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53화 (5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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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서울에서 만난 전우(1) >

태주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돔페리뇽은 그나마 괜찮지만.

‘신선에게···, 스팸?’

자신이 의도한 일이 아니지만 결과가 그렇게 됐다.

순 살코기도 아니고 자투리 고기와 지방을 갈아, 온갖 조미료, 첨가제를 섞어 만든 혼합육을, 무려 선계에 사는 고매한 선인에게 먹였다니.

물론 자신은 매우 좋아하는 음식이다.

따뜻한 밥에다 얇게 구운 스팸 한 장 올려 먹으면 그만한 반찬도 없다.

‘후우, 빨리 알았더라면.’

설정하지 않은 구역이 반짝일 때 눈치챘어야 했다.

무한공간이 누구 때문에 만들어졌나?

바로 자신과 같은 영혼인 당군악의 선기에 의해서다.

다행인 건 여기가 뉴서울 최고의 고급호텔 스위트룸이라는 것, 그래서 룸바, 냉장고에도 꽤 고급스러운 술과 음료수, 과자와 안주들이 들어있었다.

막판에 자신이 차고 있던 손목시계도.

반면 당군악이 자신에게 준 건?

편지에 쓰여있었다.

아직도 그 향기를 호텔 방안에 가득 채우고 있는 선도 복숭아.

선계의 보물이자 오로지 선인만이 먹을 수 있는 전설의 과일.

태주가 공유창고에 넣은 잡다한 물건과는 차마 비교도 할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다.

‘미치겠네.’

이건 뭐, 비슷하기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지.

맨날 받기만 하고, 정작 자신이 준 건 스팸이나 술, 군것질거리.

태주는 침대 위에 올려진 선도 복숭아를 두 손으로 들었다.

‘이게 신선들이 먹는 거라고?’

정말 향기가 기가 막힌다.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흐음.’

자신은 혼원무상독령공을 익혔다.

그래서 영약은 먹어봐야 별 소용이 없다.

독으로 성장하는데, 영약은 먹어봐야 똥이 될 뿐.

하지만 선도 복숭아라면?

존재하는 모든 무형의 에너지 중에서 최상위에 위치하는 선기, 하위에 속한 어떤 에너지라도 포용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원래 독(毒)이라는 것도 자연의 일부분 아닌가.

독을 품고 살아가는 동식물들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인간이 자신들에게 해로운 물질을 독이라고 이름 붙였을 뿐이지, 독은 생태계에 있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

당군악 또한 독선(毒仙)이라 불린다.

즉 선기는 독마저도 포용한다는 의미.

그래서 무한공간을 만들 때도 독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태주는 선도 복숭아를 입으로 가져가 한입 베어 물었다.

푹! 터지는 과즙.

입안에서 뿜어지는 강렬한 복숭아의 향기.

“흐릅.”

미미(美味)!

씹을수록 황홀하다.

먹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어느새 두 손으로 잡아도 남을 만큼의 크기의 복숭아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씨도 없구나.’

씨가 있었다면 심어보기라도 했을 텐데.

그건 그렇고.

선도 복숭아엔 미량이라도 선기(仙氣)가 들어있다.

전엔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당군악에게 전해 받았지만 지금은 직접 입으로 섭취했다.

과연 독정(毒精)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새로운 독을 섭취하면 독정은 꿈틀하면서 반응한다.

하지만 복숭아로는 그런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선기가 독정에 스며든 건 확실했다.

스르르르르···,

독이 아니지만 마치 독처럼 독정은 선기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따뜻해.’

왠지 단전이 부드러워진 느낌.

이거 말고는 달라진 것이 없나?

어쨌거나 효능이 문제가 아니다.

그 맛이 너무나 좋은데.

‘참! 이럴 때가 아니야.’

확실하게 준비해야지.

최고급 답례품으로.

공유창고가 반짝일 때 바로 집어넣을 수 있게.

크기는 여행용 캐리어 만하니 그 안을 꽉 채워야 한다.

‘뭐가 좋을까?’

사실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강호 무림, 혹은 선계와는 다른 차별성을 지닌 지구만의 독특한 물건들이면 된다.

음식도 차별적인 것으로.

예를 들어 초콜릿이나 커피.

그건 이미 보냈고.

‘독선에게 가장 필요한 걸 생각해내야 해.’

그렇다면?

‘선계는 심심한 곳이잖아.’

2번째 영혼 연결 당시 당군악의 기억을 통해 알아낸 사실.

‘무료함을 달래줄 물건이라면···,’

결론이 나왔다.

영화와 드라마.

지구의 다채로운 문화 컨텐츠.

그러나 즐기기 위해선 전기가 있어야 한다.

‘휴대용 발전기 크기가 어느 정도지?’

찾아보니.

‘공유창고 안에 충분히 들어가겠어.’

마나 결정체를 이용해 전기를 발생시키는 발전기.

‘거기에 엘리트 마나 결정체를 넣으면 막 써도 최소 1년은 충분히 돌릴 수 있을 거야.’

전기 문제는 해결됐고,

다음은 컨텐츠.

OTT 플랫폼에 가입해서 정기 결제를 하고 완결된 드라마나 영화를 태블릿에 다운받으면 된다.

그럼 통신이 안되는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용량이 제일 큰 걸 구매해야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빔프로젝터와 접이식 스탠드형 스크린도 넣자.

다 들어갈지 모르겠다.

이걸 언제 다 준비한다?

어쩔 수 있나?

백서연에게 부탁해야지.

각성 장교 수행원들도 있고.

※ ※ ※

다음 날 아침.

태주는 백서연을 보자마자 어제 생각해뒀던 물건들의 구매를 부탁했다.

“···아, 네, 회장님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살짝 의문을 표하려는 듯하다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는 백서연.

그리고 태주는 도민수 소령을 따로 불러서.

“휴대용 발전기가 필요합니다. 될 수 있으면 크기가 작은 걸로, 돈은 얼마든 상관없어요. 무조건 최고급 제품으로,”

“마침 제가 뉴서울 시내에 아는 판매점이 있습니다. 연료로 쓰는 마나 결정체는 어떻게 할까요? 그쪽에다 이야기하면 자기들이 사서 장착해 주긴 하지만.”

“마나 결정체는 이걸로 장착하라고 이야기해주세요.”

“네!”

도민수는 태주가 준 결정체를 받았다.

그런데.

“어?”

“왜요?”

“이, 이거···, 엘리트 마나 결정체 아닙니까?”

“맞아요. 무슨 문제 있나요?”

“으아, 발전기에 엘리트를 꽂으시겠다고요?”

“네.”

“어어, 에, 엘리트를 바, 발전기에···.”

당군악에게 가는 발전기인데 뭐가 아깝다고.

반면 넋이 나간 표정의 도민수.

영약의 재료로 쓰이는 엘리트 마나 결정체.

이걸 전기 발전 용도로 사용하다니.

“저하고 같이 시내 나갑시다. 저도 볼일이 있어서요. 도소령님도 따로 일 보시고.”

“···네, 네네.”

오늘 볼일은 바로 리더스 클럽.

태주가 탄 자동차가 호텔을 출발했다.

뉴서울이 세워질 때 과거 서울의 지명을 그대로 따와 이름을 지은 데가 많다.

예를 들어 신종로, 신압구정, 신잠실 등등.

리더스 클럽은 뉴서울 시내, 신압구정에 위치한다.

태주는 차 안에서 리더스 클럽 사전 조사를 시작했다.

백서연이 미리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보고서만 읽으면 끝.

‘사교 모임이네.’

제국 내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모여 친교를 나누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장.

아무나 초대장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초대장을 받았다 하더라도 끝이 아니다.

리더스 클럽에도 빌어먹을 등급이 존재한다.

최하 브론즈부터 시작해서, 실버, 골드, 사파이어, 다이아몬드까지.

‘쯧, 다단계인 줄.’

리더스 클럽에서는 순응자, 적합자, 각성자를 따지지 않는다.

가입 기준은 오로지 명성과 사회적 지위.

그래서 태주도 초대장을 받았던 것이고.

‘다 와 가나? 무한공간은···,’

가끔 무한공간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언제 반짝일지 모르니까.

반짝일 때 어떤 신호라도 느껴지면 좋겠는데.

거의 도착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10층 건물이 바로 그곳.

원통형 건물, 위로 올라갈수록 탑처럼 좁아지는 형태, 화려한 옥빛 대리석으로 마감한 외벽에, 유려한 글씨체로 ‘리더스 클럽’이라 새겨져 있었다.

“여기서 내려주세요.”

“저희가 수행하겠습니다.”

“아뇨. 혼자 들어갈게요. 도소령님은 제가 부탁한 발전기 구해주세요. 최대한 빠르게 부탁드립니다.”

“네! 발전기에 엘리트 마나 결정체가 똑바로 장착되는지 옆에서 지켜보다가 다되면 바로 가지고 오겠습니다.”

태주는 혼자 건물 정문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어떻게 오셨습니까?”

건물 정문을 지키는 가드들이 태주를 막아섰다.

“초대를 받아 왔습니다만.”

초대장을 꺼내 보여주니.

“아! 환영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가드를 따라가는 태주.

1층은 로비였다.

2층부터가 클럽인 듯.

가드를 따라 도착한 곳은 로비 뒤쪽에 위치한 사무실.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모델처럼 늘씬한 여자 한 명이 마중을 나왔다.

“김태주 사장님이시죠? 클럽 매니저 조미영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초청장을 한참 전에 보낸 것 같은데 이제야 오셨네요.”

“아, 바쁜 일이 있어서요.”

“그래도 오셨으니 다행입니다. 일단 앉으시죠.”

그리고 조미영의 친절한 설명이 시작됐다.

가입비와 회비, 등급별 회원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클럽에서 주는 혜택들.

“김태주 회원님은 신입이시고, 물론 해독제 발명으로 큰 성공을 거두셨지만 신규 청년 기업인으로 분류되어 브론즈부터 시작하시게 될 겁니다.”

최소 등급이구나.

불만은 없다.

원칙이 그거라면,

“가입비가 50억이지만 그렇게 비싼 건 아니에요. 회원님들끼리 친교를 나누고 서로 얻어가는 정보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것도 싸죠.”

태주도 이 말엔 동의한다.

정보도 질이 있다.

“정보뿐만이 아닙니다. 비록 브론즈 등급이지만 나름 전문직이나 중견기업 사장님들도 많이 계세요. 회원들끼리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목적하는 일이 더 쉽게 이뤄질 수도 있고요.”

사실 그 부분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특혜.

마나 거부자였을 때를 생각해보자.

가입은커녕 초대장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여기 온 목적은 잊지 않는다.

태홍 바이오 뉴서울 지점의 성공을 위해 하기 싫더라도 해야지.

“이제 가입하면 되나요?”

“네! 여기 서명만 하시면 브론즈 회원으로서 자격을 가지시게 됩니다. 가입비는 한 달 안에 납부해 주시고요.”

“서명했습니다.”

“리더스 클럽 가입을 축하드립니다. 김태주 회원님, 출입증 드리겠습니다. 이걸 목에 거시면 됩니다.”

태주는 미리 준비된 갈색의 구리 명패가 달린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브론즈 등급회원님들은 2층만 이용하실 수 있어요. 실버등급은 3층이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3층으로 올라가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클럽 매니저는 사근사근하고 친절하네.

태주는 조미영 매니저와 악수를 한 후 사무실을 나왔다.

‘2층이랬지?’

태주는 사무실을 나와 1층 로비로 왔다.

‘어떻게 올라가나···.’

안내 부스에 물어볼까?

로비도 구경해볼 겸.

천천히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찰나.

“어이, 거기!”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

그런데 거기?

돌아보니 화려한 옷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아니꼽다는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불렀나요?”

“그래, 당신!”

“왜?”

“명찰을 보니 브론즈 같은데, 왜 자꾸 로비에서 서성거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자신의 명찰을 가리켰다.

빛나는 은색의 금속패.

‘···참나!’

이런 동네였구나.

등급 따지는 게 군대 계급장보다 더 심한 것 같다.

‘환장하겠네.’

역시 성미에 맞지 않는다.

확 탈퇴해버려?

그러나 어쩌겠나?

원래 가장의 어깨에 지워진 짐은 언제나 무거운 법이다.

“여기 얼쩡거리지 말고 빨리빨리 브론즈 클럽으로 올라가.”

“그러고 보니 다른 속셈이 있는 거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로비로 들어오시는 높으신 분들, 눈에 한 번 들어보려고 기웃기웃하고 있는 거겠지.”

이 새끼들 봐라?

“요즘 들어 저런 놈들이 부쩍 늘었군. 에이, 격 떨어지게.”

“리더스 클럽도 물이 많이 흐려져서 그래. 브론즈 명찰 주제에 개나 소나 클럽 회원이라 떠들고 다니고.”

···죽여버릴까?

참자.

요근래 많이 죽였다.

대신.

“어이, 거기!”

“어쭈? 너 지금 우리한테 거기라고 불렀···,”

찌릿!

미세하게 살기를 담아.

순간 매서워지는 태주의 눈빛.

“불러···, 부, 불렀어···, 요?”

당연히 쫄 수밖에 없었다.

“어, 거기, 너희 둘, 등급이 뭐야?”

“실버···,”

“그럼 너희 인성은 무슨 등급인 것 같냐? 스스로 판단해봐.”

“···.”

지구의 독마는 자비롭다.

아니라면 이미 독에 의해 저놈들 온몸이 녹아내렸을 텐데.

그때였다.

갑자기 한산했던 로비가 떠들썩해졌다.

실버 등급의 두 놈도 태주의 눈치를 보더니 엉거주춤 발걸음을 옮겼다.

“오, 오셨다.”

“···어어, 빨리 가자고.”

“나 어때? 이상한 데 없지?”

“없어. 나는?”

“괜찮아.”

정작 높으신 분 눈에 들려고 기웃하는 건 저놈들이었다.

아마도 자신을 경쟁자로 판단하고 시비를 걸어왔을 것이다.

저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귀엽네.’

다급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클럽 직원들도 총출동했다.

“빨리빨리, 서둘러!”

“매니저님께 연락했어?”

“어, 지금 나오실 거야.”

“복장 점검하고!”

“양옆으로 열을 맞춰!”

다다다다.

구둣발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시, 실례합니다. 조금만 비켜주세요.”

방금 전에 만났던 조미영 매니저도 태주 옆을 지나치며 달렸다.

그리고 정문 밖에서 수행원들을 뒤로 대동하고 들어오는 젊은 남자, 얼굴 한쪽에 작게 새겨진 문신으로 보아 각성자 같았다.

조미영 매니저 및 클럽 직원들은 그가 걸어오는 길, 양옆에서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누구지? 다이아몬드 등급쯤 되면 저런 대접을 받나?’

설마 그럴 리가.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아. 낯이 익어.’

순간!

당당한 자세로 들어오던 젊은 남자의 눈이 태주의 눈과 마주쳤다.

“···응?”

그리고는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정면으로 바라본 얼굴.

‘아하!’

누군지 알겠다.

먼저 인사를 해야 하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

다다다다다!

젊은 남자가 눈썹이 휘날리도록 빠르게 돌진해오더니.

“기, 김태주 회장님! 태주씨! 아니, 형님!!!”

태주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여기서 뵙다니 정말 꿈만 같습니다. 언제 뉴서울에 오셨습니까? ”

“오래간만입니다. 잘 계셨죠? 그런데 왜 절 형님이라···,”

“덕분에 잘 있었습니다. 진짜 섭섭합니다. 형님하고 저는 지리산 마수 토벌 작전의 전우 아닙니까? 황실에 연락이라도 해주셨으면 제가 마중 나갔을 텐데.”

“···.”

리더스 클럽에서 최고 등급에 속하는 다이아몬드 회원이자, 황제의 막내아들 5황자 류진철이었다.

< 뉴서울에서 만난 전우(1)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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