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61화 (6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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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골이 좋군. >

백두 호텔.

정연희는 자신이 묶고 있는 호텔 스위트룸에서 외출 준비를 끝마쳤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지분을 넘겨주셔서 정연희는 호텔 대주주 신분.

사관학교는 졸업했다.

며칠 후면 장교 임관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때까지 호텔에서 지내는 거고.

가족들은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그럴 마음이 나지 않았다.

괜히 집에 있다가는 아빠 생각이 날 것 같아서.

이젠 이 세상에 없는 아빠다.

집엔 아직 아빠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아빠가 살해당하신 건 10년 전.

아직 범인은 잡지 못했다.

다만 마인이 저지른 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전복된 자동차, 그 자리에서 사망한 운전수와 경호원, 그리고 아빠, 그들의 시신에서 심장 및 내부 장기들이 사라진 상태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부근에서 찍힌 CCTV 영상, 마수화한 범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혔고.

지금도 정연희의 스마트폰엔 그 마인의 모습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녀는 다짐했다.

반드시 아빠를 죽게 한 마인을 잡아서 복수할 것이다.

그래서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각성에도 성공했다.

그녀가 1지망으로 써낸 임관 희망지도 ‘황도 방위 사령부, 대마인 특작 부대.’

제국 정보원 마인 수사팀과의 연계를 통해 마인을 추적, 체포, 섬멸하는 곳이다.

사관학교 수석 졸업이라, 거의 확정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정연희에게 마인은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신문이나 언론에서 마인과 관련한 기사만 뜨면 샅샅이 찾아서 읽었다.

미진한 부분은 따로 사람을 풀어 조사하기도 하면서.

그러다가 구례 마인 사건을 접했다.

마인이 무려 3명이나 잡혔다.

그것도 한꺼번에.

어떤 놈들이지?

혹시 아빠를 죽게 만든 범인이 아닐까?

당연히 정연희는 따로 조사해봤다.

할아버지를 졸라 그룹 정보망을 총동원해서.

하지만 아빠를 살해했던 그 마인은 아니었다.

마인이 마수화를 하면 본래 얼굴과 체형이 다르듯, 마수화 상태의 모습도 각기 다르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빠의 복수는 자신이 직접 해야 하니까.

그런데 구례 3인조 마인 사건을 조사하다 알게 된 이름.

태홍 바이오 김태주 회장.

구례의 노고단 길드와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이 마인을 잡은 것으로 되어있었지만 그룹 정보팀의 의견은 달랐다.

추적에서 섬멸까지, 다 김태주 회장이 혼자서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진짜?

어떻게 한 명도 잡기 힘든 마인을 3명씩이나, 그것도 혼자서?

정연희는 마인이 얼마나 잡기 힘든 존재인지 안다.

그때부터 김태주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알아보니 각성도 안 한 사람, 얼마 전까지 마나 거부자였던 사람, 그러나 해독제를 발명하면서 지리산 마수 밀집지대의 고민거리를 단번에 해결한 사람, 그리고 마인 소탕까지.

하나만 해도 까무러치게 놀랄 일들인데, 단 몇 개월 만에 저 일을 혼자 해냈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뭔가 있는 사람이다.

아마 마인을 추적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만나봐야지 하면서 벼르고 있었고.

어쨌든 오늘은 가족들과 식사를 하는 날.

장소는 집이지만 할아버지가 부르니 가야지.

정연희는 스위트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갔다.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비서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겠어요. 빨리 가요.”

“네! 차가 대기 중입니다.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로비를 가로질러 나가는 도중에.

‘음?’

그녀의 시선을 끄는 한 사람.

‘···저분이 왜 여기 있어?’

도민수 소령이었다.

지리산 마수 토벌 작전 견학 당시 자신을 인솔했던 함양부대 장교.

양복을 입은 걸 보니 휴가를 받았나?

“도민수 소령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누군가 하며 뒤를 돌아보는 도민수.

“어? ···정연희 생도?”

“멸마! 휴가 나오셨어요?”

“아아, 으음, 휴가는 휴가지. 근데 정연희 생도는 여기 무슨 일로···, 아! 맞다. 여기 백두 호텔이었지.”

“네, 여기서 묵고 있어요. 그럼 소령님은 여기서 왜.”

“호텔에 방 잡려고 왔지. 하지만 방이 없어서 좀 어렵네.”

정연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상하네. 주말도 아니고 방은 충분할 텐데.”

“그게···, 사장님이 고집을 부려서 말이야. 회장님 묵으실 방은 무조건 스위트룸이어야 한다네.”

뭐지?

사장님과 회장님은 누구야?

도민수 소령은 군인이잖아.

정연희에게 프런트에 서 있는 두 명의 남녀가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깔끔한 오피스룩의 회사원인듯하고, 남자는 다부진 몸매에 은회색 코트를 입고···,

‘잠깐!’

뭔가 깨달은 듯한 정연희의 표정.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도민수 소령, 그리고 같은 군인들인듯한 수행원들, 회장님, 은회색 코트···, 단서를 조합해보니 저 남자가 누군지 알겠다.

또각또각!

프런트를 향해 걸어가는 정연희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러자 들리는 대화 소리.

“일반 스탠다드로 하세요. 여기 고급 호텔이라 그것만 해도 충분해요.”

“안 됩니다. 솔직히 스위트룸으로도 부족합니다.”

“아아, 서연씨, 고집 세네.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

대화에 정연희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저기···, 제가 도움을 드려도 될까요?”

“네?”

태주는 갑자기 나타난 젊은 여자를 보며 물었다.

“누구신지?”

“태홍 바이오 김태주 회장님 맞으시죠?”

“···그렇습니다만?”

“전 정연희라고 합니다. 이번에 임관하게 될 장교 후보생이고요. 전에 지리산 마수 토벌 작전에 생도 신분으로 참여했습니다.”

“아! 전우시구나.”

태주는 활짝 웃으며 정연희를 반겼다.

토벌 작전 함께 했으면 전우지.

“그런데 도움이라뇨?”

“저한테 맡겨주세요. 방 문제 해결해드릴게요.”

“···그럴 필요까진 없습니다만.”

“아뇨, 저도 제 호텔에 훌륭한 손님을 유치해야 할 의무가 있어서.”

태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제 호텔?

직원도 그녀가 누군지 아는 눈치.

“제 방을 스탠다드룸으로 바꿔주세요. 그리고 김태주 회장님은 스위트룸으로 옮겨주시고.”

“···괘, 괜찮으십니까?”

“제가 책임질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직원 불러서 제 방 깨끗이 청소해주시고 짐도 다른 방으로 옮겨놓으세요.”

그 와중에 태주는 정연희의 뒷모습에 꽂혔다.

단단한 엉덩이, 튼실해 보이는 허벅지, 가는 허리와 곧게 뻗은 등, 길죽한 팔다리···.

그러자 백서연이.

“회장님, 정연희 씨라면 백두 그룹 정욱철 회장의 손녀입니다.”

“아하! 그래요? 어쩐지.”

“네, 관심 있어 보이시는데, 친하게 지내시는 걸 권유해 드립니다.”

“···제가 언제 관심 보였다고, 그, 그런 쪽 아닙니다.”

직원과 이야기를 끝내고 정연희가 웃으며 다가왔다.

“제가 쓰던 방이라, 깨끗하게 청소하면 들어가세요.”

“천만에요. 감사합니다.”

“뭘요! 우리 호텔에 이렇게 유명한 분이 숙박해주시는 게 더 감사하죠.”

그러고 나서.

“혹시 폐가 안된다면 호텔에 계실 때 제가 한번 찾아봬도 될까요?”

“어···,”

안될 것 없다.

지리산에서 함께 마수와 싸운 전우인데.

“네! 언제든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태주는 돌아서는 정연희를 흥미로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탐난다.

하지만 이성적 관심은 눈곱만큼도 없다.

강호 무림에선 저런 체형을 보통 ‘근골이 좋다.’ 라고 표현한다.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지금까지 봐왔던 사람 중에 최고의 무재(武才)를 지녔다.

흔히 천무지체니, 음양지체니, 건곤지체니···, 이런 거 말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가르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무인으로서의 또 하나의 기쁨인데.

‘인성만 괜찮으면···.’

일단 두고 보자.

※ ※ ※

호텔 방을 옮기자마자 찾아온 제국 정보원 문경식 1차장이 계약서를 들고 찾아왔다.

일종의 프리랜서 계약

태주를 위한 최선의 편의가 다 들어있었다.

마인을 잡든 못 잡든, 건당 1억 원의 출동비 지급

출동 요청은 언제든 거절 가능.

장거리 이동 시 제국 정보원에서 이동 수단 제공, 등등.

건당 1억 원이야 태주에겐 푼돈.

하지만 제국 정보원 쪽에선 큰돈이다.

출동비가 1억 원이니, 확실한 단서를 발견했을 때만 부르겠지.

“여기다 서명하면 됩니까?”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모시긴 뭘 모셔?

같이 마인 잡으러 다니는 건데.

“고려 호텔은 곧 영업 정지 명령이 떨어질 겁니다. 지배인이 직접 마스터키로 회장님 방을 여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혔거든요.”

백서연 혼자만으론 버거울까 봐 부탁했는데, 잘한 것 같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미리내 이기언 회장도 저희 쪽에서 처리해드릴 수 있습니다만.”

“···어떻게요? 그래도 나름 대기업 회장인데.”

“그깟 재벌 회장, 휠체어에 태워 검찰로 보낼 정도의 힘은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썩게 만들 수도.”

“···.”

문경식 차장이 저렇게 자신하는 걸 보면 분명 지은 죄가 많을 것이다.

“재벌이 망한다고 미리내 그룹이 망하겠습니까? 이참에 걷어내고 전문 경영인들이 회사를 맡으면 경제도 더 좋아지겠죠.”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태주는 고래를 절래절래 흔들며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네, 언제든 이야기해 주십시오.”

제국 정보원에 자꾸 빚을 지는 건 좋지 않다.

그렇게 되면 끌려다니는 관계가 될 수 있다.

“참! 특허청에서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아! 네.”

곧 심사가 통과될 거라는 의미.

이제 공장을 돌릴 때다.

미리 생산해서 물량을 최대한 만들어 놓은 후, 식약청 판매 허가가 떨어지면 제국 전역으로 판매한다.

그럼 이제 준공식만 남았나?

※ ※ ※

선계(仙界).

당군악의 엔터테이너 극장 사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성공적이었다.

천막으로 둘러싸인 극장.

대목(大木) 선인에게 복숭아 10개를 주고 편안한 나무 의자 50개를 깔아놨다.

흑암(黑暗) 선인에겐 정액제 할인을 대가로 항상 어두운 조명을 유지하도록 했고.

귀곡(鬼谷) 선인에게 복숭아 15개로 주술진을 부탁해 천막 곳곳에 결계를 쳤다.

당군악이 허락한 사람만이 극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지만 당군악은 미칠 지경.

이렇게 장사가 잘되고 있고, 복숭아도 이미 1,000개 넘게 확보했는데도 말이다.

“제발 집에 좀 갑시다.”

“···.”

“···.”

“···.”

.

.

.

그의 호소를 들어주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3일 밤낮을 극장에만 틀어박힌 선인들.

물론 진짜 눈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비유적 표현이다.

선인들의 눈이 피곤할 리 있나.

“아! 나도 좀 쉬자고!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여전히 묵묵부답.

진짜 왜들 이러나?

중독도 보통 중독이 아니다.

이래선 도저히 답이 안 나올 것 같고.

급기야 당군악은 빔프로젝터 전원을 내려버렸다.

픽!

“헉!”

“뭐, 뭐야?”

“꺼졌어?”

“어떤 빌어먹을 새끼야?”

“육시럴 놈!”

“허어, 미치겠군. 하필 이 장면에서.”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곳곳에서 욕설과 함께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마치 영화 속 악역처럼 난폭하게 변해 버렸다.

“당군악! 그대가 했소?”

“그렇소만, 오늘만 10편 보셨잖소, 원래 하루에 5편씩 상영하기로 했는데, 각자 거처로 돌아가셔서 잡시다.”

그러자 온갖 욕설과 불만이 당군악에게 향했다.

“허허, 갓 등선해서 어여삐 봐줬더니만, 이거 안 되겠군.”

“썩을! 선도 복숭아 필요하면 말을 하지!”

“몇 개면 되겠소? 얼마면 되냔 말이오?”

“지금 잠이 오오? 구양 뭐시기 하는 놈이 우리 주인공을 저렇게 괴롭히는데.”

“저놈 뒈지는 거 보고 집에 갑시다.”

“고구마만 멕여놓고, 여기서 끊으시겠다?”

“하차하겠소!”

.

.

.

독선 당군악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

하는 수 없이 다시 전원을 켜고.

팟!

사조 영웅기 드라마가 이어졌다.

“오! 켜졌다.”

“독선, 고맙소.”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역시 독선밖에 없어.”

“저런 인품이니 우화등선했지.”

“음? 내 팝콘 누가 처먹었어?”

“쉿!”

“식선(食仙), 당신이지?”

“거참! 좀 조용히 합시다.”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극장 안.

큰일이다.

이 추세라면 내일, 혹은 모래 1부가 끝난다.

물론 보여줄 컨텐츠야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한데···.’

잠시 후,

또 한편이 끝났다.

“???”

“아니, 여기서 끝?”

“절단 마공이라도 익혔나?”

“쯧쯧, 이래서 무림 출신들은···,”

“연속 상영하시오!”

“연상!”

“연상 좀···,”

그러자 주선 태백 선인이.

“허어, 이 사람들이! 자꾸 공짜만 바라면 선기가 사라져! 대가를 줘야지. 그래야 독선도 계속 틀어줄 거 아니오.”

“그건 그렇지.”

“자자, 모두 선도 하나씩 더 내어놓읍시다.”

당군악 앞에 또 복숭아 100여 개가 쌓였다.

스윽!

무한공간에 쓸어 담고.

다음 편이 시작됐다.

당군악은 체념했다.

‘그래, 복숭아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실제로 들어갈 곳이 많다.

이번에 태주에게 보낼 물건들.

단주(丹朱) 선인의 보패, 부적 묶음.

부적 개수는 100장.

부적 한 장에 복숭아 3개.

한 묶음 사니 선도 300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철장(鐵匠) 선인에게 선도 600개를 주고 그의 보패인 신령비도(神靈飛刀) 한 자루를 샀다.

원래 같은 보패라도 술이나 부적 같은 소모품은 비교적 싸고, 도구처럼 오래 쓸 수 있는 보패는 매우 비싸다.

그 밖에도 주문해 놓은 것이 많다.

모두 태주를 위한 것이다.

‘후우, 내가 고생 안 하면 누가 고생하겠어?’

당군악도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선도 복숭아 하나를 꺼내 으적으적 씹었다.

선기가 점차 회복되고 있었다.

< 근골이 좋군.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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