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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유창고 - 유료 시작(골드 이벤트) >
미리내 제약 이동우는 적합자였다.
반면 회장인 아버지는 각성자.
어릴 땐 각성을 기대했지만, 재능 탓인지, 운 탓인지 서른 후반의 나이에도 아직 적합자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그는 꿀릴 게 없었다.
각성이 뭐가 중요해?
설령 마스터라고 해도 겁나지 않았다.
지금도 자신이 부르면 만사 제치고 달려올 마스터들이 수두룩한데.
오늘도 슈페리어 등급의 각성자를 데리고 왔다.
원래 이동우는 잔인한 성격.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 소시오패스.
살인, 납치, 폭력···,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그렇게 미리내 제약이라는 왕국을 만들어왔다.
그래서 태홍 바이오가 뉴서울에 진출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저 가소롭기만 했다.
결국 자신의 왕국 안에 흡수될 것이다.
이동우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김태주가 뉴서울에 상경한 이상 신고식을 거하게 치러주면서 이곳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똑똑히 각인시켜 주려고 했다.
물론 김태주에 대해서도 따로 조사했다.
마스터에 필적하는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함정을 팠다.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구설수를 만들어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린다.
그 연극에 스스로 출연하기로 했다.
일부러 갈등을 유도하고, 놈이 반응만 해주면 된다.
적당히 연출해주면 데리고 온 기자들이 없던 사실도 있는 것처럼 만들어, 거기에 살을 붙이고, 잔뜩 과장해서 신문이나 방송에 내보낼 것이다.
뉴서울 언론이 얼마나 매콤한지 직접 겪어보라지.
그리고 절반은 성공했다.
이미 충돌이 있었으니까.
내일 모든 신문과 뉴스에 도배가 될 것이다.
- 태홍 바이오 김태주 회장, 뉴서울 역에서 자신이 가던 길을 막았다며 갑질과 폭력 행사
- 우연히 만나 인사를 청한 기업인 E씨, 난데없는 봉변을 당해
- 여기는 구례가 아니다. 황실과 법을 무시하는 행위, 엄중한 조사를 통해 죗값을 치러야
이렇게!
그런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무릎을 꿇은 건 둘째치고, 바지에다가 오줌을 지려?
자신은 적합자다.
시스템 각성만 이루지 못했을 뿐, 웬만한 각성자 씹어먹을 정도로 강했다.
그동안 먹은 영약만 몇 개인가?
그런데 고작 눈만 마주쳤다고 바지에 오줌을 줄줄 흘리다니.
알 수 없는 기운에 사로잡혀 온몸의 근육이 바짝 굳어버렸다.
그리고 한순간에 풀려버린 긴장, 결과는 참혹했다.
“무, 무슨 짓을!”
“무슨 짓이라니? 내가 뭘 했다고?”
태주는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주저앉은 이동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웬만하면 그냥 가려 했는데···.”
살찐 볼을 푸들푸들 떨고 있는 이동우.
“페어플레이하자. 개수작 부리지 말고.”
“···.”
“사업가로서 선을 지키면서 살려고 노력 중이야. 그런데 네가 먼저 그 선을 짓밟으면 그땐 나도 깡패가 되는 거야.”
“···.”
이동우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핏발 선 눈으로 죽일 듯 태주만 노려보고 있었다.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
이런 놈은 그냥 두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많이 겪어봤다.
강호의 당군악으로서 말이다.
“하아, 난 정말 모르겠단 말이야. 재벌가 자식들 정도면 교육도 잘 받았을 텐데, 너무 멍청한 거 아니야? 너만 그런가?”
“···.”
“그냥 여기서 끝낼래?”
태주는 무한공간에서 머리카락만큼 가느다란 세침 하나를 몰래 꺼냈다.
스윽.
이걸로 놈을 찌르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최소 닷새 안에 생을 마감할 터.
순간!
기자들 틈에서 구경만 하고 있던 한 남자가 마스크를 벗고 앞으로 걸어 나오며 태주에게 말했다.
“그만해 주시죠.”
언제 나오나 했다.
“누구···?”
“처음 뵙겠습니다. 은하 길드 부길드장 전경철입니다. 미리내 제약회사와는 업무 협약을 맺고 있습니다.”
“아하, 그러시구나. 그런데 기자들 틈에 숨어서 뭐 하셨나?”
전경철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제가 대신 사죄드리겠습니다. ···어쨌거나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끝내는 게 어떻습니까?”
“시작도 거기서 했으면서, 끝내는 것도 마음대로 하시겠다?”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러면서 전경철은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태주에게 건넸다.
“언제 한번 전화 주시죠. 사죄의 의미로 제가 뉴서울 풀코스로 대접해드리겠습니다.”
“풀코스라, 말만 뻔지르르한 풀코스는 아니겠죠?”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그래요? 그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오늘 어때요?”
“···네, 네?”
“이따가 연락할게요. 저 혼자.”
“어어, 그, 그렇게 하십시오.”
태주와 전경철이 이야기하는 동안.
백서연은 기자들을 노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어떤 기사든 우리 회장님 이름이 거론된다면 내가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기사 똑바로 쓰세요.”
그러고 나서 그녀는 이동우 앞에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이봐요. 이동우 사장님.”
“···.”
“앞으로 사람 봐가면서 수작을 부리세요. 이 멍청한 재벌 새끼야!”
“···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어쩔 건데? 나도 눈 돌아가면 뵈는 게 없는 년이야.”
“미친년이!”
백서연은 스마트폰을 이동우의 눈앞에 흔들었다.
“조금 전에 다 찍어뒀거든요. 누가 개망신당하는 현장을, 아주 줄줄 나오던데요? 양이 너무 많으셔. 전립선 튼튼해서 좋겠네.”
“씨발!!!”
“제국 내 모든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버릴 수도 있어요. 제목을 뭘로 정할까요? <재벌 3세가 전립선이 너무 강하다> 이런 거? 원하시는 대로 정해드리죠.”
“···그럼 네가 무사할 줄 알아?”
“나도 알아요. 그 정도 각오도 없이 내가 이러고 있을까 봐, 지금 당장 한번 해볼까요?”
이동우는 입을 다물었다.
이년, 알고 봤더니 완전 또라이다.
“잘 알아들었을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목격자들 입이나 막아요. 그럼 이만.”
태주와 백서연 일행은 뉴서울 역을 나섰다.
미리 대기하고 있는 3대의 승용차들.
운전자는 각성 장교 수행원들이 맡기로 했다.
자동차에 타자마자 백서연이 태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회장님, 동선이 알려지게 해서.”
“하하하, 그게 숨긴다고 숨겨지나요?”
“이동우 사장이 역까지 찾아올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저도 처음엔 원만하게 풀고 싶었지만···.”
“저쪽에서 작정하고 나왔던데, 백사장님은 신경 쓰지 마세요. 이 건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네.”
조수석에 타고 있던 도민호 소령도.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미리 막았어야 했는데.”
“하아! 이제부터 죄송하다는 말 금지입니다. 그리고 오늘 호텔 들어가서 같이 한잔합시다.”
“수행원으로서 어떻게···.”
“명령입니다. 아니면 오늘 기차로 구례에 내려가시든가.”
단단히 엄포를 놓고.
그렇게 태주 일행은 호텔에 도착했다.
태주는 자신의 스위트룸에 딸린 미팅실에 사람들을 모았다.
그리고 룸서비스로 푸짐한 음식과 술을 시킨 후, 사람들과 만찬을 즐겼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뒤.
태주는 늦은 밤에 전경철 은하 길드 부길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풀코스 준비됐나요? 그럼 만납시다.”
갑작스러운 전화에 당황하는 듯한 전경철의 목소리.
- 지, 진짜 오시겠다고요?
“그럼 거짓말이겠어요? 온다고 했잖아요. 나 혼자.”
스마트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아마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
이윽고.
- 호텔 앞으로 차를 보내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앞에서 기다릴게요.”
- ···좋습니다. 두 시간 후에 차를 보내겠습니다.
두 시간이라,
그동안 뭔가를 꾸미겠지.
오늘 밤은 방해받지 않고 홀로 움직일 생각이다.
괜히 누군가 따라붙으면 거추장스럽다.
태주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뉴서울 풀코스.
과연 어떤 맛일까?
‘참! 뭘 입고 가지?’
드레스 코드도 매우 중요하다.
‘그냥 트레이닝복으로 입자.’
그리고 잠시 후.
호텔 앞에서 기다리던 태주 앞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섰다.
문을 열고 나오는 이는 은하 길드 부길드장 전경철.
“모시겠습니다.”
“이거 기대되네요. 솔직히 풀코스는 말만 들었지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태주는 승용차 뒷자리 앉았다.
그러자 차가 스르륵 부드럽게 출발했다.
풀코스에 이동우 코스도 나올까?
제발 나왔으면 좋겠다.
※ ※ ※
지구와는 다른 차원의 선계(仙界).
내공과는 다르게 선기(仙氣)는 심법을 통한 운기로는 보충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선기가 부족하다고 해서 선계 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불이익 몇 가지가 있다.
가끔 부여되는 인간계 강림에 제한을 받고, 신선술이 약해지며, 환수계의 영수들에게 무시를 당한다는 것 정도.
‘가만히 생각하니 킹받는군.’
김태주와의 두 번의 영혼 연결 탓인지, 독선 당군악의 입에서 무심결에 지구에서 자주 쓰는 유행어가 튀어나왔다.
‘무시당하고 살 수는 없지.’
선계에서 가만히 지내다 보면 조금씩 선기가 채워지기는 한다.
물론 빨리 채우는 방법도 있다.
선계의 보물인 천도(天桃) 복숭아를 먹으면 다 해결된다.
아마 채워지고도 남을 터.
그러나 그게 어디 구하기 쉽나?
차선책이 있다면 신선들에게 한 달마다 하나씩 지급되는 선도(仙桃) 복숭아를 먹으면 선기를 보충할 수 있다.
선기가 소량 들어있는 선도 복숭아.
천도 복숭아만큼은 못하지만 선기를 채우기에 더없이 효과적이다.
문제는 한 달에 한 개씩이라 수량이 부족하다는 것.
그래서 같은 동료 신선을 살살 꼬시는 중이었다.
“삼봉 선인, 하나만 부탁합시다. 우리 같은 강호 출신 아니오. 내 무당파와도 인연이 있으니.”
“흐음, 내 손에 무한공간 술법진 새겨주면 생각해 보겠소,”
“아니, 그 술법진에 선기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데, 복숭아 한 개 받고 새겨주면 오히려 내 손해요.”
“그럼 일없고.”
빌어먹을 도사 새끼.
청빈한 삶, 어쩌고저쩌고하더니 욕심만 덕지덕지 붙었다.
“···복숭아 6개 정도면 새겨줄 수 있긴 하오만.”
“허어, 독선에 오르니 그대 얼굴에 독기가 좔좔 흐르는군. 6개월 치 선도를 달라니, 너무 염치없는 것 아니오?”
“···.”
“그깟 무한공간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요.”
이게 더 화가 난다.
감히 무한공간을 무시해?
이게 얼마나 신기하고 가치가 있는 술법인데.
무한한 공간에 어떤 물건이든 집어넣을 수 있는···.
‘응?’
무심결에 자신의 무한공간을 살피던 당군악의 눈에 전에 보지 못했던 희한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공간 가장자리 부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자신이 설정하지 않았던 구역이었다.
‘뭐지?’
물건도 들어있는 것 같다.
‘꺼내 볼까?’
당군악은 그 구역에서 물건을 꺼냈다.
하나는 매우 잘 알고 있는 물건.
한 자루의 유엽비도.
‘내가 넣어둔 건가?’
아마 그런 듯.
그런데 다른 물건들도 더 있었다.
스르릇!
손에 들린 작은 철제 물건.
“헉!”
당군악은 깜짝 놀랐다.
너무 놀라서 손이 벌벌 떨릴 정도.
우화등선한 이후 이렇게 경악한 건 처음.
‘···스팸?’
기억이 난다.
김태주와의 영혼 연결로 그가 사는 세상을 간접 경험했을 때 알았던 물건.
‘이게 왜···.’
하나가 더 있었다.
꺼내 보니.
“오!”
화려한 금박의 종이 상자가 있었고, 그 안엔 두 개의 유리잔과 검정색 병이 있었다.
이것도 안다.
‘돔페리뇽이구나.’
최고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고급진 샴페인.
왜 이게 자신의 무한공간에 들어있지?
그것도 지구의 물건이?
‘···아!’
그제야 당군악은 깨달았다.
‘김태주였어.’
그에게 선기를 전해 무한공간을 생성하게 했을 때, 일종의 공유창고 같은 것이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다.
김태주와 당군악.
서로 영혼이 같고, 선기마저 동일하니.
‘대박이군.’
선계에서 지구의 술과 음식을 맛볼 수 있다고?
흐릅, 군침이 싹 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삼봉 선인이 당군악에게 물었다.
“독선, 방금 꺼낸 물건들이 다 뭐요? 흉측한 암기는 알겠는데.”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바쁠 테니 이만 가보시오.”
“아니, 신선이 바쁠 일이 뭐가 있다고.”
당군악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돔페리뇽의 마개를 땄다.
퐁!
소리마저 경쾌하다.
유리잔 하나를 들고,
꼬르르륵!
술을 따르니 황금빛 액체에 보글보글 올라오는 탄산 방울.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크아!”
감동적이다.
이거야말로 천상의 맛 아닌가.
삼봉 선인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당군악이 마시고 있는 액체, 술인 것 같은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물건이다.
꿀꺽.
게다가 너무나 맛있게 마신다.
“저어, 독선.”
“왜 그러시오? 아직 안 가셨소?”
“나, 나도 한 잔만 주시구려.”
당군악은 그런 삼봉진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게 얼마나 귀한 건데, 염치도 없이.
“선도 복숭아 3개.”
“···무슨?”
“복숭아 3개면 생각해 보겠소.”
“그런 말도 안 되는!”
“싫으면 말든가.”
당군악은 스팸 캔도 땄다.
찌지직!
그리고 유엽비도로 작게 잘라서 입에 넣으니.
단짠이 어우러진 자극적인 맛.
“허허, 내 입안이 선계로구나.”
삼봉 선인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복숭아 3개를 주겠소. 대신 그 술 한잔과 이 고깃덩어리 하나, 어떻소?”
“콜!”
“응? 코, 콜이라니,”
“좋다는 뜻이오. 복숭아 3개 먼저 주시오.”
당군악은 복숭아 3개를 받고 스팸 조각 하나와 돔페리뇽 한 잔을 삼봉 진인에게 따라주었다.
서둘러 한 모금 입에 넣는 삼봉 선인.
“허허, 이런 술이 있었다니.”
당군악은 다시 무한공간을 열었다.
아껴 먹어야지.
어디다 보관할까?
저 반짝반짝 빛나는 구역에?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픽! 하고 사라지는 빛.
‘응?’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연결이 끊긴 모양이군.’
영혼 연결과 비슷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연결되었다가 끊어지는 식.
‘···다시 연결되겠지?’
꼭 되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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