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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진심이었다. >
공유창고를 통한 지구와 선계의 교류.
원래는 다른 세상의 같은 영혼, 태주를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그가 잘 되길 바라는 당군악의 마음.
지구의 문물을 받아 선도 혹은 보패로 교환해, 태주에게 보내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선도를 장복하면 무병장수하며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동시에 육체와 정신, 기의 균형이 맞춰진다.
그로 인해 독령(毒靈)을 빨리 깨우치게 하여, 태주와 그가 사는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전혀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타났다.
태주를 도와주려고 벌인 일이 오히려 선계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일명 선계 멀티플렉스 건설 계획.
건물을 만들어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영화를 보자.
현재 당군악은 3개의 대형 TV와 2개의 빔프로젝터, 그리고 3개의 결정체 전기 발전기를 보유하고 있다.
TV 한 대는 게임 용도로 돌린다 치면, 동시에 돌릴 수 있는 상영관이 무려 4개.
멀티플렉스 건설에 약 40여 명의 신선이 투입됐다.
그들 중엔 태상노군 저울추 재판에서 당군악을 배신한 신선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건설사업에 열심히 협조하기로 약속하고 사면장을 받았다.
재료 공급과 가공은 무림 출신의 신선들이 맡았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아름드리나무들을 환수계 숲에서 잘라서 옮겨오는 선인들.
가져온 나무들은 열양 계열의 무공으로 순식간에 건조시킨 후, 검을 들고 툭툭 다듬으니 금세 쓸만한 목재들로 변했다.
이미 기초공사는 끝났다.
후토 선인과 대목 선인의 지휘하에 한창 올라가는 선계 멀티플렉스 상영관.
예상 높이는 7층.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만들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오래 걸린다.
또 선계에서 시멘트를 어떻게 구하나?
재료는 나무를 사용하되 대신 귀곡 산인과 갈홍 선인의 술법진으로 보완한다.
화선(畫仙) 승업 선인이 건물의 디자인과 색칠을 전담했다.
도화궁의 선자들이 염료를 조달했다.
태상노군도 독선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천군 신장들을 일꾼으로 보내줬다.
신선들은 쉬지도 않았다.
건물이 다 만들어지기 전까진 영화와 드라마 상영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루가 다르게 높이 올라가는 건물.
당군악은 그 모든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태주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생각할수록 놀랍다.
독립적이고, 어쩌면 이기적이기까지 한 선인들이, 멀티플렉스 건설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협력하다니.
심지어 노동의 즐거움도 느끼고 있었다.
선계에서 무료하게 게으름이나 피우던 선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미쳤구나. 미쳤어.’
두렵기까지 하다.
선계가 어떻게 변할지.
이번에도 저울추가 혼돈이 아닌 조화 쪽으로 기울까?
그 와중에 한 번씩 독선을 찾아와 그를 괴롭히는 검선.
“독선, 혹시 할리 바이크 안 왔소?”
“···아직 신호가 없소. 기다리시오.”
“오면 꼭 이야기해 주시오.”
“알겠으니 일이나 합시다.”
몸이 달았나 보다.
“독선, 할리 바이크 안···,”
“신호가 오지 않았···,.”
잊을 만하면 또 찾아와 묻는다.
“할리 바이크는?”
“아직 안.”
자꾸만.
“할리?”
“아직.”
계속.
“할?”
“안!”
지치지도 않았고.
“하···?”
“아···!”
더 이상 못 참겠다.
“이 양반아! 좀 그만 괴롭혀! 보낸다고 해도 이번 배송은 아니야! 빨라도 다음 배송이라고!”
“흐음, 그런가?”
“우리 태주가 조물주라도 되나? 준비할 시간도 필요하지.”
“그럼 다음다음 배송이겠구려.”
“그것도 장담할 수 없소.”
과연 올까?
할리 바이크는 크기가 너무 크다.
공유창고의 부피가 할리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커지긴 했다.
문제는 태주의 무한공간 안에 집어넣을 수 있냐는 것.
물론 자신은 가능하다.
마음만 먹으면 대형 트럭이나 비행기도 집어넣는다.
‘다음 배송 때 무리하지 말라고 일러둬야겠군.’
하지만 검선은 예상보다 훨씬 집요했다.
요 며칠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검선.
그래서 당군악도 검선의 괴롭힘에서 벗어나 태주에게 보낼 선도와 보패들을 구하러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콰콰콰콰!
드드드득!
슈슈슈슛!
쿵! 쿵! 쿵!
저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선계의 땅이 은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뭐지?’
처음엔 신경 쓰지 않았다.
신선들이 목재를 구하려다 내는 소린가 보지.
그런데 멈추지 않고 계속 들려왔다.
게다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확인차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보니,
‘헉!’
당군악의 눈에 들어온 건 허공에서 휙휙 날아와 떨어져 내리는 돌판.
한 번에 수십 개의 맨들맨들한 돌판이 날아와 땅 위에 착착 깔리고 있었다.
돌판의 크기는 가로세로 1m, 두께도 상당했다.
심지어 단단하기 그지없는 화강암이었다.
그것들이 직선으로 반듯하게 잘려져 있었다.
마치 검으로 자른 것처럼 말이다.
‘설마?’
이런 짓을 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겠다.
“미친!”
휘이이익!
불어오는 바람.
나부끼는 도포 자락.
은빛 찬란한 보검을 든 검선.
어디서 구해왔는지 거대한 바윗돌을 옆에 두고 두부 썰 듯 바위를 자르고 있었다.
우우웅!
부드럽게 일어나는 강기.
서걱! 서걱!
눈 깜짝할 새 돌판 하나를 만들었다.
옆에다 차곡차곡 쌓고.
어느 정도 만들었으면,
탁!
정사각형의 돌판을 발로 걷어차서 연달아 날렸다.
휘릿! 휘리리릿! 쿠쿠쿠쿵!
촘촘하게, 빈틈없이, 그리고 평평하게, 흡사 보도블록처럼 땅 위에 차례대로 깔렸다.
그 모습이 흡사,
‘···도로구나.’
맞다.
검선이 만들고 있는 건 도로였다.
그가 도로를 건설하는 방법.
어마어마한 선기와 내공의 힘으로 압력을 만들어 맨땅을 단단하게 다진다.
드드드득!
그리고 흙을 깎거나 쌓아서 일정한 높이로 맞춘다.
그럼 편평한 흙길이 생기는 것이다.
그 위에 화강암 돌판을 덮는 식.
폭은 지구의 2차선 도로.
이미 작업이 꽤 진행된 것 같다.
눈대중으로 잡아도 1km 이상은 되어 보였다.
‘고작 바이크 타려고···,’
검선의 바이크 전용 도로였다.
아마 도로는 자신의 거처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목적지는 현재 건물이 만들어지고 있는 현장.
‘이게 사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인가?’
···사람이 아니긴 하지.
한참 화강암 자르기에 열중하던 검선이 당군악을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응? 독선 아니오? 설마 할리 바이크 왔소?”
“···아직, 혹시 이걸 혼자 다 만든 건 아니겠지?”
“뭐, 나 혼자 했소. 기다리기 심심해서, 도와주는 선인도 없고, 처음엔 서툴렀는데 하다 보니 손에 익더군.”
“도로는 어디까지 깔 거요?”
“선계 한 바퀴 빙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
으슬으슬 소름이 끼친다.
검선은 진심이었다.
“왜 할리에 집착하시오? 바이크보다 그대가 더 빠를 텐데,”
“멋있으니까.”
“대체 뭐가?”
“몸에 쫙 달라붙는 검정색 가죽옷에, 머리엔 헬멧, 등 뒤에 검을 비스듬히 메고, 바이크로 질주하는 신선의 모습을 상상해보시오, 참으로 검선다운 모습 아니겠소?”
“무슨 개소릴 이렇게 진지하게···,”
하지만 검선의 표정은 이미 몽롱하게 변해버렸다.
자신이 묘사한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야단났다.
이러다 할리 바이크가 안 오면 어떡하지?
※ ※ ※
구례 시청.
자치위원회가 해체되고 종신 시장 체제로 전환되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시청 공무원들이야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시민들도 김태주 회장의 시장 취임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였으니까.
태주는 먼저 3명의 상임 위원들을 만났다.
자치위원회가 해체되고 나서 이정학 길드장이 떠날 줄 알았는데,
“절대 안 떠납니다. 구례가 제 고향인데요.”
그래도 자경단은 해체되어야 한다.
대신.
“이번에 신설되는 구례 경찰청을 맡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바라고 있었습니다만 현 길드원 숫자로는 치안유지가 어렵습니다.”
“경찰들을 더 뽑으세요. 예산은 충분히 지원해드리죠.”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정학은 구례 경찰청장으로.
나머지 2명의 상임 위원 지광인 사무관과 민동열 회장, 그동안 그들을 옥죄고 있었던 독의 족쇄도 풀어줬다.
그 둘도 구례 시청의 분과를 맡아 시 행정에 봉사하기로 약속받았다.
태주가 가진 구례 시장의 권한.
크게 두 가지.
인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정책 결정을 통해 시의 예산을 원하는 곳에 사용할 수 있다.
인사권은 행사했으니 올해 주요 정책은 무엇으로 할까?
이왕 취임했으니 임팩트 있는 사업을 진행할 생각.
예산은 충분하다.
구례시 재정은 탄탄하다 못해 넘칠 정도.
그동안 체제의 한계 때문에 그랬다.
시의 예산으로 뭔가를 하려면 자치위원회와 상임위원들의 결정이 내려져야 하는데, 그동안 서로 견제하고 눈치 보느라 제대로 정책이 세워지지도 않았고, 예산 집행도 많지 않았다.
사실 구례시 예산을 빼서 태주 개인 주머니로 슬쩍 옮겨도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종신 시장의 권력은 막강하다.
물론 돈을 먹겠다는 건 아니고,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계획이 있었다.
“칠흑동 달동네 재개발합시다.”
칠흑동 달동네 슬럼가는 구례시 범죄의 온상.
그곳만 해결하면 구례는 더더욱 살기 좋은 도시가 될 것이다.
“기존 살던 주민들은요? 다 쫓아냅니까?”
“그럼 안 되죠. 토지 매입해서 아파트 짓고, 달동네 거주민들에게 입주권 주세요.”
파주의 경우엔 구례보다 더 순조로웠다.
특히 파주 신도시 개발 계획이 발표되자 영지민의 기대감은 하늘을 찔렀다.
영지는 넓었지만 놀고 있는 땅들이 너무나 많았다.
부지 매입이나 토지 보상같은 개발의 걸림돌 따윈 하나도 없다.
그냥 지으면 된다.
일부 영지민들 소유의 주택이나 부동산을 제외하면 남은 땅들은 모두 파주 영주 김태주의 소유니까.
아예 서필명 행정관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류진철 과장도 옆에서 일을 배우며 잘해주고 있었고.
구례와 파주의 행정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태주는 그저 굵직굵직한 사안들을 결정하고 방향만 잡아주면 된다.
이제 가장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지.
그날 저녁 늦게 파주의 영주관으로 커다란 화물 하나가 도착했다.
뉴서울 바이크 매장에서 주문한 할리 바이크.
영주관 지하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긴장되는 순간.
과연 들어갈까?
이 순간을 위해 최상품 선도와 신선주 한 단지를 몽땅 먹어 치웠다.
선기가 팍팍 늘어나는 걸 체감할 정도로.
실제로 무한공간의 부피도 눈에 띄게 늘었다.
‘넣어보자.’
태주는 손을 뻗어 할리 바이크를 수납했다.
스르륵,
앞바퀴부터 들어갔다.
‘···되려나?’
스르르륵!
‘오!’
완전하게 들어갔다.
무한공간 구역 안에 얌전하게 들어가 있는 할리 바이크, 수납함에 헬멧과 가죽 수트도 들어있다.
“됐어!”
그러나 선계에서 제대로 할리를 타려면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휘발유.
전기 바이크도 있지만 할리 특유의 으르릉 소리를 들으려면 역시 내연기관 바이크가 최고.
휘발유 또한 말통으로 10개 정도 준비해서 무한공간 구역 안에 정렬해두고.
그밖에 다른 신선들에게도 보낼 물건도 싹 준비했다.
다행히 부피가 작아 넣는데는 무리가 없었다.
사전 예행 연습도 필요하다.
공유창고가 열리면 바로 집어넣을 수 있게끔.
‘자, 이제 다음으로···,’
제자들을 만날 시간.
마침 약속 시간이 다 됐다.
태주는 만리비검에 올라타고 구례로 향했다.
※ ※ ※
구례시 태주의 자택 지하엔 개인용 수련실이 있었다.
그곳에 모인 태주의 제자들.
백창훈과 장순철을 비롯해 면접을 통해 새로 뽑힌 6명의 새로운 제자까지, 모두 8명.
그들의 얼굴엔 모두 선명한 각성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스승님이 늦으시네.”
“그러게요. 요즘 너무 바쁘셔서 얼굴도 보기 어려워요.”
“혹시 우릴 잊으셨나?”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스승님이 어떤 분이신데.”
“그나저나 우리 중 몇몇은 파주로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마도 그럴 걸? 거기도 마수 밀집지대가 있으니까.”
순간!
수련실 문이 열리며 태주가 들어왔다.
“스승님!”
“기다렸습니다.”
“왜 이제 오셨어요?”
.
.
.
태주는 흐뭇하게 웃었다.
다들 착한 놈들이다.
요즘 하도 바빠서 신경을 써주지 못해서 불만이라도 가질 줄 알았는데 저렇게 밝은 얼굴들이라니.
“나도 오랜만이네. 잘 지냈지?”
“네!!!”
“그래, 바로 시작하자.”
태주는 수련실 벽에 걸린 대형 TV에 태블릿을 연결했다.
“오늘부터 새로운 스킬을 연마할 거야.”
그러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TV 앞으로 모여든 제자들.
“어떤···?”
“암기술입니까?”
“아니, 검술.”
일단 전원은 켜두고.
태주는 주머니에서 공기계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전에 감사 인사부터 올리자.”
“네?”
“그냥 한마디면 돼. 검선님, 무공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배워서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이렇게, 그러고 나서 절을 하면 돼.”
검선?
누구지?
무협 소설에 나오는 절대 고수를 말하나?
“지금 절하면 됩니까?”
“내가 신호하면!”
스마트폰 공기계를 동영상 촬영 모드로 설정한 후,
“자, 인사하자.”
그러자 제자들이 큰소리로 외쳤다.
“검선님, 무공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배워서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
동시에 공손한 절로 마무리.
“일단 눈으로 보는 것부터, 무공 수련은 이곳에서만 할 거야. 스킬이 등록될 때까지 계속.”
태주는 검선의 복마검법 영상을 실행했다.
“복마검법 제일초, 격검축마(擊劍警魔), 검을 휘둘러 마귀를 쫓아내다.”
TV 화면에 검선의 모습이 나왔다.
“아!”
“···저분이 검선?”
“각성자는 아니신데.”
신선이 검을 가지고 노닌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제자들은 영상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검선의 몸놀림.
저건 스킬과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
먼저 일어선 건 장순철이었다.
무의식중에 검을 들고 검선의 행동을 따라 했다.
백창훈도 일어났다.
뒤를 이어 다른 제자들도 우르르.
오행신공을 익혀서 혈도의 위치는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당군악의 설명대로 마나를 이끌었다.
태주는 흐뭇했다.
기어코 선계의 인연이 제자들에게도 닿았다.
매우 자세하게 동작을 설명하고는 있지만 일초식 배우는 것도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하루에 한 번, 계속 영상을 시청하면서 반복하다 보면 언젠간 복마검법 일초식이 스킬로 등록되겠지.
순간!
띠링! 지이이잉!
스마트폰 메시지 알림음.
‘뭐야? 방해되게.’
발신자를 보니 제정원 마인파트 문경식 차장.
‘응?’
마인이라도 발견했나?
< 그는 진심이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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