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욘드 엘리트 흑악지룡(1) >
이번 현역 제국군 총동원 명령엔 각 영지군도 포함됐다.
그래서 파주 영지 김웅방 준장도 자신의 두 아들과 함께 북경 거점도시로 출발하려는 중이었다.
“조심하세요. 여보. 우리 아들들 다치지 않게 지켜줘요.”
“걱정하지 마시오.”
“삼황자님 곁에도 꼭 붙어야 해요. 아이들이 그분의 눈에 들어야···,”
“됐소. 내가 알아서 하리다.”
남편과의 대화를 마친 후, 혼다 미쯔이는 김태평과 김태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희도 이번이 절호의 기회라는 걸 알지?”
“···네.”
“아, 알고 있어요.”
“반드시 실수를 만회하거라. 삼황자님 앞에서 공을 세우면 중앙 제국군으로 진출할 수도 있으니.”
지리산 토벌 작전 견학 후, 매사에 주눅이 든 두 아들, 결국 임관 희망지에서 다 탈락해서 파주 영지군으로 부임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웨이브 방어전이 아이들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줬으면 좋으련만.
혼다 미쯔이는 북경으로 떠나는 남편과 아이들을 배웅했다.
‘아버지도 규슈 영지에서 출발했겠지?’
아버지 혼다 카즈오는 삼황자의 후원 세력.
제국 내 일본계 유력 인사들은 하나같이 삼황자 편에 서 있다.
얼마 전까지도 삼황자는 이황자와 세력이 비등했다.
그러나 최근 오황자 세력에도 밀려 궁지에 몰린 상황.
이번 방어전을 계기로 쇄신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삼황자만 믿지 않았다.
그가 들어둔 보험이 얼마나 많은데.
파주 영지도 그의 보험 중 하나.
혼다 미쯔이는 주머니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그녀의 아버지가 사람을 시켜 전해준 독약을 아직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혼다 카즈오는 무서운 사람이다.
20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을 독살하라고?
자신의 사위를?
‘···절대 그럴 순 없어.’
혼다 미쯔이는 남편을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아이를 둘씩이나 낳지 않았겠지.
그러나 그녀는 독약병을 버리지 않았다.
그저 다시 주머니에 넣어둘 뿐.
※ ※ ※
식별번호 BEM – C04, 흑악지룡(黑惡地龍)의 뜬금없는 북상.
북경 거점도시 웨이브 경고 안내 문자가 제국 전역으로 돌았다.
국방부는 현역 전군 소집 명령을 내렸고, 언론에선 날마다 기사를 쏟아냈다.
<삼한제국이 위험하다. 국가 재해급 마수의 북상>
<비욘드 마수에 밀려 엄청난 숫자의 엘리트 마수도 함께 북상.>
<국방부, 전군 총동원령! 변방 개척 부대들 속속 귀환.>
<예비역 혹은 민간 각성자 동원 방안도 생각하고 있어.>
국가적 위기 상황이었지만 이걸 기회로 삼는 자들도 있었다.
<황태자 류진영 전하, 북경 웨이브 방어에 이 한 몸 바치겠다고 선언.>
<류진수 이황자님도 참전, 흑악지룡의 북상을 저지하겠다>
<다섯 분의 황자들 모두 참전, 일황녀, 이황녀, 삼황녀까지도>
<이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주, 고귀한 신분의 도덕적 의무>
황제의 자식들, 5남 3녀가 모두 참전 선언을 했다.
사실 숨겨진 속내가 있다.
이게 다 막내인 류진철 오황자 때문,
오황자는 지리산 마수 토벌 작전에 참여했지만 모종의 이유로 세간엔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형제들은 모두 비웃었다.
알려지지도 않을 작전에 뛰어들었다가 소득도 없이 돌아왔다고.
하지만 미처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인 황제가 류진철 오황자를 따로 불러 극진하게 칭찬했다.
무려 최고급 영약도 하사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결코 도망가지 않고, 제국군 병사들을 위해 끝까지 용감하게 잘 싸웠다면서.
그 일로 인해 평소 경쟁상대 축에도 들지 못한 오황자가 급부상하면서 황위 계승의 유력후보로 올라왔다.
그 와중에 흑악지룡 북상 사태가 터졌다.
당연히 황자, 황녀들은 줄줄이 참전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 커지자 각 황자들을 지원하는 후원 세력도 초비상이 걸렸다.
미리내 그룹은 이기언 회장이 직접 나서서 이황자 후원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상황, 물론 황가나 군부에서 따로 지원을 받겠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이황자를 따르는 군부 전투부대와 민간 각성자들만 해도 몇 명인데.
영약 지원은 기본, 각종 무기와 방어구, 치료제나 마나 회복제 같은 소모품들, 그리고 자금 지원도.
“이황자님께서 요청하신 군수 물자들 다 확보했지?”
“거의 다 준비됐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
이기언이 자신의 큰아들인 이병우 부회장에게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구, 구하기 어려운 것이 있어서.”
“빨리 말해! 지금이라도 백방으로 뛰어야지.”
“태, 태홍 회복제입니다. 지금 이황자님이 300알을 요구하고 계세요.”
“···이런!”
하필 태홍 회복제?
분통이 터져 미치겠다.
하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이황자가 잘 돼야 그룹이 산다.
원래는 황태자 쪽에 선을 대려 했지만 그쪽은 사람이 너무 많이 붙었다.
그래서 이황자쪽에 접근했고.
후회는 없다.
황태자와 비견될 정도로 막강한 이황자 세력.
또한 황태자는 약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것이 바로 다른 황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황위 계승에 달려드는 이유다.
이번 웨이브 방어전에서도 이황자가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
그럼 구해달라는 건 무조건 구해줘야지.
이황자가 황위에 오르면 김태주, 그놈부터 죽인다.
절대 곱게 죽이지 않는다.
고통이란 고통은 죄다 맛보게 해줄 것이다.
그때를 위해 지금은 어떤 치욕이든 참아주겠다.
“···현재 확보된 태홍 회복제 수량은?”
“120알 정도입니다.”
“후우,”
뉴서울에선 구하지 못하는 약.
그 약은 구례에서만 파는 물건이다.
“구례에 직접 사람을 보내. 거기서 사면 되잖아.”
“현지 판매가 중단된 상황이에요. 생산량 전부가 군부에 들어간답니다.”
“제기랄! 도대체가···,”
순간!
욱신!
쑤셔오는 가슴 통증.
요즘 밤낮없이 일하느라 무리했나 보다.
“···으흑, 바, 방법은 있어?”
“중고 거래 사이트인 오이 마켓을 통해 웃돈을 주고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물량이 달려서.”
“돈이 있어도 사, 사지 못한다고?”
미리내 그룹도 제약회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약도 아니고, 남의 회사 약을 사야 한다니, 심지어 물량도 없단다.
이게 김태주 때문이다.
모든 일에 다 연관이 되어 있다.
그놈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이기언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치솟는 혈압에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
“무, 무조건 사, 사들여! 두 배, 아니 세 배를 주어서라도···, 사, 사아···, 큭!”
급기야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이기언.
“크억!”
“아, 아버지! 아버지! 저, 정신 차리세요.”
아들 이병우가 화들짝 놀라 이기언을 부축했다.
“밖에 아무도 없나? 빨리 구급차 불러!!!”
구급차가 도착하고 응급실에 실려 가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한번 정신을 잃은 이기언은 깨어나지 못했다.
병명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인한 뇌손상.
즉 식물인간 상태.
각성자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는 건 매우 드문 경우지만 어쩔 수 있나?
진단 결과가 그렇다는데.
※ ※ ※
태주는 3일 동안 일백이, 이백이, 삼백이와 함께 설악산과 치악산, 오대산 등지를 돌아다니며 자이언트 반달곰을 사냥했다.
이러다 삼한제국 남부 지역의 자이언트 반달곰 마수가 씨가 마르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로.
하지만 걱정 없다.
웅담이 자이언트 반달곰에만 있나?
삼한제국 북부 시베리아 접경지역에 서식하는 골리앗 그리즐리도 곰 종류 마수, 그 위쪽에 푸른 눈 폴라베어도 그렇고.
걔들도 웅담도 있겠지.
약효가 쓸만한지 나중에 잡아서 시험해 보면 되고.
자이언트 반달곰 웅담 하나로 만들 수 있는 회복제는 약 4000개.
거기에 일반 마나 결정체, 변종 마황, 마나초 등등이 들어간다.
태주가 이번에 수집한 웅담만 120여 개, 현재 태홍 바이오 약재 창고에 보관된 웅담이 약 60개 정도니까, 모두 합쳐 약 180개.
산술적으로 태홍 회복제 72만 알을 생산할 수 있다.
정작 군에서 요구한 물량은 겨우 2만 알.
재료도 충분하고, 만드는 이도 태주, 백창훈, 장순철, 3명이나 되고.
하루면 다 끝난다.
그러나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르니 최소 30만 알 정도는 만들어 두는 게 좋겠다.
그래서 태주는 제자들과 함께 약품 제조실에서 회복제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 능숙해졌네? 열양공도 그렇고, 한음공에 침투경까지.”
“흐흐, 감사합니다. 저도 실력이 팍팍 느는 게 몸으로 느껴집니다. 이러다 마스터 되겠어요.”
“에이, 마스터는 무슨! 기대도 안 해, 우리가 어떻게···,”
태주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너흰 1년 안에 마스터가 될 거야. 오행신공만 잘 익혀도 문제없어.”
현재 둘은 모두 미들 익스퍼트 등급.
영약 하나씩 먹이면 슈페리어, 마스터가 뭐가 어려워?
그러나.
“그래도 마스터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 겨우 시작일 뿐이야. 마스터끼리도 천차만별인 거 알지?”
“네!”
회복제 제조는 순조로웠다.
워낙 많이 만들어서 숙련도 됐고,
군에 납품할 물량은 이미 만들어 1차 분량을 넘겼으니 쉬엄쉬엄 만들어도 된다.
가끔 제조실 TV로 뉴스도 시청하면서.
- 오늘의 천리장성 상황은 어떻게 됩니까?
- 현재 천리장성 남쪽 20km 지점까지 대규모 마수 무리가 진출하고 있습니다. 집중 포격으로 숫자를 줄이고 있지만, 곧 포격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 포격을 중단하다니요? 이유가 뭡니까?
- 일반 마수들 뒤를 따라 북상하는 엘리트 마수들 때문입니다. 어정쩡한 포격으론 놈들을 절대 죽일 수 없고, 자칫하다간 진화의 빌미를 줄지도 모릅니다.
- 진화라면?
- 지구 과학 무기에 점점 적응하는 거죠. 놈들에게 예방주사를 맞히는 꼴이 되는 겁니다.
- 그럼 적합자 각성자가 직접 투입되겠네요. 인명피해가 우려됩니다만.
- 그래도 예상보다는 피해가 훨씬 줄어들 걸로 생각합니다.
- 왜···?
- 바로 태홍 바이오 제약에서 만든 태홍 회복제라는 기적의 신약 덕분이죠.
“오! 우리 약 나왔다.”
“흐흐흐, 열심히 보람이 있네.”
우쭐한 표정의 백창훈과 장순철.
뉴스에 직접 자신들이 만든 약이 언급되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 아무튼 이런 상황을 만들게 한 원흉인 비욘드 엘리트 흑악지룡에 관해 이야기해 보지 않을 수 없는데요. 놈은 어떤 마수입니까?
- 아시다시피 핵공격에도 살아남아 중국을 망하게 한 마수 중의 한 놈입니다. 몸길이 약 100m, 체고 약 20m, 형상은 악어처럼 생겨서 마나 블레이드도 막아내는 철갑 가죽을 가지고 있고요.
- 놈의 주요 공격수단은요?
- 전반적인 스피드는 느립니다만, 역시 가장 무서운 건 놈의 혀죠.
- 아! 혀.
- 긴 혀를 가지고 있어 공격 범위도 넓고, 공격 속도도 매우 빠릅니다. 또 혀와 함께 나오는 침에는 강력한 부식독이 섞여있습니다. 그것에 닿으면 사람이든, 자동차든, 탱크든, 콘크리트 건물이든, 심지어 엘리트 장비도 녹여버리는 극악한 독 때문에···,
움찔!
TV 뉴스를 듣던 태주의 몸이 잠시 멈칫했다.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옆에서 배를 드러내고 정신없이 자고 있는 삼백이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선 태주.
“어? 스승님, 들어가서 쉬시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저희가 알아서 다 만들게요.”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무래도 재료가 부족할 것 같다. 웅담을 더 구해와야겠어. 이번엔 시간이 걸릴 거야. 일주일 정도 걸릴 수 있으니까, 나 없더라도 열심히 만들고 있어.”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부님.”
그리고 백서연과 백홍표에게도 재료 수급 때문에 자리를 비울 거라고 전화로 연락했다.
‘흑악지룡, 긴 혀에서 나오는 강력한 부식독이라···,’
생각만 해도 몸이 달아오른다.
※ ※ ※
선계에서 추첨으로 뭔가를 한다는 건 매우 애로사항이 많다.
선인들이 어디 보통 놈들인가?
온갖 잡술을 동원해서 자신이 원하는 상품만 척척 골라갈 텐데.
그래서 공정한 추첨을 위해 독선 당군악은 심혈을 기울였다.
일명 로또식 구슬 뽑기.
철장 선인에게 부탁해서 두꺼운 철판으로 만든 원형 통을 준비하고 귀곡 선인과 갈홍 선인에게 부탁해 갖가지 술법진을 새겼다.
외부의 힘이 절대 작용할 수 없게끔.
그리고 번호와 물건의 이름이 적힌 구슬을 철통 안에 넣었다.
구슬의 크기와 무게는 똑같다.
역시 작게 술법진을 새겨 번호와 글씨가 잘 보이지 않게 만들고.
왜 이렇게 번거롭게 만들었을까?
신선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도 모자란다고 도원을 털어버리는 놈들을 어떻게 믿어?
당군악이 철통 옆에 달린 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
그러자 안에서 구슬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구슬 뽑기 통 앞에 다소곳이 모여앉은 선인들.
손에는 저마다 번호가 적힌 물품 교환 우선권을 들고 있었다.
교환권이 아닌 우선권.
선도를 가지고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권리.
긴장감이 흐른다.
꿀꺽.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
입을 여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데구르르르.
드디어 철통에서 구슬이 통로를 통해 굴러 나온다.
선인들이 교환 우선권을 꼭 쥐었다.
그들의 손바닥엔 땀이 흥건했다.
마침내 완전하게 빠져나온 구슬을 손에 쥔 당군악.
구슬을 앞으로 내밀자 숨겨져 있던 번호와 글씨가 드러났다.
“24번, 상품은 최고급 고디바 초콜릿 세트! 선도 5개로 교환 가능하오.”
번호가 불리자마자.
“떴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나오는 허령 선인.
“하아!”
“후우,”
“다행이다.”
“제기랄!”
누군가는 탄식을, 누군가는 안도를,
검선은 안도 쪽이었다.
검선이 노리는 건 단 하나.
바로 손목시계.
당첨되면 자신이 가진 보패와 교환이 가능하다.
어디 검선뿐인가?
수많은 선인들이 자신의 번호가 불리길 기대하며 초조하게 앉아있었다.
그러다 번호가 불리면,
“떴다!”
.
.
.
한마디로 축제였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선인들이 노는 모습을 훔쳐보고 있는 월궁선자.
‘저 망할 놈들이 대체 뭘 하고 노는 거지?’
< 비욘드 엘리트 흑악지룡(1) > 끝
ⓒ 꾸찌꾸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