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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장 준비 >
백서연이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가지고 왔다.
태주는 계약에 앞서 미리 알아 두어야 할 굵직굵직한 사항들을 정연희에게 설명했다.
“일단 제정원에서 나와 주셔야 합니다. 어려우시겠지만 제가 도와 드리···,”
“바로 사직서 제출하겠습니다.”
군에서 제정원으로 차출된 그녀.
들어간 지도 얼마 되지 않아 나오기가 힘들겠지만, 자신이 요구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3년 동안만 고생해주세요. 태홍 바이오 파주 지점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합니다. 3년이 아니라 10년이라도,”
10년까지야, 3년이면 넉넉하다.
“가끔 DMZ 마수 밀집지대 토벌에도 힘을 보태주시고···,”
“빠지지 않고 나갈게요.”
그녀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겠고, 토벌이 성공하면 영지도 넓어지겠고.
“제가 키우고 있는 제자들의 복마검법 진도가 느립니다. 연희씨가 깨달은 복마검법 심득을 조금만 가르쳐주시면···,”
“네, 맡아 보겠습니다.”
직접 가르쳐보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검후라는 특성을 획득한 정연희가 자신보다 낫다.
“파주는 매우 낙후된 동네입니다. 초반엔 지내기 어려울 수도···.”
“제 특기가 적응이에요. 그런 게 불편했으면 사관학교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긍정의 답변이 튀어나왔다.
고민은 하고 대답하나?
아무래도 복마검법에 제대로 꽂힌 모양.
“대신 저도 조건이 있어요.”
그렇지.
뭔가 나올 때가 됐다.
“말씀해주세요. 최선을 다해 맞춰볼게요.”
“제정원에서 마인 검거 요청이 들어오면 꼭 절 데리고 가주셔야 해요.”
“아···.”
왜 그런지 알겠다.
정욱철 회장에게서 들은 기억이 난다.
아픈 과거가 있는 손녀라고.
‘아버지가 마인에게 습격을 당해 돌아가셨다고 했나?’
그러면서 스마트폰을 꺼내는 정연희.
“보여드릴 게 있어요.”
띠링!
신호가 울리더니 태주의 폰으로 메시지가 전송됐다.
확인해보니 첨부된 파일이 있었다.
“···사진이군요. 그것도 마수화된 마인.”
“아빠를 죽였다고 의심되는, 아니 확실시되는 마인의 모습이죠.”
“이놈을 죽여달라는 겁니까?”
“아뇨, 그 반대입니다. 만나더라도 절대 죽이지 말아주세요.”
“네?”
“제가 직접 죽일 거니까.”
“아하!”
역시 걸크러시 정연희.
지금은 힘에 부칠지 몰라도 복마검법만 잘 익히면 웬만한 마인들은 상대도 안 될 것이다.
남은 건···.
“성인이시긴 하지만 집에다 이야기 안 해도 상관없을까요?”
“괜찮아요. 그렇지 않아도 할아버지가 제정원 그만두고 파주에 내려가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요? 왜?”
“파주 백두 건설 본부장 자리라도 맡으라고.”
알 것 같다.
백두 건설도 마음 단단히 먹었다.
아파트에 백화점, 호텔, 공장 등등 대규모 투자가 들어올 계획.
“그런데 정작 백두 건설 본부장이 아니라 태홍 바이오 파주 지점을 맡아 파주로 가게 셈이죠.”
“어, 정회장님이 뭐라고 하시면···,”
“아뇨. 오히려 좋아하실걸요?”
좋아하다니?
아무튼 서로 간의 서명으로 계약이 이루어졌다.
태주는 공기계 스마트폰을 그녀에게 건넸다.
태블릿에서 미리 복사해 둔 것.
“복마검법 나머지 초식입니다. 다 익혔으면 반드시 기계 없애주세요.”
“···가, 감사합니다. 열심히 익힐게요.”
그나저나 아이템도 마련해야 한다.
일반 마수들이야 걱정이 없지만 문제는 엘리트 마수.
그냥 검 가지고는 안 된다.
성능이 뛰어난 무기가 있어야 한다.
마스터 수준에 맞는 무기를.
태주가 예상하기론 제자들 모두 1년 안에 마스터에 오를 것이다.
정연희는 더 빠를지도.
‘최소 9자루는 필요한데···.’
제자들 8명과 정연희까지.
뭐, 제작해서 나눠주면 된다.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정연희의 합류로 파주는 걱정이 없어졌다.
이제 마음 놓고 출장 준비해도 되겠다..
생각보다 길어질 전망.
한 석 달 정도를 기본 일정으로 잡고.
목표는 독정에 새로운 독 DNA 추가, 그로 인해 혼원무상독령공 10성 달성, 그리고 고비 초원에 숨어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마인 조직 탐색.
하나 더 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백홍표 원장을 만날 계획이다.
※ ※ ※
이런저런 준비로 시간을 보내고.
태홍 바이오 본사.
태주의 집무실.
고비 초원으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무턱대고 가진 않는다.
마인이 고비 초원에서 숨어지낸다고 가정해보자.
놈들도 먹고살아야 한다.
기반시설이 충분한 곳, 통신도 터져야 하고.
어느 정도 모양새가 갖춰진 도시로 가야 한다.
그걸 감안해서 목적지를 정했다.
“냐앙···?”
“그래, 너도 갈 거야.”
“냥!”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이삼백이와 함께 가니까.
무한공간도 가득 채웠다.
고비 초원에서도 당군악에게 물건을 보내야 하니까.
순간!
똑똑,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백홍표 원장.
“김회장.”
“아! 형님, 어서 오세요.”
“언제 가려고?”
“오늘 밤에요. 준비는 다 했습니다.”
“그래? 전에 자네가 이야기한 거···, 내가 알아봤어.”
태주가 백홍표에게 부탁한 건 다른 게 아니다.
“구례시에서도 마나 거부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더라고.”
“그렇겠죠.”
마나 거부자의 비율은 전체 인구에서 약 5%.
100명 중 5명이 마나 거부자란 말이다.
당연히 구례에도 있다.
“20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의 증상자들과 접촉해봤네. 다들 승낙하더군. 각서도 다 받았어.”
보통 마나 거부자의 수명은 20대 초중반, 즉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태주의 다음 약은 무조건 마나 거부증 치료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효과를 알아보려면 어쩔 수 없이 실험해 볼 마나 거부자들이 있어야 한다.
백홍표는 그들을 만나 임상 대상자가 되어 줄 것을 부탁했고.
“수고하셨습니다.”
“···가능하겠나? 마나 거부증은 질병이나 독이 아니잖아.”
맞는 말이다.
선천적으로 마나를 거부하는 몸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천형, 고치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
“반드시 치료법을 찾아낼 겁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마나 거부증에 걸린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이겠나.”
마나 거부증 치료법 찾기.
다양한 독들을 조합해 약이 아닌 독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신체 자체를 재구성하는 단계까지 간다.
이것이 이번 여정의 또 다른 목표.
그리고 그날 밤.
태주는 만리비검에 올라탔다.
먼저 서쪽으로 가서 중국 땅을 지난 다음 북쪽 고비 초원으로 간다.
태주의 최종 목적지는 고비 초원 개척도시 중 하나인 ‘나판’이었다.
고비 초원 개척 사단이 마수 밀집 지대를 토벌하고 지나간 후, 한창 개발이 이루어지는 도시.
원래는 조금 큰 도시로 갈까 생각했는데, 나판시 주변에 남아 있는 잔존 마수가 많이 분포해 있었다.
또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고비 초원에서 가장 큰 개척도시 바룬도 있어서 유동 인구도 많다.
마인들이 있다면 나판, 아니면 바룬,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먼저 나판에서 시작해보자.
※ ※ ※
푸다다다다다닥!
할리 바이크 특유의 머플러 소리가 선계에 울려 퍼졌다.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온다!”
“할리야, 할리구나!”
“어디, 어디···?”
푸르르르르,
검선이 탄 바이크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허, 기가 막히는군.”
“어쩜 저렇게 멋질까?”
“난 처음엔 전혀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아니, 검이나 타고 다니던 동빈 선인이 할리 바이크 타고 다닐지 상상이나 했겠소?”
부드럽게 선계 멀티 플렉스 앞에 멈춰 선 바이크.
더거덩! 더거덩, 부륵, 부르륵!
검정색 가죽 수트에, 장갑, 헬멧, 붉은색 수실이 달린 검을 등에 멘 검선이 바이크에서 내렸다.
“후우!”
검선이 오토바이 헬멧을 벗었다.
그러자 짧게 깎인 머리가 드러났다.
오직 헬멧을 쓰기 위해서 과감하게 머리카락을 자른 그였다.
헬멧을 벗느라 드러난 그의 손목에서 은색 시계가 반짝 빛났다.
“오오오오오!”
“미쳤구만.”
“선자들이 보면 난리가 나겠어.”
검선은 스마트 엔진 버튼을 눌러 끄고, 헬멧과 장갑을 바이크 수납함에 넣고, 건물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구경꾼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이, 주위 신선들의 시선을 즐기는 듯했다.
선계 멀티 플렉스 1층에는 귀곡 선인이 백과사전을 탐독하며 지구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공부 중이었고, 철장 선인은 연신 콜라를 마셔가며 꺼억, 꺼억, 트림하고 있었다.
장사를 준비 중인 칵테일 바도 있었다.
하얀 셔츠에 검정색 조끼, 그리고 나비넥타이 차림의 주선 태백 선인.
깨끗한 무명천으로 유리잔을 정성 들여 닦고 있는 그에게 검선이 다가갔다.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작작 좀 하시오. 007 흉내는 그만두고.”
“자연스럽지 않았나?”
“검을 찬 제임스 본드 흉내가 자연스럽냐고?”
“흠, 이 검이 문제였군. 허나 이건 내 정체성이라, 아무튼 칵테일은 안 파는 거요?”
주선은 코웃음 쳤다.
“흥! 아직 개시도 하지 않았는데, 그리고 칵테일 사 먹을 돈이나 있는지 모르겠군.”
하우스 푸어도 아니고, 카 푸어도 아니고, 선계 유일의 바이크 푸어 검선.
한마디로 빈털터리.
“곧 신용카드가 나오잖소. 그걸로 긁으면 되지.”
“허허, 이거 큰일 날 신선이로군. 무턱대고 긁다 보면 패가망신이라는 말도 못 들었나?”
“···.”
신용카드.
정확히 말하면 신용패였다.
당군악에게 미리 선도를 건네 충전해서 사용하는 거지만, 외상 거래도 가능하다.
물론 그때는 숫자가 마이너스로 찍힌다.
“나중에 그 바이크 다시 빼앗기고 싶은 게로군.”
“···왜?”
“선계 은행이 바로 독선이요. 돈을 끌어썼다가 갚지 못하면 바이크라도 팔아야지. 아니면 손목시계라도 팔던가.”
그러자 어두워지는 검선의 표정.
바이크와 손목시계, 둘 중 하나라도 포기할 수 없다.
결국 돈을 벌어야 한다.
‘어디서 버나?’
태상노군 앞에서 시위라도 해봐?
아니면 몰래 또 도원을 털던가.
‘그러다 들키면 뇌옥에서 나오지도 못할 텐데.’
심란한 검선은 다시 건물을 나왔다.
할리 바이크에 올라타려고 하는데.
“검선님.”
“응?”
세로로 길게 갈라진 치마에, 맨다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몸을 배배 꼬면서 연신 눈웃음치는 여자, 도화궁 소속인 미호 선자였다.
“왜?”
“저 한 번만 태워주시면 안 되나요? 같이 달리고 싶어요. ···검선 오빠?”
이것 봐라?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드라마, 영화가 여럿 버려놨다.
‘오빠 같은 소리하고 있네.’
물론 태워줄 마음은 있다.
“···선계 한 바퀴에 선도 1개.”
“지, 지금은 선도가 없어서, 다음에 가져올게요. 이번엔 외상으로?”
미호 선자가 한쪽 눈을 살짝 감았다 떴다.
그녀의 고혹적인 눈매, 가히 치명적인 유혹.
영물 출신으로 등선까지 했지만, 꼬리 아홉 개의 본성이 어딜 가겠나?
“닥쳐라! 요망한 여우 년아! 통하지도 않는 염기는 그만 뿌려!”
“쳇!”
상남자 검선은 미호 선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디 감히 요금도 없이 타려고!
바이크 안장에 앉아 시동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 데.
‘어?’
그의 눈에 들어온 바이크의 동그란 계기판.
그 중앙에 주황색 불이 하나 들어왔다.
‘이게 무슨 표시더라?’
그래서 건물 안에 있던 귀곡 선인을 끌고 나와 물어보니.
“귀곡, 주황색 불이 들어왔는데, 이건 뭐요?”
“쯧쯧, 연료 경고등도 모르오? 기름을 넣지 않으면 더 이상 못 타겠군.”
“허어!”
깜빡 잊었다.
‘이거 기름으로 가는 거였지?’
낭패였다.
기름이 없으면 어떻게 타나?
‘···가만!’
김태주 대협은 공명정대하고 꼼꼼한 사람.
그가 이걸 신경 쓰지 않았을 리 없다.
‘분명 기름도 같이 보냈을 거야.’
검선은 바로 당군악을 찾아갔다.
“독선! 물어볼 게 있소.”
“응? 뭐요? 지금 바쁘니 별일 아니면 다음에···,”
“바이크 연료가 다 떨어졌소. 혹시 여분이 있는지?”
“아···, 휘발유 말이군.”
당군악은 씨익, 웃었다.
바이크는 복마검법의 대가로서 태주가 공짜로 주라고 했지만 휘발유는 아니지.
“휘발유 한 통에 선도 10개, 네고 없소. 싸게 파는 거요.”
당군악의 말에 이마를 찌푸리는 검선.
“···싸다는 건 알겠지만 지금 내가 가진 선도가 없어서.”
“그럼 어쩔 수 없지. 손으로 끌고 가든가.”
“큼큼, 외, 외상 안 되오?”
“될 리가 있겠소? 내가 뭘 믿고?”
당황한 표정의 검선.
한창 바이크 타는 재미가 들렸는데.
“방법이 없겠소? 제발 사정 좀 봐주시오, 독선.”
당군악은 고민하는 척하더니.
“선도가 없으면 현물도 가능하지.”
“혀, 현물?”
“내가 알기론 검선이 모아왔던 수집품이 있지 않소?”
“···.”
검선의 수집품이라면 뭐겠나?
바로 검(劍)이지.
소문 듣기론 검선의 거처에 보관하고 있는 검이 수백 자루란다.
“등선도 했는데, 검이 무슨 필요가 있겠소? 몇 자루만 내게 파시오.”
“으음···,”
검선은 고민했다.
오랫동안 모아왔던 수집품이었다.
대부분이 도망친 요괴 잡으러 인간계에 강림할 때마다 가져왔던 것들.
선계에서 만들어 태주 대협에게 넘겨준 만리비검을 제외하고도 많이 있었다.
검선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검은 한 자루만 있으면 돼.’
검의 신선, 나뭇가지 하나만 잡아도 그게 바로 검이다.
그래도 애써 모은 거라 조금 아깝긴 하다.
“괜찮은 보검은 자루당 100개로 쳐주겠소.”
검선의 눈이 번뜩였다.
“갑시다.”
“응?”
“네 거처로 가서 검을 골라 봅시다. 개당 100개 주는 거 잊지 말고.”
“내가 사기꾼으로 보이시오?”
솔직히 사기는 맞지.
검선의 검은 명검이 아닌 것이 없다.
사실 금속 제련을 놓고 봤을 때 지구의 기술이 강호무림보다 훨씬 뛰어나다.
제일 처음 태주에게서 온 물건은 지구에서 만들어진 유엽비도, 그것만 봐도 강호의 숙련된 대장장이가 만든 암기에 비견할 만하지만.
‘그 이상으로 가면 이야기가 다르지.’
현철과 운철 등으로 만들어진 보검.
장인의 혼이 실린 무기들.
지구 무기에 꿀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좋을지도.
검선의 거처로 가서 가장 좋은 걸로만 뽑아 태주에게 넘겨줄 생각.
복마검법만 배우면 뭘 하나?
걸맞는 무기도 있어야지.
“뒤에 타시오. 내 허리 잡으시고.”
“···그건 사양하겠소.”
푸다다다다다!
길게 뻗은 도로 위로 독선을 태운 검선의 바이크가 질주한다.
“참! 검선.”
“왜 그러시오?”
“혹시 요마계 가봤소?”
“당연히 가봤지.”
“그럼 거기에 독을 가진 요마도 있소?”
“있다 뿐이오? 지긋지긋할 정도요.”
“오!”
언제 한번 가봐야지.
독령을 이루고 독선으로 등선한 자신에겐 새로운 독이 무쓸모지만, 태주에겐 그렇지 않다.
또한 호기심도 든다.
요마계 독물들은 과연 어떤 놈들일까?
< 출장 준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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