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59화 (59/148)

=======================================

< 중독 >

선계에 몇 명의 선인들이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계만큼은 안되지만 그래도 상당히 넓은 세상이었다.

그리고 주위에 선계뿐만이 아니라 영수가 사는 환수계도 있고, 요괴가 사는 요마계도 있다.

선인들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혼자만의 거처를 만들어 결계를 치고 산다.

한 번씩 나와서 동료 선인들과 함께 바둑을 두고, 선계의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풍류도 즐기고.

노화 걱정도 없다.

생리적 욕구도 내키는 대로.

먹어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되며, 싸도 되고, 싸지 않아도 된다.

심심하면 환수계로 놀러가거나 요마계에서 분탕질을 치고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한두 번이지.

솔직히 재미가 있겠나?

인간계에서의 근심과 걱정은 사라졌다지만 무미건조하고 적적하며 따분하다.

그래서 처음엔 누구나 등선을 후회한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 이 무료함에 길들여지는 거고.

그런데 요즘 이 선계가 떠들썩하다.

독선 당군악 때문이다.

어디서 어떻게 입수했는지 몰라도, 무려 다른 세상의 술과 음식들을 선계에 선보였다.

또 너무나 정교하고 치밀해서 아름답기까지 한 손목시계도.

그걸 경험해본 선인들을 탄성을 질렀고, 경험해보지 못한 선인들은 후회했다.

과연 또 가지고 올까?

가지고 온다면 이번엔 어떤 물건이지?

이번엔 반드시 단맛 죽이는 초콜릿이란 물건을 사 먹어봐야지.

마음이 급한 선인들은 독선을 찾아다녔지만 그는 자신의 거처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애타는 마음에 ‘이보오, 독선!’ 하고 불러봤지만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당군악은 밖에서 자신을 부르든 말든 영상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지금 바깥에 나갈 시간이 있나?

태블릿을 빔프로젝터에 연결해 스크린으로 쏴서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다가, 배터리가 다되면 마나 결정체 전기 발전기에 충전시켜두고, 다른 태블릿으로 또 시청.

너무나 고맙게도 태주가 태블릿을 3개씩이나 보내줬다.

뿐인가?

소리가 잘 안 들릴까 봐 고성능 스피커도.

배가 고프면 팝콘 봉지 하나 꺼내 그대로 열양공으로 익히면 포폭! 폭폭폭폭폭, 옥수수 알갱이가 팝콘이 된다.

아그작 아그작 씹다가, 목이 마르면 콜라 한 캔 따서 마시고.

‘음? 벌써 다 먹었나?’

아껴 먹어야 한다.

또 언제 연결될지도 모르니까.

“이보오! 독선!!! 거기 없소?”

또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

어림도 없지.

자신부터 충분히 즐기고 나서.

선인들은 그다음에.

여긴 천국이었다.

선계에 등선해 속세의 인연을 끊어버려 신경 쓸데도 없다.

그저 노닥거리기만 해도 된다.

지금이 당군악 인생의 최절정.

이게 다 김태주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2번의 영혼 연결로 인해 지구의 발달한 문화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었고,

하지만 전기와 통신이 없기에 생각도 안 했다.

그런데 이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기계를 다루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설명서도 있었고, 태주가 보낸 서신에서도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부족해.’

고작 선도 50개짜리 신선주로는 이 은혜를 보답할 수 없었다.

‘슬슬 움직여볼까?’

사업을 해보자.

선도를 많이 벌어서 선인들에게 보패를 구입하고 그걸 공유창고로 보낸다.

사업의 종류는 바로 엔터테이너.

당군악은 극장을 차릴 생각이다.

일명 선계 극장.

걸림돌이 있긴 하다.

바로 언어 문제.

이들은 한국어를 모른다.

하지만,

‘가르치면 돼.’

금방 배울 것이다.

나름 선인들이니 머리도 좋을 것이고.

선인들의 다수는 무림인이지만 학사들이나 시인, 화가처럼 예술가들도 꽤 많다.

그럼 한국어를 터득하기 전까진 극장 사업을 할 수 없나?

아니다.

대안이 존재한다.

마침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컨텐츠가 있었다.

지구의 중국어는 강호의 언어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매우 유사하다.

대충 알아듣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터.

‘첫 상영작으로는···,’

영웅전 3부작 최신판.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알았는지 김태주가 다운을 받아뒀다.

‘이걸로 하자.’

특수효과도 제법 뛰어나고 스토리는 말할 것도 없고.

1부 사조 영웅기 50부작.

2부 신수협려 50부작.

3부 도룡검 의천도 50부작.

총 150부작.

이건 순한 맛이다.

정작 매운맛은 따로 있다.

자극적인 내용이 가득 담긴 막장드라마나 영화.

하지만 처음부터 매운맛으로 돌리면 나중에 순한 맛이 재미없을지 모르니 천천히 공개하기로 하고.

‘가격은 어떻게 할까?’

너무 비싸면 좋지 않다.

선계에서 선도를 구할 방법은 몇 되지 않는다.

한 달에 하나씩 정기적으로 받는 방법과 가끔 태상노군이나 상제가 부여하는 임무를 완수했을 때 주어진다.

물론 선계의 선인들은 고인물들이 대부분이라 부족함 없이 가진 부자들이긴 하지만.

심지어 천도 복숭아를 소유한 선인들도 있었다.

사실 여기서 당군악이 제일 가난하다.

‘하루에 3편에서 5편 정도 상영하는 걸로 하고.’

첫날은 공짜.

둘째 날부턴 유료 결제.

‘정액제 시스템을 도입해야겠군.’

한 달에 선도 25개면 적당하겠지.

총 150부작이니 선도 25개면 영웅전 3부작을 한 달, 혹은 두 달에 걸쳐 모두 볼 수 있다.

선도가 없으면 다른 것으로도 받을 생각.

생각을 정리한 당군악은 자신의 거처를 나섰다.

그러자 그를 보고 반가움을 표시하는 선인들.

“오! 왔다.”

“독선, 그동안 뭘 하고 지냈소? 궁금해 죽을 뻔했소.”

“술 더 없소? 선도 몇 개 가지고 왔는데.”

“어서 꺼내 보시오.”

당군악은 씨익 웃었다.

그의 눈에는 선인들이 선도 복숭아로 보였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도 안달이 난 모습들.

살짝만 맛을 보여줄까?

“보여드릴 것이 있긴 한데.”

그러자 우르르 다가와 한마디씩 꺼내는 선인들.

“오오오! 뭐요? 궁금하오.”

“무한공간에 있소?”

“보패인가?”

당군악은 밝은 선계의 하늘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바깥은 너무 밝군. 조금 어두우면 좋겠소.”

흑암 선인이 재빨리 나서며 당군악에게 물었다.

“독선, 많이 어두워야 하오?”

“캄캄할 필요는 없소. 그리 넓지 않아도 되고.”

흑암 선인이 옷소매를 스윽 휘저었다.

그러자 선인들이 선 장소가 금세 어두워졌다.

당군악은 먼저 이동식 스크린을 설치했다.

그리고 빔프로젝터를 조정하고 스피커와 태블릿을 연결.

총 50부작의 사조 영웅기 1편이 OST와 함께 시작됐다.

빠바바바밤! 빠바바밤!

“헉!”

“이, 이게?”

“···대체 무슨?”

“보패인가?”

“당연히 보패지.”

“맞소, 저게 보패가 아니면 뭐가 보패겠소?”

“허허, 정녕 믿을 수가···,”

“쉿! 조용히들 하시오!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안 들리오!”

비교적 인간계에서 금방 등선한 자신도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지금 모인 선인들은 고인물 중에 고인물, 선계의 지루함에 찌들고 찌든 자들.

그들의 무너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인다.

중독(中毒)의 시작.

해독제도 없다.

당군악은 장담했다.

지구의 엔터테이너.

자신이 여태껏 사용했던 독(毒)중에 가장 지독한 독이 될 거라고.

※ ※ ※

마인 세르게이는 척추가 부러진 채, 비밀리에 제정원으로 이송되었다.

이제 놈은 제정원에서 리더스 클럽에 숨어든 목적에 대해 심문을 당하겠지.

어쩌면 고문을 당할지도 모르고.

“그럼 최종 결재를 받아 빠른 시일 안에 방문하겠습니다.”

“네, 기다릴게요.”

제정원 문경식 1차장은 복귀하기 전에 이고르를 만나 이번 사건은 비밀 처리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김태주 회장님이 비밀로 처리하자고 건의하셨어요.”

“아···,”

“또 리더스 클럽이 마인의 표적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니 따로 클럽에 제정원 요원을 파견할 계획입니다. 이것도 김태주 회장님이 특별히 부탁하셔서···,”

이고르 바라노프는 김태주가 너무 고마웠다.

마인을 처리해준 것도 모자라 비밀까지 지켜주면서 안전까지 생각해주다니,

얼마나 배려심이 깊은 사람인가.

이고르는 태주에게 연신 감사를 표했다.

“정말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정말 고맙습니다.”

“뭘요, 저도 여기 회원인데.”

“당분간 회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 정도 클럽 문을 닫을 생각입니다. 이대로는 염치가 없어서.”

이고르는 클럽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손볼 생각이었다.

특히 안전 문제와 정보수집 체계를.

태주는 이고르, 그리고 조미영 매니저와 인사를 나눈 후, 밖으로 나와 차에 올라탔다.

“안에 무슨 일 있었습니까?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던데.”

“별일 없었어요. 신경 쓰지 마시고.”

“···아! 어디로 모실까요?”

“호텔로 가죠. 저 내려주고 놀러 가세요. 자, 여기 보너스.”

“어이쿠! 뭐 이런 걸 다.”

호텔로 가서 선도복숭아도 확인하고 당군악이 보낸 편지도 읽어야지.

그나저나 제국의 수도인 뉴서울에서도 마인들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닌다.

‘이 새끼들은 겁도 없나?’

마수화를 하지 않으면 절대 들키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터.

그 믿음, 확실하게 깨부숴준다.

태주는 호텔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숙소인 스위트룸으로 올라가려는 그때!

‘음?’

방문 앞에 검정색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몇몇이 서 있었다.

‘누구지?’

제정원인가?

벌써 결재를 맡아왔을 리는 없을 테고.

태주는 천천히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태홍 바이오 김태주 회장님이십니까?”

“그런데요?”

“들어가 보십시오.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다려?”

태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주인이 있는 방에 제멋대로 들어가서 기다린다고?

안에 있는 놈이 누구길래.

지가 황제라도 돼?

아니 황제라 해도 용납 못 한다.

‘요것들 봐라.’

만나고 싶으면 미리 연락을 취했어야지.

기본적인 도리도 지키지 않는 것들.

예의 없는 놈들에겐 예의 없이 대하면 된다.

태주는 픽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 방 안에 있는 새끼는 누군데?”

“···말이 심하십니다.”

“그러니까 누구냐고?”

주인 있는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올 정도로 힘이 있는 놈일 것이다.

호텔 측도 어찌할 수 없는.

“들어가 보시죠.”

참나, 웃기지도 않네.

뭐, 가만히 생각하니 물어보는 것보다 직접 확인하는 게 빠를 것 같기도 하고.

태주는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발을 들어 스위트룸 방문을 강하게 걷어찼다.

콰앙!

문짝에서 떨어져 나가는 나무 문.

“얼굴이나 보자? 누가 쥐새끼처럼 내 방에 몰래 들어왔을까?”

저벅저벅,

태주는 방으로 걸어갔다.

안에도 검정 양복들이 꽤 있었다.

특이한 건 얼굴에 각성 문신을 새기고 있다는 것.

방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중년, 한 명은 비교적 젊은 남자.

둘 다 각성 문신을 새겼고.

주인도 없는 방에서 턱 하니 소파에 앉아있었다.

누가 보면 지들이 방주인인 줄.

이렇게 무게 잡고 앉아있으면 누구십니까? 하고 정중하게 물어볼 줄 알았나?

그중 젊은 남자가 태주에게 말했다.

“네가 김태주?”

“그래, 내가 김태주다.”

“···새끼, 듣던 대로 건방지네.”

“남의 집에 허락도 안 받고 앉아있는 놈들보단 덜 건방지지.”

“그래, 뭐, 나한테 몇 대 처맞고 나서도 그럴 수 있는지 보자고.”

젊은 놈이 천천히 일어났다.

태주도 성큼성큼 걸어갔다.

먼저 이놈부터 족친다.

그런데 그 옆에서 지가 뭐라도 되는 것마냥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중년 남자를 보니 누구인지 알 것 같다.

핏줄은 못 속인다.

진짜 많이 닮긴 닮았다.

※ ※ ※

미리내 그룹 이기언 회장.

그가 다른 재벌 회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각성자라는 것.

로열패밀리에 각성자.

그가 다른 형제들을 제치고 그룹의 지배자가 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하지만 부인은 다른 재벌 가문의 적합자.

각성자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재벌이기에 결혼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많이 낳았다.

자식 중의 한 명은 각성자가 나오겠지.

본부인에게서 낳은 자식은 4남 2녀.

하지만 각성자는 하나도 없었다.

이동우는 차남이었다.

기대했던 각성은 못 했지만 그래도 제약회사를 맡아 열심히 키워놨다.

비록 그 과정에서 강제 합병, 특허 빼돌리기, 말 안 듣는 놈들은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이런 불법적인 일이 있었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뭐든 된다.

자신이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그런데 둘째 아들이 갑자기 실종됐다.

아들놈이 부리던 머슴들까지 모조리.

모두들 마인의 짓이라고 추측하지만 이기언의 생각은 다르다.

태홍 바이오 김태주.

둘째 아들은 뉴서울 중앙역에서 놈에게 수모를 당했다.

가만히 있었을까?

아들 성질에?

머슴 중 하나인 전경철의 통화기록만 봐도 안다.

그날 밤에 김태주와 분명히 전화했다.

반드시 둘이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졌겠지.

그걸 알아볼 참으로 여기에 왔다.

‘하룻강아지만도 못한 놈.’

상황판단도 안 되는 놈이다.

손님으로서 여기 왔는데 대접할 생각은 안 하고 저렇게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라니.

‘성질을 죽여놓고 시작해야 하겠군.’

이기언도 혼자 오지 않았다.

그가 데리고 온 머슴들은 보통 각성자들이 아니다.

북경 거점 도시에서 수많은 마수와 싸우며 실전 경험을 쌓아온 각성자들.

엘리트 마수 사냥 경험도 가지고 있는 최고의 베테랑 각성자 민간 길드.

그 민간 길드를 이끄는 한대현 마스터.

마스터라고 다 같은 마스터가 아니다.

아들의 머슴이었던 이두창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기언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현재 일어나는 일은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태도로.

실없이 먼저 나서지 않고.

머슴을 부리는 주인으로서의 위엄을 유지하면서.

머슴들이 모든 걸 다 처리해놨을 때 나선다.

이것이 주인의 품격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입술도 떼지 않았다.

저 철부지 놈이 무릎을 꿇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입이 열릴 것이다.

그러나 불과 1분도 지나기 전에 그 품격이 깨어지고 말았다.

“···어?”

퍼억!

이기언의 눈앞에서 한대현 마스터가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입에서 피 분수를 뿜으며 말이다.

< 중독 > 끝

ⓒ 꾸찌꾸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