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54화 (5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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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서울에서 만난 전우(2) >

조미영 리더스 클럽 매니저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김태주 회장과 황자가 아는 사이였어?’

어떻게?

구례에서 막 올라온 사람이 뉴서울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인 황족과 무슨 접점이 있다고?

‘지리산 마수 토벌 작전 전우···, 설마?’

그 말이 사실이라면 황자가 지리산 토벌에 참여했다는 말이다.

원래 황실의 행사는 극비리에 진행되기 때문에 웬만한 정보통으로는 파악할 수 없었다.

‘거기서 김태주 회장과 만났단 말이구나.’

자신의 추측이 다 들어맞았다고 치자.

그렇다고 저렇게 친밀감을 표시해?

심지어 황자가 저자세로 나오는 것 같다.

김태주 회장은 다소 귀찮아하고 있고.

‘누가 보면 김회장이 황자보다 윗사람인 줄 알겠어.’

아무튼 둘은 친한 사이가 확실하다.

조미영은 가만히 김태주와 면담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혹시 트집잡힐 만한 일을 저질렀는지.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했는지.

‘···없었어.’

하지 않았다.

늘 했던 것처럼 공손하게 대했다.

그래서 살짝 안심이었다.

한편 류진철은 오늘 리더스 클럽에 정말 잘 왔다고 생각했다.

무료한 황실에서 죽치고 있느니, 바람이라도 쐬자고 나왔는데, 이렇게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됐다.

생명의 은인.

김태주 회장.

그때 그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산청부대 스페셜 레이드 팀은 전멸했을 것이고, 자신도 목숨을 잃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일은 공개하지도, 공개할 수도 없었다.

황자가 토벌 작전 과정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어떻게 될까? 토벌의 성과는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뉴서울에 와서도 한동안 바깥을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장소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반면 태주는 류진철 황자가 부담스럽다.

지리산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뜬금없이 형님?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형님! 혹시 여기 회원이십니까?”

“방금 회원 가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형님이라는 말을 거두어 주십···,”

“오! 저랑 같은 회원이 됐군요. 이거 뿌듯한데요.”

“···.”

“그렇지 않아도 가입을 권유해 드리려고 했는데, ···실례지만 회원 가입의 목적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될는지?”

지리산에서 황자가 리더스 클럽을 언급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가입 목적이라.

숨길 필요가 있나?

“제가 최근에 뉴서울에 태홍 바이오 지점을 하나 차렸습니다. 그래서 사업에 도움이 되어보고자 왔습니다만.”

“하하하! 알만합니다. 형님도 역시 사업가셨군요.”

그러더니 태주의 목에 걸린 브론즈 등급 명패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근데 브론즈 등급?”

“원래 최하 등급부터 시작한다고 해서.”

“으음. 클럽 매니저가 그러던가요?”

“네, 잘 설명해주시더군요.”

“아···,”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류진철 황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형님.”

그리고 손짓으로 조미영 클럽 매니저를 호출했다.

“물어볼 게 있다.”

“최선을 다해 답변드리겠습니다. 황자 전하.”

“형님, 아니 김태주 회장님께 브론즈 등급을 부여한 것이 그댄가?”

“네? 마, 맞습니다.”

“근거는?”

“원칙에 근거했습니다. 군납업체로서 커다란 성공을 거뒀지만, 최근에 회사를 설립한 신규 기업인이며, 그 외엔 달리 내세울 성과가 없기에···, 그럼에도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서 초대장을 보내게 된 겁니다.”

“원칙이라···, 그렇군.”

틀린 말은 아니다.

겉으로는.

하지만 리더스 클럽이 평범한 친목 단체인가?

제국에서 가장 많은, 양질의 정보가 오고 가는 곳.

그런데 이 클럽의 매니저라는 사람이 김태주에게서 얻어낸 정보가 고작 저거라면 문제가 있다.

일부러 그랬는지, 실수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부분이 누락됐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다는 건 극비 사항이니 모른다고 치고.

지리산 주둔 전 부대에서 군단장과 거의 동등한 대우, 구례에 나타난 마인 척살의 주역, 마수 토벌 작전에서의 결정적 기여.

조금만 발품을 팔면 알 수 있는 사실인데.

특히 리더스 클럽의 정보력이라면.

“초대장은 언제 보냈나? 지리산 마수 토벌 전인가, 후인가?”

“그 전입니다.”

“그래? 혹시 구례에 마인이 나타났다는 뉴스를 들어본 적 있나?”

“들어본 적 있습니다.”

“그럼 초대장을 마인 출현 이전에 보냈나? 후에 보냈나?”

“으음···, 제 기억이 확실하다면 그 전입니다.”

“그렇군.”

리더스 클럽의 초대장 발송은 김태주 회장이 구례에 회사를 차린 직후였다.

그러니까 포자 독 해독제가 판매되어 태홍 바이오의 이름이 뉴서울에 알려졌을 때.

“초대장을 보낸 뒤로는 추가적인 정보 수집은 없었나?”

“···하,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쯧, 맨날 고급 정보, 질이 다른 정보 운운하더니 여기도 별 볼 일 없어졌군.”

“무, 무슨 말씀이신지?”

황자 류진철은 자신의 목에 걸린 다이아몬드 등급 명패를 끌러 조미영에게 건넸다.

“오늘부터 리더스 클럽 탈퇴하겠네.”

“···네?”

“못 들었나? 회원 명단에서 내 이름 지워도 돼.”

“아, 아니! 전하! 가, 갑자기 이러시면···.”

“예전의 리더스 클럽이 아니야. 클럽 주인장에겐 내가 따로 이야기하지.”

당황한 표정의 조미영.

자신이 직접 한 김태주 회장의 등급판정에 대해 황자가 문제 삼고 나왔다.

그녀는 안절부절못했다.

황자가 탈퇴하면 자신이라고 무사할까?

“자, 잠시만 기다려주옵소서, 황자 전하, 제, 제가···,”

“이미 결정한 사항이다. 입을 다물라.”

“아아!”

조미영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얼마나 고생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한순간에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게 생겼다.

바로 그때.

태주가 황자 류진철에게 말을 건넸다.

“황자님.”

“아! 죄송합니다. 못난 꼴을 보여드려서, 형님도 이깟 클럽 따위는 집어치우셔도 됩니다.”

“···흐음.”

“사업적인 부분은 제가 직접 돕겠습니다. 이렇게 허술한 클럽엔 기대할 것도 없습니다.”

태주의 마음이 냉정하게 가라앉았다.

이건 일종의 갑질이었다.

이해는 한다.

솔직히 그의 존재 자체가 갑 아닌가.

그러나 여기 리더스 클럽에 가입을 결정한 것도, 브론즈 등급을 받아들인 것도 온전히 자신이 한 선택.

‘황자면 황자지, 어디서 클럽을 탈퇴해라, 마라야?’

그와 갑질맨으로 함께 엮이는 건 전혀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저는 클럽에 계속 다닐 겁니다만.”

“···어? 네네?”

“조미영 클럽 매니저께서 저에게 판정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매우 친·절·하·게! 그래서 등록원서에도 서명했고요.”

“···그, 그러십니까?”

“뭐, 황자님과 리더스 클럽에 함께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전 탈퇴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순간!

황자의 뒤쪽에서 덮쳐오는 살기.

그의 경호원들이었다.

아마 황실 근위병에 속한 자들이겠지.

자신의 행동이 건방져 보인 모양.

이유가 어떻든 황자가 보인 호의를 무시한 셈이니까.

근데 어쩌라고?

그 정도 살기는 가소롭지도 않다.

황자 류진철은 당황했다.

분명 김태주 회장도 자신이 불이익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왜?’

단순히 탈퇴하지 않겠다는 의사만이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완곡한 질책의 의도도 포함된 듯했다.

‘내 일 처리 방식이 잘못됐나?’

그제야 류진철은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조미영 매니저, 그리고 하늘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클럽 직원들.

‘아!’

실수다.

감정에 치우쳤다.

그래서 뒤에 따라올 결과가 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탈퇴하면 그 여파로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직장을 잃거나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실수는 빠르게 바로 잡는다.

류진철은 조미영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조미영 매니저.”

“네?”

“···미안하다. 내 생각이 짧았어.”

“화, 황자님?”

“내가 앞뒤 생각 없이 너무 매정하게 대했구나. 그 부분은 내 불찰이다.”

“아니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사과의 의미로 탈퇴를 철회하겠다.”

조미영은 류진철의 말에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등급판정에 대해선 아직 불만이 남았다.”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처음부터 낱낱이 들여다봐서 공정하게 판정하겠나이다.”

“좋다. 그대를 믿겠다.”

그러자 조미영이 쭈뼛거리며 태주에게 다가와,

“회, 회장님, 브론즈 명찰 다시 주세요.”

“응? 전 브론즈로도 만족하는데.”

“제발요···.”

태주는 어쩔 수 없이 명찰을 다시 조미영에게 넘겼다.

황자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또 딴지를 걸면 이번엔 자신이 갑질을 한 셈이 된다.

그제야 만족한 얼굴의 류진철.

한마디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내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분이다. 판정에 참고하도록,”

“반드시 참고하겠습니다.”

조미영은 태주에게 눈을 돌렸다.

꾸벅 인사를 하는 모습에서 감사의 표현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살짝 윙크 한 번 해주니.

삽시간에 붉어지는 조미영의 얼굴.

‘···어?’

그 뜻이 아닌데.

그건 그렇고, 그 실버 등급 두 명은 어디 있지?

이미 꽁지 빠지게 도망친 모양.

며칠 동안은 잠도 제대로 잘못 이루겠지.

높은 사람 눈에 들어보려고 열심히 사는 건 귀여웠는데.

아무튼 황자와 조미영 매니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리더스 클럽은 사교모임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정보단체 역할도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강호 무림의 하오문 같은 곳?

황자 말대로 초대장은 회사가 막 체계를 잡아가던 때 발송된 것이 맞았다.

그럼 브론즈 등급도 잘못된 건 아니지.

당시만 해도 태홍 바이오는 구례 토착 기업 수준이었으니까.

‘뭐, 지금은···,’

많이 달라졌긴 했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 ※ ※

태주는 황자 일행과 함께 리더스 클럽을 나왔다.

이래저래 도움을 받았으니 황자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를 따라가 호화롭고 은밀한 식당에서 밥 한 끼 같이 먹어주고, 따뜻한 차도 함께 나누고, 그럴 때마다 여지없이 쏟아지는 수다에 맞장구도 쳐줬다,

그런데 이 사람, 도무지 돌아가지 않았다.

오늘은 이만 헤어지고 다음에 클럽에서 만나자고 넌지시 운을 띄웠는데도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못 들은 척하는 건지.

황자를 따라다니는 황실 근위병들이 얼마나 힘들까?

좀 가줬으면 좋겠는데, 왜 집에 안 가?

“전 이만 급한 일이 있어서,”

“어떤?”

“회사에 가봐야죠”

“하하, 그럼 저도 회사 구경이나 해볼까요?”

“네?”

“지리산 마수 토벌의 전우이자 생명의 은인이 뉴서울에 회사를 차렸는데, 나 몰라라 하는 건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

그래, 끝까지 가보자.

“회사에 가시면 정체를 숨겨주시면···,”

“알겠습니다. 아는 동생 정도로 하면 될까요?”

“그렇게 하시죠.”

태주는 류진철과 함께 회사로 들어갔다.

당연히 황실 근위병들도.

“회장님!!! 어서 오세요.”

송수희 팀장이 반색하며 그를 반겨왔다.

“네, 어제 잘 들어가셨죠? 과음하셨던데.”

“생기불끈 약효가 너무 좋아서요. 다음날까지 효과를 받는 것 같아요.”

“하하, 다행입니다.”

“백서연 사장님과 최동일 지점장님은 회의실에 계세요.”

그러자 슬쩍 끼어드는 황자 류진철.

“안녕하십니까! 태주 형님 동생, 진철입니다.”

“···아, 네네. 마케팅 팀장 송수희입니다.”

송수희는 당황했다.

김태주 회장이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잘생긴 젊은 남자가 함께 들어온 건 봤다.

상당히 낯이 익어서 전에 회장님을 따라다녔던 수행원 중 한 명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는 동생?

그것도 그렇고.

‘진짜 어디서 봤더라?’

아무리 봐도 낯이 익다.

그때였다.

서류 뭉치를 챙겨 들고 회의실에서 나오는 백서연과 최동일.

태주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회장님, 클럽엔 잘 다녀오셨어요?”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그렇지 않아도 특허 관련 사항에 대해 보고를 드리려고···.”

“참! 어떻게 됐습니까? 문제점은 없었나요?”

빨리 특허를 받아야 뉴서울을 뜨지.

“까다로워요. 특허청에서 이것저것 요구하는 게 많아서, 약의 성분뿐 아니라 제조 과정, 원재료 확보처, 이런 말도 안 되는 것까지 첨부하라고 하네요.”

“흐음.”

“원래 이렇게까진 않거든요. 다른 제약회사들이 압박을 넣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고.”

예상한 바다.

텃세를 부리는 거겠지.

그때였다.

백서연을 따라다니는 각성 장교 수행원 하나가 멍하니 태주가 있는 방향을 보고 있었다.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눈도 한번 비벼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헉!”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화, 황자님?”

태주와 백서연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황자 류진철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음? 자넨?”

“산청부대 소속 중령 김청석입니다. 스페셜 레이드 팀에서 황자님과 함께 싸웠던···,”

“오! 또 한 명의 전우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반갑네. 반가워, 아하! 형님, 아니 김태주 회장을 따라왔군.”

“그, 그렇습니다.”

순간 사무실에 흐르는 정적.

눈앞에 이 사람이 황자란다.

‘···뭐?’

‘세상에!’

‘지, 진짜 황자님?’

‘어디서 많이 봤다고 생각은 했는데···,’

‘오황자님이시구나.’

삼한제국이 제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황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엎드려 절하거나 하진 않는다.

그저 공손한 예만 갖추면 된다.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정도로만.

하지만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놀라서 입만 떡 벌리고 있을 뿐.

여기 이 사무실 직원 중에 황자를 이렇게나 가까운 거리에서 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리고 직원들은 황자가 김태주 회장을 보며 형님이라고 한 말을 분명히 들었다.

‘대체 우리 회장님 정체가 뭐지?’

백서연도 깜짝 놀랐다.

황자를 인맥으로 두고 있다고?

김태주 회장님이?

하지만 놀람도 잠시.

황자 류진철이 백서연을 보며 말했다.

“좀 전에 특허 이야기 자세하게 들을 수 있을까요?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했다면서요?”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났다.

※ ※ ※

선계(仙界).

조금 전까지 독선 당군악은 초조한 마음으로 무한공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었다.

그러나 이젠 그 짓은 안 하기로 했다.

대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조용히 명상하는 중.

무한공간의 공유, 이것도 어떻게 보면 영혼 연결과 같다.

그럼 연결될 때 반드시 어떤 신호가 있었을 것이다.

‘너무 미약해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으니까.’

그걸 알아볼 참.

그래서 정신을 집중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 나흘···,

순간!

찌르르르!

머릿속에서 울리는 아주 미약한 신호.

‘이건가?’

당군악은 무한공간을 열었다.

반짝인다.

“떴다!!!”

우렁찬 함성이 선계에 울려 퍼졌다.

< 뉴서울에서 만난 전우(2)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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