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67화 (6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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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별번호 BEM – C04의 북진 >

선계(仙界).

막장 아침드라마가 벌써 30편이나 진행됐다.

천선 종리 선인도 자리 하나 맡아서 검선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도원 선도 강탈 사건 조사는?

그게 뭐지?

무슨 일이 있었나?

막장 드라마를 상영하면서부터 달라진 점 하나.

“이런 미친! 내 당장 저년을 쳐죽일 테다.”

“썅! 그냥 죽이는 건 자비를 베푸는 것이오. 지옥불에 지글지글 익혀야 하오.”

“내가 볼 때 저 회장 새끼가 가장 나빠.”

욕이 많이 늘었다.

물론 욕하면서도 보지만.

“아니, 저 죽었다가 살아난 여자, 그것까진 이해하겠는데 왜 아무도 못 알아봐?”

“얼굴을 보시오. 뺨에 점 찍은 거 안 보이오?”

“젠장! 이런 말도 안 되는 내용을 잘도···, 그래도 재미있군.”

“재미있으면 됐지. 뭘 더 바래?”

가끔 특별 상영으로 영화도 틀어줬다.

지구에서 30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들.

그것도 어찌나 재미가 있던지.

그런 이유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지구의 문물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아예 몰랐으면 모를까, 이미 알게 된 이상 지구 문물에 대한 갈망이 점점 커지는 건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이 되나?

직접 가지고 싶다.

직접 먹어보고 싶다.

직접 사용해 보고 싶다.

바로 그 순간!

독선 당군악의 머릿속에서 찌르르르, 신호가 느껴졌다.

“떴다!!!”

당군악의 우렁찬 외침.

드라마를 보던 선인들이 화들짝 놀라서 우르르 몰려왔다.

“떠, 떴소?”

“떴구나! 떴어!”

“진짜요? 허허, 잘됐군.”

“뭐요? 어서 꺼내 보시오.”

“허어, 궁금하도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팝콘은? 초콜릿은 몇 개나 왔소?”

“발렌타인과 돔페리뇽도 왔으면 좋겠군.”

드라마 상영은 즉시 중단됐다.

지금 저쪽에서 물건이 왔다는데, 드라마 볼 정신이 어디 있나?

당군악은 신선들의 성화에도 침착하게 행동했다.

먼저 공유창고에 든 물건들을 모조리 빼내어서 다른 구역으로 옮겨놓고.

‘이번에도 가득가득 보냈구나.’

그런데 어째 공유창고의 크기가 커진 것 같다.

아니 확실히 커졌다.

‘허허허, 크면 클수록 좋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야.’

당군악은 미리 준비한 단주(丹朱) 선인의 보패 부적 100장과 철장(鐵匠) 선인의 보패인 신령비도(神靈飛刀) 한 자루를 집어넣었다.

나머지 공간은 모두 선도로 꽉꽉!

그러고 난 후, 편지부터 꺼냈다.

“아!”

“으흠,”

“쩝.”

“아이고.”

“에이!”

신선들은 잔뜩 기대하고 있다가 당군악의 손에서 종이 한 장이 나오자 저마다 탄식했다.

당군악은 아랑곳하지 않고 빠르게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반짝임이 끝나기 전에 답장을 적어 보내야 한다.

빠른 피드백이 중요하다.

김태주가 직접 쓴 글씨.

선도는 잘 먹었다.

드라마나 영화가 괜찮으냐?

자극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어 고매한 신선들의 마음이 어지럽힐까 두렵다.

게임기도 준비했는데, 이번엔 보내지 않았다.

괜찮으면 언제라도 보내주겠다.

손목시계도 몇 개 더 보냈다.

전에 보낸 것보다는 덜 고급스럽고 싼 물건이지만 그래도 성능은 매우 좋은 편이다.

동료 신선들이 원하면 선물로 드려라.

당군악은 픽 웃었다.

고매한 신선은 무슨,

도원을 털어 선도를 도적질하고 드라마 보면서 욕설이나 내뱉는 자들인데.

선물? 택도 없다.

이제 다 읽었으니 답장을 써야지.

미리 준비한 종이와 붓, 먹물로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너무나 감사하다.

영화와 드라마도 신선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다.

게임기도 보내라. 아주 좋아할 것이다.

쓸만한 보패도 몇 개 보내니, 마음껏 사용해라.

모자라면 뭐든 요구하고.

그리고 고이 접어 공유창고로 넣었다.

잠시 후, 핏! 반짝반짝한 빛이 사라진 공유창고.

이제 물건을 확인할 차례.

신선들은 당군악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옹기종기 모여 쪼그려 앉아있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당군악을 바라보는 선인들.

과연 뭐가 나올까?

먼저 팝콘부터 보여주고.

“팝콘이다!!!”

“떴다!!!”

“카라멜 맛도 왔소?”

“치즈가 최고지!”

열광하는 선인들.

팝콘 다시 집어넣고 다음은,

“콜라구나!”

“어후, 톡 쏘는 맛.”

“내가 이거만 기다렸네.”

양주 몇 병도 꺼내 보여주자,

“맥켈란!!! 드디어 맛을 보는군.”

“···발렌타인은?”

초콜릿, 믹스커피, 과자와 버터구이 오징어, 스팸···, 공유창고가 커진 탓인지 다양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마다 선인들은 환호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와중에 검선과 선도 도적단들이,

“독선, 빨리 물건을 파시오, 선도는 얼마든지 주겠소, 그러니···,”

하지만 당군악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판매방식을 바꿀 거요.”

“무, 무슨?”

“추첨제로, 모두 번호표를 한 장씩 받고 당첨되면 그 선인에게 물건을 팔겠소.”

“···어.”

“선도가 많다고 물건을 독점하면 쓰나?”

당황한 표정의 검선과 선도 도적단들.

이러면 나가린데.

그러나 선도가 많지 않은 선인들은 당군악의 결정에 환호했다.

“역시 독선이야.”

“암! 성인군자지.”

“기회의 균등, 이것이 공정과 상식이로구나!”

“추첨할 때 은근슬쩍 술법 쓰는 자들, 조심하시오.”

“구라치다가 걸리면 손모가지 자르면 돼.”

“특히 눈보다 손이 빠른 검선을 눈여겨봅시다.”

“···시나리오 쓰고 있네.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쇼?”

그때 당군악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조용해진 신선들.

“추첨 없이 직접 파는 물건도 있소.”

당군악은 무한공간에서 잘 포장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저건 또 뭘까?

상자부터 고급지다.

뚜껑을 열자.

“아!”

“오!”

“세, 세상에.”

“···저, 저건? 꼭 사, 사야 해!!!”

상자 안에서 영롱하고 황홀한 자태를 뽐내며 나타난 물건.

“손목시계···.”

“아름답도다.”

“내가 찜했으니 건들지 마시오.”

손목시계 하나면 선계 인싸가 된다.

어떤 선인이든 자신을 우러러보게 될 터.

“선도 5,000개!!!”

검선이 최대로 질렀다.

하지만 당군악은,

“선도로 받지 않겠소. 일대일 교환, 손목시계 하나당, 보패 하나.”

“···보, 보패?”

“교환하고 싶은 사람은 보패를 들고 나한테 조용히 오시오. 심사 후에 결정하겠소.”

신선들이 난리가 났다.

저마다 자신의 보패를 꺼내 당군악의 눈앞에 흔들어댔다.

탁탑과 종리선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기 보시오! 여기!”

“자자, 천도 복숭아 가지로 만든 파사 방망이!!!”

“고농도 신선주요.”

“하늘을 나는 검, 어떠시오, 자동 이기어검술!”

“조요경이라고 들어봤소?”

사악한 미소의 당군악.

신선들의 보패와 지구의 손목시계.

그 값어치를 따지자면 일대일 교환은 말도 안 되는 사기 행각이지만, 뭐 어때? 자발적 사기 피해자들이 줄을 서는데.

‘시계는 보패로 바꾸어서 태주에게 다시 돌려줘야지.’

※ ※ ※

이제 뉴서울 일정의 마지막.

태주는 백두 그룹 정욱철 회장을 만나러 갔다.

백두 그룹도 바이오 제약 계열사가 있었다.

정욱철 회장이 몸소 나서서 야심차게 만든 ‘백두 바이오 사이언스.’

시설 투자도 엄청 많이 해서 제국 내 약품 공장 중 백두 바이오 사이언스만큼 대량의 물량을 뽑아내는 곳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 백두 그룹의 바이오 사업은 모종의 사건으로 폭망했다.

지금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백두 바이오 사이언스 연구소 소장과 10여 명의 연구원이 연구 중인 신약의 자료들을 모조리 가지고 자취를 감췄던 것.

연구 막바지에 다다른 신약들, 특허 심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신약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디 숨었는지 찾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백두 바이오 사이언스에서 연구했던 신약들이 줄줄이 미리내 제약의 신약으로 특허를 받아 시장에 나왔다.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

그래서 현재, 백두 바이오 사이언스는 신약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회사의 약품을 위탁생산(CMO)해주고 있을 뿐.

그마저도 일감이 없어 공장이 놀고 있다.

급기야 계열회사 매각설도 솔솔 흘러나오는 판국.

백두 그룹 정욱철 회장은 태주가 건네준 태홍 생기불끈 자양 강장 드링크제를 한 병 쭉 들이켰다.

특허는 받았지만 아직 판매 허가는 나지 않은 건강음료.

“어떠십니까?”

“맛은 좋군. 태홍 바이오의 이름값도 있고, 잘 팔리긴 하겠어. 하지만···,”

정욱철 회장은 아직 망설이고 있었다.

태주가 가져온 위탁생산(CMO) 계약서가 너무 터무니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량이 문제였다.

태홍 생기불끈과 새살쑥쑥의 생산 요구량.

백두 바이오 사이언스가 1년 내내 밤낮없이 공장을 돌려도 맞추지 못할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판매 허가는 둘째치고, 이만한 물량을 시중에 풀면 다 소화할 수나 있을까?

“뭐가 문젭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피로회복 드링크 시장은 미리내 제약과 후지 제약, 발해 바이오가 시장을 3등분하고 있네. 거의 포화상태야.”

“그렇긴 하죠.”

“어중간한 약효로는 파고 들어가기가 힘들어. 게다가 병당 5천 원이라니, 다른 드링크제의 2배 가격 아닌가?”

“재료를 좋은 걸 써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중간한 약효라뇨?”

씨익, 웃으며 말하는 태주.

“아직 느낌이 오지 않으세요?”

“···느낌이라니?”

“으음, 회장님은 아직 건강하신가 보네요. 풀어야 할 피로가 없을 정도로, 하긴 그것도 좋은 일이긴 합니다.”

“무슨 소리! 대기업 회장이라고 어디 놀고먹나? 쉴 시간이 없어서 뒷목도 뻐근하고 눈도 침침해서···, 응?”

반응이 왔다.

늘 저런 식이다.

벌떡!

“어어어···, 맙소사!”

자양 강장 드링크의 효과가 좋으면 얼마나 좋겠냐 하다가, 막상 체감하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약효의 효과에 감탄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진다.

“혹시···?”

“마약 성분은 티끌만큼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정욱철 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계약서에 서명부터 했다.

“물량 최대한 많이 주게.”

“반장급 직원들 우리 공장으로 파견 보내세요. 만드는 방법 가르쳐야 하니까.”

“당장 보내지. ···새살쑥쑥도 비슷한가?”

“기존에 팔리는 외상 치료제는 다 망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 말고도 준비하고 있는 신약은 또 있고?”

“당연하죠. 아직 많이 있습니다.”

“허허!”

정욱철 회장은 감탄했다.

삼한제국 제약 시장에 괴물이 출현했다.

세계 시장을 호령할 정도.

자양 강장 드링크제와 외상 연고제 팔 데가 제국밖에 없나?

해외 수출도 생각해야 한다.

“빨리 시장에 풀렸으면 좋겠군.”

“아무래도 절차가 있으니 조금 기다려야 할 겁니다. 그때까진 많이 만들어 놓고.”

“흐음, 자네가 만든 해독제처럼 군수물자로 지정되면 좋겠어. 그럼 절차가 매우 빨라질 텐데.”

“하하하, 그것도 판매 허가가 나야죠. 뭐,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모를까.”

“그렇긴 하지.”

계약 완료.

태주는 정욱철과 악수를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외 추가하실 부분은 뉴서울 지점 최동일 지점장님에게 말씀하시면 될 겁니다.”

“응? 자넨 어디 가나?”

“구례로 돌아가야죠.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서.”

“쯧쯧, 우리 손녀딸이 너무 만나고 싶어 하던데.”

“다음에 기회가 있겠죠. 어차피 판매가 시작되면 다시 뉴서울로 올라올 생각이라서.”

백두 그룹과의 위탁생산 계약을 끝으로 뉴서울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그리하여 태주와 백서연, 각성 장교 수행원들은 기차를 타고 구례시로 돌아갔다.

※ ※ ※

북경 거점 도시.

그 남쪽이 비욘드 엘리트들의 영역이 된 지 약 60년 정도.

하지만 마수 웨이브의 위험성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마수들끼리 영역 다툼은 항상 일어난다.

그로 인한 웨이브가 일어나기도 하고,

그러나 중국 땅은 워낙 넓다.

웨이브가 일어난다 해도 그 안에서 해결된다.

쓰나미처럼 파도가 되어 밀려오다가 북경 거점에 닿지도 못하고 중간에서 사라져버리는 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시는 항상 필요하다.

감시의 수단은 드론 또는 초고도 정찰 비행기.

인공위성 사용은 어렵다.

어떤 이유에선지 300년 전 마나의 침공으로 우주 궤도에 떠 있던 인공위성들이 추락하거나 서로 부딪혀 파괴됐다.

남아있는 건 소수의 통신용 위성과 미국이나 유럽 소유의 위성 몇 개뿐, 새로 쏘아 올리면 되지만 기술과 자본이 여의치 않아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었다.

북경 거점 정찰부대 감시 장교는 드론에서 보내는 영상을 판독 중이었다.

‘흐음, 마수들이 점점 많아지네.’

주요 감시 지역은 북경 밑에 세워진 천리장성부터 남쪽으로 약 30km 지점까지, 그 구간이 민간 레이드팀의 주요 사냥터였다.

‘웨이브라도 일어났나?’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저 밑에서 일어난 웨이브의 영향으로 일부 마수들이 이곳까지 밀려왔겠지.

‘···경고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감시 장교는 하루 더 지켜보기로 했다.

다음 날.

마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이 정도면 주의를 기울여야 할 수준.

감시 장교는 상부에 보고를 올렸고, 곧 민간 레이드팀에게 마수 주의보가 발령됐다.

마수가 늘어나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다.

그다음 날.

“씨발! 이게 무슨 일이야?”

천리장성 남쪽 약 30km 지점을 새까맣게 뒤덮은 일반 마수들, 허둥지둥 후퇴하는 민간 레이드 팀들의 모습도 화면에 잡혔다.

천리장성이 세워진 후로 이런 경우는 처음.

당연히 마수 경보가 떨어지고, 민간 레이드 팀의 사냥 금지가 내려졌다.

동시에 북경 주둔 전투 부대 6개 사단에 진돗개 둘 발령.

그리고 하루가 더 지났다.

“어? 이놈, 에, 엘리트 아냐?”

“맞네. 올라오고 있어.”

“웨이브가 여기까지?”

“좆 댔다.”

일반 마수에 이어 엘리트 마수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초고도 정찰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천리장성 주위로 전투부대들이 총집결했다.

시간이 흐른 후, 초고도 정찰 비행기에서 전해온 영상.

원인을 알았다.

북경에서 남쪽으로 약 500km 떨어진 지역.

천천히 올라오는 악어를 닮은 거대 마수 한 마리, 바로 비욘드 엘리트 마수였다.

“아아아아···,”

“미친!”

“왜 움직여?”

핵무기에도 끄떡없다는 그 비욘드 엘리트 마수가 북상 중이었다.

그 기세에 떠밀려 일반 및 엘리트 마수들이 올라오는 것이고.

모든 비욘드 엘리트 마수는 번호를 붙여 관리하고 있다.

북상하는 놈의 식별번호는 BEM – C04.

놈이 끝까지 올라올지, 아니면 중간에서 멈출지, 혹은 서쪽이나 동쪽으로 방향을 틀지, 아직은 모르지만 이동의 영향은 실시간으로 여기까지 적용되고 있었다.

놈이 만약 멈추지 않고 끝까지 올라온다면?

삼한제국 전체가 위험하다.

< 식별번호 BEM – C04의 북진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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