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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볍게 한 방 날려주고. >
같은 마스터라도 그 편차는 매우 극심하다.
엘리트 삼두백호도 혼자 때려잡는 무시무시한 마스터가 있는가 하면, 엘리트 마수가 두려워 사냥을 포기하고 재벌 망나니 똥구멍만 닦아주는 가짜 마스터도 있다.
그러나 시스템은 이 둘을 같은 등급으로 표시한다.
황제도 마스터이고, 이두창도 마스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공 길드 한대현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자신은 진짜다.
이두창 같은 버러지와는 근본부터 다른 마스터.
심지어 엘리트 마수 사냥 경험도 다수 있다.
엘리트 마수를 잡을 수 있는 민간 길드가 몇이나 될까?
그러나 길드를 운용하고 관리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당장 장비 가격과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다.
결국 대기업이나 재벌의 후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대가로 자신이 받은 엘리트 마나 결정체 무기.
그래서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거고.
무기도 받고 돈도 받았으니 일을 해야지.
또 개인적으로 각성도 하지 않은 새끼가 감히 저렇게 건방지게 나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꼴에 비싸 보이는 코트를 입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김태주.
제약회사 회장이라고 깝치고 다니면 누가 못 건들 줄 알고.
한대현은 자신이 데리고 온 길드원들에게 짧게 지시했다.
“저 새끼, 무릎 꿇려.”
타아악!
파바밧!
창공 길드 각성자들이 달려들었다.
무려 엘리트 마수를 상대하면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정예 길드원들이.
휘릿!
쿵!
한 명이 날았다.
‘···음?’
휘릿!
쿵!
또 한 명이 날았다.
‘무, 무슨?’
휘릿! 휘릿! 휘릿···
쿵! 쿵! 쿵···,
믿었던 길드원들이 김태주가 슬쩍슬쩍 내지르는 손바닥에 맞아 정신을 잃고 넓은 호텔 방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이 새끼···,’
만만치 않은 놈이다.
각성도 하지 않았는데.
이기언 회장이 자신들을 데려온 이유를 알겠다.
‘무술을 익혔나?’
그럴지도.
마나로 인해 변이된 세상.
한낱 스포츠에 불과했던 태권도도 살인 무술로 변했다.
각성자도 비전의 무공을 체계적으로 익히면 그 자체로 스킬이 되는 세상이다.
‘꽤 강하군. 건방질 만해.’
인정해줘야지.
그럼 방심하지 않고 진심으로 상대해준다.
한대현은 소파 옆에 세워둔 엘리트 강철검을 잡았다.
‘팔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
우우웅!
검집 전체에 두껍게 어린 마나 블레이드.
한대현의 주 스킬은 발검술, 그의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앞에 있는 모든 것이 잘린다.
한대현은 자세를 바짝 낮췄다.
김태주란 놈이 자신의 공격 범위 안에 들어올 때까지.
몸을 옆으로 비튼 채, 왼손은 검집 상단을 잡고, 오른손은 검 자루 위에 가만히 올려두고.
‘들어왔어.’
한대현은 부드럽게 검 자루를 잡고 스킬로 발현한 마나가 이끄는 대로 손을 쭉 뻗었다.
바로 그때!
스팟!
탁!
“헉?”
검이 뽑히다 말고 중간에서 탁 걸렸다.
‘···왜?’
어느새 앞에 서 있는 김태주.
“어, 언제···.”
놈의 손이 자신의 검 자루 끝을 잡고 있었다.
그로 인해 시작하기도 전에 차단된 발검술 스킬.
뿌리치려고 했지만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 이이익!”
태주는 피식 웃었다.
확실히 강한 놈이긴 하다.
이두창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검이 뽑혔다면 마나 블레이드에 의해 코트가 갈라졌겠지.
그럼 또 수선해야 한다.
“이, 이거 놔!”
“좀 자라.”
퍼억!
태주의 손바닥이 한대현의 얼굴에 작렬했다.
“우웁!”
푸확!
피 분수를 뿌리며 날아가는 한대현.
이제 다음.
이동우와 닮은 중년의 남자.
각성자이긴 하지만 익스퍼트정도.
‘뭘 알고 왔나?’
아무튼 하는 짓이 지 아들과 다를 바 없다.
각성자들을 끌고 와서 다짜고짜 제압부터 하려는 거, 어떻게 이렇게 똑같지?
이동우가 그동안 벌인 짓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배웠을 것이 분명하다.
태주는 소파 앞에 놓인 탁자 위에 걸터앉아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이기언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물었다.
“자, 그럼 말해보세요. 절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미리내 그룹 이기언 회장님.”
이기언은 앉은 자세 그대로 꼼짝하지 않았다.
기세에 완전히 눌렸다.
하지만 자신도 각성자.
그것도 미들 익스퍼트급.
억지로 입술을 떼며 힘겹게 말했다.
“내, 내 아들···, 네가 죽였나?”
“글쎄, 그랬다는 증거는 가지고 왔어요?”
“···.”
“증거도 없으면서 날 찾아온 이유는?”
“증거는 지금 확인했어. 네 그 강력한 힘이 증거 아닌가? 난 네놈이 아들을 죽였으리라고 확신한다.”
“당신이 확신하면 내가 범인이 되는 건가?”
“내 확신이면 충분하지.”
뭐, 죽인 건 맞지만.
태주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내가 죽였다고 치자. 아니 내가 죽였다.”
“이놈!!!”
“그리고 복수를 허락하지.”
“···허락?”
“받아줄 테니까 뭐든 해도 돼. 경찰에 신고하든, 내 사업을 방해하든, 킬러를 보내든,”
황당하다는 표정의 이기언.
하지만 가소롭다는 듯 미소를 짓더니.
“미리내 그룹을 우습게 보는군. 내가 가진 힘이 이것뿐이라고 생각하나?”
“그러니까 복수하라고.”
“흐흐흐, 고작 오황자를 믿고 이렇게 날뛰다니.”
이기언도 황실에 연줄이 있다는 말이다.
황자나 황녀 중 한 명이겠지.
혹은 황제일 수도.
“설마 군부를 믿고 나대는 것이냐? 나라고 군부에 끈이 없을까.”
이기언의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복수를 허락한다고? 좋다. 내가 여태껏 만들어 온 그룹의 모든 자산을 총동원해서 널 상대해주겠다.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빈다면 사정을 봐줄 수도 있고.”
“내가 그걸 무서워했으면···, 음?”
태주는 뭔가 생각났는지, 잠시 말을 멈추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잠깐만 기다려봐.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러니까.”
톡톡, 톡톡톡톡.
메시지를 보내자.
띠링!
바로 날아오는 답장.
한 번 더,
톡톡톡톡,
띠링!
톡톡, 톡톡톡,
띠링! 띠링!
됐다.
확인은 끝냈다.
태주는 스마트폰을 집어넣고 이기언에게 더 가까이 붙었다.
서로 입이 닿을 정도로.
“무슨 짓이든 해봐. 기꺼이 상대해줄게.”
“···.”
“단! 목숨은 걸어야 할 텐데, 자신 있어?”
“···내 모든 걸 걸고 널 파멸시켜 주지.”
“오! 재미있겠네. 그래, 싸움이 시작됐으니까, 가벼운 잽 한 방 날려줄게.”
“재, 잽?”
찔끔하면서 몸을 움츠리는 이기언.
한대현도 한 방에 보낸 놈이다.
자신은 절대 상대가 되지 못한다.
“쫄 필요 없어. 주먹질하자는 게 아니니까.”
태주는 스마트폰을 들고 번호를 눌렀다.
스피커 모드로 전환하고.
뚜우, 뚜우···, 딸깍.
“안녕하세요.”
- 네, 김태주 회원님. 전화 받았습니다.
이고르 바라노프였다.
“궁금한 게 있는데,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 얼마든지요.
“미리내 그룹의 이기언 회장도 리더스 클럽 회원입니까?”
- 네, 다이아몬드 등급 회원님이십니다.
좀 전에 문자 메시지로 확인한 내용.
“오늘부로 그분하고 제가 철천지 원수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같은 클럽에 다니기가 좀 껄끄러워서.”
- 아하!
“제가 나가거나, 이기언 회장이 나가거나 해야 할 것 같은데···.”
어처구니없다는 듯 이기언은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허허허, 난 또 뭐라고.’
고작 한다는 게 클럽에 연락해서 징징거리는 거?
같잖기도 하지만 어림도 없는 짓이다.
이고르 바라노프가 바보도 아니고, 구례 촌놈과 제국 굴지의 대기업 회장 중에 누굴 선택할까?
또한 자신을 내보내면 클럽 회원들 3분의 1이 함께 탈퇴할 것이다.
제정신이 박혔다면 절대 그런 짓은 하지 못하지.
그런데,
- 네, 김태주 회장님, 미리내 그룹 이기언 회장, 클럽 탈퇴시키겠습니다.
이기언의 눈이 번쩍 떠졌다.
···대체 무슨?
“그래도 되나요?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다른 분을 받으면 됩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 이기언 때문에 클럽에 가입하지 않으신 회장님이 한 분 계십니다. 백두 그룹의 정욱철 회장님이십니다. 이기언이 나가면 바로 가입하실 겁니다. 정회장님 따라서 가입할 회원들도 매우 많을 거고요.
“아하, 두 사람 사이가 안 좋은가 보죠?”
- 이기언은 정욱철 회장이 가입하면 클럽을 탈퇴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했고, 정욱철 회장님도 이기언이 클럽에 있는 한 절대 가입 안 하겠다고 했고, 지금까지 이기언이 먼저 가입한 상태라 그냥 보고만 있던 차였습니다.
“뭔지 알 것 같네요.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데, 언제 한번 정욱철 회장님과 자리 한 번 만들어 주세요.”
- 바로 연락드려 보겠습니다. 아마 정 회장님도 좋아하실 겁니다.
“그런가요?”
- 회장님 말씀대로 적의 적은 아군이니까요. 그나저나 미리내 그룹 주식 당장 내다 팔아야겠네요.
“하하, 네네, 그럼 이만.”
-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언제든 다시 연락주십시오.
전화를 끊고 나서 태주는 이기언 회장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마음에 들어?”
“너 이러고도···,”
“하여간 아들이나 애비나, 먼저 시작했으면서 도리어 얻어맞으니까 성을 내. 나쁜 짓은 지들이 다 해놓고.”
“···.”
태주는 이기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거대 재벌 미리내 그룹과 싸우는 건데, 될 수 있으면 아군이 많을수록 좋지.”
자신감에 차 있었던 이기언의 표정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
정말 이놈의 정체가 뭘까?
군부, 황실, 리더스 클럽, 거기에 망할 놈의 백두 그룹까지 가세한다면?
‘득보다 실이 많아.’
물론 마음만 먹으면 싸울 순 있다.
하지만 미리내 그룹도 무사하지는 못한다.
이기언은 고민했다.
아들의 복수.
과연 그것이 위험을 감수할 만큼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아들의 복수가 문제가 아니다.
지금 자신의 체면이 땅에 떨어졌다.
더구나 놈이 한술 더 떠왔다.
“고민하지 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덤벼. 어차피 너와 네 그룹은 무사하지 못할 거니까.”
“···이놈이!”
태주는 격노하는 이기언을 뒤로 하고, 그대로 방을 나갔다.
여기서 놈을 죽일 수는 없다.
목격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전에 놈의 어깨를 두드릴 때, 이미 독을 집어넣었다.
독정이 마나를 지배해 8성에 오르면서 새롭게 터득한 독.
독이라고도 할 수 있고 독이 아닐 수도 있다.
독정에 의해 변이된 이형의 마나.
절대 검출되지 않는 미세한 독이 그 마나에 포함되어 있다.
이기언은 각성자.
그의 몸속에 존재하는 마나와 자신이 주입한 마나 독이 서로 섞여서, 천천히 놈의 몸을 갉아 먹을 것이다.
아마 한두 달이면 알아차릴 것이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병원에 가도 소용없다.
태주가 주입한 건 그저 성질이 다른 마나니까.
방을 나오자마자 태주는 백서연에게 전화했다.
“오늘부터 이 호텔 방 다 빼세요. 네네, 싹 다! ···이따가 자세히 이야기해드릴게요.”
설령 이기언이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실질적인 증거가 있어야지.
시체도 못 찾을 텐데.
※ ※ ※
고려 호텔.
태주와 일행들이 묵었던 호텔의 이름.
태주에게 방을 빼야 하는 이유를 듣고 분노한 백서연은 각성 장교 수행원들을 이끌고 호텔 지배인을 만났다.
방을 빼는 건 당연하고.
“지금 당장 CCTV 영상 주세요.”
“···영상이라뇨?”
“김태주 회장님께서 안 계신 틈을 타 몰래 방에 침입한 사람들, 그리고 마스터키로 문을 열어준 호텔 관련자가 찍힌 영상 말이에요.”
“아! 그 사건 말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그 직원은 해고 통보했습니다. 현재는 잠적해서 찾을 수도 없고···,”
“알았으니까 영상 내놔요!”
어깨를 으쓱하는 지배인.
“개인정보라 영장을 가져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확인해보니 저장장치에서 이미 지워졌고요.”
백서연의 눈썹이 꿈틀했다.
역시 한통속이었다.
하긴, 미리내 그룹 회장이 호텔 지배인 하나 구워삶지 못했을까.
“이렇게 나오겠다는 거죠? 모든 법적 수단 강구해서라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고려 호텔 지배인은 빈정대는 투로 답했다.
“그건 알아서 하시고요, 호텔 집기 파손과 직원 폭행에 대해선 책임을 져주셔야 할겁니다.”
“···뭐라고요?”
“제가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아마 회장님 모시고 경찰서 가셔서 조사를 받아야 할걸요?”
“···.”
입술을 잘근 깨무는 백서연.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도민수가 분노한 표정으로 나섰다.
“너 이 새끼, 양심도 없이···,”
하지만.
“소령님은 나서지 마세요.”
“아닙니다. 제가 해결···,”
“가만있어요. 여긴 제가 알아서 합니다.”
백서연이 도민수를 제지했다.
그는 군인이다.
민간에서 일어나는 일에 개입하면 나중에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이다.
바로 그때!
저벅저벅!
부산해지는 호텔 로비.
무장 경찰들이 호텔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검정색 양복을 입은 사람들도.
호텔 지배인이 비릿하게 웃으며 백서연에게 말했다.
“어이쿠, 경찰이 직접 왔네요. 아마도 미리내 그룹 회장님께서 경찰에 힘을 쓰신 것 같은데···,”
백서연은 가만히 지배인을 노려봤다.
“너무 화내지 맙시다. 저라고 하고 싶어서 그랬겠습니까?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고,”
그 와중에 지배인 앞으로 다가온 검정색 양복의 남자.
“고려 호텔 지배인 되십니까?”
“네! 바로 접니다.”
신분증을 꺼내더니,
“제국 정보원 마인 파트 특별 수사부에서 나왔습니다.”
“···네? 제, 제정원?”
“네, 마인 관련 제보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어, 마인 신고한 적이 어, 없는데, 우리 호텔에 마인이라뇨!”
경찰이 아닌 제정원?
이게 무슨 일이지?
지배인은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금부터 호텔의 모든 CCTV 영상도 압수하겠습니다. 수사에 협조 바랍니다.”
“아, 아니 잠깐!”
“시작해!”
우르르르르!
호텔 관리실로 들어가는 경찰과 제정원 요원들.
제정원의 명분은 충분했다.
김태주 회장과의 협업은 이미 상부에서 결재를 받았다.
따라서 김태주 회장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동적으로 제정원 마인 파트의 업무가 된다.
백서연은 어리둥절했다.
뜬금없이 제정원이라니.
그러자 특별 수사부 요원이 조용히 다가와 그녀에게 속삭였다.
“김태주 회장님께서 전하셨습니다. 이 건에 대해선 더 이상 신경쓰지 마시고 회사로 가셔도 된다고.”
“아!”
백서연은 이제야 이해했다는 표정.
그런데 회장님께서 제정원에도 인맥이 있으셨나?
아니, 뉴서울에 올라오신 지 얼마나 됐다고,
오황자와의 친분에, 리더스 클럽 다이아몬드 등급, 이번엔 제정원까지.
자신이 모시는 회장님이지만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무튼 뉴서울 일정이 아직 남아서 지낼 곳을 다시 구해야 하는데, 어디 적당한 호텔 없을까?
< 가볍게 한 방 날려주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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