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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간지옥(2) >
마공은 보통 흡정 계열의 기공인 경우가 많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보통은 상대방의 정혈을 빨아들여 자신의 내공을 키우는 방식.
익히기 쉽고 성취가 빠르다.
남이 이룬 걸 쏙 빼먹는데, 얼마나 편한가?
성취가 느린 정파의 무공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마공의 특성.
처음 익히기엔 쉽지만 일정 단계에 오르면 정체되어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내공을 쌓는 속도가 빠르지만 모래성처럼 불안정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폭주를 일으킨다.
조금만 어긋나도 주화입마.
마기에 잡아먹혀 미치광이가 되어버린다.
반면 마교 교주만이 익히는 천마 신공은 흡정 계열 마공이 가지는 단점을 보완해 정파의 신공절학과 비견할 만했다.
하지만 천마 신공도 본질은 결국 마공.
그리하여 천마가 폭주했다.
정파와 마교와의 최후 결전이 벌어진 십만대산에서 말이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거대한 회색빛 반투명 장막이 마교 본단 전체에 씌워졌다.
그 안에서 휘몰아치는 마기의 폭풍.
장막에 존재하는 모든 무인이 미라처럼 바짝 말라갔다.
천마의 발걸음에 따라 장막도 함께 움직였다.
정파 무인, 마교도, 가릴 것이 없었다.
모조리 천마에게 내공을 갈취당하고 있었다.
그 흡기의 장막 안에 당군악도 있었다.
그도 독정(毒精)의 독기를 천마에게 거의 다 빨려버렸다.
10성 대성한 독공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군악아, 당군악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구나. 네가 이렇게 먹이들을 이끌고 와줘서 내가 천마 신공을 대성했어.”
“이런 개새끼가···,”
“진작에 다 먹어 치울 걸 그랬구나. 크하하하하! 좋구나! 너무 좋아.”
천마가 먹어 치운 자들 중 놈의 아내와 자식도 있었다.
제 자식마저 잡아먹는 괴물.
뿐인가?
천마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며 충성을 다 바쳤던 충직한 신하들까지.
놈은 완전히 미쳐버렸다.
빨아들인 내공으로 온몸이 부풀었다가 다시 가라앉고, 또 부풀었다가 원래대로 돌아가고.
벌써 몇 번의 환골탈태.
놈은 인간이 아니다.
악마였다.
마귀였다.
뭐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암기는 천마에게 가까이 가기도 전에 바스러졌고, 당군악이 자신해 마지않았던 독도 통하지 않았다.
천마 신공의 대성.
비록 광인이 되었지만 놈의 육체는 멀쩡했다.
그 많은 종류의 내공을 빨아들이고도 말이다.
“난 마신이 될 것이다!”
“지랄하지 마! 누가 그렇게 놔둔다더냐?”
“킬킬킬, 어디 몸부림쳐 보아라. 가련한 독충아!”
절망적이었다.
마교 본단은 발 디딜 틈 없이 시체로 가득 찼다.
데리고 온 가솔들과 지인들을 피신시키지 않았다면 그들도 이런 신세가 되었겠지.
당군악의 육신이 미라처럼 빠짝 말라갔다.
흡정의 장막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하아아아···,”
눈앞이 희미해졌다.
천마에게 죽어간 당가의 가족들을 위해 복수를 다짐하면서 여기까지 왔지만 이젠 지쳤다.
‘···그래, 여기까지구나.’
죽음이 두려울까?
그저 못다 한 복수가 아쉬울 뿐.
‘할 만큼 했어. 좀 쉬자.’
그때였다.
꿈틀!
독정이 움직였다.
‘···응?’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진 독정이었다.
그런데 움직이다니.
‘착각인가?’
꿈틀, 꿈틀!
‘아!’
착각이 아니다.
찌이이이이잉!
독정이 연신 반응했다.
그리고,
파바바바바바바밧!
대폭발을 이루었다.
“끄윽!”
단전에서 느껴지는 독정 폭발의 충격.
왜 다 죽어가는 상황에서?
혹시 천지신명이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 건가?
독정이 부서졌다.
동시에 합쳐졌다.
꿈틀! 꿈틀! 꿈틀! 꿈틀···,
또 요동을 치다가.
파바바바바밧!
대폭발.
그때마다 전신으로 치달아 흐르는 충만한 독기.
독정이 폭발할 때 정수리도 뻥! 하고 터졌다.
쓰러져 널브러져 있던 당군악이 벌떡 일어났다.
기운의 소통.
하늘의 기운이 정수리를 통해 흘러들어와 발바닥을 통해 땅속으로 흐른다.
독정이 살아 숨 쉰다.
마치 자아를 가진 것처럼 능동적으로 움직였다.
게다가 느껴지는 신령한 기운.
‘독정이 변했어.’
뭐라고 불러야 할까.
‘···독령?’
여전히 몰아치는 마기.
마기가 독정으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분해되고 해석됐다.
당군악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스스스스스스!
마교의 본단, 십만대산.
시체와 함께 흩어져있는 온갖 종류의 무기들.
당군악의 손짓에 따라 쇠로 만든 날붙이들이 허공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쑤수쑥! 쑤수수수수수숙!
“음? 너···,”
천마가 놀란 눈으로 당군악을 바라보다가 뭔가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뭐지? 먹구름인가?’
하지만 구름이 아니었다.
죄다 무기들이었다.
검, 창, 칼, 도끼, 단검, 표창, 침, 비도···,
너무나 많아서 구름처럼 보일 정도.
“대체?”
순간!
콰콰콰콰콰콰콰콰!
그 무기들이 마치 폭포처럼 천마를 향해 쏟아졌다.
천마의 호신강기에 부딪히는 쇠붙이들.
파사사사사사사삿!
닿자마자 산산이 부서졌다.
“흐흐흐, 어림도 없다. 내 몸에 상처나 낼 수 있을 것 같더냐?”
그러나 떨어지는 쇠붙이들은 끝이 없었다.
심지어 부서진 무기의 금속 조각들도 하늘로 다시 올라갔다.
떨어졌다, 부서지고, 부서진 것은 다시 올라갔다가 떨어지고, 또 부서지고.
부서지면 부서진 대로, 조각이 나면 조각이 난 대로, 가루가 되면 가루가 되어서, 용오름처럼 솟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남은 건 금속의 작디작은 조각들.
극독을 머금은 쇳가루.
비가 내렸다.
후두두두두둑!
그 작은 쇳가루 하나하나마다 강기가 입혀졌다.
강기가 입혀지니 은색의 꽃처럼 피어난다.
만천화우(滿天花雨).
그제야 천마의 안색이 변했다.
“이, 이런!”
강기의 폭우.
심상치 않다.
피피피피피피핏!
천마가 펼친 흡정의 장막이 부서졌다.
호신강기도 갈라졌다.
찌직! 찌지직!
그 틈으로 무수한 쇳가루 강기 꽃비가 내렸다.
피피피피피피핏!
강기의 비가 천마의 몸에 닿자마자.
치익! 치이이이익!
살갗을 파고 들어가 녹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마침내 천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손을 들어 막으려고 했지만 그게 막아질까?
팔뚝부터 녹기 시작했다.
만독불침도 저항이 불가능한 독령(毒靈)의 독.
얼음이 녹듯 흘러내렸다.
팔이 녹아버리고, 몸통이 녹았으며 마침내 머리도 녹았다.
그게 독선 당군악이 기억하는 천마의 최후였다.
※ ※ ※
황천계의 지옥 중, 가장 극악한 곳이 바로 무간지옥.
이곳에 한 번 갇히게 되면 절대 탈출할 수 없다.
그래서 바닥이 없는 구덩이, 무저갱이라고도 물린다.
물리적 공간이지만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무한공간처럼 차원과 차원이 분리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 즉, 게이트를 통해 출입할 수 있다.
지이이잉!
강림 차사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능을 사용해 무간지옥의 문을 열었다.
“이리로 들어가면 되오.”
불이 붙은 초 하나를 당군악에게 건네주며,
“여기 이 초를 받으시오. 이 초가 다 타기 전에 나와야 하오. 아니면 아무리 신선이라도 그곳에 갇혀버릴 테니까.”
“알았소.”
당군악은 게이트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물었다.
“천마는···, 형체가 있는 거요? 예전 모습 그대로인가?”
“형체야 있지. 고통을 주려면 육신이 필요해서, 하지만 그대가 알던 그 천마의 모습은 아닐 거요. 만들어진 몸에 갇혀있거든.”
“그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들어가면 초가 해결해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다음에 만나면 치맥이나 한잔합시다.”
“치맥? 그게 뭐요”
“그런 게 있소.”
당군악은 무간지옥 안으로 들어갔다.
스우웅!
컴컴한 어둠.
오직 빛을 발하는 것은 당군악이 들고 있는 한 개의 초.
촛불이 무간지옥의 영향에서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앞쪽으로 길이 보인다.
이쪽저쪽으로 뻗은 3개의 갈림길.
촛불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왼쪽으로 가란 말이군.’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오른쪽,
가만히 있으면 중앙.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막다른 길에서 기괴하게 움직이는 생명체 하나를 발견했다.
알몸의 비쩍 마른 몸뚱이, 몸엔 털이 하나도 없었다.
“히이익!”
촛불을 가까이 가져가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피하는 괴인.
“···천마?”
멈칫!
움직임을 멈추고 당군악을 바라보는 괴인.
“당군악···,”
“그래, 나다.”
천마가 맞았다.
비록 만들어진 육신에 갇혀있지만.
놈은 한동안 말없이 당군악의 모습을 뚫어지라 관찰했다.
“···설마 너, 드, 등선했나?”
“맞다. 선계에 올라 독선이란 선명을 받았다.”
“흐흐, 흐으으으으흐흐, 히히히히힉!”
기괴한 음성을 흘리는 천마.
“흐흐흐, 신선이라, 미치겠군. 너무 불공평해.”
“뭐가?”
“무간지옥보다 신선이 된 널 보는 것이 더 고통스러워.”
당군악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불공평? 이보다 공정한 것이 어디 있나? 더러운 미치광이 살인마 새끼야!”
“그러는 넌? 나보다 더 많이 죽였잖아. 그런데 왜 넌 신선이고 난 무간지옥이지?”
“글쎄, 뭔가 법칙이라도 있는가 보지.”
“···.”
잠시 흐르는 침묵.
“이곳에 온 이유는? 날 비웃으려고 왔나?”
“그냥, 네가 무간지옥에 있다는 말을 듣고 잘 있는지 보러 온 거야.”
“소감은?”
“무척 잘 지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군. 계속 와서 보고 싶을 정도로.”
놈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이 얼마나 짜릿한 순간인가.
더 일찍 올 걸 그랬다.
“신선 주제에 잘도 돌아다니는구나.”
“원래 신선이 그래, 놀고먹는 직업이라서,”
“그래 보여. 헌데 지금 몇 시인가?”
“시간? 무간지옥에서도 시간이라는 게 있나?”
“네 손목시계에 표시된 시간 말이다.”
“···뭐?”
이게 무슨 소리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당군악은 깜짝 놀랐다.
“롤렉스로군. 비싸다던데, 저걸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아···,”
대체?
천마 놈이 롤렉스를 무슨 수로 알아?
‘선계의 일이 무간지옥까지 전달된 건가?’
황천계 차사도 알고 있으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지만···.,
“당군악, 너도 다른 세상의 같은 영혼과 만났구나. 지구 말이야.”
“···.”
천마의 입에서 나온 말.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다른 세상의 같은 영혼.
그리고 지구.
“···너도?”
“그래, 나도, 그리고 너도,”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천마에게도 일어났다는 말이다.
“어, 언제?”
“꽤 됐다.”
“···어째서 네가?”
“난들 아나? 너도 경험했으니 잘 알 거 아닌가. 막을 수도 없이 영혼과 영혼이 서로 연결되어버리는데.”
“···.”
“게다가 무려 두 번씩이나 마주했어. 참으로 엿 같더군.”
이게 말이나 돼?
천마도 자신과 같은 영혼을 만났다니.
“신기한 세상이긴 했다. 비행기와 기차, 총과 미사일, 세상을 파멸시키는 핵무기, 게다가 시스템이라니, 끌끌끌.”
확실하다.
다 알고 있었다.
“더 웃기는 건 뭔지 아나? 맙소사! 마기까지 존재할 줄 누가 알았겠나? 마인도 있었어. 비록 원시적인 방법으로 흡정을 하지만.”
지구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
영혼과 영혼이 합일을 이루었다는 의미.
그렇다면?
“그자도 너의 모든 걸 다 가져갔나?”
“천마 신공 말인가? 당연히 가지고 갔지. 모든 마교의 무공도 함께.”
큰일이다.
지구에도 천마 같은 놈이 탄생했다.
아니 이미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 천마와 자신뿐일까?
비슷한 경우가 더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진짜 내가 궁금한 것이 뭔질 아나? 너도 나와 같은 경우라는 건 이해하겠는데, 대체 손목의 그 시계는 어떻게 된 거지? 그쪽의 물건을 가지고 올 수도 있다는 말인가?”
이걸 말해줘야 해?
어림도 없다.
“술법으로 만든 거다.”
“낄낄낄, 웃기지 마라. 어설픈 거짓말은 집어치워.”
시계를 빼놓고 올 걸 그랬나?
아무튼 태주에게 경고할 준비를 해야 한다.
지구에 천마와 같은 영혼이 있다고.
“말해봐. 어떤 식이지? 물건이 무슨 수로 넘어온단 말이냐?”
“닥쳐라! 볼일 다 봤으니 그만 가겠다. 넌 이 안에서 영원히 썩어 문드러지길 바란다. 난 선계에서 노닐다가, 심심해지면 또 찾아오지.”
아직 초가 다 타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당군악은 미련 없이 뒤로 돌았다.
“잠깐! 당군악! 조금만 시간을 더 내다오.”
“···왜?”
“부탁이 있다.”
“우리가 서로 부탁을 들어줄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네가 아니라 다른 세상의 너에게 하는 부탁이야.”
“무슨?”
이 새끼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지?
“그에게 전해라. 지구의 천마를 반드시 죽여버리라고,”
“···왜?”
“흐흐흐, 천마가 둘이라니,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천마는 이를 부드득 갈며 말을 이었다.
“같은 영혼과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기분이 더러운 줄 알아? 악몽과도 같은 거야. 무간지옥보다 더 끔찍해. 넌 안 그런가?”
“···.”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놈도 나하고 똑같아. 나를 조롱하더군. 천마란 놈이 그깟 암기와 독술에 당해 뒈졌냐면서, 그러더니 진정한 천마는 자기라나?”
똑같은 놈들이다.
같은 영혼끼리 서로 비난하고 조롱하다니.
“이 무저갱에서 두 번의 영혼 연결이 이루어졌어. 그때마다 날 비웃었지.”
마치 짐승처럼 네발로 기어 당군악에게 다가오는 천마.
“놈에 대한 모든 걸 알려주겠다. 그놈을 무조건 죽이라고 해. 천마는 하나로 족하다!”
정말이지 예상치도 못한 천마의 태도.
당군악은 처음 태주와 영혼이 연결되었을 때를 떠올렸다.
자신과 같은 영혼이 다른 세상에 있다는 건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고, 엄청 반가웠으며, 또 흐뭇했다.
그래서 뭐라도 주고 싶었다.
그저 잘 되길 바라는 마음.
그건 태주도 똑같았다.
“다른 세상의 널 만났을 때 반갑지 않았나?”
“크크크, 반갑기는 개뿔, 소름이 끼쳐 닭살이 올라올 정도였어. 눈앞에 있었으면 먹어 치웠을 거다. 그 개자식이 내 머릿속에 있는 걸 다 가져간 것도 분통이 터져 죽겠는데.”
상상이 간다.
두 놈이 서로의 존재를 인식했을 때 벌어졌을 상황이.
지독한 자기혐오.
누워서 침 뱉기.
서로를 증오하는 같은 영혼.
진짜 웃기는 놈들이다.
“그럼 읊어봐. 너와 같은 지구의 영혼이 누군지, 어디 사는지,”
“킬킬킬, 서둘러야 할 거다. 만약 또 한 번의 영혼 연결이 이루어지면 저쪽도 오늘 이 만남을 알아차릴 테니까.”
< 무간지옥(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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