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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명 >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비욘드 엘리트 흑악지룡을 죽였다.
그것도 마수인 삼두백호와 함께.
제국 국방부는 황제의 명을 받아 흑악지룡이 죽는 영상도 삭제하고, 목격한 이들에게도 입단속을 시켰지만 비밀이 새어 나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상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일부의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성별이 남자였고, 모습만으로 나이를 판별할 수가 없지만 젊어 보였다.
영상이 먼지로 인해 흐릿해 정확한 외모와 각성 문양은 잘 보이지 않는다, 사용 무기는 검이고 몸을 투명화하는 마법 아이템을 소유하고 있다, 등등.
삼두백호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비욘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초엘리트급, 흑악지룡을 짓눌러 버릴 정도로 거대하다.
비욘드 마수의 강기 보호막을 뚫어버릴 정도로 강력하고.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흑악지룡 자연사 주장만큼이나 허무맹랑했다.
말하자면 증권가 찌라시 정도?
하지만 흑악지룡이 죽은 건 명백한 사실.
그런 이유로 전쟁이 끝나고 나서 초유의 관심사가 된 부분은 바로 비욘드 엘리트 마나 결정체의 존재였다.
세계 최초의 비욘드 엘리트 마나 결정체.
그걸로 무기나 영약을 만들면 어떤 효과를 보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비욘드 결정체가 실존한다면 소유자는 한 사람.
흑악지룡을 죽였다는 그 남자.
수많은 세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 정부와 정보 조직, 민간 기업, 여러 사조직, 양지에 드러나 있는 세력이든, 음지에 숨어있던 세력이든.
그 남자를 찾아라.
그럼 비욘드 엘리트 마나 결정체도 같이 찾을 것이다.
※ ※ ※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제국 전역에서 말이다.
뉴서울 백두 마트 신양재점.
아직 개장도 안 했는데 주차장이 꽉 찼다.
심지어 1층 정문에도 사람들이 줄을 섰다.
대형마트에서 이런 오픈런이 벌어진다는 건 드문 현상.
태홍 생기불끈 드링크제가 민간시장에 첫선을 보이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입소문을 탔다.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 그들의 가족, 가족의 지인,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새살쑥쑥은 약국에서만 팔지만 생기불끈은 건강 드링크제라 마트에서도 살 수 있다.
드디어 판매 시작.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약을 실제로 체험하고 싶은 일반인들이 대부분.
공부에 지친 수험생들, 과중한 엄무에 시달려 하루 휴가를 낸 직장인들, 정가에 사서 비싸게 팔려는 되팔이들도 많았다.
드링크제가 제국 곳곳의 백두 계열 마트와 편의점에서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물량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채 2시간이 지나기 전에 이미 매진.
그리고 잠시 후.
SNS에서 인증샷들이 올라왔다.
죄다 드링크제의 효능을 칭송하는 게시물들.
- 이거 먹고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 이거 먹고 숙취로 절은 육신이 말끔해졌습니다.
- 이거 먹고 헬스장에서 하체 2시간 조졌습니다.
- 이거 먹고 야근 3시간 했습니···, 좋은 게 아니구나.
되팔이들도 기승을 부렸다.
제국 최대 중고 거래 사이트인 오이 마켓의 판매 및 구매 목록 상품은 거의 생기불끈.
그래서 미처 사지 못한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언제 물건이 들어오나?
예약제를 시행하면 안 되겠느냐?
되팔이들을 잡아야 한다.
백두 마트와 편의점은 일일 최대 매출을 달성했고, 반면 미리내 그룹 계열의 마트와 편의점은 매출이 수직 하락했다.
그래서 태홍 바이오 본사도, 뉴서울 지점도 정신없이 바빴다.
그들도 생기불끈을 입에 달고 일했다.
반면 태주는 조금 한가한 편.
오늘은 면접이 있는 날, 인성 좋고 재능있는 아이들을 거두어 무공을 가르칠 생각, 백홍표, 백서연 사장, 그리고 창훈이와 순철이 등, 주위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소개를 받았다.
관상은 과학이란 말이 있다.
딱 보면 될성부른 나무인지 안다.
1차로 추려진 후보는 10명.
다 적합자들이었다.
물론 관상만 믿지 않았다.
졸업한 학교에서 생기부도 받아서 확인하고 사람을 써서 주변 평판도 알아봤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최종 선택된 제자들은 총 6명.
비밀 유지 맹세를 거치고, 미리 만들어둔 영약들을 먹이니 한 명도 빠짐없이 각성했다.
기본적인 심공인 오행신공부터 가르치고, 스킬도 배우게 하고, 숙련을 위한 훈련도 시키고···, 삼재검법 말고 적당한 검술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그건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이러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그 와중에 태주에게 걸려온 전화들.
백두 그룹의 정욱철 회장이,
- 뉴서울에 언제 올라 올 건가? 함께 식사나 하세. 얼굴 잊어먹겠군.
리더스 클럽의 이고르도,
- 김태주 회원님, 방문해주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락만 주시면 뉴서울 역에서부터 에스코트해드리겠습니다.
제정원 문경식 차장도,
- 현재 추적 중인 마인의 단서를 잡은 것 같습니다. 곧 보강 수사 후에 정식으로 도움 요청하겠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백서연을 통해서도 면담 요청이 쏟아졌다.
왜 이렇게 자신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지.
심지어 구례까지 직접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만나기에 조금 부담스러운 사람.
‘왜 또 왔지?’
일백이를 두고 갈까 하다가 놈이 도통 곁에서 떨어지질 않아서 그냥 데리고 왔다.
태주는 일백이를 안고 태홍 바이오 본사 회장실로 갔다.
“오랜만이군.”
황궁 최고 비서관 금수호였다.
“어서 오세요. 먼 걸음 하셨네요. 구례까지.”
“구례야 그전에 몇 번 와봤네. 아무튼 요즘 바쁜 모양이지? 주인도 없는 방에서 혼자 기다렸더니 얼마나 뻘쭘하던지···,”
“미리 전화 주셨으면 기다렸죠.”
전에 만났을 때보다 여유가 생긴 느낌.
태주가 방에 들어와도 금수호는 별다른 동작을 취하지 않았다.
“으흠, 오늘은 꽤 가깝게 계시네요. 뉴서울 호텔에선 멀찍이 떨어져서 이야기하시더니.”
“솔직히 지금도 가까이 가고 싶진 않아.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금수호는 태주가 안고 있는 일백, 아니 삼백이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가 키우는 고양인가?”
“그렇습니다만.”
“귀엽게 생겼군. 안아봐도 되나?”
“에이, 양복에 털 묻습니다.”
태주는 삼백이를 회장실 책장 밑에 놓았다.
주머니에서 츄르 몇 개와 고양이용 육포를 놓고.
“손님 오셨으니까 여기 가만히 있어.”
“니야앙!”
눈치 빠른 사람이다.
얼굴이 수시로 바뀌는 놈인데,
살짝 아쉬운 표정의 금수호.
그러더니,
“혹시 자네, 투척 무기 말고 검(劍)도 쓰는가?”
“검이요? 검은 적성에 맞지 않아서 쓰진 않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도 없고?”
“···없습니다.”
수상하다.
뭘 알고 왔나?
“구례로 온 김에 지리산에 갔다 왔네.”
“그러셨구나.”
“천왕봉에도 올라가 봤어. 그런데 없더군.”
“뭐가요?”
“엘리트 삼두백호 말이야. 혹시 어디 갔는지 아는가?”
“···글쎄요.”
태주의 얼버무리는 대답에 금수호는 일이삼백이가 들어가 있는 책상 밑을 힐끗 쳐다봤다.
“인간이 잘못된 방향으로 각성하면 마인이 되지만, 그 반대로 마수가 잘못된 방향으로 변이하면 우린 그걸 영수(靈獸)라 부르지. 혹시 알고 있었나?”
“들어는 봤습니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 공화국의 ‘타이탄 화이트 이글’처럼, 그렇다면 지리산 엘리트 삼두백호도···,”
이거 위험하다.
태주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무슨 일로 구례까지···?”
“아! 전과 비슷한 용건이네.”
“또요? 폐하께서 편지를 보내신 건가요?”
“아니, 이번엔 비공식 편지가 아니라 공식적인 황명이야.”
“···네?”
공식적 황명이라니!
대체 무슨 이야길 하려고?
“그래서 말인데, 자네 회사 회의실 좀 쓸 수 있나?”
“안 될 건 없죠.”
“고맙네. 공식적인 황명 전달이라 자네 말고도 들어야 할 사람이 더 있거든. 이참에 백서연 사장도 부르게.”
훈장이라도 주려나?
뭐, 이번 전쟁에서 회사의 신약들이 커다란 기여를 한 건 사실이니까.
※ ※ ※
태홍 바이오 본사 회의실 모인 사람들.
백서연 총괄 경영자도 왔다.
이정학을 비롯한 상임위원들과 일반 자치위원들도.
아마 금수호 비서관이 그들을 부른 모양.
그래서 26명 정도.
회의실 의자에서 일어난 금수호.
품에서 화려한 금박이 장식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지금부터 황명을 전달하겠다.”
그러자 사람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차려자세를 취했다.
- 먼저 이번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김태주 회장 및 태홍바이오 임직원에게 감사를 표한다.
- 그대들이 만든 회복제, 피로 해소 드링크제, 외상 치료제 덕분에 제국의 병사들이 단 한 명도 희생되지 않았다.
“이 내용은 감사패로 따로 나갈 거야. 감사패는 이따 전해주지.”
황제의 칭찬에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백서연.
- 특히 신약의 개발자인 김태주 회장의 공은 크고도 크다.
- 전부터 그대를 따로 입궁시켜 직접 노고를 치하하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사업에 방해가 될까 봐 참아왔던 차였다.
-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제국민 모두가 그대를 칭송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대에게 상을 내려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치고 있다.
- 이젠 입궁을 시키지 않는 것이 내겐 큰 부담이다.
···뭐야?
입궁하라고?
- 그런 의미에서 짐이 칙령을 내리겠다.
무슨 내용일까?
사람들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 오늘부터 구례에 내려졌던 자유도시 지정을 철회한다.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사람들.
- 따라서 도시를 운영하고 있었던 상임위원 및 자치위원들의 권한 역시 즉각 박탈한다.
···이건 상이 아니라 처벌 아닌가?
- 대신 태홍 바이오 김태주 회장을 구례 시장으로 임명한다.
“어?”
“헉!”
“대, 대체?”
“···.”
- 구례 시장의 임기는 종신이며 후임을 지정할 수 있는 권리도 부여한다. 또한 이 권리는 대대로 계승된다.
후임 계승권까지.
- 도시 운영 및 세금징수 권한은 제국의 영지에 준한다.
종신 시장, 이름만 다르다 뿐이지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와 다름없다.
- 이에 김태주 회장은 빠른 시일 안에 뉴서울 황궁으로 입궁해서 절차를 밟아라.
- 만약 종신 시장직에 뜻이 없다 하더라도 입궁해서 짐에게 그 이유를 논하라.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금수호의 눈길이 상임위원과 자치위원들에게 향했다.
“이 사실은 여기 있는 자네들만 알고 있게. 김회장이 입궁하고 나서 최종 결정될 문제니까. 그동안 마음의 준비나 하고 있어.”
누구 말이라고 거역할까.
모두 그저 바짝 얼어있었다.
순간!
“와!!!”
짝짝짝짝!
백서연이 기뻐하며 손뼉을 쳤다.
“김태주 회장님 겸 시장님!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태주는 난감했다.
‘축하는 무슨···, 나보고 시장을 하라고?’
그거 하면 놀지도 못하잖아.
게다가 받아들이든, 거절하든 무조건 입궁은 해야 한단다.
‘귀찮은데···.’
어떻게 입장을 정해야 하지?
일단 사람들과 의논해보고.
※ ※ ※
선계(仙界).
도원 가장자리, 천도 나무 바로 뒤에 위치한 도화궁.
서왕모는 침상에서 일어났다.
“후우,”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그 아름다운 하늘색 엘메스 버킨백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도원 혹은 천선계를 다닐 때마다 들고 다녔던 선죽(仙竹) 바구니를 들어봤다.
여기에 보통 선도를 담고 다닌다.
술법이 걸려 있어 무게도 느껴지지 않고 선도의 신선도가 항상 유지되는 대나무 바구니.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아, 얼마나 초라한 바구니인가.
다른 세상에서 넘어왔다던 그 가방을 본 이상, 이젠 바구니를 들고 바깥으로 나갈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엘메스, 엘메스라···,”
독선이 말했다.
다른 세상의 여인들도 한번 들어보길 소망하는 가방이라고.
보기만 해도 품격이 절절 흐르는 것이 과연 그럴 만했다.
그 가방을 본떠 똑같이 만들 수는 있다.
그까짓 것 왜 못해?
적당한 가죽을 구해 염색해서 금속으로 장식과 징을 달고 손잡이를 만들면 감쪽같겠지.
하지만 그렇게 만들면 가짜다.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물건이 아니다.
짝퉁을 들고 다닐 수 있나!
엘메스 버킨백은 다른 세상의 물건이라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넘어온 물건이 선계의 질서와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관의 저울추가 증명한 판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서왕모는 의념을 이용해 미호 선자를 불렀다.
미호 선자는 여우 출신으로 아홉 개의 꼬리를 획득해 등선한 환수계 출신.
“부르셨나이까, 왕모님.”
“그래, 미호야, 도원에 가서 천도와 제일 가까운 선도 나무에서 선도를 따오거라.”
“···몇 개나 말이옵니까?”
“50개, 바구니에 담아서”
“알겠습니다.”
도원의 선도가 다 같은 품질은 아니다.
1구역의 선도는 품질이 좋지 않고, 4구역의 선도가 가장 좋다.
왜냐하면 4구역이 천도 나무와 가깝기 때문이다.
신선들에게 주는 선도는 1, 2구역의 하품(下品), 천도와 가까운 나무의 선도는 최상품(最上品).
서왕모는 최상품 선도로 독선과 흥정을 할 생각.
이윽고, 미호 선자가 바구니 가득 선도를 담아왔다.
“빛깔이 좋구나.”
“좋은 것만 담아왔습니다.”
“들고 나를 따라오너라.”
서왕모는 미호 선자와 함께 선계로 갔다.
독선 당군악이 만들었던 천막 극장이 있던 장소.
그런데.
‘응?’
이상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왜 다들 밖에···,’
선인들이 천막 극장 안에 있지 않고 모두 바깥에 나와 있었다.
그것도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독선! 도옥선!! 도오오옥선! 제발 안으로 들여보내 주시면 안 되겠소?”
“내가 눈이 멀었소. 그동안의 은혜를 모르고 그만···,”
“이러다 죽겠소이다. 선인 하나 살리는 셈 치고, 한 번만 용서해주시오.”
“월회비 두 배로 내겠소. 얼마면 되오리까? 얼마면?”
“이놈이 시켜서 거짓말한 것뿐이오. 난 결백하오!!!”
“난 왜 끌고 들어가? 배신자 새끼야!”
처절한 아우성이 선계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천막 안에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저 희미한 음악 소리만 들려올 뿐.
고개를 갸우뚱하는 서왕모.
‘···날을 잘못 택했나?’
< 황명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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