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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욘드 엘리트 흑악지룡(2) >
퍼펑! 펑펑펑펑!
제국의 자주포 부대가 천리장성 남쪽을 향해 포탄을 뿌려대고 있었다.
융단 포격으로 촘촘하게.
일반 마수들은 지리멸렬 도망가기에 바빴다.
하지만 포격은 전투 부대 레이드팀이 전열을 가다듬는 시간을 벌기 위한 임시 방책, 또한 엘리트 마수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포격은 중단될 것이다.
실질적인 전투는 육군에 소속된 적합자와 각성자들이 한다.
그들만이 엘리트 마수를 확실하게 사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전투 요원들인 일반병사들도 정신없이 바빴다.
임시 숙영지 건설, 레이드팀을 위한 취사와 배식, 보급품 정리와 분배···, 자잘한 일들이 매우 많다.
게다가 동원된 일반 병사들의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았다.
북경 거점 도시는 천리장성 하나를 두고 마수와 대치하고 있는 위험지역이기 때문에 일반 병사들의 숫자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노련한 상병급 이상의 병사들만, 그래서 소수의 숫자로 열 일을 해야 하는 상황.
그들의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각성자나 적합자들도 전투 준비로 힘든 판에 일반인들은 오죽할까?
북경 천리장성 방어 본부에서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전투 병력만큼이나 중요한 비전투 병력들.
이들이 있기에 원활한 마수 레이드가 가능하다.
가장 힘든 비전투 주특기를 꼽아보라면 역시 보급 부대 군인들.
하루에도 몇 번씩 기차로 들어오는 보급품을 내리고, 수량이 맞는지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분배하고.
서형식 육본 주임원사는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보급 부대 본부에 방문했다.
일반인이지만 탁월한 업무 능력으로 육본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이번에도 보급 전반에 관한 지휘 임무를 맡았다.
“멸마!”
“멸마! ”
서형식 원사가 나타나자 경례를 붙이며 일어나는 비전투 보직 부사관들.
“뭐야? 쌩쌩하네? 안 피곤해?”
“괜찮습니다! 할만합니다.”
“흐음, 내가 간식과 드링크제를 준비했으니까 이거 먹고 해.”
“···아아,”
“내가 마셔본 거 중에서 가장 좋은 걸로 준비해왔어.”
“어음, 가, 감사합니다.”
어째 심드렁한 표정.
육본 주임원사 서형식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놈들, 너무 멀쩡한데.’
보급 부대 부사관들이 매일 식사도 거르고, 야근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왔는데, 피곤한 표정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도 그렇다.
피로에 지쳐 입술도 부르텄다.
그러던 중에,
‘음?’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병들.
‘드링크제인가.’
하지만 처음 보는 제품.
서형식은 자양 강장 드링크 전문가나 다름없었다.
업무가 업무이니만큼 거의 모든 드링크를 다 먹어봤다.
빈 병을 들어서 이름을 확인해보니.
‘···태홍 생기불끈?’
태홍이라면 기적의 신약, 태홍 회복제를 만든 그 회사인가?
“이거 어디서 났어?”
그러자 슬그머니 손을 들고 말하는 부사관 하나.
“제 형님이 백두 바이오 사이언스 약품 공장에서 근무하는데, 거기서 몇 상자 얻어왔습니다.”
“백두? 이건 태홍 바이오 제품이잖아.”
“위탁생산하고 있는 물건이라고 들었습니다. 효과가 매우 좋다고.”
“그래? 나도 한 병 줘봐. 효과가 좋으면 구매신청 하게.”
“···그, 그게 저어, 아, 아직 식약청 판매 허가가 나지 않았습니다.”
서형식 원사의 눈이 매서워졌다.
“뭐? 이 새끼들이!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은 드링크제를 먹었단 말이야?”
“하, 하지만 형님이 식약청 사람들도 하루에 한 병씩 먹는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그래도 그렇지!”
그렇지만 호기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무려 태홍 바이오 제품 아닌가.
“···진짜 효과가 좋아?”
“끝내줍니다. 피로가 싹 날아갈 정도로.”
“그럼 나도 마셔보자. 하나 줘봐.”
“네. 여기···,”
서형식도 한 병 꿀꺽 마셨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양팔에 태홍 생기불끈 드링크 상자를 하나씩 끼고 웨이브 방어 총본부로 달려갔다.
가자마자 김송열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부 장성 앞에서.
“이 드링크제는 하루 빨리 시판되어야 합니다. 군수물자로 지정해서 우리가 우선 공급받아야 해요.”
강력하게 주장했다.
때아닌 호들갑에 장성들은 당황했지만, 일단 서형식이 건네준 드링크제를 한 병씩 마셨다.
그리고 당연히 그 효과를 생생하게 체감했다.
이거 쓸만하다.
각성자, 적합자, 일반인 모두에게 효과가 있다.
전력상승에 큰 도움이 될 터.
김송열 합참의장은 식약청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청장님, 태홍 바이오에서 판매 허가를 낸 드링크제 말입니다. 그래요, 생기불끈, 지금 검사 통과 일정이 얼마나 남았···, 아! 절차상 최소 두 달은 걸릴 거라고요?”
두 달이라,
너무 길다.
“청장님이 보시기에 그 드링크제 어떻습니까? 지금 시판해도 문제가 없는지? ···인체실험도 마무리 단계라고요? 부작용도 없고?”
그뿐만이 아니다.
태홍 바이오가 허가 신청을 한 다른 약이 하나 더 있단다.
“새살쑥쑥 외상 치료제라, 효과는요? ···그래요?”
전화하는 도중에, 김송열 합참의장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태홍 바이오 제약.
해독제는 물론 마나 회복과 내상 치료까지 한 번에 해결하는 기적의 신약, 태홍 회복제를 발명한 회사였다.
그 회사가 만든 피로 해소 드링크제, 어떤 외상이라도 즉시 지혈하고 아물게 하는 치료제, 이름값 톡톡히 하는 약일 것이다.
“청장님, 지금 당장 판매 허가 서둘러주십시오. 아!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황제 폐하께 윤허를 받겠습니다.”
김송열 합참의장은 즉시 황궁 비서실에 전화를 걸었다.
금수호 비서관과는 매우 친한 사이, 사석에선 선배님으로 모신다.
식약청 약품 판매 조기 허가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웨이브 방어에 필요하다고 간절하게 부탁하면 들어줄지도 모른다.
“선배님, 부탁드립니다. 약의 효과가 너무 좋습니다. 식약청에서도 부작용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고요.”
- 무슨 약인가? 판매 허가 심사 중인 신약이 얼마나 많은데.
“아! 제가 그걸 말씀 안 드렸네요. 깜빡했습니다. 태홍 바이오에서 만든 생기불끈과 새살쑥쑥입니다.”
- ···쩝, 그럴 줄 알았어. 판매 허가가 떨어지도록 폐하께 건의해보지.
김송열 합참의장은 살짝 놀랐다.
무리한 부탁이라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쉽게 허락을 받았다.
- 자네는 주문이나 넣어둬. 오늘 안에 해결될 거야.
이렇게 빨리?
그리하여 태홍 생기불끈과 새살쑥쑥은 하루 만에 시판 허가가 떨어졌다.
※ ※ ※
북경까지 가려면 역시 기차를 타야 한다.
하지만 북경행 직통 열차는 웨이브 때문에 막혔다.
북경과 가장 가까운 도시는 승덕시.
거기까진 기차가 간다.
태주는 간단한 트레이닝복에, 일백이가 들어있는 백팩 가방을 등에 메고 승덕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일백이는 두고 가려고 했지만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데리고 갈 수밖에.
“냐앙?”
“쉿! 가방에서 절대 나오지 마.”
“냥.”
구례에서 출발할 때부터 역용술과 축골공으로 얼굴과 키를 바꿨다. 휴대폰도 무한공간에 집어넣었다.
일정이 빠듯하다.
빨리 흑악지룡을 만나서 독을 채취하고 돌아와야 한다.
10시간 정도 걸려서 태주는 승덕역에 도착했다.
내리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가 북경 거점 도시로 가는 군수 보급 열차로 몰래 갈아탔다.
BEM – C04 흑악지룡(黑惡地龍).
놈에 대해 미리 알아봤다.
중국이 망할 당시 기록이 남아 있었다.
주로 생존자들의 증언.
이놈 혼자서 중국 인민해방군 5개 사단을 전멸시켰다.
지구의 화약 무기는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채찍 같은 긴 혀가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각성자들 수십 명이 우수수 썰려 나갔다.
부식독이 얼마나 강한지 탱크든, 장갑차든, 그냥 녹여버렸다.
놈이 대도시를 습격해 건물을 부수고, 사람 하나 살지 않은 폐허로 만든 시간은 불과 한 달 남짓, 그리고 다음 도시로 이동하고.
‘섬찟하네.’
마스터의 마나 블레이드도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태주도 솔직히 자신 없다.
이걸 어떻게 잡아?
그러나 잡으러 가는 게 아니다.
부식독만 채취하고 빠르게 빠져나온다.
먼저 투명부(透明符)를 이용해 경계가 삼엄한 천리장성 방벽을 넘는다.
지속 시간이 1시간이니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다음은 추적부(追跡符).
흑악지룡의 위치를 탐지한다.
놈에게 접근한 후, 구속부(拘束符)로 이동을 멈추고, 벽마부(僻魔符)를 이용해 놈의 힘을 약화시킨다.
놈이 공격해오면?
호신부(護身籍)가 있다.
몸에 붙이면 치명적인 공격을 막아주는 동시에 30초간의 절대 보호 상태에 들게 해주는 부적.
독을 채취할 시간은 충분하다.
끝나고 나서 신속부(迅速符)로 속도를 높여 냅다 도망치면 끝.
아아.
독선 당군악은 얼마나 현명한 사람인가.
아무리 다른 세상의 자신이지만 존경심이 무럭무럭 솟아오른다.
그가 보내준 부적이 없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비욘드 엘리트 마수의 부식독.
그 독으로 독정은 또 얼마나 성장할까?
혼원무상독령공 9성이 눈앞에 보인다.
이윽고 북경 거점 도시 역에 도착한 보급 열차.
태주는 바로 투명부(透明符)를 몸에 붙였다.
스르륵!
눈 깜짝할 새 사라지는 태주.
처음 사용해보는 부적이지만 효과가 기가 막혔다.
태주는 빠르게 도시를 가로질러 천리장성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퍼펑! 펑펑펑펑!
콰쾅! 콰콰콰쾅!
아직도 계속되는 포격.
하늘에서 날아오는 포탄이야 감각으로 피하면 되는 것이고.
태주는 추적부(追跡符)를 꺼냈다.
흑악지룡의 모습을 떠올리자.
화르륵!
추적부가 불타오르면서 하늘로 멀리멀리 날아간다.
그리고 동시에 어디로, 얼마만큼 가야 할지 머릿속에서 정해졌다.
‘···으음, 좀 머네.’
신속부 한 장 붙이고, 그리고 표홀질풍보.
쐐액!
태주의 몸이 잔상을 남기면서 남쪽으로 쏘아졌다.
“니아아?”
백팩 안에서 일백이, 아니 삼백이가 갑작스러운 빠르기에 깜짝 놀란 듯, 머리를 내밀었다.
“가만히 들어가 있어. 나오면 위험해.”
“니앙!”
쐐애애액!
넓은 평야에 가득 찬 마수들.
드문드문 보이는 엘리트 마수.
뭔가에 겁을 먹은 듯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스슷!
이윽고 투명부와 신속부의 효과가 사라졌다.
태주의 몸이 나타나자 마수들이 달려들었다.
그 정도야 가볍게 피해 주면서.
한참을 달렸다.
거의 8시간 넘게.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중간에 신속부 한장 더 붙이고.
‘이거 돌아가는 게 힘들겠구나.’
그 많던 마수 무리가 점점 사라진다.
좀 더 가니 아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다 온 것 같은데···.’
그때였다.
쿵쿵쿵쿵!
굉음과 함께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거리는 땅.
‘저놈이네.’
새까만 흑색의 몸체.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마수보다 더 거대한 놈.
비욘드 엘리트 마수 흑악지룡이었다.
이제 남은 건 부식독 채취.
빨리 처리하고 구례로 돌아가자.
※ ※ ※
선계.
하늘이 도운 것일까?
승리자는 결국 검선(劍仙)이었다.
“어이쿠, 생각보다 무겁군.”
왼쪽 손목에 번쩍번쩍 빛나는 시계를 착용한 검선, 긴 소매를 어깨까지 걷은 채 선계를 활보하고 다녔다.
“이보오, 주선(酒仙), 지금 몇 시인지 궁금하지 않소?”
“···선계에서 시간 따위를 알아서 뭐 하게.”
“네시 반이오. 하하하!”
“···.”
“째깍째깍, 소리도 좋구나!”
“저리 좀 꺼지시지?”
주선 태백 선인은 이번 추첨에서 완전히 망했다.
술은커녕 팝콘이나 초콜릿, 흔한 커피믹스 하나 얻지 못했다.
그래서 자랑질이나 하고 다니는 검선이 아니꼬울 수밖에.
“에이, 다음 기회가 있겠지. 그러지 말고 선도 100개 줄 테니, 신선주나 꺼내 보시오. 같이 술이나 한잔하면서 기분이나 풀어봅시다.”
“도원 도둑 주제에, 훔친 선도로 내 술을 사가시겠다?”
“훔쳤다니! 잠시 빌려왔을 뿐이오.”
“그래서 갚을 생각이나 있고?”
“뭐, 때 되면···, 그리고 어차피 종리나 탁탑 모두 나하고 공범인데,”
음흉하게 웃는 검선을 바라보면서 주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태상노군은 뭐 하나 몰라, 이런 놈 안 잡아가고.
독선 당군악 또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하필이면 검선이 보패 교환권 당첨자였다.
그자가 손목시계와 바꿔 간 보패.
바로 만리비검(萬里飛劍).
한번 비행을 시작하면 일만 리, 약 4000km를 간다는 비행검이다.
비행의 용도로 사용되지만 검 자체의 성능도 매우 뛰어나다.
보검 중의 보검, 명검 중의 명검.
하지만 태주에겐 별 쓸모가 없다.
당군악도 마찬가지.
검 따위 어디다 쓰나?
애초부터 검술은 익히지도 않았다.
암기술은 비겁하다면서 검이야말로 만병지왕이라고 으스대고 다니는 새끼들을 가장 혐오해왔던 사람이 바로 자신.
그리고 태주도 자신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쯧, 이거 보내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
그때였다.
찌르르르.
머릿속에서 울리는 느낌.
‘오!’
공유창고가 열렸다.
당군악은 서둘러 물건을 옮겼다.
뭐가 굉장히 많다.
가면 갈수록 커지는 공유창고.
그리고 그 빈자리를 선도로 꽉꽉 채웠다.
한 100개 정도 거뜬히 들어갔다.
선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복숭아를 먹어 선기가 늘어나면 태주의 무한창고 크기도 점점 커지겠지.
그다음으로 보낼 물건은···,
‘이거밖에 없구나.’
당군악은 어쩔 수 없이 만리비검을 공유창고 안에 넣었다.
태주에게 많이 미안하다.
절대독마에겐 그다지 필요 없는 검 쪼가리나 보내서 말이다.
‘뭐, 알아서 잘 쓰겠지.’
최소한 이동은 편해질 것이다.
지구의 비행기만큼이나 빠른 만리비검이니까.
한편 아직 돌아가지 않고 저 멀리서 천리지청술법과 천리안으로 선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훔쳐보던 월궁 선자.
당연히 검선과 주선이 나누는 대화도 들었다.
도원 도둑?
‘검선, 이 새끼가···,’
드디어 알아냈다.
도원 1구역, 2구역의 선도가 사라졌던 이유를.
< 비욘드 엘리트 흑악지룡(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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