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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
태주는 죽은 핸들러의 시체를 무한공간에 넣고 하수관에서 위로 올라왔다.
“크르르르르르···,”
콰콰쾅! 쾅쾅!
여전히 백호가 날뛰는 소리.
‘잘하고 있네.’
비싼 선도를 먹였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솔직히 더 굴려도 된다.
태주는 처음 핸들러와 마주쳤던 건물의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갔다.
아직 쓰러져 정신을 잃고 있는 두 명, 그중 한 놈의 맥문을 잡고 독기를 불어넣었다.
좀 전엔 미처 확인 못 했지만 이놈들 몸에도 고독이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우우웅!
흘러 들어가는 독기.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
‘모고구나.’
자고를 통제하는 모고.
첨엔 없애려다 실패한 자고보다 몸집이 크다.
아마도 이 모고를 이용해서 마인들을 조종했겠지.
‘녹이자.’
이번엔 힘 조절을 해서, 약하게.
우우우웅!
치치치치치치···,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는 고독.
‘힘 조절이 답이었어.’
사람의 정신을 통제하는 추악한 벌레다.
동시에 독(毒)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딴 걸 독정에 추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나 더.’
치치치치치치···,
모고가 다 사라졌다.
그럼?
자고를 소유한 마인들도 죽는다.
머릿속이 터져서.
이제 끝났다는 의미.
태주는 여전히 정신을 잃고 있는 두 놈 옆에다 핸들러의 시체도 꺼내 가지런히 놓았다.
‘문경식 차장 불러야겠군.’
마인 찾아내고 죽이는 거야 자신 있지만, 수사는 제정원이 훨씬 잘한다.
그들에게 맡기자.
태주의 연락을 받고 건물 스카이라운지로 달려오는 문경식과 제정원 요원들.
“회장님!!!”
“오셨어요? 이놈들도 끌고 가세요.”
“···음?”
문경식은 놈들을 아는 듯 했다.
“흑림 곽구양과 혈귀련의 호청반이군요. 차이나타운 빌런 조직 우두머리들입니다. 그런데 이놈은···?”
“마인입니다.”
“네? 그, 그럴 리가.”
죽은 게 분명하다.
그러나 마수 상태가 아니다.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일단 제정원 본부로 옮기죠. 나중에 제가 따로 설명해드릴게요.”
“아, 알겠습니다.”
태주는 밑으로 내려갔다.
한적한 거리.
상인들도 관광객들도 모두 피신한 차이나타운엔 각성자 전투부대밖에 없었다.
순간!
“냐아아앙!”
어느새 나타난 일백이가 태주에게 다가와 다리에 몸을 비볐다.
“끝났어?”
“냐아,”
“수고했다. 밥값은 했구나.”
“냥!”
꿀꺽.
문경식은 꺼림칙한 표정으로 일백이를 힐끗 살폈다.
이제야 확실해졌다.
백호의 정체가.
태주는 웃으며 문경식을 안심시켰다.
“이쁘게 봐주세요. 착한 앱니다.”
“으음, 그, 그렇겠죠?”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인의 머리를 물어뜯던 무시무시한 백호가 저 귀여운 고양이라니.
하지만 마인말고는 인명피해가 하나도 없는 걸 봐선 착한 것도 맞고.
“현재 발견된 마인은 몇 명입니까?”
“시체 15구 확보됐습니다.”
“구석구석 수색해서 더 찾아보세요. 아마 몇 명 더 나올 겁니다.”
“더요?”
“세르게이와 다이고처럼 뇌가 터진 놈들.”
“아!”
그리고 정연희를 불러서.
“연희씨, 우리 한번 보기로 한 거 기억나시죠?”
“···으흠, 기억나요.”
“그럼 내일 구례에서, 괜찮으시겠어요?”
“네, 연차 쓸게요.”
정연희와 약속을 잡은 후, 태주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오늘 알아낸 사실은 바로바로 공유해야지.
※ ※ ※
태주는 황궁으로 들어갔다.
공식적인 입궁이 아니기 때문에, 황궁 직원들이 출입하는 뒷문을 이용했다.
마중 나온 금수호.
그런데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심지어 노골적으로 태주를 흘겨보며 헛기침까지.
“커험! 험험!”
이 사람 왜 이래?
마인을 그렇게 많이 잡아줬는데.
그러자 품속에서 일백이가 고개를 내밀더니,
“캬악!”
금수호를 보며 하악질로 위협했다.
“넌 뭐냐?”
“캭!”
찌릿!
서로 노려보는 일백이와 금수호.
“에잉!”
결국 먼저 눈을 피한 건 금수호였다.
“불만이 있으면 직접 말해주세요.”
“큼!”
“무슨 일인지 알아야···,”
“필명이가 사표를 냈네.”
“오!”
잘 됐다.
이젠 완전히 파주에 정착할 생각인가.
“원래 약속은 5년간 파견근무였잖아. 그런데 그새를 못 참고 바로 채가나?”
“유능한 사람 같아서요.”
“그걸 아는 사람이! 자네 때문에 내 노후 계획이 폭삭 망했네.”
노후 계획이라니.
“폐하께서도 건강을 되찾으셨고, 황가의 기강도 슬슬 잡혀가고, 그래서 낙향해서 편하게 살고 싶었단 말이야.”
“···그러셨어요?”
“사람을 놓아주질 않아. 지가 무슨 세종대왕인가?”
“···.”
금수호는 스스로를 황희 정승이라 생각하는가 보다.
“폐하와 협상을 해서 5년만 참기로 했어. 필명이가 황궁으로 돌아오면 즉시 인수인계를 하려고 했었고.”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서필명 비서관이 금수호의 후계자였다는 의미.
“아니, 황궁에 사람이 그렇게 없어요? 다른 사람에게 넘기시고 은퇴하시면 되지.”
“필명이 같은 놈이 어디 흔한가? 마스터보다 더 귀한 놈이었어. 얼마나 공들여 키워놓았는지 자넨 모를거야.”
“···애초에 대우를 잘 해주셨으면.”
“해줬지. 그 나이에 그만한 연봉 받는 공무원이 어디 있다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황제가 순순히 금수호를 풀어줄까?
아마도 은퇴하려면 황제가 죽어야 가능할 지도.
태주 자신도 급하다.
구례 종신 시장에 파주 영지까지 맡게 됐다.
운영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솔직히 부족하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아, 5년만 더 참았으면 황궁 탈출각이었는데, 필명이 같은 놈들을 또 어디서 구하나?”
툴툴거리는 금수호를 애써 외면하고는 황궁 후원 별채에서 황제와 만났다.
태주를 보자마자 반색하는 황제.
“어서 오게! 수고 많이 했네.”
당연히 수고했지.
물론 일이삼백이가 다 했지만.
“···그놈과 같이 왔는가? 그 고양이 말이야.”
“네. 같이 왔습니다.”
태주는 품에서 이백이를 내려놓았다.
“야아옹.”
방안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이백이.
“허허, 보통 놈은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어. ···지리산에 그 엘리트 삼두백호가 맞겠지?”
“맞습니다.”
“역시 마수가 아니라 영수였어. ···어? 이놈, 얼굴이 바뀌었군.”
“니아?”
방금 삼백이가 됐다.
“삼두백호니까요. 차례대로 얼굴이 나옵니다.”
황제는 신기한 듯 삼백이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물었다.
“혹시 비욘드 엘리트 흑악지룡도 자네와 백호가 처치했는지?”
어차피 다 알고 물어보는 것 같다.
구태여 숨길 필요도 없고.
“제가 한 건 맞지만, ···뭐, 사실 온전한 제 실력이라고는 볼 수 없죠. 아이템 도움도 있었고, 운이 좋았습니다.”
부적과 만리비검이 없었다면 꿈도 못 꿨을 일이다.
흑악지룡이 느리다는 약점도 한몫했고.
“운도 실력이야. 아이템도 마찬가지고.”
금수호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차이나타운에서 있었던 일을 말할 차례.
태주는 핸들러라는 놈에게서 입수한 정보에 대해 황제에게 설명했다.
설명이 진행될수록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두 사람.
“이거 당한 것도 서러운데, 그 새끼가 우두머리가 아니라 밑에 있는 놈이라고?”
가슴을 탕탕치며 분노하는 황제.
“그게 제일 화가 나! 부회주란 놈, 아직 살아있잖아! 난 그 복숭아 없었으면 지금쯤 죽었어. 자존심 상해 미치겠군.”
태주도 이해한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나?
“살려둬선 안 돼. 초기 각성 마인임에 틀림없어. 최소 200살은 넘었을 거란 말이지. 그놈에게 희생당한 사람의 숫자가 대체 몇 명이겠나? 내가 직접 찾아서 죽여버릴 거야.”
건강도 되찾았겠다, 더구나 부회주 놈도 상태가 완전하지 않다고 하니까.
황제는 제국군 통수권자.
고비 초원 개척 부대 하나 동원해서 근거지를 찾아내고, 막강한 화력을 동원해 쓸어버리면 일망타진할 수 있다.
그러면서 태주를 보더니.
“자넨 한동안 푹 쉬게. 이 건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혼자 끝장을 보겠다는 말이지만,
“근데 찾을 수 있을까요? 고비 초원이 얼마나 넓은데.”
한반도 6개 크기의 고비 초원.
그곳도 삼한의 영토지만 일부분일 뿐이다.
마수들도 매우 많아서 10분의 1도 개척하지 못했다.
“···으음.”
“게다가 수색을 시작하면 잡아가라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도망칠 것이 뻔하죠.”
괜히 들쑤셨다간 놓칠지도 모른다.
“그냥 차이나타운 마인만 소탕한 걸로만 끝내야 합니다. 우리가 그쪽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눈치를 주면 안 됩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부회주만 해도 그렇다.
그놈은 상처를 입고 요양 중인 상태지만 황제는 죽을 뻔했다.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부회주는 황제보다 강하다.
그런데 그 부회주를 부하로 두고 있는 회주라는 놈은 어느 정도 실력일까?
회주라는 존재만 알지, 외모, 나이, 실력, 심지어 성별이 뭔지도 모른다.
“정보 탐색부터 해야죠. 조용하고, 은밀하게.”
군대가 나서면 죽도 밥도 안 된다.
그러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황제.
“흐음, 알겠네. 그렇게 하지.”
자신도 나설 생각이었다.
좋은 기회다.
새로운 독을 찾아서 혼원무상독령공 10성 도달하는 것.
구례와는 전혀 환경이 다른 고비 초원.
그곳엔 또 얼마나 많은 종류의 독물들이 있을까?
나들이 삼아서 한번 돌고 오자.
겸사겸사 마인도 수색하고.
※ ※ ※
선계(仙界).
건물 공사가 거의 다 끝났다.
슬슬 장사를 개시해야지.
그러기 위해선 선행되어야 할 조건들이 있다.
선계의 화폐는 선도.
하지만 덩어리가 크다 보니 거래에 문제점이 있다.
초콜릿 하나에 선도 하나를 통째로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쪼개서 받을 수도 없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시, 신용카드?”
“호오! 그렇군. 좋은 생각이야. 그 큰 선도를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고.”
당군악의 제안에 초롱초롱 눈을 반짝이는 귀곡 선인과 갈홍 선인.
둘 다 머리도 좋고 술법진엔 일가견이 있는 신선들.
아이디어를 던져주자 자기들끼리 신나서 이야기한다.
“신용카드 대용으로 술법진이 새겨진 금속패를 지급하면 되겠군.”
“그렇지. 독선에게 선도를 주고 그만큼의 가치를 코인으로 집어 넣어주는 거요.”
“결제 리더기도 술법진으로 대체하면 돼. 물건을 산 만큼 코인이 줄어드는 걸로.”
“그럼 선도 하나에 얼마를 책정할까?”
당군악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선도 하나에 100코인으로 합시다. 요 작은 사탕은 1코인으로, 그럼 선도 하나로 사탕을 100개나 살 수 있는 거요.”
“···너무 싼 거 아닌가?”
“괜찮소. 내가 손해 보는 셈 치지.”
“역시 독선이야!”
선도 하나에 사탕 100개.
전보다는 매우 싸게 파는 거다.
인심 팍팍 써야지.
“그럼 손목시계는?”
“으음, 선도 200개?”
“2만 코인이군. 허허, 좋구나, 좋아!”
싸게 해야 수요가 있을 터.
선계 경제도 원활하게 돌아가고.
선도와 보패를 벌어야 태주에게 보내지.
당군악의 계획이 알려지자 선인들의 반응은 제각각.
마음껏 물건을 살 수 있다고 좋아하는 선인들이 있는가 하면, 선도가 부족해 애를 태우는 선인들도 있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소!”
“맞아! 뒤엎어버립시다.”
“신선을 호구로 아나.”
“이건 명백한 갑질이야.”
“즉시 항의하러 갑시다.”
우르르르,
신선들이 몰려간 곳은 태상노군의 거처.
“한 달에 선도 하나가 웬 말이냐! 각성하라!”
“우리 신선 노조는 한 달에 선도 300개 인상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소.”
“투쟁! 총파업이다!!!”
맨날 놀고먹는 신선들이 무슨 파업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날마다 몰려가 태상노군을 괴롭혀댔다.
그 와중에 또 와서 당군악에게 질문을 던지는 검선.
“할?”
실로 집요했다.
이러다 바이크가 안 오면 큰일 날 정도.
“안···.”
그때였다.
찌르르르!
순간 머릿속에서 울리는 배송 신호.
‘벌써?’
배송 간격이 생각보다 빠르다.
검선의 집념이 만들어 낸 결과인가?
당군악도 긴장했다.
태주가 자비를 베풀었는지.
그리하여 할리 바이크가 들어있을는지.
천천히 공유창고를 확인해보니.
‘오!’
기어코 왔다.
번쩍번쩍한 외관을 자랑하는 두 바퀴 탈것.
당군악은 재빨리 물건을 옮겼다.
아공간에 든 물건도 빼내고.
하지만 자신이 보낼 물건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선도 50개 정도.
그동안 장사를 하지 못해서 벌어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패도 마찬가지.
몇몇 선인을 제외하고는 보패를 자식같이 아끼는 자들이 대부분, 그래서 그들에게 보패를 쏙쏙 빼먹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미안하다. 태주야.’
부끄러워 미치겠다.
이 귀한 지구 물건들에 대한 대가로 선도 50개밖에 줄 수 없다니.
“할?”
당군악이 침묵하자 또 다시 물어오는 검선.
“할?”
“왔.”
“하알···, 뭐? 다, 다시 말해보시오.”
검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히 들었다.
‘안’이 아니라 ‘왔’이었다.
“맞소. 배송이 왔소.”
당군악은 무한공간에서 할리 바이크를 꺼냈다.
“어억!”
검선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
환호가 아니라 비명에 가까웠다.
그토록 소원했던 할리.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다.
“허허허,”
검선의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할리였다.
인간계, 선계, 천계 등을 통틀어 이런 비슷한 물건이 존재하기라도 하나?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바이크의 몸체를 한참이나 어루만지더니.
“보, 복숭아 몇 개면 되오?”
“그냥 가져가시오. 복마검법에 대한 선물이라고 보면 되겠지.”
“···태주 대협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주시오.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다고.”
사방에서 구경꾼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허허, 거참, 저걸 실제로 보게 되는군.”
“부럽도다.”
“난 전동 킥보드라도 있었으면 좋겠어.”
“그렇지. 도로도 있으니까.”
“그건 안 파나?”
구경꾼 중에는 탁탑 신장도 있었다.
낯선 복색의 누군가와 함께.
“독선, 오랜만이요. 언제부터 영화 상영을 하는지 궁금해서.”
“곧 할거요. ···근데 이분은?”
“아! 황천계에 있는 내 친구, 서로 인사 나누시오.”
이젠 황천계에서도 왔다.
“하하! 말씀 많이 들었소이다. 강림 차사라고 합니다.”
“독선이라 불러주시오.”
마침 잘됐다.
“강림 차사, 물어볼 것이 있는데,”
“뭐든, 내가 답해줄 수 있는 거라면 해드리리다.”
“그···, 인간계에서 횡포를 부리던 천마라는 놈 알고 있소?”
“모를 리가! 우리 황천계에서도 벼르던 놈이었는데. 그대가 황천으로 보냈다는 것도 알고 있소.”
“그놈, 지금 어디에 있는지···,”
“당연히 무간지옥(無間地獄)이지, 영혼이 넘어오자마자 대왕께서 그곳에 처넣으셨소.”
꼴 좋다.
당군악은 속이 시원했다.
< 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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