마지막 일정이 될 터.
‘호텔은 예약 완료, 차량도 나왔고, 운전은 각성 장교 수행원들이 맡으면 되니까.’
비서실에 맡기면 그만이지만 그녀가 직접 일정과 의전을 챙기고 있었다.
나중에 쓸만한 비서를 채용하기 전까진.
태홍 바이오의 뉴서울 입성.
지역 기업에서 벗어나 전국구 기업으로서 발돋움하는 순간.
그렇다고 해서 신문이나 방송에 떠들고 다니진 않을 예정이다.
보도자료 같은 것도 돌리지 않았다.
급하면 지들이 취재를 오겠지, 취재를 와도 응해주지 않을 생각이고.
상경의 주목적은 뉴서울에서 근무하게 될 직원들을 만나고 그들을 격려하는 행사.
구례 직원들은 모두가 안다.
김태주 회장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지.
그래서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 있고.
그러나 뉴서울은 아니다.
새로 들어온 직원들에게 자신들이 근무하는 회사가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각인시켜 줄 것이다.
물론 과도한 의전은 좋지 않다.
자칫하면 관심받고 싶어 하는 시골 졸부라는 인상을 줄지도 모른다.
적당하게, 품위 있게.
그런데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백서연을 찾아온 도민수 소령.
“하아, 제가 적당하게 선별해달라고 부탁드렸잖아요.”
“···그, 그게, 어쩌다 지리산 전군에 소문이 나는 바람에, 그리고 각성 장교들이 요즘 한가해서,”
도민수 소령이 가지고 온 의전 수행원 명단.
5명으로 부탁했는데, 10명을 적어왔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중 5명은 무보수로 지원했습니다. 숙박비나 식비 또한 자비 부담하기로 약속받았고요.”
“제가 지금 돈 때문에 이러나요? 무슨 회장님이 갱단 보스도 아니고 10명이 우르르 따라가면 보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역시 안 되겠죠?”
풀죽은 도민수 소령의 모습.
이러니 또 마음이 약해졌다.
처음 태홍 바이오에 파견 나와 궂은일 도맡아 하면서 나름 친해진 사이인데.
“···알았어요. 10명 모두 채용할게요.”
“가, 감사합니다.”
“카드 드릴 테니 백화점 가셔서 정장과 구두 한 벌씩 사 입으세요. 영수증 가져오시는 거 잊지 마시고.”
“알겠습니다. 으음, 그런데···,”
“왜요?”
“무슨 화장품 쓰세요? 피부가 너무 좋아지셔서, 아름다우십니다. 하하하···.”
호들갑을 떨다가 싸늘한 백서연을 보고 찔끔하더니.
“저, 전 이만 부대로 돌아가겠습니다. 수행 훈련 철저하게 해서 다시 오겠습니다.”
도민수가 돌아가고 난 뒤 백서연은 주머니에서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비춰보았다.
화장은 하지도 않은 얼굴.
30대의 나이지만 20대 초반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피부였다.
‘흐음, 그래도 기분은 좋네.’
혹시 김태주 회장님은 화장품도 만들 줄 아시나?
그랬으면 좋겠다.
※ ※ ※
드디어 출발 당일.
태주는 백서연과 함께 구례 기차역에 도착했다.
뉴서울까지 가는 수단은 기차가 최고.
태주는 자신을 수행하러 온 도민수 소령 일행을 보며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검정색 양복을 입고 태주의 뒤에서 뻣뻣하게 서 있는 그들.
죄다 주니어 익스퍼트, 미들 익스퍼트 등급의 각성 장교였다.
레귤러 이하의 위관급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분명 짬에서 밀렸겠지.
“저 조폭 두목 같아 보이진 않죠?”
미안한지 울상을 지으며 말하는 백서연.
“회장님, 죄송해요. 제가 너무 오버했나요?”
“괜찮아요. 이것도 좋네요.”
“네!”
VIP 객차 하나를 통째로 빌려 김태주와 백서연, 그리고 수행원 10명이 뉴서울 역으로 출발했다.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2시간 정도.
뉴서울 중앙 기차역도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현재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교통수단이 바로 기차니까.
스르르르르, 끼익!
태주가 탄 기차가 뉴서울 역에 도착했다.
승차장으로 내려 역내로 들어가는 일행.
그런데 모습이 범상치 않다.
무슨 레이드 팀도 아니고, 얼굴에 각성 문신을 한 10명의 검은 양복 입은 자들이 단 한 사람을 에워싸고 걸어간다.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
사람들은 그 모습을 힐끗 쳐다보며 수군댔다.
‘연예인인가?’
‘아니면 고위급 정치인?’
‘딱 봐도 몰라? 조폭이잖아.’
‘제국 경찰들은 저런 놈들 안 잡아가고 뭐 하나 몰라.’
‘쉿! 듣겠다.’
사람들의 보는 시선이 따갑다.
그런 시선을 은근히 즐기는 듯한 각성 장교 수행원들.
백서연은 서둘러 태주를 따라가면서.
“역을 나가시면 차량이 대기 중입니다.”
“오늘 일정은요?”
“없습니다. 호텔로 바로 갈 겁니다.”
“그래요?”
어서 가서 푹 쉬어야지.
“백서연 총괄 경영자님은 수행원들과 함께 좀 노세요. 오랜만에 뉴서울 오신 건데.”
“놀 시간이 없습니다.”
항상 바쁜 백서연.
호텔 가서도 일은 해야 한다.
구례 본사가 잘 돌아가는지 보고도 받아야 하고.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찾았다.”
“저기다!”
“저 사람 맞아?”
“빨리빨리 가.”
카메라, 마이크와 녹음기를 들고 부리나케 달려오는 일련의 무리들, 모두 기자들이었다.
백서연이 재빠르게 대응했다.
“도소령님.”
이미 각성 장교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태주를 양옆으로 네 사람씩 에워싸고, 두 명은 앞으로 나가 손을 올려 카메라 촬영을 막았다.
촤라라락! 촤촤촤촤···.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소리.
“김태주 회장님! 뉴서울 진출에 대해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해독제와 회복제를 구례 이외의 도시에서도 판매할 예정입니까?”
“군부와 커넥션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지리산 마수 부산물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특혜가···,”
“회복제는 마수 사냥에 있어 필수적인 물건으로 알고 있는데, 그걸 독점 생산한다는 건 기업윤리에 어긋난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지금이라도 공신력 있는 제약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가격을 낮추고 생산량을 끌어 올릴 생각은 없으십니까?”
세상이 망하고 다시 재건되었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기레기들.
바로 그때!
저벅저벅.
맞은편에서 나타난 한 무리의 사람들.
갑자기 태주 일행을 보고 멈칫하더니, 곧 앞으로 빠르게 다가와 진행 경로를 막아섰다
그 모습을 놓칠세라 기자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고.
통통한 몸집의 남자가 태주 앞으로 손을 내밀며 나왔다.
“이거 누구신가 했더니, 여기서 만날 줄이야. 태홍 바이오 김태주씨죠? 뉴서울 구경하러 오셨나?”
이건 또 뭐야?
태주가 말을 하려는 찰나, 백서연이 먼저 나섰다.
“이동우 사장님?”
“아! 백과장이었군. 우리 회사 그만두고 나가더니 얼굴이 좋아졌어. 반갑네. 한때 한솥밥 먹던 직원이 이렇게 성공한 모습을 보니 흐뭇하군. 하하하!”
짐짓 호탕하게 웃는 이동우.
그러나 백서연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이 새끼 때문이구나.
기자들도 단순히 취재를 나온 게 아니었다.
이동우의 사주를 받았겠지.
“이게 무슨 무례입니까? 회장님 앞길을 막다니, 예의도 안 배웠나요? 그리고 전 백과장이 아니라 태홍 바이오 총괄경영자입니다.”
“오! 총괄경영자! 대단하시네.”
“비켜요! 걸리적거리지 말고.”
태주는 실로 감탄했다.
이게 바로 걸크러쉬지.
하지만 이동우는 유들유들 능글맞은 표정으로.
“백과장 많이 컸어. 아무튼 내가 김태주씨와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비키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못 비키겠다면?”
이 새끼, 아까부터 살살 긁네.
도민수와 각성 장교들이 앞으로 우르르 걸어가.
“자자, 물러납시다. 길 막지 마시고.”
그래도 이동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도 각성자 수행원들을 데리고 왔다.
“넌 뭐야? 저리 안 비켜?”
“하아, 싹 치워버려!”
“누가 할 소리!”
도민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한주먹감도 안 되는 새끼들이 머리 꼿꼿이 세우고 노려보고 있지만, 차마 건드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차차착! 찰칵, 차차칵!
계속 이어지는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
태주 또한 얼굴을 찡그렸다.
분위기가 묘해졌다.
난데없이 벌어진 대치 상황.
태주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이동우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이것들 봐라?’
마치 마중 나온 것처럼 뉴서울 역에 나타난 이동우, 그리고 취재한답시고 우르르 몰려와 셔터를 눌러대는 기자들.
또 기자들 틈에 몰래 익스퍼트 등급의 각성자 한 명도 섞여있었다.
문신을 숨기려고 마스크까지 썼다.
태주는 픽, 하고 웃었다.
그리고 이동우 사장에게 눈을 맞추면서.
“야!”
“···뭐라고? 지금 나보고 야라고 불렀나?”
“셋 셀 때까지 비켜라. 그럼 그냥 넘어가 준다. 하나!”
이동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폭소를 터뜨리면서.
“크크크크크, 아이고, 배야! 너 정말 웃기는 놈이네? 크크크, 뭐? 넘어가 줘? 여기가 구례인줄 아나 본데···,”
“둘!”
“흐흐흐, 뭐, 이해해. 듣기론 학교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다지? 파주에선 폐인처럼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었고.”
“셋!”
“오! 셋 다 셌구나. 이제 그냥 안 넘어가겠네? 뭘 어쩌려고, 날 치기라···, 음? 자, 잠깐!”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뒷걸음질 치는 이동우 사장.
“어어어?”
하지만 태주는 이동우의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양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그저 멀리서 살기만 놈에게 실어 보냈다.
마수만 피어를 사용할 줄 아나?
살기를 이용하는 무공들이 얼마나 많은데.
마침 적당한 무공이 있다.
마음에 기를 실어 사람을 죽이는 의형살인(意形殺人)엔 훨씬 못 미치지만 최소한 망신을 줄 수 있다.
이동우는 주춤주춤 계속 뒤로 물러났다.
왜 저러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태주의 살기는 오로지 이동우만을 향해 있었으니까.
살기가 더더욱 거세졌다.
이동우는 숨이 턱 막혀왔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
‘왜 이러지?’
결국엔,
털썩!
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스사앗!
살기가 절정으로 치달았다.
“으으으···.”
태주의 살기는 이동우의 몸 전체 근육을 한순간에 경직시켜 버렸다.
그리고 살기를 단번에 확 풀어버리면···.
툭!
“히익?”
팽팽했던 근육이 순식간에 이완된다.
주르륵!
이동우는 자신의 괄약근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바지가 흥건하게 젖어 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뉴서울 역 타일 바닥으로 강이 되어 흘렀다.
심약한 사람들이 엘리트 마수의 피어에 당했을 때 종종 오줌을 싸곤하는 이유였다.
촤촤촤촤촤촤촤촥!
카메라 플래시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어느새 백서연도 스마트폰으로 그 장면을 찍고 있었다.
< 뉴서울 역에서. - 여기까지 무료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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