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51화 (5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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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홍 생기불끈 >

모두가 죽어버렸다.

여기서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은 태주 혼자.

별다른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죽여야 할 놈들을 죽인 것뿐이니까.

만약 이동우가 백서연이나 백홍표, 그리고 고아원만 들먹이지 않았어도 안 죽였을 것이다.

구례에서 두 명의 상임위원을 굴복시켰을 때처럼, 중독시키는 선에서 그쳤을 터, 애초의 목적이 그거였다.

중독시키되 살려는 주고, 취할 건 취하고.

나중에 개심의 싹이 보이면 완전하게 해독시켜주고.

하지만 살려두면 안 되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이러다 나중엔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공격이 들어오겠지.

그전에 싹을 자르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두창과 전경철도 마찬가지.

힘을 가진 놈들이 마수들을 사냥하기는커녕 재벌의 하수인이 되어 추악한 짓을 저질러?

백번 죽어도 싸다.

‘자, 이제 어쩐다?’

뒷정리는 확실하게.

먼저 놈들의 스마트폰과 신분을 알 수 있는 지갑등을 수거해 가루로 으깨거나 갈기갈기 찢어서 무한공간에 넣고.

‘시체도 치우자.’

바닥엔 피 한 방울 없었다.

시체만 없애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원래 무한공간에 들어가는 크기는 길이와 폭, 두께, 모두 1m.

다른 조건은 괜찮다지만 길이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해결 방법은 있다.

접이식 자전거를 보관하는 것처럼 집어넣으면 된다.

사후 경직이 오기 전에 재빨리 허리를 굽히게 해서.

스르륵, 스르륵, 스르륵.

태주는 시체 위에 손을 뻗어 무한공간 기타 구역에 넣었다.

나중에 구례로 가서 지리산 밀림 깊숙한 곳에 던져놓으면 끝.

태주는 밖으로 나가 천천히 뉴서울 시내를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원래 묵고 있던 호텔에 내린 후,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동우가 사라졌다는 걸 알아차리면 수사가 진행되겠지.

그러다 보면 자신도 용의선상에 오를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전경철과 통화를 한 기록이 남아 있을 테니까.

‘그럼 어쩌라고?’

시체도 없고, 혈흔도 없고, 증거도 없고···.

한마디로 완전범죄였다.

‘가서 푹 자고, 내일 지점 방문이나 준비하자.’

※ ※ ※

뉴서울 신종로 태홍 바이오 지점 사옥.

20층짜리 건물이지만 태홍 바이오가 사용하는 층은 맨 꼭대기 3개 층.

그러나 실제로는 한 개 층만 사용하고 있었다.

현재 근무하는 직원들은 약 20여 명, 공간이 많이 남았다.

아침부터 직원들이 청소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구례 본사에서 회장님이 방문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중에 백서연이 직접 영입한 사람들.

최동일 전(前) 미리내 전자 전무이자 현(現) 태홍 바이오 뉴서울 지점장, 그리고 구상천 부지점장, 마석우 영업부장에, 송수희 마케팅 팀장까지.

요즘 피곤에 쩔어 사는 최동일 태홍 바이오 뉴서울 지점장이 직원들에게 전했다.

“회장님께서 곧 도착하신다네. 하던 일 마무리하고 다들 앉아있어.”

“마중 나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구상천의 물음에 최동일은.

“아니, 그냥 편하게 있으라는군.”

“아, 네, 알겠습니다.”

드디어 실제 고용주가 온다.

자신들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

마석우 부장이 송수희 팀장에게 조용히 말했다.

“우리 회사가 잘 될까?”

“백사장님을 믿으세요. 마부장님도 그분만 믿고 왔잖아요.”

“우리 백사장님이야 능력이 좋긴 하지, 하지만 난 회장님이 조금 그래.”

“왜요?”

“여기서 포자 독 해독제와 회복제를 생산 판매하지 않으시겠다잖아.”

“아···.”

“무슨 약을 팔지는 모르겠지만, 이래서야 시작이나 제대로 할는지···.”

솔직히 송수희도 그게 마음에 걸렸다.

그 두 약품은 이미 검증된 약이다.

특허도 받기 쉬울 것이고, 식약청 통과도 빠르게 진행될 텐데.

성공이 보장된 약은 냅두고, 신약을 만들어 팔겠다?

과연 성공할까?

뉴서울 약품 시장은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약들이 시장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 와중에 몇몇 대기업들은 나눠먹기식으로 제국의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리내 제약은 영약과 마나 회복제, 발해 바이오는 각종 치료제, 후지 제약은 건강식품···.

태홍 바이오의 주력은 뭐니 뭐니 해도 모기 독, 포자 독 해독제와 태홍 회복제, 이것들을 뉴서울에서 팔면 무조건 대박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약들은 구례에서만 판다니.

회장님 지시사항이라며 뉴서울에선 다른 약을 출시할 계획이란다.

직원들은 생산하게 될 약의 정체도 모르고 있었다.

특허가 통과되면 바로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라는 것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특허만 받으면 뭘 하나?

식약청 승인을 받아야지.

그때였다.

저벅저벅, 회사 사무실로 들어오는 사람들.

선두에 굉장히 젊어 보이는 청년이 앞장섰고, 그의 옆엔 백서연이, 검정색 양복을 입은 남자와 여자들이 따랐다.

직원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남자, 여자들의 외모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뭐지? 저 조각상들은?’

‘와! 얼굴이 장난이 아니네.’

‘죄다 각성자들이야.’

‘어? 정말이네. 문신 멋있다. 얼굴과 개잘 어울려.’

요즘 대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각성자들을 고용하고 있었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재력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이 아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그럼 맨 앞에 선 사람이 김태주 회장인가?’

‘젊네.’

‘그쵸? 얼굴도 잘생겼어요.’

‘흐음, 차라리 나이가 좀 있어 보였다면···.’

‘쉿! 조용. 듣겠어요.’

최동일 지점장이 달려와 태주 일행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백서연이 중간에서 서로 소개해 주었다.

“회장님, 이분이 최동일 지점장입니다.”

“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많이 피곤하시죠?”

“하하하, 아닙니다.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쉬엄쉬엄하세요.”

태주는 최동일 지점장이 보자마자 안쓰럽다.

잘하면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오겠다.

구상천 부지점장과도 인사를 나누고.

“직원들과도 인사를 나눴으면 하는데···.”

“대회의실로 모시겠습니다. 한꺼번에 하시죠.”

태주가 회의실로 들어가자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이 따라 들어갔다.

모두들 의자에 앉자.

“안녕하십니까. 김태주입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말이 잘 안 나온다.

태주로서는 너무 어려운 일.

사람들 모아놓고 이야기하는 게 쉬울까?

마수나 마인들 조지는 게 쉬울까?

20명밖에 안 되는 직원들이지만 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조금 부담스럽다.

그래도 꾹 참고.

“우리 다 같이 시원한 음료수 한 잔씩 마시고 시작합시다.”

태주는 백서연에게 눈짓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회의실 밖에서 도민수가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하나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각성 장교들이 박스에서 음료수 한 병씩을 꺼내 탁자에 앉은 모든 직원들에게 돌렸다.

“하나씩 마시고 이야기 나누세요.”

“아! 네네, 감사합니다.”

“제, 제가 돌려도 되는데···,”

“괜찮습니다. 편하게 앉아 계십시오.”

회사직원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무려 각성자가 음료수를 서빙하다니.

그것도 심상치 않은 외모의 남녀가.

하도 송구스러워서 음료수를 받고도 마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참! 드시기 전에 알고 드세요. 이건 앞으로 태홍 바이오에서 출시하게 될 자양 강장제 시제품입니다. 꺼림칙하면 안 드셔도 되고요.”

태주의 말에 직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음료수 뚜껑을 돌려 따 마셨다.

우리 회사에서 출시할 음료라면 무조건 마셔야지.

자양 강장제는 약도 아니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도 파는 비타민 음료 같은 것.

회장님의 수행원들이 뒤에 있다가 직원들이 마시고 난 병을 하나하나 다시 수거해갔다.

그리고 간담회가 시작됐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지점 위치가 어떠니, 근무 여건은 괜찮은지, 회사 복지는 마음에 드는지.

그러다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고 발언을 요청하는 한 명의 직원.

“마석우 영업부장입니다. 회장님께 요청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마부장님, 편하게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포자 독 해독제와 태홍 회복제를 구례에서만 파시겠다는 결정을 재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으흠.”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성공이 보장된 약품을 왜 판매하지 않겠다는 건지, 저로선 이해하기 힘듭니다.”

예상했다.

성공이 보장된 약을 왜 뉴서울에서 팔지 않겠다는 건지, 자신이 직원이라도 불만을 가질 터.

사실대로 말해주자.

이들도 알아야 하니까.

“네, 이유를 설명해 드리죠.”

직원들이 태주의 말에 집중했다.

“기존 태홍 바이오의 제품은 제조과정에서 특별한 가공 처리가 요구됩니다. 그걸 할 수 있는 기술자들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생산량이 극히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럼 기술자들을 더 많이 양성하면 되지 않을까요?”

“익히기 매우 어렵습니다. 나름 정교한 기술이라, 특허를 내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처리 과정을 모르면 절대 카피할 수 없거든요.”

“아!”

직원들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아무런 이유 없이 구례에서만 팔까?

기술자 양성도 그렇다.

만약 열심히 키워놨는데 다른 제약회사에서 기술자를 빼가면?

회사가 망하는 거나 다름없다.

아직 질문이 남았는지 또 한 번 손을 드는 마석우 부장.

“감사합니다. 회장님 말씀을 들으니 이해가 갑니다만, 그런데 혹시 이번에 특허 예정인 신약은 특별한 가공 처리가 필요 없는 물건입니까?”

“맞아요. 정확합니다. 좀 전에 드신 자양 강장제가 주력이 될 겁니다. 그래서 특허와 식약청 허가를 받으려는 거고요.”

“만약 특별한 가공 처리가 없다면 약의 효능이···,”

마석우는 말끝을 얼버무렸다.

원래 하려는 말은,

‘···약의 효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경쟁력이 없는 약도 문제일 텐데요.’

라는 거였다.

직책이 영업부장이다 보니, 약품 경쟁력에 매우 민감한 마석우.

하지만 이번 신약의 개발자도 김태주 회장이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제가 우려하는 건 건강음료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는 겁니다. 약효도 별 다를 바 없을 텐데, 경쟁력이 문제입니다. 가격이나 마케팅, 상대가 안 됩니다. 뚫고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태주는 이런 사람이 좋다.

월급을 주는 고용주 앞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문제점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

“하하하, 약효는 걱정하지 마세요. 경쟁력도 충분히 있으니까. 흐음, 그러고 보니 슬슬 반응이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네?”

마석우는 그저 눈만 끔벅거렸다.

무슨 반응?

태주가 기다렸던 반응은 가만히 앉아있던 최동일 지점장에게서 먼저 나왔다.

여기서 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

요즘 지점 조직을 구성하느라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최동일 지점장.

“···회, 회장님?”

“네, 말씀하십시오. 지점장님.”

“이 자양 강장제···, 특별한 성분이 들어가지 않은 게 화, 확실합니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약초들을 가공해서 만든 겁니다. 조합 배율이 남다르긴 하지만, 절대 해롭지 않습니다. 믿으세요.”

긴꼬리 쎅토끼에게도 먹였다.

당연히 아무 일 없었고.

부작용이 있긴 했는데, 쎅토끼의 번식 활동이 두 배로 늘어났다.

밥만 먹고 나면 그 짓, 워낙에 약빨이 잘 받는 놈이라 그런 듯했다.

자체적인 임상시험도 끝마쳤다.

백서연도, 백홍표도, 그리고 본사에서 일하는 일부 직원들도 꽤 오래 강장제를 마셨지만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아아아, 이럴 수가.”

최동일 지점장이 벌떡 일어났다.

초롱초롱한 그의 눈빛.

아니, 좀 전까진 피로에 절어 흐리멍텅했던 눈이?

또 격무에 시달려 양 볼까지 내려왔던 다크서클도 씻은 듯 사라졌다.

희한하다.

완전한 피로회복.

고작 음료수에 불과한 자양 강장제가 이렇게 극적인 효과를 보여준다고?

“···한 병 더 없습니까?”

“죄송합니다. 사람 수에 맞춰서 가지고 온 거라, 나중에 생산이 시작되면 마음껏 드세요.”

젊은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 느렸다.

아무리 젊더라도 일할 때 쌓이는 피로는 공평한 것.

다만 체력이 좋아서 잘못 느낀다 뿐이지.

그러나 마시기 전과 마시고 난 후의 차이는 분명했다.

“나도 그러고 보니 몸이 가뿐한데?”

“엥? 혹시 플라시보 아니야? 난 아직···, 어? 잠깐만! 글자가 왜 이렇게 잘 보여?”

“으아! 진짜 피로가 풀린다. 눈이 상쾌해. 안경을 벗어도 되겠는데?”

“찌뿌둥하던 몸이 이렇게 개운할 수가.”

“나, 나도 마찬가지야. 세상에! 지금까지 마셨던 피로회복제는 다 가짜였어.”

“···피로회복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마석우 부장도 일어나서 회의실 주변을 걸어봤다.

어제 과음해서 속이 불편했는데, 숙취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이거 진짜였어.’

약품 경쟁력?

이거 하나면 카페인 음료든, 피로회복제든, 제국 전체 건강음료 시장을 씹어먹을 수 있다.

흥분한 목소리로 태주에게 물어오는 마석우.

“회장님, 이 약 이름이 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올 것이 왔다.

제 입으로 말하기가 조금 어렵다.

그래서 태주는 백서연을 슬쩍 쳐다봤다.

“후,”

그녀는 한숨을 쉬더니.

“자양 강장제는 태홍 생기불끈입니다. 그리고 외상 치료제도 있는데 그건 태홍 새살쑥쑥이고요.”

“···아!”

약 이름이 촌스러우면 어떤가?

효과만 있으면 되지.

이 자양 강장제의 무서운 점 하나.

일반인들도 언제 어디서나 사 먹을 수 있는 건강식품.

판매시장의 범위가 다른 약에 비해 훨씬 넓다.

희망이 보인다.

그깟 해독제와 회복제 없어도 된다.

태홍 바이오 뉴서울 지점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 ※ ※

선계(仙界).

당군악은 매일매일 자신의 무한공간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대체 언제 반짝이나?

우연과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김태주와 자신의 공유 공간.

분명 다시 연결될 것이다.

그게 언제일지 모르지만.

바로 그때!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떴다!!!”

반짝인다.

하지만 텅 비어있었다.

어때? 자신이 채워 넣으면 되지.

당군악은 재빨리 선도 복숭아 하나와 미리 준비해 놓은 두루마리 서신을 반짝이는 공간에 집어넣었다.

이제 기다릴 일만 남았다.

하지만 잘 될까?

김태주가 무한공간이 반짝이는 걸 인지해야 하고, 그리고 그 안에 물건이 있는지 확인도 해야 한다.

모든 건 운에 달렸다.

제발 편지를 읽어주길.

< 태홍 생기불끈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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