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55화 (5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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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계 장사꾼 >

당군악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덩실덩실 춤까지 췄다.

반드시 신호가 올 거라는 추측이 들어맞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또 한 번의 연결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앞으로도 계속 연결이 유지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다른 세상의 나 자신과의 연결.

심지어 우화등선해서 선계에 왔는데도 끊기지 않았다.

그것이 무슨 이유로, 또 어떤 이유로 이루어지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알 필요가 있나?

쭉 연결된다는 것이 중요하지.

아무튼 미약하긴 하지만 공유창고가 연결될 때 어떤 신호를 받는지 알았다.

반짝이는 건 확인했고, 남은 건···,

과연 김태주가 자신이 보낸 서신을 봤을까?

독선 당군악은 공유창고를 열었다.

그러자,

“하하하!”

자신이 넣어두었던 선도 복숭아와 서신이 사라졌다.

김태주가 읽었음이 틀림없다.

또한,

‘허허, 물건을 또 보냈군. 안 그래도 되는데···,’

당군악은 빠르게 공유창고를 비웠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종이에 오늘 깨달은 바를 적은 서신을 2개의 선도 복숭아와 함께 집어넣었다.

삼봉 선인에게서 갈취한 선도 복숭아는 모두 3개였다.

전에 1개 보내고, 2개는 먹지 않고 남겨둔 것이다.

모조리 보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이어서 당군악은 김태주가 보낸 물건들을 확인했다.

‘술이 많이 왔네. 흐흐, 대박이야.’

선계에도 술이 있다.

주선(酒仙) 태백 선인이 직접 만들어 커다란 술 단지 하나에 선도 복숭아 2개를 받고 팔고 있다.

사실 선계에서 선도 복숭아는 일종의 화폐.

여기 고인물 선인들은 자신이 기거하는 거처에 적게는 백여 개에서, 많게는 수천 개까지 선도를 보관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당군악은 갓 등선한 신선.

여분의 선도 복숭아를 가지고 있을 리 있나?

‘어디 보자, 이건 맥켈란 18년 산(産)이군. 로열 살루트에, 발렌타인 30년짜리도 있고···, 역시 죄다 고급품이야.’

그밖에 로쉐, 고디바 초콜릿에, 고급 치즈, 달달한 캔디 종류, 인스턴트커피, 주전부리용 각종 과자도.

지구의 고급 양주가 무려 6병.

전에 받았던 돔페리뇽과 마찬가지로 기억 속에만 존재하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당군악도 주선(酒仙) 태백 선인의 술맛을 본 적이 있다.

다른 선인이 마시는 걸 옆에서 보다가 제발 한 입만! 하면서 딱 한 모금 마셔봤다.

인간계에서 흔히 마셨던 술인 백주였다.

그 외에도 황주, 죽엽청, 소홍주 등도 만들어 판다지만···.

물론 선계의 술은 인간계의 그것들보다 수준이 훨씬 높긴 하다.

그러나 처음 맛보는 지구의 술과 비교가 될까?

앞으로 김태주가 공유창고를 통해 물건을 계속 보내준다면, 그것들 죄다 처음 보는 거겠지.

그런데 뭔가 반짝반짝 빛난다.

급하게 꺼내느라 미처 확인하지 못했는데,

“응? ···아하!”

손목시계다.

김태주의 기억을 더듬어보아 롤렉스라는 명품 시계.

“이걸 직접 보게 되다니.”

감개무량하다.

당군악은 금장 시계를 들어 손목에 차보았다.

딱 맞았다.

귀에 가까이 가져가 소리도 들었다.

채칵, 채칵, 채칵···,

규칙적인 초침 소리.

‘흐음, 좋구나. 좋아.’

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다.

이 무료한 선계에서 시간을 알아서 뭐 하게?

멋으로 차고 다녀도 충분하다.

‘아니지. 그래도 틈틈이 맞춰 놓을까?’

정말이지 복 받은 인생.

강호에서 이룰 거 다 이루고 선계에 등선해서, 지구라는 다른 세상의 문물을 직접 경험하는 호사까지 누릴 줄이야.

순간!

선계의 선인들이 당군악 쪽으로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좀 전 당군악이 외친 함성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하면서 호기심에 찬 표정들.

당군악은 재빨리 시계를 찬 왼팔 옷소매를 위로 둘둘 말아 걷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왼무릎을 세우고 앉아 왼손을 그 위에 가만히 올렸다.

‘자, 미개한 선인들아. 우주 만물이 얼마나 거대한지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들아. 지구 문물의 맛 좀 보거라.’

눈에 띄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보란 듯이 내민 손목의 금장시계.

가까이 온 풍운 선인이 당군악에게 물었다.

“이보게, 독선.”

“음? 무슨 일이오?”

“그대 손목에 금줄 말이오, 혹시 보패요? 어떤 기능이 있소?”

“아! 이거?”

당군악은 손을 위로 탁 떨치며 시계를 자랑했다.

그 행동이 얼마나 멋있는지 선인들이 흠칫 놀랐다.

“보패라면 보패지. 그냥 때를 알려주는 기능이랄까.”

“때? 시간 말이오?”

“이 움직이는 초침이 한 바퀴를 돌면, 이 긴 침이 한 칸을 움직인다오. 또한 긴 침이 원을 한 바퀴 돌면 짧은 침도 조금 움직여 우리 기준으로 반 시진이 지났다고 보면 되오.”

반 시진은 지구에서 한 시간.

그러자 탄성을 지르는 선인들.

“호오!”

“신기한 물건이군.”

“시간을 알려준다니.”

“빛도 나는구나. 금을 입혔나?”

“어디서 난 거요?”

“한눈에 봐도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어.”

선인들의 눈이 손목시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채칵, 채칵, 채칵.

초침이 일정한 간격으로 돌아간다.

그 움직임의 규칙이 어김없다.

한 바퀴 도니 긴바늘도 정확하게 한 칸씩 움직인다.

그렇게 선인들은 옹기종기 당군악의 앞에 앉아 그의 손목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루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무려 한 시간 동안이나 말이다.

“긴 바늘 한 바퀴에 반 시진이 맞군.”

“정확해.”

“투시안으로 내가 안을 꿰뚫어 봤소.”

“응? 뭐가 있는데?”

“백여 개 이상의 작은 톱니바퀴와 부품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더군, 이건 보패 중에 보패요.”

선인들의 인정에 당군악은 우쭐해졌다.

급기야.

“···독선.”

“왜 그러시오, 우령 선인?”

“이거 나한테 팔면 안 되겠소? 선도 20개 어떠시오?”

당군악은 픽하고 웃었다.

“선도 20개? 너무 염치가 없군.”

동시에 터져 나오는 흥정.

“30개는?”

“난 40개.”

“50개 주겠소.”

“100개로 합시다.”

하지만 당군악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이건 파는 물건이 아니오. 절대!”

선인들의 표정에서 안타까운 빛이 흘렀다.

안 판다는데 어쩔 수 있나?

“대신 팔 수 있는 것들이 있긴 한데.”

당군악은 손가락으로 바닥에 놓인 고급 양주를 가리켰다.

“이건 뭐요?”

“술이요. 아주 특별한 술, 병당 선도 3개에 팔 생각이오. 딱 4병만.”

적당하게 책정한 가격이다.

전에 삼봉 선인에게 돔페리뇽 한잔과 스팸 한 조각에 선도 3개를 받았던 것은 그가 하도 괘씸해서 그런거고.

너무 비싸면 안 팔린다.

선인들이 지갑을 열 수 있을 정도의 가격.

그러나 선인들은 심드렁한 표정.

주선이 선도 2개에 술 단지 하나를 파는데.

미쳤다고 저 작은 병을 선도 3개에 주고 사?

“술도 술이지만 이 병도 소유하게 되는 거요. 얼마나 아름답소? 호리병이나 자기 병과는 비교도 안···.”

순간!

“독선, 그대는 이 술 한 병이 정녕 선도 3개의 값어치를 한다고 보오?”

주선(酒仙) 태백 선인이 왔다.

술도 잘 빚는 자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술을 사랑하는 신선.

내심 기다렸다.

원래 바람잡이가 있어야 장사가 잘된다.

“흐음, 그럼 일단 한 잔 드셔보시지요. 마음에 들면 선도 3개에 가져가시고, 마음에 차지 않으면···, 그냥 가셔도 뭐라 하지 않겠소.”

태백 선인의 미간이 꿈틀했다.

이건 자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감히 나한테 술을 가지고 덤벼?’

기꺼이 응해준다.

“종류가 많군. 독선이 한 병 골라주시오.”

“흠, 이건 어떠시오. 발렌타인이라는 술인데, 30년 묵었소. 마음에 들 거요.”

“발랭···? 흠흠 마셔봅시다.”

태백 선인은 기대도 안 했다.

‘고작 30년 된 술을 가지고···,’

당군악은 천천히 발렌타인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미리 준비한 듯, 태백 선인이 술잔을 앞으로 내민다.

쪼르르르.

술잔에 따라지는 황금색 액체.

태백 선인은 먼저 술의 향기를 맡았다.

‘독특한 주향이로군.’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그리고 한 모금 꿀꺽.

‘흐음,’

지그시 눈을 감고 한 모금 더.

‘하아.’

어느새 비어버린 술잔.

선인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태백 선인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좋군. 술을 빚을 때 정성을 들였다는 것이 느껴져. 무엇보다 새로운 술이라는데 점수를 주고 싶군. 인간계와 선계를 통틀어 이런 술은 결코 먹어보지 못했소.”

당군악은 씨익 웃었다.

“이것도 하나 드셔보시오.”

로쉐 초콜릿 한 알의 포장을 벗겨 건네자 태백 선인은 바로 입에다 넣었다.

우물우물.

몇 번 씹다가 눈을 번쩍 뜨는 태백 선인.

정수리가 띵하고 울리는 치명적인 단맛.

“이, 이것도 파는 거요?”

“선도 1개만 주시지요.”

“그럴 게 아니라 이 술 4병 내가 다 사지. 아니 여기 있는 물건들 모두!”

하지만 태백 선인의 시도는 무위에 그쳤다.

“아니, 주선! 이게 무슨 심보요! 혼자서 다 가져가겠다고?”

“이거 사겠소. 기다리시오. 내가 찜했소. 선도 3개 가져올 테니.”

“이건 내 거.”

후다다닥!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선인들.

“빨리 한 병 주시오.”

“여기···,”

“요건 얼마요?”

“선도 2개만 주고 가져가시오.”

“이것도.”

“선도 1개.”

당군악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잘 팔린다.

장사를 하다 보니 재미도 있다.

부지런히 벌어야 한다.

김태주에게 선도를 계속 보낼 수 있게끔.

※ ※ ※

이고르 바라노프는 아마 슬라브계 제국민 중 가장 성공한 인물일 것이다.

처음엔 작은 술집에서 시작했다.

그는 타고난 운이 있었다.

특유의 친화력과 서비스 정신으로 작은 술집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점점 확장에 확장을 거듭해 대형 유흥주점으로 거듭났다.

이고르는 멈추지 않았다.

유흥업으로 번 돈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도했다.

회원제 시스템을 도입한 사교 모임.

그것이 리더스 클럽의 시작이었다.

운도 운이지만 이고르 바라노프는 능력도 있었다.

처음 회원을 모집할 때, 고위 공무원이나 유명 연예인, 군부의 장성, 황실 측 인사를 찾아가 그들을 클럽에 회원으로 등록시켰다.

첫 등록 회원들에겐 가입비, 월회비를 받지 않았다.

VIP들은 미끼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올 때마다 선물 공세로 그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그러자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

평소에 잘 만날 수 없는 고위층 관리, 지도층 인물들을 클럽에만 가면 만날 수 있다?

사업가들은 인맥이나 일 처리에 도움을 받고자 클럽에 가입하길 원했고, 이고르는 선별과정을 거쳐 앞으로 성공 잠재력이 있어 보이는 자들에게만 초대장을 보냈다.

클럽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그리하여 삼한제국 최고의 사교 클럽이 된 리더스.

하지만 열심히 쌓아왔던 평판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뻔했다.

조미영 클럽 매니저에게 황자와 관련한 일을 보고 받은 리더스 클럽 오너, 이고르 바라노프.

“죄송합니다. 제 판단 실수였습니다.”

“아니, 자넨 매뉴얼대로 한 게 맞아. 다만 우리가 정보를 제대로 취합하지 못했을 뿐이지.”

생각지도 못했다.

태홍 바이오 김태주 회장과 오황자가 그렇게 밀접한 사이였다니.

그래서 재조사를 했다.

황실에 적을 두고 있는 회원들과 정보망을 동원해 오황자 류진철이 지리산 마수 토벌 작전에 참여한 것까지도 확인했고.

하지만 그 후에 일어난 사건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확실한 건 거의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대우를 하고 있다는 것 정도,

“어떡할까요?”

“뭘?”

“김태주 회장 등급 재판정 말이에요.”

“황자가 힌트를 주지 않았나? 참고하라고.”

“아! 그럼···,”

“다이아몬드 명찰 내줘.”

황자에 대한 예우였다.

그럼 황자도 리더스 클럽에 빚을 지는 거지.

또한 김태주도 분명 뭔가 있는 자다.

정보도 정보지만 그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한 부분이 있는 건 인정해야 한다.

“구례로 직원들 파견해.”

“네.”

“조용히 알아봐. 김태주 회장이 누군지, 그가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그래서 지금부터 밝혀볼 생각.

※ ※ ※

뉴서울 특허청 약품 심사과 손동욱 심사관은 요즘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갑자기 돌변한 미리내 제약의 태도 때문이었다.

도무지 연락이 안 된다.

일을 시켰으면 대가를 주던가, 아니면 다음 일을 지시해주던가.

그래서 몰래 전주학 차장에게 전화도 해봤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회사에 문제가 생겼으니, 당분간 조용히 있으라는 것.

전주학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무슨 일이 생긴 것 같긴 한데, 대체 어쩌란 말인지.

오늘도 태홍 바이오에서 특허 관련 서류를 가지고 올 텐데,

그동안은 심사 신청을 계속 반려했다.

이 서류로는 특허가 불가능하다. 이게 빠졌다, 저게 빠졌다, 보완해서 가지고 와라···,

오늘도 분명 올 것이다.

벌써 세 번째다.

또 반려해야 하나? 아니면 심사를 시작해야 하나.

‘한 번만 더 퇴짜를 놓아보고.’

더 이상 지시가 없으면 일단 심사에 들어간다.

딱 돈 받은 만큼만 해야지.

나중에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가면 입질이 오겠지.

탈락시키라든지, 시간을 끌라든지.

그때는 조금 비싸게 받아먹을 생각이다.

순간!

서류뭉치를 한 아름 안고 나타난 태홍 바이오 백서연 CEO와 최동일 뉴서울 지점장, 그리고 옆에 직원인 듯 보이는 남자 하나 더.

“안녕하세요? 심사 신청 내러 왔어요. 오늘이 세 번째네요.”

백서연의 말에 손동욱 심사관을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네네, 또 오셨네요. 제가 첨부하라고 지시한 서류는 가지고 오셨나요?”

“아뇨. 그건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요. 알아보니까 본격적인 심사가 끝나고 특허가 확정되면 내도 되는 서류라던데요?”

“하! 이 양반들이···,”

손동욱은 코웃음 쳤다.

“필요한 서류는 내가 결정합니다. 공무원이 우습게 보여요? 당장 돌아가세요. 내가 이 자리에 있는 한 특허 심사는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이상하네. 제가 준비한 서류라면 심사에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고 분명히 들었거든요.”

“진짜 꼴값 떠시네. 누가 그래요?”

그러자 백서연 뒤에 있던 남자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제가 그랬습니다.”

“뭐야? 당신은 누군데?”

“황실 직속 제국 감사원 특별조사과 표성태 과장입니다.”

“어? ···네? 누, 누구라고요?”

“여기 명함 받으시고, 지금부터 황제 폐하께서 제게 주신 권한에 근거해 특허청 특별 감사를 시행하겠습니다.”

“아, 아니, 뭔가 오해가···, 자, 잠깐만요.”

감사원 표성태 과장은 스마트폰을 들고 번호를 눌렀다.

“모두 들어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사무실 안으로 들이닥치는 제국 경찰과 감사원 직원들.

손동욱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 선계 장사꾼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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