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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백 이백 삼백 >
태홍 바이오 구례 본사.
회의실에 태주를 비롯해 백홍표 원장, 백서연, 장순철, 백창훈, 5명이 모였다.
“수고했다. 태주야.”
“형님도 고생 많이 하셨죠?”
“하하하, 나야 우리 아이들하고 맨날 놀기만 했는데.”
말은 저렇게 하지만 백홍표가 고아원 운영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잘 안다.
“스, 스승님, 보고 싶었습니다.”
“흐흐, 몇 번이라도 뉴서울로 올라가려고 했어요.”
백창훈과 장순철도 정말 오랜만에 본다.
“그래, 너희도 그냥 논 건 아니네? 많이 늘었어.”
태주의 칭찬에 백창훈과 장순철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보기만 해도 느껴진다.
오행신공의 성취가.
그러자 백서연이,
“저기, 그런데 회장님이 데리고 오신 그 고양이···,”
“아! 이놈요?”
“한번 만져봐도 돼요? 너무 귀여워서.”
“마음껏 만져보세요.”
백서연이 머리를 쓰다듬자, 갸르릉 소리를 내며 앞발에 침을 바르는 고양이.
“냐아아앙.”
그러자 장순철도, 백홍표도 관심을 보였다.
백창훈은 빼고.
“허허허, 기특하네. 사람을 잘 따르는 것 같군.”
“마수는 아닌 것 같아요.”
“맞아, 마수가 아닌 고양이는 드문 편인데.”
“저도 만질게요. 오! 귀염 터진다.”
“난 고양이 싫음.”
사실 엘리트 삼두백호였다.
오전 동안 쭉 같이 있다가 회사로 데리고 왔다.
처음엔 그 엘리트 삼두백호의 새끼인 줄 알았다.
혹시 몰라서 ‘너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냐?’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쑥쑥 몸이 커지길래 급하게 중단시켰다.
그놈이 맞았다.
처음부터 이런 능력이 있었는지, 아니면 선도를 3개나 먹어서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작고 평범한 고양이로 변신할 줄이야.
“회장님이 키우시는 거예요?”
“뭐, 그렇게 됐습니다.”
“얘 이름이 뭐죠?”
“어디 보자. ···일백, 일백이네요.”
“일백이요? 으음, 뭔가 이름이···,”
지금은 일백이다.
태주는 미리 준비해온 가방을 회의실 테이블 위에 올렸다.
안에서 작은 술병 하나와 5개의 잔, 그리고 커다란 접시와 축구공 크기보다 조금 작은 복숭아도 한 개 꺼냈다.
“이거 술 아닌가? 대낮부터?”
“와! 복숭아네. 그런데 이거 왜 이렇게 커요?”
태주는 각자 앞에 술잔 하나씩 놓았다.
“뉴서울 진출 성공했는데, 축하 파티 정도는 해야죠.”
“에이, 태주야. 축하 잔치치고는 너무 소박하다.”
“스승님! 제가 멋진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캐슬 안에 기막힌 맛집 알아뒀거든요. 거기서···,”
쪼르르륵!
병에서 황금빛 액체가 흘러나온다.
그러자 회의실 안을 가득 채우는 환상적인 주향(酒香).
“···어?”
“어머?”
“와아!”
“으음.”
신선주.
단지에 담긴 술을 유리병에 덜어 담았다.
전체 양의 5분의 1 정도?
소박한 잔치라,
이 술 한잔을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1억, 아니 10억을 준다고 해도 절대 안 판다.
술을 따르고 난 후, 선도 복숭아도 유엽비도를 이용해 잘게 잘게 한입 크기로 잘랐다.
워낙 크기가 커서 한 개만으로도 접시에 수북하게 쌓였다.
“으아아아···,”
“세, 세상에! 무슨 복숭아 향기가.”
“술도 술이지만, 이 복숭아는 정말···,”
“이거 진짜 복숭아 맞아요?”
복숭아는 맞다.
신선이 먹는 선도(仙桃)라 그렇지.
“자, 한잔합시다. 건배!”
술잔에 코를 바짝 대고 향기를 느끼면서 쭉 마시는 사람들.
태주도 한잔하고.
조용했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말하면 향기가 날아갈라, 그저 눈을 지그시 감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냐앙?”
일백이가 태주의 무릎 위로 뛰어올랐다.
“넌 술 안 돼. 복숭아도, 육포나 먹어.”
“냥!”
이놈은 선도만 먹는 게 아니었다.
고양이가 먹는 음식도 곧잘 먹는다.
조금 많이 먹어서 탈이지만.
복숭아를 먹이로 인식하면 큰일.
시킨 일 잘했을 때나 상으로 주면 된다.
통으로 말고 조금씩 잘라서.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번쩍 뜬 백홍표.
“대, 대체 이 술은 뭔가?”
“누가 줬습니다.”
“누, 누가? 어음, 한잔 더 마셔도 되나?”
“당연하죠.”
척척척척!
태주의 앞으로 빈 술잔이 모인다.
또 한 잔씩 쪼르르르.
“기가 막히는군.”
“내가 지금까지 마셨던 술은 뭐지? 구정물인가?”
“몸이 따뜻해졌어요.”
참 희한하다.
신선들은 지구의 술에 환장하고, 여기 사람들을 신선주에 환장하고.
“복숭아도 한 조각씩 드세요. 안주 삼아서.”
복숭아라고 다를까?
“미쳤다, 미쳤어.”
“입에 들어오자마자 사라지는구나.”
“진짭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고 그냥 녹아요.”
“과즙이 뿜뿜 나와.”
다들 얼굴이 붉어졌다.
신선주도 술이니까.
“진짜 자넬 만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복이야.”
백홍표가 행복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백서연도 몽롱한 눈빛으로 태주에게 물었다.
“회장님. 이거 귀한 거겠죠?”
“네.”
“돈으로 못살 만큼?”
“억만금을 줘도 절대 못 사요.”
“그럴 줄 알았어요.”
사람들이 신선들이 먹는 술과 복숭아를 먹으면 어떤 영향을 받을까?
나중에 밝혀지겠지.
순간 백서연이 태주 무릎에 앉아있는 고양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음? 제가 취해서 그런가? 일백이 얼굴이 바뀐 것 같아요.”
“···기분 탓이겠죠.”
“그런가?”
역시 백서연의 눈썰미는 대단하다.
지금 이놈은 일백이가 아니라 이백이다.
현재 평범한 고양이로 변한 터라 머리가 하나로만 보인다.
하지만 얼굴이 수시로 바뀐다.
그것도 순식간에.
삼두백호의 머리는 3개.
그래서 일백, 이백, 삼백, 이름도 3개.
일백이었다가 어느새 이백이, 또 좀 있으면 삼백이.
몸체는 새하얗지만 얼굴에 희미하게 난 줄무늬와 몇몇 흉터 자국을 보면 구별이 가능하다.
이백이가 나왔으니 고양이용 육포 한 조각 물려주고.
“야옹!”
좀 있다가 삼백이도 나오면 하나 줘야지.
그때였다.
띠링! 띠링! 띠링···,
각자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연신 울리는 알림음.
“어? 재난 문자네.”
“지진이라도 났나?”
“뭐야?”
확인해보니.
<안전안내문자>
[삼한제국 국방부] 삼한제국 서북부 북경 거점도시에 마수 웨이브가 우려됩니다. 이 근방을 오가는 여행객이나 현지 주민은 즉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길 권고드립니다. 우리 군은 마수 웨이브 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북경?”
“거기도 웨이브가 일어나나?”
북경 거점.
태주도 얼마 전에 다녀온 곳이다.
그땐 웨이브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예감이 심상치 않다.
국방부에서 날아온 재난 문자라면 오진형 중장도 알지 않을까?
지이잉!
때마침 연락이 왔다.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오진형이 건 전화.
태주는 회의실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중장님.”
- 김회장, 재난 문자 봤지? 나 지금 애들 데리고 북경으로 가는 중이야. 안 그래도 얼굴이나 볼까 했는데, 그만 일이 터져서···, 미안해! 당분간 나 만나기 힘들 거야.
“···네.”
누가 들으면 되게 보고 싶어 하는 줄 알겠다.
“그런데 무슨 일이죠? 북경에 웨이브라니.”
- 극비 사항이지만 자넨 알 자격이 있으니까. 비욘드 엘리트 마수 흑악지룡이 북상 중이야. 그 여파로 천리장성에 웨이브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비욘드 엘리트 마수?”
- 놈이 북경까지 올라올지는 아직 몰라. 지금 급한 건 마수 웨이브 때문에 천리장성을 방어해야 해. 아마 자네에게도 국방부에서 협조 요청이 갈 걸세.
“협조 요청이라면···,”
이거 웨이브 방어에 참여해 달라는 건가?
솔직히 내키지 않는다.
뉴서울에서 급하게 내려온 이유가 뭐겠나?
금수호가 가지고 온 황제의 편지 때문이다.
황자들이 자신에게 접근할지도 모른다고 해서.
황위 계승 다툼에 휘말리기 싫다.
이런 상황에서 북경 마수 웨이브에 참여한다고?
공적을 쌓고 이름을 떨칠 기회지만, 이번에도 주목을 받으면 황자, 황녀들과 엮일 수도 있다.
- 딴 게 아니라, 현재 생산 중인 태홍 회복제 전량을 국방부에 판매해달라고, 알다시피 회복제는 레이드에 있어서 필수잖아. 괜찮겠나?
“아···”
다행이다.
와달라는 게 아니라서.
“당연히 협조해야죠.”
- 고맙네. 나도 바빠서 이만 끊어야겠어. 그럼 부탁하네.
비욘드 엘리트 마수라.
국가 재해급 마수다.
그냥 엘리트가 아니다.
중국을 멸망시킨 마수들.
그래도 두려움보다는 궁금증이 더 크다.
‘슬쩍 가서 구경이나 하고 올까?’
혼원무상독령공 8성에 신령비도와 부적이면, 설령 잡지 못하더라도 위험하진 않을 것이다.
‘일단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보고.’
그나저나 태홍 회복제 납품을 위해서 자이언트 반달곰 웅담이 더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리산엔 씨가 말랐고.
‘설악산 전초기지 쪽엔 꽤 있겠지?’
그쪽도 반달곰 서식지로 유명한 곳.
“니아옹!”
어느새 밖으로 나와 다리를 비벼대는 삼백이.
“너도 나하고 같이 갈래?”
“니앙?”
“그래, 같이 가자. 너도 선도 값은 해야지.”
태홍 회복제 한 알에 500만 원.
국방부라면 삼한제국에서 예산이 가장 많은 기관이니 즉시 현금 결제해주겠지.
1만 알만 납품해도 5백억이다.
다시 회의실로 들어가.
“즉시 태홍 회복제 판매 중단하세요. 전체 물량 모두 국방부로 들어갈 겁니다.”
※ ※ ※
오랜만에 구례로 귀향했는데, 오자마자 또 밖으로 나돌게 생겼다.
가기 전에 노고단 이정학 길드장이나 보고 가자.
태주는 캐슬 안으로 들어갔다.
다리가 이미 완공되어서 배를 타고 들어갈 필요도 없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잘 지내셨죠? 길드장님.”
“네, 덕분에.”
이정학도 뉴서울 소식을 들었다.
태홍 바이오 뉴서울 지점 공장 준공식에 오황자와 백두 그룹 회장을 비롯한 귀빈들이 참석했다는 기사.
이젠 자신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커버린 사람이다.
“아참! 얼마 전에 미리내 그룹에서 회장 비서라는 놈이 찾아왔더라고요.”
“···미리내 그룹이라, 직접 만나셨습니까?”
“아뇨, 민동열이하고 지광인에게 찾아와 거액을 제시했답니다. 태홍 바이오를 손보려 하는 데 도와달라고.”
“그래서 받았대요?”
“그럴 리가요. 지들 목숨줄을 누가 잡고 있는데.”
이기언, 그놈 별짓을 다 한다.
그 짓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태주는 이정학 길드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구례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표를 끊고 강원도 인제읍에 있는 설악산 전초 기지역으로 출발.
숄더백에 일백이, 아니 지금은 이백이를 넣어 어깨에 메고.
이백이가 가방 안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야옹!”
틈만 나면 먹을 걸 달란다.
하지만 무한공간에 고양이 먹이가 가득가득 들어있어 별다른 문제가 안 된다.
심지어 싸지도 않아서 감자 캘 일도 없고.
태주는 인제 전초기지역에 내려서 설악산으로 걸어 들어갔다.
설악산은 오지 중의 오지라 군부대 말고는 민간 레이드팀도 없다.
‘참 오랜만에 와 보네.’
저쪽엔 자신이 근무했던 전초기지도 있을 테지만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다.
가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스팟!
표홀질풍보로 설악산 깊숙한 곳에 들어가서.
“이백아.”
“냐앙?”
“···일백이구나.”
“냐아아앙!”
가방 안에서 걸어 나오는 일백이.
“내가 말이야. 자이언트 반달곰을 잡아야 하거든?”
“냐아···,”
“넌 명색이 삼두백호잖아. 그러니 몇 마리 잡아 와라.”
“냥!”
그때였다.
쑤우우욱!
몸을 키우기 시작하는 일백이.
“어어, 딱 거기까지.”
“캬릉!”
흔한 마수 정도 크기다.
자이언트 반달곰보다 살짝 큰.
이게 2단계 변신.
여기까지도 머리가 하나다.
하지만 본체가 되면 머리 3개가 떡하니 나타난다.
“잡아와!”
“캬앙!”
스팟!
백호가 된 일백이가 쏜살같이 설악산 깊은 지역으로 달려갔다.
‘잘 잡아 오려나?’
태주는 무한공간에서 의자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적당한 나무 밑에 앉아서 일백이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캬아···,”
백호 일백이가 나타났다.
“···어,”
자이언트 반달곰을 이빨로 물고 질질 끌면서 말이다.
“벌써?”
“캬웅!”
이런 기특한 놈을 봤나!
태주는 무한공간에서 두툼한 육포 하나를 꺼냈다.
휙! 던져주자, 덥석 받아먹는다.
“난 웅담 손질하고 있을 테니까 한 마리 더 잡아 와.”
스팟!
또 다시 숲속으로 사라지는 일백이.
웅담 손질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어흥!”
이번엔 이백이 얼굴로 나타났다.
역시 자이언트 반달곰 한 마리 물고.
“···.”
그리고 육포 하나 던져주니.
휘익!
낼름 먹고서,
스팟!
사라졌다가.
“크릉.”
삼백이로 나타났다.
돌아가면서 한 마리씩 잡아 온다.
“짜식들,”
코끝이 찡해온다.
이렇게 말을 잘 듣다니.
이게 반려동물 키우는 재미인가.
끝나면 선도나 먹여줄까?
통째로 말고 한 조각씩만.
※ ※ ※
선계(仙界).
월궁선자(月宮仙者)는 서왕모의 명을 받들어 도원의 천도를 보살피는 임무를 맡고 있다.
천도가 무사히 자라는 걸 확인한 후, 그녀는 선도가 자라고 있는 외곽지역으로 갔다.
4구역 별일 없고, 3구역도.
그런데 2구역에 들어서자.
‘음?’
이게 무슨 일인가?
나무에 빼곡하게 달려있어야 할 선도가 듬성듬성 열렸다.
‘선도 나무가 왜 이래?’
2구역뿐 아니라 1구역도 마찬가지.
‘영양이 부족해서 그런가.’
월궁선자는 가만히 앉아서 도원 땅을 손으로 짚었다.
스스스스스스···,
그녀의 손에서 무럭무럭 뿜어져 나오는 선기.
그러자 휑한 선도 나무에서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곧 탐스러운 선도들이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했다.
선계의 선기를 이용해 선도 나무를 키우는 능력, 서왕모께서 특별히 내려주신 선술이다.
도원 1구역과 2구역은 예전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갔다.
‘종리, 그놈은 어딜 갔어?’
도원을 지키는 신장들도 안 보인다.
이렇게 된 이유를 알아봐야 하는데···,
그때였다.
선계 저쪽에서 들리는 함성.
“떴다!!!”
“떴다!!!”
“떴다!!!”
“떴다!!!”
.
.
.
얼마나 우렁찬지 도원까지 들렸다.
‘대체 뭐가 떴다는 거야?’
종리 선인의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심지어 탁탑신장 음성도.
< 일백 이백 삼백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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