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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홍 새살쑥쑥 >
삼한제국 본토와 식민지 일본 열도를 오가는 교통수단은 배와 비행기.
육지와 마찬가지로 하늘과 바다 또한 마수들이 산다,
그러나 놈들도 영역을 지키기에, 그곳만 피해 가면 문제가 없다.
파주 영지 안주인 혼다 미쯔이는 항공편을 이용해 자신의 친정에 갔다.
규슈 영지에 도착해 자신의 아버지 혼다 카즈오를 만나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털어놓는 미쯔이.
태평이와 태천이, 두 아들이 마수 토벌 견학을 위해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에 임시 배속을 받은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텐트 설치 훈련을 받다가 일반 병사에게 모욕을 당하고, 그로 인한 얼차려, 동료 사관생도들의 따돌림, 보급에서의 불이익, 그리고 중앙 제국군에 임관할 수 없을 거라는 저주, 굴욕적인 폭행까지.
“그래서 우리 손자들이 그 고생을 한 이유가 다 김태주란 놈 때문이다?”
“맞아요.”
“증거는?”
“···어, 없어요. 그러나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과 그놈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쯧쯧.”
혼다 카즈오는 딸에 대한 불쌍한 마음보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분명 내 피를 타고났을 터인데 이렇게 멍청할꼬.’
외손자들도 다를 바 없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그렇지.
같은 사관생도에게 반항 한번 못해보고 처맞아?
그 대상이 백두 그룹의 딸이라 해도 말이다.
“그래서? 이 애비가 뭘 해주길 바라느냐?”
“김태주, 그놈을 죽여주세요.”
“하하하.”
혼다 카즈오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지리산 마수 토벌의 주역이자, 구례를 지배하다시피하고, 또한 황실에서도 눈여겨보고 있는 태홍 바이오의 회장을 죽여달라?”
“···.”
“확실한 물증이 있으면 모를까. 네 머릿속 망상만으로?”
“망상이 아니에요.”
“네가 우리 규슈 영지를 망하게 할 작정이구나.”
“아, 아버지, 그런 뜻이 아니라.”
“닥치거라!”
혼다 미쯔이는 찔끔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 그걸 보니 카즈오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마음을 굳세게 가져야 한다. 네게 우리 규슈 영지의 미래가 달렸어.”
딸을 파주 영지로 시집 보낸 이유가 뭐겠나?
점점 바다로 가라앉고 있는 규슈 영지를 벗어나 본토로 가기 위함이었다.
단지 기후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얼마 전에도 큰 지진이 일어났다.
그래서 규슈 영지의 영역은 더 좁아졌고.
물론 지금이라도 가솔들을 이끌고 본토로 가면 되지만 어디에 정착하라고?
혼다 가문의 번영을 이어갈 영지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무능하고 고지식한 김웅방 준장에게 시집을 보냈다.
영리한 머리로 남편을 휘어잡아 파주 영지를 장악하라고.
‘그나저나 그냥 놔두면 아무것도 안 되겠군.’
밥이 다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변수가 나타났다.
잘못하면 파주를 김태주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
결단을 내릴 순간이 왔다.
“딸아.”
“네, 아버지.”
“넌 아직 네 남편을 사랑하느냐?”
그러자 표독스럽게 변하는 혼다 미쯔이의 눈빛.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요.”
“그래, 그렇구나.”
카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조만간 너에게 물건 하나가 전해질 것이다.”
“물건요?”
“절대 해독할 수 없는 독, 마스터라도 먹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지독한 약물.”
“네?”
미쯔이는 깜짝 놀랐다.
독?
그걸 왜 자신에게?
“파주 영지 지배자가 부재하면 그 권리는 자연스럽게 첫째 외손자 태평이에게 넘어가겠지. 하지만 아직 태평이는 익스퍼트에도 이르지 못했으니···,”
카즈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창 너머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후견인이 필요할 것이야. 게다가 그 후견인이 마스터라면 얼마나 든든할꼬, 예를 들어 네 오빠 같은, 손자들에겐 외삼촌 말이다.”
“마, 맞아요. 오빠가 파주로 오시면 태평이와 태천이에게 튼 힘이 될 거예요.”
“그러려면 네 남편은···,”
“아!”
미쯔이는 누군가가 자신의 뒤통수를 내려치기라도 한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영지 후견인 제도.
영지 지배자가 부재, 혹은 어떤 원인으로든 사망했을 시, 영지 상속인을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
김웅방이 죽으면 당연히 그 직계, 태평이가 상속을 받는다.
하지만 태평이, 혹은 그의 자손이 마스터가 되지 못하면 다시 영지를 박탈당해 제국으로 귀속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후견인.
태평이를 마스터로 키우든가, 태평이의 자식을 마스터로 키우든가.
혼다 지로는 마스터다.
혼다 카즈오의 아들이며 혼다 미쯔이의 오빠, 김태평 김태천의 외삼촌.
후견인으로서 부족함이 없을 터.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아버지. 하지만, 하지만···,”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리라는 건 아니다. 정 꺼림칙하면 하지 않아도 그만이고.”
“···.”
미쯔이는 침묵했다.
아무리 우유부단하고, 능력 없는 남편이지만 그동안 쌓은 정이 있는데.
게다가 두 아이의 아버지 아닌가.
반면 혼다 카즈오는 확신했다.
미쯔이가 하게 될 결정을.
어쨌거나 자신의 피를 타고 난 딸이니까.
여기에 또 하나 더.
만약 사위인 김웅방이 독으로 죽으면 누가 가장 의심받을까?
아내인 자신의 딸?
천만에!
그보다는 쫓겨난 아들이 가장 의심받지 않을까?
마나 거부자로서 아비에 의해 군에 강제 입대까지 당했고, 호적에서도 파였으며, 심지어 독을 잘 다룬다고 소문이 난 김태주 말이다.
그만한 살해 동기가 없다.
의심이 솔솔 피어오르게 군불도 때주고.
설령 의심만 받고 끝난다 해도 충분하다.
※ ※ ※
간담회가 끝나고 태주는 회사 직원들을 자신이 묵고 있는 최고급 호텔에 초대했다.
회식은 필수지.
그저 그런 식당이었다면 갑작스런 회식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겠지만 호텔 라운지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하는 초호화 회식인데 누가 마다해?
거기에 하나 더.
“와! 스테이크다!”
“내가 좋아하는 갈비찜도 있네?”
“흐음, 냄새가 끝장나. 배양육은 아닌 것 같고···,”
“양이 너무 많아요. 이거 다 먹을 수 있나?”
백서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오늘 회식을 위해 회장님께서 특별히 포자 독 낙타 고라니 3마리를 구례에서 공수해 오셨습니다. 마음껏 드세요.”
그러자 호텔 라운지에 침묵이 흘렀다.
꿀꺽.
고라니 고기?
정말?
“어···,”
“어쩐지 냄새부터 장난이 아니더라니.”
“자, 잠깐 사진 좀 찍고.”
“나도.”
여기저기서 들리는 카메라 셔터음.
찰칵, 찰칵, 찰칵···.
회식이 시작됐다.
누가 더 많이 먹는가 경쟁하듯 정신없이 포크와 칼, 젓가락을 움직이는 직원들.
“우하! 이 회사에 들어오길 잘한 것 같아.”
“훗!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태홍 생기불끈 하나로 제약시장 휩쓸어 버릴걸?”
“영업하기 진짜 편하겠다.”
“마케팅도 마찬가지지 않아? 광고나 필요하겠어? 하룻밤 편의점이나 슈퍼에 깔아버리면 며칠도 안되 매진될 거다.”
“며칠은 무슨! 난 이틀 본다.”
걱정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공장은 너무 작은 것 같은데···,”
“맞아. 물량 대기 버거울 거야.”
“거기에 그 뭐냐? 외상 치료제, 새살쏙쏙?”
“쑥쑥.”
“그것도 효과가 있으면 쌍으로 시너지 효과가···.”
송수희 마케팅 팀장이 은근하게 마석우 부장을 보며 말했다.
“한번 시험해봐요. 새살쑥쑥, 진짜 효과가 좋은지 보게.”
“아니, 송팀장! 약효 실험해 보려고 생살을 자르라고?”
“약품 경쟁력 정도는 알고 영업해야죠.”
“하아···,”
마석우는 고민했다.
살짝 손가락 정도 베어볼까?
그전에 먼저 회장님이 새살쑥쑥을 가지고 오셨는지 먼저 알아보고.
하지만 마석우가 상처를 낼 일은 없었다.
포자 독 낙타 고라니 스테이크가 너무나 맛있는 나머지 정신없이 칼질하던 한 직원의 손이 접시에 미끄러져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의 손등을 베어버렸다.
“아악!”
“헉! 미, 미안. 이걸 어째!”
새빨간 피가 줄줄 손등을 타고 흘렀다.
“내, 냅킨! 물수건 없어?”
“빨리 응급실 가자.”
“아, 아니 고기는 마저 다 먹고 갈게.”
“미쳤어? 이 와중에 무슨 고기.”
“···고라니잖아. 이때 안 먹으면 언제 먹어?”
그걸 보고 가만히 있을 태주가 아니었다.
“이거 발라보세요.”
“···네? 아! 회, 회장님.”
“새살쑥쑥 시제품입니다.”
“으음, 마, 많이 발라주세요.”
태주는 납작한 원형의 금속 통을 열어 진득한 황색의 연고를 푹 찍어서 다친 손등에 발라주었다.
그러자 우르르, 손을 다친 직원에게 모여드는 사람들.
아무래도 제약회사 직원들이다 보니 약효에 대한 호기심은 어쩔 수 없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바르자마자 멎어버리는 피.
“···피가 안 나와?”
“최소한 지혈 효과는 끝내주네.”
“진짜 안나? 상처 좀 벌려봐.”
“꾹꾹 눌러야지.”
“그래도 안나.”
“쫙쫙 짜내. 그래도 피가 안 나오는지 보자.”
다친 한 사람을 두고 난리가 아니었다.
“아씨, 다들 저리 가요! 안 그래도 아파 죽겠는데.”
웅성웅성하며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
마석우 부장과 송수희 팀장도 다시 의자에 앉았다.
“쓸만하죠?”
“응, 저거도 꽤 괜찮네. 비록 생기불끈보단 극적인 효과가 없지만.”
“하아, 할 일이 많겠어요. 마케팅 작업에, 가격 결정도 해야 하고.”
“특허가 먼저야. 그리고 식약청 심사도 통과해야지.”
“태홍 새살쑥쑥 홍보할 때 급속 지혈 문구도 추가하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후에도 계속되는 회식.
다들 먹성이 좋았다.
포자 독 낙타 고라니 3마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배도 부르고, 거나하게 취해서 회식이 끝나갈 무렵.
“으악!”
좀 전에 손을 다친 직원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왜?”
“또 무슨 일이야?”
“피가 나?”
“설마 부작용이 있는 거야?”
흩어졌던 직원들이 다시 모였다.
“사, 상처가···.”
“상처가 뭐?”
“붙었어요. 완전히 아물었다고요.”
“···응?”
칼에 베였던 직원이 손을 번쩍 들었다.
“봐요! 흉터도 거의 없어요!”
“···미친!”
“그새?”
날카로운 칼이었다면 이해는 한다.
하지만 여기 스테이크 칼엔 톱니가 있었다.
즉 상처가 난 데가 매끄럽지 않다는 말, 저러면 잘 아물지도 않는다.
그런데 저렇게 깨끗하게?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마석우가 송수희에게 말했다.
“···홍보문구에 꼭 넣어. 급속 외상 치료.”
“흉터 제거도 넣어야죠.”
“급속이란 말이 중요해. 그걸 강조해야 해.”
태주도 솔직히 놀랐다.
금창약, 아니 태홍 새살쑥쑥은 지금까지 자신만 사용했었다.
물론 효과야 뛰어났다.
바르면 상처가 아물 정도로.
하지만 자신은 기본적인 재생력이 남들과 다르지 않나?
저 직원은 마나 순응자, 일반인이고.
‘전부터 느낀 거지만 확실해졌어.’
지구의 약초가 강호 무림의 약초보다 품질이 더 뛰어나다.
자이언트 반달곰 웅담만 해도 그랬다.
독은 또 어떻고?
물론 당군악의 기억을 그대로 흡수한 탓도 있지만 단시일 안에 7성에 오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터.
‘마나, 기(氣)의 농도부터가 차이가 나니까.’
지구가 훨씬 더 짙다.
아무튼 만족했다.
직원들이 자신이 만든 신약을 마음에 들어 하고, 이 정도면 미래비전도 보여준데다, 친밀감도 쌓은 것 같고.
태주는 백서연에게 물었다.
“내일 일정은요?”
“정해진 일정은 없습니다. 하지만 전 최동일 전무랑 특허권 신청 전략을 짤 계획입니다.”
“그래요? 으음, 그럼 전 리더스 클럽이나 갔다 올게요.”
“네!”
가서 인맥이나 넓혀보자.
※ ※ ※
회식이 끝나고.
태주는 자신의 호텔 룸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피곤하네.’
내향적 성격이라 그런지, 누구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아무리 무한공간이지만 사람의 시체를 넣고 뻔뻔히 돌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수 밀집지대가 어디야?’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마땅한 곳이 없었다.
당연하다.
여긴 삼한제국 수도 뉴서울.
마수 밀집지대가 있을 리 없지.
‘결국 지리산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백두산 밀집지대로 한번 들려보던가.
‘시체들은 잘 있겠지.’
무한공간은 시간이 멈춘 곳, 유기체가 절대 썩을 일이 없다.
처음에 넣었던 그대로 보존된다.
무한공간을 열어보니 기타 구역에 차곡차곡 쌓인 시체 더미.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공간.
“···어?”
반짝반짝?
자신이 설정한 구역이 아닌 곳.
거기에 물건을 넣었다가 빛이 사라져 꺼내지 못했던 것이 기억났다.
‘반짝하면 꺼낼 수 있을지도.’
유엽비도 한 자루를 넣어둔 것이 떠올랐다.
물론 스팸이나 샴페인도 넣었지만 그거야 안 꺼내도 그만,
하지만 유엽비도는 아니다.
다시 챙겨야지.
태주는 반짝반짝 빛나는 구역에 집중했다.
그런데?
“뭐, 뭐야?”
유엽비도는 없었다.
스팸도, 샴페인도.
거기 들어있는 건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복숭아와 종이로 된 두루마리.
“이게 왜 여기에···,”
태주는 서둘러 두루마리와 복숭아를 꺼냈다.
스스슷!
잘못 본 게 아니다.
호텔 방안을 가득 채우는 복숭아 향기.
태주는 두루마리를 펼쳤다.
편지, 무려 한글로 쓰여 있었다.
- 나 당군악일세. 자네가 보낸 스팸과 돔페리뇽은 맛있게 먹었네. 너무나 놀랐어. 이렇게 지구의 문물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줄이야, 원인에 대해 고민해봤네. 아마도 공유창고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공유창고?
그 반짝이는 곳이 당군악과 물건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유 공간?
- ···그 공유창고가 언제 반짝이는지 나도 모르겠네. 다만 정해진 것도 아니고 발현 시간도 무척 짧아···,
후다닥!
태주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호텔 룸 안의 냉장고를 열었다.
각종 고급 양주와 과자, 음료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체하면 빛이 꺼질라.
손에 잡히는 대로 무한공간 공유창고에 집어넣었다.
또 뭐 없나?
될 수 있으면 비싼 거.
자신이 가진 가장 비싼 물건은 암기인데, 그거야 당군악에겐 별 쓸모가 없을 테고.
아아아!
죄책감이 밀려온다.
신선에게 스팸을 먹였다니.
이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짓인가?
“아! 시계.”
무려 5천만 원을 호가하는 시계다.
하지만 서슴없이 공유창고로 직행.
아직 공간의 여유가 있다.
또 뭐가 있지?
그러나 그 순간!
픽! 하고 꺼지는 빛.
“이런!”
아쉽다.
몇 개 보내보지도 못했다.
그것도 눈에 차지 않는 것들로만.
“···다시 열리겠지?”
다음에 보낼 땐 제대로 준비해서 보내야겠다.
< 태홍 새살쑥쑥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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