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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안 오지? >
합빈 교도소에서 숨어있던 마인을 검거했다.
알고 보니 일본계 교도관 다이고 카츠야.
당연히 조사해봤다.
제국에서 태어난 본토 출신이 아니었다.
식민지에서 건너온 각성자 이주민.
신분엔 문제가 없었다.
각성자이기에 합빈 교도관으로 근무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고.
약 2년 정도 근무했다.
마인이 되었다면 사람 잡아먹는 걸 억누를 수 없었을 텐데.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합빈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빌런 중에 실종상태인 자들이 무려 5명.
모두 합빈 근처의 도시에서 살던 전과자들이었다.
그놈들이 다이고 카츠야에게 먹혔다.
빌런들은 마인들에게 있어 최고의 먹잇감.
일반인과 비교해 범죄자들이 실종되면 경찰이나 주변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뭐, 또 범죄를 저지르고 어디론가 도망갔겠지.
차라리 눈에 안 보이는 게 낫고.
그놈들이 없어졌다고 누가 신고할까?
다이고 카츠야는 그 점을 노렸다.
교도소에서 출소 예정인 범죄자들의 개인정보를 취득해 자신보다 약한 적합자, 혹은 각성자 빌런들을 사냥감으로 정했다.
그리고 비번이나 휴가를 내서 사냥했다.
제국 정보원 남일복 원장은 문경식 차장이 올린 보고서를 읽었다.
“···진짜 냄새로 판별한단 말인가?”
“제가 몇 번 물어봤지만 대답은 늘 똑같았습니다. 악취가 난다고.”
“스킬도 아닐 텐데.”
스킬이면 이해한다.
각성자들이 보유한 수많은 종류의 스킬들.
그중에 마인 판별이라는 스킬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
하지만 김태주 회장은 각성하지 않았고, 따라서 스킬도 보유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마인을 궁지에 몰아넣고 마수화 스킬을 유도했고?”
“그렇습니다. 마인 다이고의 입장에선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냥 죽느냐, 아니면 마수화로 저항이라도 해보느냐.”
“결국 마수화를 선택했지만 너무 쉽게 제압당했단 말이군.”
“김태주 회장의 주먹에서 일어나는 마나 응집 현상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마치···,”
“마나 블레이드 같은?”
“네.”
요 며칠 새, 마인 세르게이에 이어 마인 다이고까지.
제국 정보원은 연달아 마인 검거라는 성과를 냈다.
“이거 그냥 두고만 볼 수 없겠는데? 출동비 1억 가지고는 생색도 못 내겠군.”
“그렇죠. 가진 재산이 거의 재벌급이라.”
“···재벌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요즘 미리내 그룹 이기언은 뭐 하고 있나?”
“아직 특별한 움직임은 없습니다만, 하지만 분명 가만히 있진 않을 겁니다. 이기언은 김태주 회장이 자신의 아들 이동우를 죽였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까요.”
문경식의 말에 남일복 원장은 코웃음을 쳤다.
“이기언이, 참으로 뻔뻔한 새끼야! 지 아들이 실종된 걸 왜 김회장에게 뒤집어씌워?”
“실종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근거는?”
“제국 감사원 특허청 감사보고서 기억나십니까?”
“알지, 실종된 이동우 사장이 특허청 직원을 매수해 태홍 바이오 신약 특허 출원을 지연시킨 거?”
“그 건은 혐의가 완벽하게 드러났습니다. 결국 전주학 차장도 자백했고요. 하지만 이동우가 실종상태라···,”
“기소가 중지됐지.”
무슨 말인지 알겠다.
공무원 매수는 큰 죄다.
무거운 형벌이 떨어진다.
이동우가 검찰에 소환되어 재판에 넘겨지는 걸 막고자 뒤로 빼돌렸을 것이다.
실종 운운하면서 주의를 딴 데로 돌리고, 김태주 회장에게 일부러 누명을 씌워 태홍 바이오를 공격할 명분도 만들고.
“가만히 두면 안 됩니다. 황실에 끈이 있다고 저렇게 막 나가는 같은데.”
“그렇지. 미리내 그룹은 이황자 후원 세력이니까.”
“몇 개 터뜨려 볼까요?”
“아니, 그냥 둬. 내가 따로 만나보지. 경고만 해도 충분할 거야.”
“놈이 선을 넘으면요?”
“그럼 우리도 넘으면 되지. 마인과 관련된 문제야. 황족들도 어떻게 할 수 없어.”
마인을 판별할 수 있는 김태주 회장이다.
제국에 마인들을 완전히 소탕할 수 있을 때까지 제국 정보원은 그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럼 언제 이기언을 만나보실 겁니까?”
“왜? 김태주 회장에게 생색 좀 내보려고?”
“당연히 내야죠.”
“알았어. 최대한 빨리 이기언이 만나서 담판을 짓겠네.”
김태주 회장의 뉴서울 일정이 마무리되면 곧 자유도시 구례로 돌아갈 것이다.
그럼 만나기도 어렵다.
출동 요청 공문을 보내도 씹을지도 모르고.
따라서 제국 정보원의 값어치를 김태주에게 끊임없이 어필해야 한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이렇게 많다! 라는 것을.
※ ※ ※
삼한제국 식약청은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부서였다.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제국의 다른 공기관들은 외부 세력에 의한 압박이나 로비가 통할 수도 있다.
실제로 몇 번 있었고.
며칠 전에도 특허청 사태가 터지지 않았나.
식약청은 절대 그런 일이 없었다.
최소 30년 동안은 말이다.
그렇다면 30년 전은?
한창 제국의 인구가 폭발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임산부를 위한 여러 신약이 속속 선보였고.
지금은 망했지만 당시 이름있는 제약회사에서 임산부용 철분제를 개발해 식약청 심사 요청을 해왔던 적이 있었다.
그때 식약청장은 제약회사 사장을 만나 저녁 식사와 함께 10만 원권 지폐가 가득 든 가방을 받았고, 그 회사 철분제는 약식 검사를 통해 신속하게 시중에 판매되게 되었다.
그리고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났다.
그 회사 철분제를 복용한 임산부들이 정신을 잃거나 깨어나지 못한 채 사망해 버렸던 것.
황제는 진노했다.
왜냐하면 그즈음에 황제도 황실의 적통을 반드시 이어야 한다는 신하들의 끈질긴 호소를 받아들여 황후와 후궁들을 들이고 자식을 낳으려고 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식약청장과 제약회사 사장을 잡아다 참수하고, 그에 관련된 모든 식약청 공무원들을 재판에 넘겨 징역을 살게 했다.
식약청이 폭파됐다.
이름난 제약회사도 하루아침에 망했다.
식약청에 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그 이후론 식약청에 로비를 시도한 회사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식약청도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조직을 재정비했고.
며칠 전 식약청에 두 개의 신약에 대한 판매 허가 심사가 들어왔다.
성분 분석을 시작해 적어도 인체에 해로운 물질은 들어가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후에, 곧바로 동물 실험에 돌입했다.
삐걱, 삐걱, 삐걱,
실험용 동물들이 들어있는 우리가 정신없이 흔들린다.
식약청 약물 연구소 소장이 연구원에게 물었다.
“긴꼬리 쎅토끼들 왜 이래?”
“글쎄요.”
“이것들 미친 거 아냐?”
번식력에 있어서는 최고의 마수.
밥만 먹고 나면 그 짓을 하는 마수란 걸 감안 해도 이건 너무 심했다.
하루 종일 한다.
지치지도 않았다.
“쎅토끼 건강 상태는?”
“일주일 지났는데 멀쩡합니다. 그래서 계속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환장하겠군.”
일반인도 쉽게 때려잡을 수 있는, 너무나 약한 신체 능력의 쎅토끼였다.
조금이라도 나쁜 성분이 들어있는 물질을 먹으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얘들 가지고 실험하고 있는 약물이 뭐라고?”
“건강음료입니다. 태홍 바이오에서 의뢰한 생기불끈이라는···,”
“참나! 진짜 불끈불끈 하나 보네. 정력제 성분 들어 있어?”
“없습니다. 피로 회복제입니다.”
“마약 성분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약물 의존도는 어때?”
“일부 섹토끼에게 5일간 생기불끈을 먹이고, 한동안 투약을 중단했는데, 금단 증상 같은 건 없었고요.”
곰곰이 생각하는 연구소 소장.
“생기불끈 샘플 몇 개나 들어왔어?”
“300개 들어왔습니다.”
“가져와 봐.”
연구원이 샘플이 든 박스를 가지고 실험대 위에 놓았다.
그런데?
“응? 이거 100개도 안 되잖아. 벌써 다 쓴 거야?”
“그, 그게···, 연구원들이 스스로 인체실험을 하겠다면서.”
“이것들이 미쳤나! 아직 동물 실험도 완료하지 않은 약물을.”
“건강음료지 않습니까.”
“아무리 음료라도! ···하나 줘봐! 먹어보게.”
소장은 태홍 생기불끈 음료를 꿀꺽 마셨다.
그리고 소장이 연구소로 다시 돌아온 건 정확히 2시간이 지난 후였다.
“야야, 임연구원, 생기불끈 있지? 그거 한 병 더 가지고 와봐.”
“···여, 여기.”
“어? 왜 이것밖에 안 남았어?”
“연구원들이 들이닥쳐서 막 가져가는 바람에,”
“이 새끼들이?”
하지만 소장도 그들을 탓할 수 없었다.
자신도 그런데.
“···이거 빨리 인체실험 들어가자. 태홍 바이오에게 연락해서 샘플 더 가져다 달라고 해.”
“몇 개나요?”
“300개, 아니 500개 달라고 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 십전대보탕 같은 보약도 유의미한 효과를 지닌다고 하지만 그건 적합자나 각성자에게만 적용되는 약효.
결국 약에 포함된 마나가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이 태홍 생기불끈은 다르다.
일반인인 자신들에게도 환상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적합자와 각성자만 좋은 약을 먹으란 법이 있나?
연구소장이 보기엔 이건 빨리 시중에 풀려야 하는 물건.
즉시 인체실험에 들어가야 한다.
힘들 때마다 한 병씩 마시고,
※ ※ ※
등선의 조건은 어떻게 될까?
인(仁)과 의(義)를 행하고, 예(禮)를 지키며, 덕(德)을 쌓으면 신선(神仙)이 될까?
절대 아니다.
인, 의, 예, 덕.
그것은 신선의 도가 아닌 유학의 도이다.
물론 덕선(德仙)이란 신선도 존재한다.
보통 덕을 쌓았다 해서 적(積)자를 붙여 적덕선(積德仙)이라 불린다.
하지만 신선들은 결코 선(善)하지 않다.
인, 의, 예, 덕과는 거리가 멀다.
착해서 신선이 된 것이 아니라, 될놈될, 태어나면서부터 선근(仙根)의 싹을 가지고 있었거나, 혹은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강한 열망 때문에 등선을 이루는 것이 대부분.
선계의 상위 차원인 천선계도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동안 신선들이 얼마나 많은 사고를 쳐왔는지 셀 수가 없을 정도.
그래서 상제의 부하인 신장(神將)들을 보내 도원(桃園)을 지키게 했다.
혹시나 선도, 천도 복숭아를 훔치러 오는 신선들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도원은 상당히 넓은 곳이다.
그 구역이 다섯 군데.
1구역은 선도 복숭아 나무 500그루가 심겨 있다.
2구역은 1,000그루, 3구역은 1,500그루, 4구역은 2,000그루, 그리고 마지막 5구역은 오직 천도 복숭아 한 그루만.
각 구역마다 신장들이 존재해 방비가 엄중하다.
천도 복숭아 구역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도원이 털려버렸다.
10여 명의 선인에 의해서 말이다.
털린 구역은 1구역과 2구역.
같은 신선이지만 도원의 관리를 맡은 천선(天仙) 종리 선인이 상처투성이로 돌아온 신장(神將)에게 물었다.
“···주동자가 검선(劍仙)이란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아니, 그자가 뭐가 부족해서?”
검선은 자신과 함께 선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강한 선인 중의 한 명.
선도에 욕심내지도 않았고, 욕심낼 이유도 없었다.
“얼마나 털렸길래, 나무는 다치지 않았고?”
“1구역과 2구역의 선도를 반 이상 다 털어갔습니다. 나무들은 다행히 무사합니다.”
“후우.”
불행 중 다행.
그나마 나무들은 다치지 않았다.
솔직히 그 개망나니 원숭이 놈이 했던 짓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새끼는 무려 천도 복숭아를 훔쳐먹었으니까.
천년에 한 번씩 열매를 맺는, 그것도 한그루밖에 없는 천도 복숭아에 비하면 선도는 선계의 과일일 뿐이다.
그래도 심각한 피해였다.
나무 하나에 열리는 선도의 개수는 약 50여 개.
1구역, 2구역 합쳐 2,000그루니까, 절반 이상 털렸다면 최소 5만 개 이상 훔쳐 갔다는 의미.
“어쩌다 그런 사달이 났나? 혹시 우발적으로?”
“아닙니다. 도원 경계를 서고 있는데 갑자기 검선이 와서 공격을 해왔습니다. 그사이 다른 선인들이 결계를 뚫고 들어가 선도를 훔쳤고요.”
“그 많은 걸 어떻게?”
“호리병박 보패를 가지고 왔습니다. 뚜껑을 열고 진언을 외우니 나무에 달린 선도들이 쭉쭉 빨려 들어갔습니다.”
“계획적이란 말이군.”
돌려받아야 한다.
이유도 물어보고.
종리 선인은 신장을 보며 말했다.
“동료들 몇 명 데리고 가서 검선과 신선들을 데리고 오게. 윽박지르지는 말고, 정중하게! 내가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하면 올 거야.”
“네.”
그리하여 도원을 경비하던 신장 10명이 검선을 만나기 위해 선계로 내려갔다.
종리 선인은 신장들이 그들을 데리고 오기만을 기다렸다.
검선과는 오랫동안 교분을 나눈 사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
지금쯤 잘못을 저지른 걸 후회하고 있을 터.
자신이 만나자고 하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런데?
한 시진이 지나고, 두 시진이 지나고, 한나절이 지나도 검선을 데리고 간 신장들은 감감무소식.
‘···설마 겁박을 당하고 있나?’
대체 검신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가 뭘까?
그래서 대장군 격인 탁탑신장(托塔神將)을 호출했다.
“이보게, 탁탑.”
“말씀하시오. 종리 선인.”
“다름이 아니라···.”
종리 선인은 도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설명하고, 검선을 데리고 올 것을 부탁했다.
“흥! 조금만 기다리시오. 내 검선을 끌고 오겠소. 감히 선계의 법도를 어지럽혀?”
탁탑신장도 선계로 내려갔다.
이번엔 오겠지.
종리 선인은 굳게 믿었다.
하지만 탁탑도 마찬가지.
‘왜 안 오지?’
검선은커녕 탁탑 또한 돌아올 기미가 없다.
‘허, 참나, 선계가 무슨 무저갱도 아니고.’
마침내 종리 선인을 자리를 떨치고 나섰다.
‘내가 직접 가봐야겠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 왜 안 오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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