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56화 (56/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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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배와 포용 >

황자가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의 수행원에게 특허청이 조금 수상하지 않냐면서 지나가는 말로 툭 던졌고, 수행원은 즉시 감사원에다 황자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시작된 조사.

제국의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기관이 바로 감사원, 황제 직속이며 감사의 범위도 넓었고 권한도 무지막지했다.

어떤 기관이든 감사원이 요청하는 정보라면 무조건 1순위로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특허청 손동욱 심사관의 모든 신상 정보를 이미 다 턴 상황, 부동산을 포함한 개인 재산 파악, 본인 계좌, 가족 계좌, 그리고 통화기록.

특허청 압수 수색은 손동욱 말고도 다른 부정 행위자가 있는지 살펴보는 절차였다.

손동욱은 그 자리에서 제국 경찰에 체포되었다.

감사원 표성태 과장은 경찰의 협조를 받아 뉴서울 경찰청 취조실에서 손동욱 심사관과 마주했다.

“재산을 많이 모으셨더군요. 돈을 꽤 많이 받으신 것 같은데, 누구에게서 받았죠?”

“미리내 그룹 미래전략실 전주학 차장입니다.”

“방식은?”

“현찰로 받았습니다.”

손동욱은 이미 체념한 분위기.

형량을 깎아주겠다고 약속하자 진술이 줄줄 흘러나왔다.

“한 번이 아니죠? 미리내 제약의 지시를 받고 특허 심사를 지연시켰던 거.”

“네, 3년 전부터 쭉,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가족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협박은 개뿔.

지 욕심 채우기 위해서 한 짓거리인 걸 모를 줄 알고.

증언이 나왔으니 잡아들여야지.

경찰이 출동해서 미리내 그룹 미래전략실 전주학 차장을 긴급체포했다.

“변호사 오기 전까진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 경찰이 아니니까.”

표성태는 전주학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감사원?”

“네, 현재 카메라도 껐고, 녹음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중에 경찰이 들어오면 그때 본격적인 심문이 시작될 겁니다.”

“그럼 지금 뭐 하자고 날···,”

“궁금한 게 있어서요. 재벌가가 얼마나 공무원 사회에 깊숙하게 개입했는지.”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전 재벌이 아닙니다.”

“하지만 최측근이시죠. 손동욱 심사관이 다 자백했습니다.”

스윽,

표성태는 손동욱의 진술서를 전주학 앞으로 밀었다.

“읽어보시죠.”

그러자 전주학이 진술서를 눈으로 한번 스윽 보면서 말을 이었다.

“다 거짓말입니다.”

“거짓말?”

“서로 연락처도 모르는데 무슨 전화를 했다고···,”

표성태는 어처구니없었다.

저렇게 거짓말을 태연하고 뻔뻔하게 하고 있다.

“지금 대포폰으로 전화했다고 안심하는 겁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손동욱이 당신과 전화하면서 녹음도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시나요?”

“···씨발.”

표성태는 피식 웃었다.

“이봐요, 전주학씨, 당신이 구속되는 건 이미 기정사실입니다. 빠져나갈 생각도 말아요. 우리가 주목하는 건 당신 윗선입니다.”

전주학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동우 사장이 지시했습니까?”

“···.”

“말 안 해요? 혼자 떠안으려고?”

“···.”

“뭐, 어차피 이동우 사장 소환 조사하면 다 드러날 거니까.”

그제야 입을 여는 전주학.

“···소환조사 어려울 겁니다.”

“왜요? 재벌가 패밀리라서?”

“이동우 사장은···, 지, 지금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하하하, 이미 빼돌렸다는 말이군요.”

“아닙니다! 정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찾는 중입니다.”

“헛소리하지 마세요!”

표성태는 정말 몰랐다.

전주학이 이번엔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걸.

※ ※ ※

태주는 호텔 방에서 백서연의 전화를 받았다.

- 특허 심사가 곧 진행될 겁니다. 빠르면 일주일 안에 결과가 나올 거예요.

“수고하셨어요.”

- 우릴 방해한 놈들은 역시 미리내 제약이 맞았습니다. 미리내 그룹 전주학 차장과 특허청 심사관이 짜고 우리 심사요청을 거절했다고···

“그럴 줄 알았어요.”

- 그리고 이상한 소문도 들려오고 있는데,

“이상한 소문이라면?”

- 이동우 사장이 행방불명 상태랍니다. 알아서 도망친 건지, 아니면 진짜 무슨 사고를 당했는지 알 순 없지만.

“···.”

태주야 이동우가 어디 있는지 안다.

아마 영영 찾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이제 식약청 판매 허가만 남았네요.”

- 하지만 그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아요. 외부 개입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네, 열심히 준비해봅시다.”

백서연의 말대로 제국 식약청은 깐깐하다.

그들이 정직하기보다는 식약청이 제국 내에서 가지는 역할 때문이다.

식품이나 약품을 어설프게 통과시켜 문제라도 생기면 큰일 난다.

식약청 전체가 박살이 나는 거다.

그래서 약품 판매 허가는 엄격할 수밖에 없다.

‘특허 문제는 일단락됐고.’

오랜만에 수련이나 해보자.

원래 태주의 하루 일과는 항상 혼원무상독령공 수련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동안 너무 바빠 수련을 게을리했다.

이제 여유가 조금 생겼으니.

너무 급하게 7성에 오른 터라 항상 독정(毒精)의 변화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독정은 독의 정화.

당연히 성질이 온순하지 않다.

오히려 그 힘을 드러낼 때는 마나, 혹은 내공보다 더 거칠고 광포해진다.

그래서 안정화 작업이 필요한 것이고.

독정의 안정화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독과 신체의 균형이 조절되기 때문이다.

만약 안정화에 실패해 독인이 주화입마를 당하면 어떻게 될까?

여타 심법처럼 단전이 파괴되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이 쌓아 올린 독에 자신이 당한다.

혼원무상독령공으로 잠자고 있는 독정을 깨우는 태주.

지이이이이이···,

독정이 진동한다.

아주 천천히.

또한 조용하게.

‘응?’

뭔가 이상하다.

매우 안정적이다.

‘안정화?’

신체와 기운을 주고받으며 천천히, 조화롭게, 그리고 부드럽게 진동하는 독정, 이러면 완전히 안정화를 이루었다고 봐도 된다.

이렇게 빨리?

변화의 원인은 하나밖에 없다.

‘선도 복숭아구나.’

정확하게는 독기마저 포용하는 선기.

겨우 복숭아 하나 먹었을 뿐인데, 독정이 완벽하게 안정화됐다.

그럴 수밖에.

오직 선계의 선인들만이 먹을 수 있다는 선도 복숭아 아닌가.

태주는 조금 더 집중했다.

확실히 독정은 선기에 영향을 받았다.

거칠고 매운맛에서 부드럽고 순한맛으로.

‘이거 너무 순하면 안 되는데.’

명색이 독이다.

부드러워지면 어쩌자고.

순간!

찌이이이잉!

갑자기 맹렬하게 일어나는 독기.

거친 파도처럼, 무시무시한 육식동물의 발톱처럼, 주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려는 기세, 이번엔 너무 광포하다.

‘어, ···이거 조절 가능한가?’

마음을 가라앉히자 순식간에 잠잠해지는 독정.

지이이이이···,

순해졌다가 매워졌다가, 또 순해졌다가.

‘그렇군. 이제 알겠어. ···선기 때문이었어.’

선기는 포용의 기운이다.

반면 지배의 기운이기도 하다.

지배자가 관대하게, 피지배자들을 구슬리고 포용한다.

독기도 다를 바 없었다.

선기가 독정을 포용했다.

‘···가만있자.’

독정에 스며든 선기 덕에 독정이 포용과 관용의 성질을 가지게 됐다면?

독기가 아닌 다른 기운도 감싸 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마나 같은 거.

태주는 무한공간을 열었다.

그 안엔 엘리트 자이언트 반달곰 웅담으로 만든 영약이 들어있었다.

영약에 고밀도로 농축된 마나의 기운.

지금까지 영약은 자신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실제로 영약을 제조할 때 만들고 남은 걸 먹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독정은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선기로 인해 성질이 달라진 독정.

마나도 지배하고 포용할 수 있다면···,

‘해보자.’

태주는 서슴없이 영약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

우우우우우우웅!

휘몰아치는 마나.

태주에게 마나가 밀려 들어왔다.

혈관을 통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간다.

당연히 독정에도 닿았다.

지이이이잉!

이게 웬 떡이냐는 듯 마나를 집어삼키는 독정.

마나가 독정으로 흘러 들어간다.

하지만 그 어떤 충돌도 없었다.

마치 독기를 빨아들이는 것마냥 마나를 흡수하고 있었다.

‘아아···,’

독정이 마나를 포용했다.

동시에 지배했다.

그리하여 독정에 각인된 마나.

그럼으로써 독정은 또 한 단계 도약했다.

우우웅!

태주의 혈맥으로 독기가 흐른다.

독기를 따라서 마나도 흐른다.

그리고 시작된 무아지경의 경지.

태주는 깨달았다.

자신이 혼원무상독령공 8성에 올랐음을.

새로운 독이 아닌 오직 마나를 가지고 이뤄낸 성과였다.

※ ※ ※

잠시 후 태주는 눈을 떴다.

전신에서 차오르는 낯선 힘.

바로 마나였다.

‘이러다 각성하겠네.’

혼원무상독령공 8성.

7성에 올랐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독기뿐만 아니라 마나도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영약의 효과는 이걸로 끝이다.

마나가 독정에 각인되었기에, 새로운 마나가 나오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 터.

그래도 8성이 어딘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이게 다 당군악이 보내 준 선도 복숭아 덕분이었다.

어떻게 보답해야 하지?

뭐라도 주고 싶지만 무한공간의 공유창고는 반짝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런데 무한공간을 열 때마다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이 있다.

그 안에 보관된 사람들의 시신.

‘도저히 안 되겠네.’

이참에 치우자.

뉴서울 주변엔 마수 밀집지대가 없지만 5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가면 적당한 곳이 있다.

이제 미리내 그룹에서 이동우 사장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아직 언론이나 뉴스에 나오지 않을 걸 보면 자체적으로 조사하는 중이겠지, 곧 공개 수사로 전환될지도 모르고.

태주는 먼저 스마트폰으로 백서연에게 메시지를 보내 내일은 뉴서울 관광을 할 예정이니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연락하지 말아달라 부탁했다.

그리고 그날 밤, 호텔 밖을 나서는 태주.

한적하고 캄캄한 곳에서 무한공간에 넣어둔 청바지와 셔츠, 모자, 운동화를 꺼내 입었다.

으득, 스으윽!

역용술로 얼굴을 바꾸고,

뿌드득!

축골공으로 키를 줄였다.

8성에 오르니 변신의 정도가 극적이다.

스스로 봐도 누군지 모를 정도로.

현찰을 제외한 모든 소지품은 무한공간에 집어넣고.

태주는 택시를 타고 뉴서울 역에 도착해 매표소에서 심야 기차표를 끊었다.

“북경 거점으로 출발하는 가장 빠른 표 주세요.”

북경 거점 도시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5시간 정도.

그곳에서 일을 보고 나면 아무리 늦어도 내일 오후까진 뉴서울로 돌아올 수 있겠지.

북경, 옛 중국의 수도였던 베이징.

그러나 지금은 삼한제국의 최전방 마수 방어 거점 도시로 전락했다.

인류의 재건이 시작되었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그 후, 100년이 지나면서 비교적 인구를 많이 확보한 나라들은 빠르게 옛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인도와 중국, 그리고 미국, 유럽도.

특히 중국은 단시간 안에 인구 5억을 달성해 강대국의 면모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복원의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마나에 의해 변이된 마수들.

마수와 인간은 공존할 수 없었다.

당연히 영토를 뺏고 빼앗기는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중국의 신공산당 정부는 결국 악수(惡手)를 두고 말았다.

중국 우한의 마수 대(大) 밀집지대.

핵무기 복원에 성공한 신공산당 정부는 10여 발의 핵탄두를 우한 일대에 쏟아부었고, 마수들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당했다.

해치웠나?

착각이었다.

해치움을 당했다.

일부 살아남은 엘리트 마수들이 재변이를 이루었다.

그것이 바로 비욘드 엘리트 마수의 탄생.

비욘드 엘리트 마수들은 즉시 인간들에게 보복을 감행했다.

놈들을 막을 방법은 전무(全無)했다.

마수들에게 학살당하고, 영토를 빼앗기고,

그리하여 마수들에게 핵무기를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는 교훈만을 남기고 중국은 영영 몰락하고 말았다.

이제는 삼한제국의 영토가 된 북경.

저 한참 밑으로는 비욘드 엘리트 마수들의 영역.

북경 거점 남쪽으로는 마수 웨이브의 위험도 없다.

워낙 지역이 넓어서 웨이브가 일어나기 힘들뿐더러, 일어난다 해도 그 안에서 해결된다.

그래서 각성자들의 사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지역 중 한 곳.

구례와는 다르게 마수 부산물 판매에 있어 세금이 매겨지지만 다양한 마수들이 분포되어 있어 북경 거점은 항상 각성자들의 레이드 팀으로 북적인다.

태주가 탄 밤 기차가 새벽녘에 북경 거점 도시 역에 도착했다.

‘시간이 없으니까···,’

당연히 북경 거점 지역에도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

제국에서 강력한 축에 속하는 전투 군단이 무려 2개씩이나, 즉 6개 사단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북경 남쪽을 막고 있는 거대한 성벽.

몇몇 구간은 철책으로, 몇몇 구간은 돌로 쌓인 성벽으로, 그렇게 그 길이만 무려 400Km, 그런 이유로 이 성벽을 북경 ‘천리장성’이라 부른다.

천리장성엔 북경 주변 마수 출몰지역으로 통하는 문이 여러 개 있다.

그리고 곳곳에 설치된 CCTV들.

태주는 CCTV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차피 진짜 얼굴도 아닌데.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태주는 성문을 통과해서 도시 밖으로 나갔다.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마수는 ‘변종 솜뭉치 차우차우’.

과거엔 중국이 자랑하는 대형 견종이었지만, 마나에 의한 변이로 몸집이 더 커지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졌다.

털이 워낙 길어 움직이는 모습이 솜뭉치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놈들의 털은 고급 옷감을 만드는 소재로 이용되어 레이드 팀에게 인기가 많다.

솜뭉치라서···, 귀여울까?

천만에!

굉장히 포악하고 잔인하다.

특히 치악력이 엄청 강해서 웬만한 방어구는 씹어서 뜯어버릴 정도.

태주는 빠르게 달렸다.

곳곳에서 보이는 변종 솜뭉치 차우차우.

좀 더 안쪽으로.

표홀질풍보를 사용해서.

쐐애액!

한참을 가다 보니 마수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그래도 더 깊이.

그렇게 1시간을 달렸다.

자신을 덮쳐오는 솜뭉치 차우차우를 가볍게 따돌리면서,

‘여기쯤이면 될 것 같네.’

태주는 무한공간에서 시체들을 꺼냈다.

드문드문 간격을 두고 하나씩.

툭, 툭, 툭, 툭···,

“컹컹컹!”

“크르르렁!”

“크아아악!”

시체들에게 달려드는 변종 솜뭉치 차우차우 무리들.

갈기갈기 찢겨 사라지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태주는 북경 거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역용과 축골은 절대 풀지 않았다.

역으로 가서 표를 끊고 기다렸다가, 기차에 탑승하고 다시 5시간 걸려 태주는 비로소 뉴서울에 도착했다.

완전범죄의 완성이었다.

< 지배와 포용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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