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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75화 (7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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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세상 물건 들인 게 죄는 아니잖아! >

선계에도 법이 있다.

인간계보단 느슨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기면 벌을 받게 된다.

신선들이 보통 유별난가?

특히 선계 고인물들은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는 자들이다.

선계는 일종의 유배지.

우화등선이란 깨달은 자들이 얻은 축복이 아니라, 초월성을 획득한 자들을 인간계와 분리하는 것이다.

인간은 가능성이 무한한 존재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어떤 방향으로든 뻗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다.

그것이 일종의 통제 역할로써 작용한다.

수백만 명을 죽인 전쟁광이든, 연쇄살인마든,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교주든, 자신의 욕심을 위해 백성을 착취하는 폭군이든, 언젠가는 결국 다 죽는다.

그리하여 혼란한 세상은 다시 평화로워진다.

수명의 유한함은 일종의 자정 기능.

그런데 불멸성을 획득한 인간이 있다면?

지금은 아니더라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죽지 않는 인간.

그들의 성향이 어찌 되었든 무조건 인간 사회에서 분리해야 한다.

선계가 바로 그런 곳이다.

인간계에서 분리된 초월자들이 모인 세상.

그런 이유로 선인들은 죄수나 다름없다.

자신들도 그걸 잘 알고 있고.

천선계에선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선인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특별한 죄를 짓지 않는 이상 선계에서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으며, 가끔 인간계로 유람을 보내주기도 한다.

그런데 선계의 근간을 뒤흔들만한 중죄를 지었다면?

당연히 법도에 의해 벌을 받는다.

그렇다면 신선들이 받는 벌은 뭘까?

불멸성을 획득한지라 죽여도 죽지 않는다.

그럼 선계에서의 추방?

누구 좋으라고!

추방되면 신선들이 더 좋아한다.

신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벌은 바로 ‘봉인’이다.

법구에 의해 힘을 억제당한 채 거대한 바위산 밑에 깔려 수천수만 년을 보내야 한다거나, 조롱박 감옥에 들어가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거나.

신선들에겐 더없이 끔찍한 벌.

독선 당군악은 선계의 뇌옥에 수감 됐다.

곧 봉인될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

극장에 있던 게임기, 태블릿, 4k 빔프로젝터, 발전기, 싹 다 몰수당했다.

곧 있으면 판관의 저울추에 의해 재판을 받을 터.

이미 1차 심문은 거쳤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대한 사실 확인.

선인들은 봉인이라는 벌을 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항변했다.

“독선이 영상물을 보려면 선도를 내놔야 한다니, 어쩌겠소이까! 달라면 줘야지요. 그래서 훔쳤소.”

“난 죄가 없소. 수요자가 문제겠소? 공급자가 문제지.”

“독선이 그 물건들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난 도원을 털지 않았을 것이오.”

“생각해보시오. 독선이 등선하기 전엔 우린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소. 하지만 그가 선계에 나타나고서부터는···,”

“우린 중독된 거요. 군악 선인의 선명(仙名)이 달리 독선(毒仙)일까?”

독선 때문에, 독선이 우릴 홀려서, 독선이 아니었다면.

죄다 당군악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빌어먹을 배신자 새끼들.

아무리 봉인의 벌이 무섭다 해도 이건 아니지.

물론 당군악의 편을 들어준 선인들도 많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검선(劍仙).

“야이, 개새끼들아! 날 선계라는 좆 같은 감옥 안에 가둬놓고 나 몰라라 했던 놈들이 인제 와서 우리보고 질서를 어지럽혔다고?”

판관의 족쇄를 손과 발에 차고도 길길이 날뛰는 검선.

“다 내가 한 짓이다, 쌍놈들아! 독선은 우리에게 유희의 즐거움을 선사한 선인이야. 너 같은 새끼들보다 천만 배는 더 훌륭한 신선이다! 그러니 독선은 건들지 마!”

주선(酒仙) 태백 선인 또한.

“망한 놈의 천선계, 내가 만든 술이 맛있다고 넙죽넙죽 사갈 때는 언제고, 독선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두 번 다시는 네놈들에게 술을 팔지 않겠다. 아니 만들지도 않겠다. 어디 가두려면 가둬봐!”

귀곡 선인도.

“독선이 결계를 치게 시켰냐고? 갓 등선한 선인이 무슨 죄가 있겠나. 내가 스스로 행한 일이야.”

그 밖에도 많은 선인이 당군악을 비호했다.

배신자들보다는 적었지만.

이제 남은 절차는 최종 판결.

당군악은 손과 발에 판관의 족쇄를 차고 재판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판관의 족쇄는 일종의 선술 제어 도구다.

이걸 차고 있으면 능력이 봉쇄된다.

무한공간도 열 수가 없다.

당연히 공유창고도.

삼엄한 재판장 안.

양쪽으로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천계의 신장들이 도열해 있었고, 중앙엔 태상노군과 서왕모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증거품을 가지고 와라!”

신장들이 극장과 신선들에게 압류한 지구의 물건들을 가지고 재판정 앞에 놓았다.

태상노군이 싸늘한 눈빛으로 당군악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독선! 최종 변론의 기회를 주겠다. 이 요사스러운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선계를 어지럽힌 이유가 뭔가?”

그러자 비웃는듯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당군악.

“선계가 어지럽혀졌다고? 내가 보기엔 깔끔하기만 한데.”

“도원을 침입해 선도를 훔쳐 간 행위가 정당하단 말이더냐?”

이 새끼가···, 만만해 보이냐?

등선했다고 해도 절대독마의 본성은 어디 가지 않는다.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말이다.

“내가 했소?”

“···뭐?”

“내가 선도를 훔쳤냔 말이오?”

“가, 감히! 이 모든 게 네놈으로부터 빚어진 일이다. 네가 선도를 요구하지 않았느냐! 선도와 보패를 다른 세상으로 유출한 것도 네놈이다!”

“그럼 그 귀한 물건과 영상들을 공짜로 보여주라고? 또 받았으면 보답을 해야지. 태상노군이라면서 단순하기 그지없는 등가교환의 법칙도 모르다니.”

“허어!”

“그렇지 않아도 보내준 물건에 대한 보답이 턱없이 부족해 미안하던 참이었는데···, 이것들, 고작 선도와 보패 몇 개로 퉁칠 물건들이 아니오!”

얼굴이 시뻘게진 태상노군.

서왕모는 흥미로운 눈초리로 당군악을 빤히 쳐다봤다.

“선계에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을 들인 주제에, 뻔뻔하게 교환을 주장하는구나. 염치가 없도다!”

“하하하!”

당군악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건 누가 결정하는데?”

“무슨?”

“내가 가져온 것들이 선계에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란 걸 누가 결정하냐고?”

“선계의 질서와 법도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

선계의 질서.

사실 이건 당군악도 예전부터 궁금했던 부분이다.

“이상하지 않소? 질서와 법도가 그렇다면 애초에 불가능했어야지.”

“음?”

“처음부터 다른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가 막혔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왜 열렸을까?”

“어···,”

“왜 선계의 질서가 다른 세상과의 교류를 허용했을까? 막았으면 그만일 텐데.”

“···.”

“왜 저 태블릿과 빔프로젝터, 그리고 발전기가 아무런 제한 없이 작동할까?”

태상노군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당군악이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선계는 감옥이나 다름없는 닫힌 공간이다.

허용되지 않는 외부 물건은 들어올 수도 없다.

억지로 들여온다 해도 소멸하거나, 제 기능을 상실한다.

“내가 추측하는 바를 말해주겠소.”

당군악이 태상노군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작은 질서는 큰 질서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오.”

“···큰 질서? 그, 그게 뭐길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당신도 모르는걸.”

“이놈! 요사한 궤변으로 날 현혹하려 해?”

“아아아! 잡설이 길기도 하네. 빨리 재판이나 합시다. 판결할 때가 안 됐나?”

“오냐! 어디 한번 저울추를 달아보자꾸나.”

태상노군은 판관의 저울추를 꺼냈다.

이건 염라(閻羅)가 선계의 질서를 위해 만들어준 보패.

선계의 존재하는 모든 자연 요소의 정화를 저울추에 집어넣었다.

선계의 기운, 선계의 물, 선계의 불, 흙과 돌, 바람···,

그리고 별도의 의식을 통해 우주 만물의 법칙을 담아 만들어낸 것.

원래 염라가 사용하던 저울추는 인간을 심판하기 위해 만든 것.

저울추가 왼쪽으로 기울면 선업(善業), 오른쪽으로 기울면 악업(惡業)을 의미한다.

하지만 태상노군의 저울추는 신선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다.

신선의 업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조화(造化)냐, 혼돈(混沌)이냐.

조화면 풀려나고, 혼돈이면 아마 수만 년 동안 빛도 들어오지 않는 암흑 속에 봉인될 터.

“판결을 내리겠다.”

태상노군은 저울대에 추를 달았다.

“천지신명께 고하노니, 부디 선계를 어지럽히고 이치에 거스른 독선에게 심판을 내려주소서.”

그러자 저울추가 움직였다.

아직은 혼돈에 머물러 있는 저울추.

“이걸 봐라. 지금 네 눈엔 추가 어디 있는 걸로 보이느냐? 혼돈이다! 즉 네놈의 행위는···, 어?”

갑자기 저울추가 움직인다.

혼돈에서 조화로 슬금슬금 올라갔다.

“이, 이게?”

급기야 중립을 지나 조화 끝자락에 도달한 저울추.

“내 눈엔 조화로군. 이제 됐소?”

그럴 줄 알았다.

이치에 맞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연결될 리도 없었겠지.

멍하니 저울만 바라보는 태상노군.

바로 그 순간!

철커덕, 철커덕.

당군악의 손발을 옥죄던 판관의 족쇄도 저절로 풀렸다.

판결은 무죄.

“쯧쯧, 신선들을 통솔한다는 자가 이렇게 무지해서야.”

유유히 앞으로 걸어가는 당군악.

그리고 증거품 신세가 된 지구의 물건들, 태블릿, 발전기, 빔프로젝터 등등, 모조리 무한공간으로 집어넣었다.

그때였다.

찌르르르···,

때마침 열린 공유창고.

‘오!’

당군악은 서둘러 물건들을 빼내 옮겼다.

하지만 현재 줄 수 있는 건 오직 선도뿐.

‘잡혀가지만 않았어도 보패 몇 개 더 보낼 수 있었을 텐데···.’

태주에게 미안한 마음밖에 없었다.

‘선도나 꽉꽉 채워 보내자.’

다행히 150개 이상 들어간다.

이 큰 공간에 겨우 선도만 넣어야 한다니.

모든 일을 다 처리하고 나서 당군악은 태상노군을 보며 물었다.

“이제 가도 되겠소?”

“대, 대체 이, 이런 일이, 큰 질서? 선계의 법칙 위에 더 큰 법칙이 있었다고?”

“나도 모른다고 했잖소. 아무튼 조금 전에도 저쪽에서 물건이 도착했소이다.”

“···또?”

“마침 새로운 것들이 왔는데 구경이나 해보시오.”

당군악은 무한공간 안에 옮겨놓은 태주의 답례품 중에서 처음 보는 신상을 꺼냈다.

하늘색 가죽 재질에, 앞쪽에는 금속의 자물쇠가 달린 네모난 가방, 안엔 각종 단것들을 집어넣어 구겨지지 않게 모양을 잡았다.

이런 가방이 무려 5개나 왔다.

당군악이 희한하게 생긴 가방을 꺼내자 즉각 호기심을 보이는 서왕모.

“···독선, 그건?”

“아! 이 가방? 엘메스 버킨백이오. 다른 세상의 여인들이 오매불망 소원하는 귀물이지. 돈이 있다고 해서 살 수 있는 물건도 아니요.”

“에, 엘메스 버킨백?”

“하나 드리리까?”

“···그, 그 가방을 말이에요?”

“천만에! 이런 귀물을 아무나 막 줄 수 있나! 내가 드리겠다고 한 건 이 가방 안에 든 초콜릿이지, 이거나 맛보시오.”

당군악은 가방에 손을 넣어 초콜릿과 사탕을 한 줌 꺼내 서왕모 앞의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가방 속이 작군. 무한공간 술법진이나 그려서 넣어야겠네.”

그러고 나서 가방을 다시 무한공간에 넣었다.

“아!”

서왕모의 안타까운 탄식을 뒤로 하고 재판정을 휘적휘적 걸어 나가는 당군악.

무죄가 입증되었지만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외면한 선인들 때문이었다.

‘이 배신자들!’

같이 보고 먹고 즐길 때는 언제고.

어디 두고 보자.

이제부터는 국물도 없다.

한편 아쉬운 기색이 역력한 서왕모는 아직도 독선 당군악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부스럭, 부스럭.

당군악이 준 단음식 하나의 껍질을 까서 입에 넣고 있는 태상노군.

“···지금 뭐 하는 거죠?”

“아니, 독선이 맛이나 보라고 해서···.”

“그걸 당신한테 줬나? 나한테 준 거지. 저리 가요!”

서왕모는 초콜릿과 젤리, 사탕을 급히 바구니에 쓸어담았다.

그리고 자신도 하나 집어서 포장을 벗겨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달았다.

그리고 맛있었다.

전엔 결코 먹어보지 못했던 맛.

선도야 매일 먹는 맛이고, 환수계 대왕벌들이 만든 꿀보다 더 달고 맛있었다.

하지만 단것을 먹어도 욕구는 결코 충족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엔 그 아름다운 가방이 계속 아른거렸다.

※ ※ ※

천리장성 웨이브 방어본부.

상황실에 모인 장성들과 황자, 황녀들.

초고도 정찰기에서 드론이 투하됐다.

그래서 죽은 비욘드 엘리트 마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짜 죽었군.”

“벌써 부패가 시작됐습니다.”

군데군데 썩어 문드러진 비욘드 마수의 시체.

“결정체 반응은?”

“전무 합니다. 마나 반응도 보이지 않습니다.”

마나 반응이야 죽었으니 그렇다 치고 결정체마저 없다니.

“원래 없었나?”

“마수를 죽인 그 남자가 가져갔을 지도.”

“아깝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특공대를 보내볼까요?”

“저길요? 화면 안 보이십니까? 마수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비욘드 엘리트가 죽었다.

이제 저긴 일반 마수 밀집 지역으로 변해갔다.

자신의 영역에서 내쫓겼던 마수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상황.

그런 이유로 천리장성 전쟁 또한 끝나가고 있었다.

천리장성을 향해 물밀듯이 밀려오는 마수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남쪽으로 도망치는 놈들도 나왔다.

시간이 흘러 한 마리도 남지 않고 사라진 마수들.

천리장성 웨이브 방어본부는 하루 정도 더 추이를 지켜보다가 마침내 전쟁의 종식을 선언했다.

<비욘드 엘리트가 죽었다! 마수 웨이브에 맞선 인류의 승리!>

<황제 폐하께서도 방어군 본부에 치하를 내려.>

<논공행상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 이 전쟁에서 최고의 공을 세운 사람은?>

이 부분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다.

<참전한 병사들, 태홍 회복제, 태홍 생기불끈, 태홍 새살쑥쑥이 전쟁을 끝냈다고 한목소리로 주장.>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는 기적의 승리.>

<태홍 생기불끈과 태홍 새살쑥쑥, 어서 빨리 시판해줬으면···, 시민들의 요구 빗발쳐.>

하지만 비욘드 엘리트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의심도 생겨났다.

<흑악지룡이 죽은 원인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아.>

<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 자연사한 걸로 추정.>

<비욘드 엘리트 마수가 자연사했다???>

<전문가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흑악지룡 이동 영상을 공개하라고 요구.>

태주는 이미 구례로 돌아와 있었다.

< 다른 세상 물건 들인 게 죄는 아니잖아!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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