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서울 차이나타운(1) >
투타타타타!
태주는 문경식 차장이 보낸 헬기를 타고 뉴서울 외곽에 위치한 제정원 본부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일백이도 함께.
드레스코드는 간편한 트레이닝복.
상의 가슴팍 부분에 일백이가 들어가 콜콜 자고 있었다.
가끔씩 이렇게 바깥 구경시켜줘야지.
얼굴이 수시로 변하는 단점이 있지만 웬만큼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아니고선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제정원 본부 헬기장에 미리 마중 나와 있는 문경식 차장.
“어서 오십시오. ···호칭을 뭘로 불러드려야 할지,”
“회장이 제일 익숙하긴 합니다.”
“네, 김회장님, 사실 고민 많이 했습니다. 출동 요청을 드려야 할지 말지, 전과는 위상이 많이 달라지셔서.”
파주 영지 영주, 구례 종신 시장.
제약회사 회장이었을 때와는 비교가 될까?
제정원 원장도 태주 앞에선 절절매야 할 판인데.
“마인 관련 요청은 언제든지 하셔도 됩니다. 눈치 보지 말고요.”
“아···, 감사합니다. 그럼 이리로.”
태주는 문경식과 함께 제정원 지하에 있는 시신 안치실로 들어갔다.
자택 수련실에서 받은 메시지의 내용
직접 잡아서 제정원에 넘겼던 리더스 클럽 마인 세르게이와 합빈 교도소 마인 다이고가 동시에 의문사해버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생포하기 어려운 마인을 둘이나 잡아주셨는데 저희가 제대로 관리를 못 해서···,”
실제로 그랬다.
마인 생포는 거의 불가능했다.
잡아서 죽이기도 어렵다.
과거엔 생포도 몇 번 있었다고 하는데, 최근 10년 동안 단 한 명도 잡히지 않았을 정도로.
시체 안치실 냉동고가 열렸다.
죽어서 마수로 변한 마인들.
그때!
불쑥,
“야앙?”
이백이가 태주의 품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더니,
“캬악!”
마수화된 마인을 보면서 하악질을 하는 이백이.
“넌 잠시 들어가 있어.”
“양.”
쏙,
태주는 시체를 살피며 문경식에게 물었다.
“언제 죽었습니까?”
“승전식 직후입니다. 그것도 동시에 죽었습니다.”
“똑같이?”
“1초 간격으로요, 다이고가 먼저 죽고 세르게이가 두 번째였습니다.”
1초면 동시에 죽은 게 맞다.
“마나 구속구는 채워진 채로요?”
“양손과 발, 심장, 머리까지 6곳 채웠습니다. 아마 손끝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자살도 불가능했을 텐데.
“사인은? 부검은 하셨을 것 아닙니까?”
“뇌가 터졌다고나 할까요. 산산이 조각났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는 문경식.
“체포했을 때부터 MRI로 정밀 검사를 거친 놈들입니다. 머릿속에 금속이나 이물질 같은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외부 충격도 아니고, 약물의 가능성도 없고···,”
그러더니 냉동실에 보관된 시약병 2개를 꺼냈다.
“부검 과정에서 채취한 놈들의 뇌 일부분입니다”
“제가 살펴봐도 되죠?”
“마음껏 하십시오.”
태주는 시약병을 열었다.
진짜 액체 상태로 변했는지 꽁꽁 얼어있었다.
살짝 녹여서 코를 가까이 댔다.
‘흐음.’
묘한 냄새가 난다.
대부분 부패가 시작된 뇌에서 나는 썩은 냄새지만.
‘이거···,’
이상하다.
낯설지 않다.
물론 절대독마 당군악의 경험 속에서.
‘설마?’
그럴 리 없다.
여긴 강호가 아니라 지구다.
한 번 더 냄새를 맡아보고.
‘맞아. 틀림없어.’
고독(蠱毒)의 흔적.
강호에선 금기로 알려진 독공.
특히 오독문(五毒門)의 고독이 유명하다.
고독은 일종의 작은 벌레.
기생충처럼 인간의 몸에 들어가 활동한다.
종류도 수도 없이 많다.
고독에 당한 자들의 정신을 조종해서 지배한다거나, 미세한 독을 뿜어서 병들게 만든다거나, 내공을 빨아먹는다거나, 아니면 이렇게 머릿속에서 빵! 터뜨려 뇌를 곤죽으로 만든다거나.
‘고독(蠱毒)이 확실해.’
동시에 같이 죽은 것도 이해가 간다.
고독을 터지게 만든 시전자가 있었을 테니까.
고독 시술은 독공의 경지가 매우 높아야 한다.
그런 이유로 잘 발견할 수도 없다.
지구에 고독이 있다는 것도 의심스럽지만···.
‘그 고독을 마인에게 먹인 자가 있다고?’
마인에게도 고독이 통할 것이다.
놈들도 반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누굴까.
개인일까, 세력일까.
“문차장님, 이놈들 수사는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수사 상황실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제정원 수사 상황실.
커다란 화면에 마인 세르게이와 마인 다이고의 세부 사항이 동시에 띄워졌다.
놈들에게 죽임을 당한 희생자 명단, 그들이 거쳐온 직장, 카드 혹은 금융거래 목록, 전화 통화 기록···,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문차장님, 전에 천리장성 웨이브 전쟁이 끝나고 제게 전화하셨을 때 마인의 단서를 잡았다고 하신 적 있죠?”
“네, 기억납니다. 보강 수사 후에 정식으로 도움 요청하겠다고 했었습니다.”
“어떤 단서였습니까?”
“그게···,”
문경식은 화면에 세르게이와 다이고의 카드 결제 내역서를 함께 띄웠다.
“사실 이 두 놈들은 활동하고 있는 지역도 다르고, 직업이나 취미 생활도 같지 않아서 겹치는 부분이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다만 딱 하나가 있긴 했는데.”
문경식은 다이고의 카드 결제 명세서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금용각’이라는 식당, 뉴서울 차이나타운에 있는 가게입니다. 다이고가 2322년 10월에 결제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명세서를 짚으며.
“세르게이는 2322년 5월에 뉴서울 차이나타운에 방문해서 ‘청화춘’에 가서 저녁을 먹었고요.”
“음···.”
“이것 말고도 둘은 과거에도 자주 차이나타운을 방문했었습니다. 비록 같은 날짜와 장소는 아니더라도.”
공통점은 공통점인데, 확실한 단서라고는 볼 수 없다.
“애매하네요.”
“네, 그래서 자체 수사만 진행했고, 따로 요청은 드리지 않았습니다.”
날짜도 다르고, 식당도 다르다.
같은 부분이 뉴서울 차이나타운이라는 것만.
차이나타운은 뉴서울 관광지 중에 하나.
주말이면 미어터질 정도로 사람이 많다.
“사실 차이나타운 수사는 경찰이나 제정원으로서도 큰 부담입니다. 툭하면 민족차별이다, 혐오에 의한 과잉수사다라는 말이 나와서.”
사라진 중국.
그래서 삼한제국으로 피신한 중국계 난민들.
처음엔 잘 섞이지 않았다.
동아시아 3국이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고.
또 당시 제국에 떠도는 유언비어들.
- 유독 중국인들에게 마인이 많다.
- 과거에서부터 인육을 즐겨 먹던 놈들 아닌가.
-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인도 마인이 수두룩할 것이다.
제국 정부로서는 부담이었다.
동아시아가 삼한제국으로 통일된 지금, 자칫하면 민족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유언비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구례 3인조 마인들도 사실 중국계 아닌가.
이 시신들 몸에서 고독(蠱毒)의 흔적이 나온 것도 수상하고.
그동안 무사했다가 승전식이 끝나자마자 죽었다는 것도 미심쩍다.
승전식은 황제의 건재함을 만천하에 알리는 행사이기도 했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황제는 마인에 의해 몇 년을 고통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건재하다.
당연히 생포된 마인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테고.
고독을 찾거나 없애는 방법.
시전자가 직접 거두어들이거나, 혹은···,
‘현경급 고수가 고독에 당한 사람의 몸속으로 마나, 내공을 주입하면 찾아낼 수 있어. 그걸 없애는 것도 가능해.’
예를 들어 황제와 같은 그랜드마스터라면?
황제가 친히 마인들을 심문해 고독의 존재를 밝혀냈다면?
물론 혼원무상독령공 9성의 태주도 할 수 있다.
‘진작에 살펴볼 걸 그랬나?’
그렇지만 그땐 고독의 존재조차 몰랐다.
“제가 가봐야겠어요.”
“네? 어딜···,”
“차이나타운 말입니다.”
“혼자서요? 수사단 꾸릴까요?”
“아뇨, ···흐음, 혹시 모르니까 수사관 한 사람만 지원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차이나타운으로 가보자.
떠도는 소문이 맞는지 확인도 할 겸.
혹시 알아?
마인 냄새라도 맡을 수 있을지.
※ ※ ※
태주는 뉴서울 차이나타운에 왔다.
혼자가 아닌 둘이서.
그런데 문경식이 붙여준 사람이 다름 아닌,
“정말 영광입니다. 회장님. 이렇게 함께 작전을 펼치게 되어서···,”
“···네.”
백두 그룹의 손녀딸, 정연희였다.
“원래 황도 방위 사령부 소속 아니었습니까?”
“차출되었어요. 원래 제정원 마인파트 수사관은 이런 식으로 채용되거든요.”
“그러시구나.”
이해가 간다.
재능이 뛰어난 그녀였다.
주머니 속에 든 송곳은 튀어나올 수밖에 없지.
‘···다시 봐도 근골이 좋아.’
무공을 익히는 데 최적화된 몸이었다.
또 못 본 척해야 하나?
하지만 이건 무인으로서의 직무유기다.
아아, 이런 재능을 어떻게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있나?
태주가 자신의 아래위를 끈적하게 훑어보자 당황한 듯 얼굴이 붉어지는 정연희.
조금 무안하다.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
순간!
“니앙?”
삼백이가 또 태주의 턱 밑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어머? 고양이네요? 귀여워라.”
“니아아아···,”
주머니에서 육포 하나를 꺼내 삼백이 입에 물려주고.
“아직 나올 때가 아냐. 들어가 있어.”
“니아,”
정연희는 아쉽다는 표정을 하고선,
“저어, 우리 차이나타운에서 뭘 할까요?”
“···일단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태주는 먼저 금용각으로 갔다.
들어가자마자,
“여기 짜장면 하나랑 탕수육 하나 주세요.”
그러자 정연희가,
“전 주문 안 했는데요?”
“아! 그걸 말씀 안 드렸네요. 제가 다 먹을 겁니다.”
“네? 왜···,”
짜장면과 탕수육이 나왔다.
태주는 그릇을 자기 앞으로 놓고 흡입하기 시작했다.
정연희는 황당했다.
아니, 이 사람 뭐야?
진짜 혼자 먹어?
식사를 다 마치고 태주는 청화춘으로 갔다.
거기에선 짬뽕과 볶음밥을 시키곤.
후루룩! 쩝쩝.
‘식탐충으로 오해받겠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두 식당은 마인 다이고와 세르게이가 방문했던 곳, 혹시라도 독이 있으면 어떡하나?
마침 배가 고팠기도 하고.
그러고 나서 차이나타운을 돌아다녔다.
입가심으로 탕후루도 하나 사 먹고.
물론 혼자서.
정연희는 살짝 삐친 모양.
그나저나 제국에서 떠도는 중국계 마인에 대한 소문이 꼭 유언비어만은 아니었나 보다.
‘뭐, 차이나타운이라 해서 꼭 중국계 제국민들만 있는 건 아니지만.’
이쪽저쪽에서 냄새가 피어올랐다.
금용각에서도, 청화춘에서도, 심지어 길거리 작은 가게에서도.
‘대박인데?’
태주는 정연희를 보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제 말 똑똑히 들어요.”
“무슨···?”
“지금 당장 차이나타운을 나가서 입구에서 대기하세요. 있다가 지원 병력이 도착할 겁니다. 그때 같이 합류해서 들어와요.”
정연희의 눈동자가 커졌다.
태주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저, 저도 함께 하겠···,”
“지시에 따르세요. 어기면 더 이상 제정원에서 근무 못 할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따로 한번 만납시다.”
“네?”
“데이트 신청 같은 건 절대 아니니까 오해 마시고.”
“···으음.”
태주는 문경식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전화 받았습니다. 회장님.
“될 수 있으면 동원 가능한 각성자 부대를 모조리 끌고 차이나타운으로 진입하세요. 작전 상황입니다.”
- ···네?
“명심하세요. 완전무장하고 최대한 많이 데리고 와야 합니다.”
뚝!
태주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후드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냐아앙?”
일백이가 나왔다.
“일백아, 이제 밥값 해야지?”
“냥!”
어디부터 갈까?
제일 냄새가 강한 곳부터 쳐야겠다.
※ ※ ※
선계.
안락한 공간에서 영화와 드라마, 게임을 즐기고 싶다는 신선들의 집념은 대단했다.
어느새 외형이 다 올라간 건물.
지금은 내부 인테리어 작업이 진행됐다.
게다가 저 멀리 선 쿵쿵쿵쿵, 검선이 도로 만드는 소리도 여전히 들려왔고.
독선 당군악은 화려하게 지어진 7층 대형 누각 앞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근엄한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과 뒤쪽 선물이 함께 나올 수 있게 각도를 조정해서.
찰칵!
“흐음, 잘 나왔군.”
이렇게 빨리 짓다니.
심지어 튼튼하기까지 하다.
지구의 무기, 대포를 갈겨도 끄떡없을 정도로.
역시 신선들은 고급 인력.
공짜로 부린 건 아니다.
때마다 새참도 먹였다.
과자나 초콜릿, 사탕, 그리고 쬐끔이지만 위스키도 반 잔씩 돌리고.
하지만 선인들이 너무 많다 보니, 가지고 있던 지구 간식이 거의 동났다.
‘올 때가 됐는데.’
지구에서 넘어오는 택배 말이다.
그런데 떠올리기 무섭게,
찌르르르!
“떴다!!!”
당군악의 외침에 현장 공사 작업이 순식간에 중단됐다.
우르르르 몰려오는 선인들.
“뭐?”
“떴다고?”
“어디?”
“허어, 밀지 좀 마!”
재빨리 지구 물건을 빼고 준비한 선계 물건들로 채웠다.
주로 선도, 부적도 넣었다.
호신부는 아직 많이 남았다고 했으니 다른 부적들로.
이제 배송된 물건 확인.
그런데 태백 선인이 그토록 바라던 소주와 맥주가 보이지 않았다.
죄다 간식 같은 먹거리들.
‘흐음, 쯧쯧, 주선이 실망하겠군.’
그렇게 소맥, 소맥 노래를 불렀는데.
뭐, 다음에 칵테일 세트 보내오겠지.
그런데 가죽으로 만든 가방 하나가 함께 들어있다.
‘이건 뭐지? 명품?’
당군악은 태주가 보낸 편지를 읽었다.
천천히 내려가는 눈동자.
갑자기 흠칫하며 놀랐다.
“헉!”
아공간?
이게 된다고?
‘빠, 빨리···.’
서둘러 아공간 가방을 꺼내 열어서 발밑으로 쏟으니.
와르르르르르!
온갖 물건들이 쏟아져 내린다.
태블릿, 공기계 스마트폰, 엄청난 양의 콜라, 와인, 녹색병의 소주와 맥주, 소맥 전용잔, 심지어 아직 김이 따끈따끈 올라오는 수많은 브랜드의 치킨 상자까지.
“우와아아아아!”
“좋구나!!! 소맥이로구나!”
“어? 저, 저건···,”
“치, 치킨? 바삭바삭 치킨?”
“그럼 우리도 치맥 할 수 있는 건가.”
“허허, 감개무량이군. 드라마에서만 보던 치맥이라니.”
당군악은 싹 비운 아공간 가방을 다시 공유창고 안에 넣었다.
그리고.
“호리병박 보패 가진 선인 여기 있소?”
“나요! 나! 내가 가지고 있소. ···하지만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 원래 선도가 가득 들어있었지만 다 압수당해서.”
“상관없소! 빨리 주시오.”
“전엔 필요 없다더니,”
“필요하오! 값은 나중에 치르리다. 빨리!”
휘익!
사람 한 명의 크기를 기준으로, 뭐든 넣을 수 있는 호리병박이 당군악에게 던져졌다.
재빨리 잡아서 공유창고에.
넣자마자 빛이 픽! 하고 꺼졌다.
아슬아슬했지만 세이프였다.
< 뉴서울 차이나타운(1) > 끝
ⓒ 꾸찌꾸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