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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착(1) >
삼한제국 식민지 규슈 영지.
영주 혼다 카즈오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딸아이의 어설픈 일 처리로 인해 그동안 공을 들였던 백년대계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게 생겼다.
“그래, 좋다. 실패한 건 그렇다 쳐도, 독약은? 그릇은 잘 치웠겠지?”
“두, 두고 왔어요.”
“···뭐? 네 지문이 덕지덕지 묻은 걸 그대로 놓고 왔다고?”
“경황이 없어서 그, 그만···,”
“멍청한 년!”
증거를 그대로 두고 왔다는 말.
영주관 안에 CCTV가 없을 리가 없다.
딸 미쯔이가 독이 섞인 십전대보탕을 가지고 온 모습, 심지어 직접 독을 타는 영상도 찍혔을 수 있다.
김웅방이 독으로 죽거나 쓰러졌다면 증거인멸은 일도 아니었겠지만.
“아이들은 왜 데리고 왔느냐?”
“제 아이들이잖아요. 아버지 외손자들이고요.”
“하아, 답답하구나. 정말 답답해.”
아이들은 남겨놨어야 했다.
이혼했다손 치더라도 아이가 파주에 있어야 끈이 유지될 것 아닌가.
그나저나 마냥 한심한 줄만 알았던 사위였다.
주제에 마스터라는 건가?
‘이러다 진짜 망하겠어.’
삼한제국 법률로서 일본계 장성이 제국 본토를 영지로 하사받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가라앉고 있는 일본 땅만을 영지로 가질 수 있다.
물론 식민지에 사는 개개인이 본토로 이주해 살아가는 건 제한이 없다.
집도 가지고, 재산도 소유하고, 필요하다면 성본 변경을 통해 제국식 이름을 쓸 수도 있다.
영지 하사를 제외하고는 제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는 모두 다 인정됐다.
하지만 혼다 카즈오는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제국을 다스리는 강력한 권력자가 사망한 후, 반드시 일어나게 될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 그 틈을 타서 잊혀진 일본의 옛 영광을 제국 땅에서 재현하고 싶었다.
딸 미쯔이를 파주로 시집보내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왔나.
예산이 부족하다면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일본계 적합자, 각성자들을 파주 영지군으로 집어넣고, 심지어 일본계 일반인들도 파주 영지로 이주하게 했다.
그런데 이혼이라니.
반대 소송을 걸면 되지만 유책 사유가 딸 미쯔이에게 있기 때문에 극히 불리하다.
그래도 태평이와 태천이가 있기에 상속권이 남아있지 않느냐고?
김웅방은 큰아들 김태주마저도 호적에서 판 놈, 두 아들이라고 그러지 못할 법이 없다.
이혼은 규슈 영지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 딸과 자신이 구축했던 세력들을 몰아내겠지.
사위 김웅방은 적어도 파주에서만큼은 왕이나 마찬가지니까.
‘놈을 죽여야겠군.’
시간 싸움이다.
속전속결로 해치워야 한다.
혼다 카즈오 자신이 직접 결행할 생각.
시나리오는 금세 만들어졌다.
딸과의 이혼 선언에 상심한 장인.
사위를 설득하기 위해 파주에 방문하게 되고, 당연히 말다툼이 일어난다.
설득에 실패해 격분한 장인은 자신의 분을 참지 못해 칼을 빼 들게 되고, 그리하여 의도치 않게 사위를 찔러 죽인다.
계획 살인이 아닌 과실치사.
재판을 받아서 실형을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웅방이 죽으면 상속권은 무조건 큰 외손자 김태평에게 넘어간다.
오히려 전화위복일지도.
‘진작에 이럴 걸 그랬어.’
실형을 받는 것?
그 정도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비싼 변호사를 선임해 형기를 줄이거나, 집행유예로 풀려나면 금상첨화.
‘밑밥부터 깔아야겠군.’
이렇게 된 이상 선수를 친다.
황제 와병설에 제국 정치계가 뒤숭숭해진 지금이 바로 적기.
전승식이 열리기 전에 끝낸다.
혼다 카즈오는 아들 지로에게 지시했다.
“지로야, 뉴서울에 신문사에게 기삿거리 몇 개 던져줘.”
“네, 아버지.”
“될 수 있으면 자극적으로.”
그리고 다음 날 터져 나온 가십성 기사들.
중앙지가 아닌 황색 언론들이었다.
이들이야 돈만 주면 어떤 기사도 써주니.
<태홍 바이오 김태주 회장의 친부로 알려진 파주 영지 김웅방 준장, 부인과 갑작스러운 이혼 선언.>
<평소 부인과의 금실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터라 주변 사람들 충격에 빠져.>
<이번 이혼 선언에 소문이 무성, 조강지처를 버린 이유는?>
<미쯔이 부인은 평소 성격이 소탈해 영지민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린 것으로 알려져.>
<김웅방 준장의 장인인 규슈 영지 혼다 카즈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 사위를 설득할 것이다.>
슬슬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일단 혼자 만나러 가는 모양새를 취한다.
그러나 마스터를 잡는 일이다.
조심 또 조심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준비해야 한다.
“지로야, 파주 영지에 심어둔 각성자, 적합자들에게 준비하라고 일러라.”
“이미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가겠습니다. 아버지.”
“아니, 넌 여기 있어야 해. 의심받을 수도 있어.”
“마스터가 두 명은 되어야 놈을 확실하게 잡습니다. 전 제 심복들을 이끌고 몰래 밀항하겠습니다. 비공식적으로 파주에 들어가면 됩니다.”
“흐음.”
혼다 카즈오는 잠시 고민했다.
아들의 말이 맞다.
일 처리는 철저해야지.
“좋다. 넌 지금 당장 출발해라.”
“네!”
그렇게 아들 혼다 지로 일행이 무사히 제국 본토로 숨어 들어갔다는 걸 확인한 후, 혼다 카즈오는 규슈 영지를 출발했다.
※ ※ ※
제국 정보원, 제정원은 마인 파트 말고도 안보와 군사기밀, 적국에 대한 정보 수집 분야를 책임지는 파트가 있다.
제정원 안보 파트 장상호 2차장은 오늘도 여기저기서 올라온 정보 보고서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보는 여러 통신매체나 SNS를 통해 전달된다.
남들이 보면 일반적인 내용과 다를 바 없다.
옷 자랑, 여행 자랑, 오늘 먹은 음식 자랑, 그리고 평범한 태그들.
하지만 그 내용 안에 암호화된 정보가 숨어있다.
그걸 해독해 문서로 만들어진다.
그러다 규슈 영지에 심어뒀던 정보원이 전한 보고를 읽는 장상호, <긴급>이라고 붉게 적힌 글씨가 찍혀있다.
“흐음,”
내용은 이랬다.
- 혼다 카즈오 중장, 규슈 영지에서 출발, 예상 도착지 파주 영지.
장상호는 혼다 카즈오가 왜 파주로 가려는지 안다.
‘사위의 이혼 선언 때문인가?’
요즘 가십 언론이나 사교계에서 떠들썩하다.
일반인들이 하는 이혼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파주 영지라서 더더욱 그렇다.
‘설득이라도 하려는 모양이군.’
그런데 정보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 카즈오의 아들, 혼다 지로와 익스퍼트 급 각성자들도 규슈 영지에서 자리를 비웠음. 미행 결과 해안가에서 어선에 탑승, 역시 파주행이 유력.
이건 조금 이상하다.
그때!
갑자기 번뜩 떠오른 생각.
‘···이놈들이 설마?’
확인해봐야 한다.
장상호는 누구보다 파주 영지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제정원 주요 보호 인물 중에서 특급으로 분류된 김태주 회장의 친부가 바로 김웅방 준장 아닌가.
장상호는 즉시 전화기를 들고 가장 능력이 뛰어난 현장 요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 즉시 파주로 들어가서 김웅방 준장 주변 감시해. 그리고 파주 내 일본계 각성자들 동향도 알아봐. 영지군과 민간 각성자까지 포함해서.”
자신이 추측한 바가 옳다면···,
‘혼다 카즈오가 김웅방 준장을 죽일 작정이군.’
확실치는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혼이 성립되면 닭 쫓던 개꼴이 되니까.
원래 황제 폐하께선 일본계 장성들에 한해 제국 본토의 영지는 절대 하사하지 않으셨다.
제국 건국 역사와 관련이 있다.
황제 폐하께서 제일 처음 세운 나라는 대진국.
100여 년 전, 경상북도에 터를 잡으셨다.
당시엔 국가라는 체계도 잘 잡혀있지 않았다.
수 많은 국가들이 난립하고 있던 시절, 그저 약육강식의 대혼란 상태.
그러다 잦은 지진과 지구 온난화로 일본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절망했다.
자신들이 살던 땅이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조건 새 땅을 찾아야지.
어디서?
당연히 가장 가까운 한반도였다.
선전포고도 없이 동해와 남해를 통해 일본 각성자와 적합자, 그리고 군대가 한반도에 전격적으로 상륙했다.
폐하의 대진국은 그 일본 침략자들과 맞서면서 성장한 나라.
무시무시한 무력으로 일본의 공격을 막아내는 동시에 주변 국가들 또한 복속시켰다.
그리고 한반도 중남부를 통일할 때쯤 황제께선 일본 정벌을 단행했다.
일본에도 수많은 국가가 난립해 있었다.
하나하나 굴복시키고, 일본 점령과 한반도 통일을 이뤄가며, 동시에 북벌도 단행해 불과 40년 만에 삼한제국의 기틀을 세우셨다.
그 후 일본과 만주, 중앙아시아 초원, 시베리아까지 뻗친 삼한제국의 영토.
황제 폐하는 제국 대통합 정책의 일환으로 일본계 제국민을 포용했다.
중국은 나라 자체가 사라진 터라, 오갈 데 없는 유민들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받아주었고.
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일부 일본계 족속들은 절대 믿지 않았다.
아직도 중화 운운하며 망상에 사로잡힌 일부 중국계도 그랬다.
그래서 제국 내 중국계 및 일본계 요주의 각성자들의 동향은 제정원 안보 파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사안.
‘아직 이혼 전이라 이거지?’
장인과 사위가 만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딸과의 이혼을 수습한다는데 누가 말려?
하지만 이혼을 막지 못한다면?
‘혼다 카즈오에게 남은 해법은 김웅방 준장의 죽음밖에 없어.’
불의의 사고가 났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 말다툼 끝에 장인이 사위를 죽이는 끔찍한 사고 같은 거 말이다.
혼다 카즈오야 감옥에 가겠지만 영지 승계권은 그의 외손자에게 넘어간다.
그리고 딸인 미쯔이도 미망인 자격으로 파주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테고.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뜬금없이 가십 기사가 터진 이유가 뭐겠나?
이혼의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기사 내용은 교묘하게 김웅방의 잘못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앞으로 저지를 일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일 터.
만약 모든 예상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면···,
감히 편법을 통해 제국 본토로 진출하려고 해?
황제 폐하께서 건재하셨다면 이런 일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게다가 혼다 카즈오는 든든한 배경이 있다.
바로 염황후.
성본 변경을 했지만 그녀는 일본계다.
만약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그녀가 개입한다면···,
‘파주는 혼다 카즈오의 손에 떨어지겠군.’
물론 그렇게 되기 전에 막는다.
아무튼 기다려보자.
믿음직한 현장 요원 파견했으니 곧 결과를 보고하겠지.
※ ※ ※
태주가 요즘 하는 고민은 한가지다.
황색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아버지의 이혼 소식?
아버지와는 이미 연을 끊었다.
또한 이혼을 결심했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어쨌거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그보다는 독선이 전해주는 귀한 선도에 대한 답례품으로 어떤 물건을 준비해야 하는지, 그게 주된 고민이었다.
답례품의 다각화.
독선이야 아무거나 보내라고 했지만 사람 마음이 안 그렇다.
그 와중에 무한공간에 생긴 변화.
내부 공간도 넓어지고 있지만 수납할 때 제한됐던 물건의 크기도 커졌다.
확인해보니 이제 가로 세로 높이 2m 크기의 물건도 집어넣을 수 있다.
게다가 공유창고의 전체 부피도 처음 생겼을 때보다 3배 이상 늘어났고.
‘이젠 TV를 보낼 수 있어.’
85인치 크기의 초고화질 대형 TV를 말이다.
아무리 빔프로젝터의 성능이 좋다고 하지만 TV 모니터에 비할까.
일단 3대를 준비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음향을 들을 수 있게 최고급 사운드바까지.
그밖에 엘리트 마나 결정체로 돌아가는 발전기도 한 대 더, TV에 연결할 수 있는 각종 케이블과 멀티탭도.
거기에 다운 받은 영상 컨텐츠 물이 꽉꽉 들어간 스마트폰도 10개.
비록 전화나 통신은 되지 않지만 영상 저장용으로는 태블릿보다 낫다.
순간!
찌르르르.
“왔다!!!”
“냥?”
느닷없는 태주의 환호에 머리를 갸웃하는 일백이.
태주는 바로 공유창고를 열어 물건을 꺼냈다.
쏟아져 나오는 선도.
그런데 빛깔이 예사롭지 않다.
더불어 신선주가 담긴 술단지도.
“오!”
그렇지 않아도 다 마셨는데.
준비한 물건들로 빈틈없이 차곡차곡 채웠다.
대형 TV 3개와 사운드바, 발전기, 과자와 술, 간편 조리 음식, 군것질거리···.
이제 편지를 읽어볼까?
내용은 보낸 물건의 정체와 두 가지 부탁.
‘흐음, 소맥이라, 이거야 어렵지 않지만,’
독선이 멀티플렉스 극장을 선계에 만들고 싶단다.
‘···가능할까?’
인간을 초월한 신선들의 능력이라면 건물 하나 뚝딱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을 테지만 극장은 조금 다른 문제.
건물 겉면은 몰라도 내부 설계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조언을 받아봐야겠는데,’
이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그래서 그 내용을 답장으로 썼다.
공유창고에 편지를 집어넣은 후, 태주는 독선이 보낸 최상품 선도 하나를 꺼냈다.
“어후,”
“냐앙! 냐아앙!”
꺼내기만 해도 선기(仙氣)가 물씬 풍긴다.
일백이도 흥분해서 혀를 날름거렸다.
“넌 안돼.”
“냐아아아···,”
“대신 일반 선도나 드세요.”
“냥!”
태주는 하품 선도 3개를 꺼내, 일백이, 이백이, 삼백이에게 차례차례 나눠줬다.
그러고 나서 최상품 선도를 으적으적 씹었다.
‘아아아아아···,’
과연 최상품이라 할만하다.
맛도 너무 좋다.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앞으로 최상품과 상품은 혼자서 먹을 생각.
선도 200개짜리 신선주도.
어쩔 수 없다.
무한공간과 공유창고가 왜 계속 커질까?
늘어나는 선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다.
꾸준히 먹어서 공간을 늘리자.
그럼 선계로 물건을 더 많이 보낼 수 있다.
그때였다.
지이이잉!
진동하는 스마트폰.
걸려온 번호를 보니.
‘제정원 문경식 차장이네?’
마인 수사 관련 때문인가?
태주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장상호 차장님이군요. ···네? 어, 정말입니까?”
일순 굳어지는 태주의 표정.
“···네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파주 영지에서 사건이 터졌다.
혼다 카즈오와 김웅방 준장이 만난 직후에.
괴성과 함께 전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지금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고.
급하게 병력을 보냈는데 시간이 걸릴 거란다.
‘아버지···.’
결국 천륜은 끊어낼 수 없는 건가.
그리고,
‘혼다 카즈오.’
태주의 표정에 드러난 은은한 분노.
단전의 독정도 꿈틀거렸다.
“이백아, 가자!”
“야앙!”
태주는 집 밖으로 나와 무한공간에서 만리비검을 꺼내 올라탔다.
< 결착(1) > 끝
ⓒ 꾸찌꾸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