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99화 (99/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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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인된 공포(3) >

밀 농장에 굉음이 울리기 30분 전.

태주 일행은 금수호 비서관이 운전하는 자동차로 검문소 마인을 미행하고 있었다.

“들키지 않을까요?”

“괜찮아. 우리 수호, 예전에 제정원 최정예 요원이었어.”

“냐아?”

칭찬 같았지만 왠지 뾰로통한 금수호의 표정.

“제정원뿐 아니라 제국군에서도 근무했지요.”

“맞아.”

“감사원에도 있었고,”

“그, 그렇군.”

“제국 경찰청에서도 잠깐 직급을 맡았었죠.”

“···기억이 나.”

“행정기획부도,”

“···.”

“건설부, 교육부, 황궁 비서실에···,”

“그만하지?”

“네.”

금수호는 강인한 군인이었고, 민첩한 정보요원이었으며, 유능한 관료이기도 한 사람, 한마디로 다재다능했다.

이러니 황제가 안 놓아주지.

미행은 순조로웠다.

어느새 도착한 최종 목적지, 대산(大山) 농장이었다.

“밀 농장이군.”

“네.”

“마인들이 농사짓고 살 리는 없을 테고···.”

황제가 태주를 보며 물었다.

“어떤가? 냄새가 나나?”

“당연히 납니다. 아주 짙은 악취가.”

“냐아아아!”

일백이도 동의했다.

“그래?”

킁킁, 냄새를 맡는 황제.

“···이 똥꾸릉내 같은 건가?”

“그건 비료 냄새지요. 폐하.”

“냐앙!”

“흐음.”

황제는 스르르렁, 칼을 뽑았다.

번뜩이는 칼날.

제국 최고의 장인들이 모여 만든 황제의 검.

“몸을 풀 때가 왔군. 그동안 얼마나 무료했는데, 황궁에서 나와 콧바람 쐬니 기분이 끝내줘.”

“그럴 줄 알았습니다. 사실 여기 온 것도 거하게 싸움 한판 하시려는 목적 아닙니까?”

“어, 맞아. 그거 아니면 내가 왜 밖으로 나왔겠나?”

“하아, 이러다 또···,”

“냐아아아아아···,”

황제는 금수호의 걱정이 뭔진 안다.

또 부상 당해 누워지낼 수도 있다는 말.

“그런데 수호, 자넨 왜 빈손으로 왔나? 무기도 없이?”

“···경황이 없어서.”

“쯧쯧, 싸우려고 왔는데 무기를 빼먹어? 노망이 들었군. 하나밖에 없는 친우가 노망이라니, 하긴! 그럴 나이가 됐지.”

빠득!

금수호는 이빨을 악물었다.

“네, 노망 맞습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비서관 그만두겠습니다.”

“응, 안 돼!”

가볍게 무시하는 황제.

“저기 작대기라도 들어! 싸움하는 데 방해되지 말고.”

“···.”

“냥!”

순간!

태주는 무한공간에서 몰래 꺼낸 검 한 자루를 금수호에게 내밀었다.

당군악이 보내온 보검.

10자루지만 당장 필요한 건 9자루, 한 자루 남는다.

“이거라도 쓰세요.”

“응? 이, 이거···.”

금수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보기만 해도 범상치 않아 보인다.

손에 착 감기는 검자루.

“대단하군.”

스르렁.

부드럽게 뽑히는 검.

싸늘하게 느껴지는 예기.

“이런 검은 평생 잡아보지도 못했어.”

스우우웅!

강기를 주입하자 아무런 거스름 없이 마나가 쭉쭉 들어간다.

검신이 우윳빛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내가 사용하던 검보다 몇 배는 좋아.”

사실 태주는 금수호에게 빚이 있었다.

서필명을 파주 행정관으로 영입하면서, 황제에게서 벗어나려던 그의 노후 계획을 망쳐 놓은 것 말이다.

검이라도 줘서 기분을 풀어줘야지.

“마음에 드세요?”

“들다마다! 고마워. 잘 쓰겠네.”

황제의 눈이 가늘어졌다.

“금비서관.”

“네?”

“내 검하고 바꾸세.”

“싫은데요?”

“황명이네.”

“어기겠습니다. 기분 나쁘시면 귀양이라도 보내시던가.”

“···.”

황제는 포기하지 않을 눈빛이었다.

두고 보자는 식으로 금수호를 힐끗 흘겨보고는,

“자, 이제 어떻게 할 텐가? 조용히 움직여서 한 놈씩 처리할까, 아니면···,”

순간!

화아아아악!

높게 지어진 마수 감시 초소에서 강한 서치라이트가 태주 일행을 비췄다.

“이런! 너무 오래 노닥거렸어.”

맞다.

적의 소굴을 앞에 두고 잡담이나 해댔으니.

황제가 갑자기 서치라이트가 있는 초소를 향해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말릴 새도 없었다.

콰콰콰콰콰쾅!

대부분 나무였지만 제법 단단하게 지어진 초소가 황제의 검기 한 방에 무너졌다.

“···.”

“참나!”

“냐아아아!”

아무리 무대포라지만.

다짜고짜 검기를 날려?

심지어 일백이까지 뭐라고 한다.

참다 못한 금수호가 성난 목소리로 황제를 다그쳤다.

“폐하! 정신 나가셨습니까? 라이트 비춘 놈만 처리하면 되지···.”

“성미에 맞지 않아.”

“설마 검 안 바꿨다고 그런 건 아니겠지요?”

“···.”

그렇구나.

삐진 게 맞았다.

그러나 이것이 황제의 스타일이다.

패도의 황제.

앞을 막아서는 건 무조건 부수고 보는.

그때!

부스럭, 부스럭.

무너진 마수 감시 초소에서 누군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마수화로 변한 마인이었다.

황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마인이군.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초소를 먼저 친 거야.”

“허어!”

“니앙?”

굉음이 울려 퍼지자, 농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인들.

그리고 그중 하나.

중년으로 보이는 각성자, 부회주 자말이었다.

황제의 눈빛이 빛을 발했다.

너무나 반갑다는 표정이었다.

“여기 있었구나.”

부회주 자말도 황제와 눈이 마주쳤다.

“···황제?”

부회주 자말은 저들이 누군지 알았다.

금수호, 황제 류태현, 그리고 김태주.

저 고양이는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지만.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어디긴! 쥐새끼처럼 숨어지내는 마인 소굴이지.”

우우우우웅!

황제가 기세를 뿜어냈다.

마인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제국에서 가장 강한 각성자가 나타났다.

두 번째로 강한 금수호도 나타났다.

도망가야 하나?

마인들은 부회주 자말의 눈치를 슬쩍 봤다.

그러나 그는 황제를 보고도 태연하기만 했다.

“알고 봤더니 부회주라며? 네 주인은 어디 갔느냐?”

“흐흐흐.”

비릿하게 웃음 짓는 자말.

“멍청한 놈들, 알아서 죽을 자리를 찾아왔구나. 노망이 들어 상황판단이 안되는 모양이지?”

황제는 씨익 웃으며 답했다.

“나? 내가 노망들었다고? 우리 수호가 살짝 들었긴 했지.”

“노망이라뇨, 저 폐하보다 어린데요?”

“나잇값 못하면 그게 노망이지. 검도 깜박 잊고 다니는 주제에.”

“···.”

자말은 황제와 금수호가 나누는 농담 짓거리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놈들은 이 자리에서 죽는다.

삼한 제국은 든든한 버팀목을 잃고야 말 것이다.

자밀이 자신하는 이유.

바로 회주 때문이다.

이미 황제와 손속을 겨뤄본 자말.

황제 10명이 와도 회주에겐 안 된다.

물론 회주가 계시지 않았다면 완전 달랐을 터.

죽는 건 저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이었을 것이다.

순간!

스으으윽!

회주가 기척도 없이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인들이 그를 목격하자 모두 감격에 떨었다.

“오!”

“아아!”

“회주님!”

“회주시여! 만마의 지존이시여!”

“종복이 인사 올립니다.”

“겁도 없이 회를 침범한 하룻강아지들을 벌하여 주옵소서.”

하늘을 찌르는 마인들의 사기.

태주는 회주를 관찰하고 있었다.

‘저놈이 회주구나.’

얼굴에 마기가 모여있는 걸로 보아 역용술로 얼굴을 변화시킨 듯 했다.

진면목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어째 익숙한 느낌.

‘확실히 강하네.’

아니 강한지조차 알 수 없었다.

기세의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

또한 회주를 보자마자 든 기분, 절대독마 당군악의 기억이 떠올랐다.

‘천마 신공.’

거의 확실하다.

다만 문제는 여긴 지구.

천마가 여기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역시 영혼 연결이었어.’

퍼즐이 풀린다.

진마의 존재, 그리고 200살이나 먹은 초기 각성 마인을 수하로 두고 있는 점.

태주는 영혼 연결이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일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가 왜 또 없을까?

땅도 넓고 사람도 많은 지구에서.

‘그런데 왜 꼭 강호 무림이어야 하지? 다른 세상은 없나?’

예를 들어 마법과 오러가 난무하는 판타지 세상 같은 거.

아무튼 저놈은 강호 무림의 마교 교주 천마와 같은 영혼, 자신은 절대독마 당군악과 같은 영혼.

참으로 지긋지긋한 악연이다.

‘뭐, 여기서 끝내면 돼.’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죽이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현재 팽팽한 대치 상황.

우우우우웅!

마치 서로 간이라도 보는 듯 기세를 주고 받았다.

회주도 그렇고, 부회주도 그렇고.

만만치 않았다.

황제, 금수호, 자신,

삼한 제국 최정예가 모였다고 해도 장담 못 할 정도로.

그러나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태주에겐 강호의 절대독마 당군악도 가지지 못했던 것들이 있다.

무한공간에 들어있는 부적들, 호신부, 벽마부, 구속부, 선기가 어려있는 신령비도, 비욘드 엘리트 마나 결정체로 신선이 만들어준 암기.

그리고 이미 태주의 지시를 받아 밀밭으로 사뿐사뿐 걸어가는 이백이.

‘일단 숫자부터 줄여놓고.’

태주는 몰래 무한공간에서 사혈침을 꺼냈다.

정정당당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싸움은 선빵.

선전포고도 없는 기습공격.

그전에 눈돌리기부터.

이백이는 이미 밀밭에 있었다.

‘가자!’

태주가 신호를 하자.

“야아아앙!!!”

쑤우우우우우욱!

이백이의 몸집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집채만큼이나 계속 커졌다.

우지끈!

커진 몸에 밀려 농가 하나가 무너졌다.

“헉!”

“미, 미친!”

“···세상에.”

“사, 삼두백호?”

고비 초원 밀 농장에 나타난 거대한 삼두백호

동시에.

“크르르르르르르르···,”

가슴을 후벼파는 저음의 포효가 농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비욘드는 턱도 없지만 엘리트는 확실히 넘어선, 초엘리트 마수의 피어.

삼두백호의 무시무시한 피어는 마인들의 마수화를 강제했다.

우득! 우드드득! 우드드득!

여기저기서 변신하는 마인들.

태주는 이때를 노려 초원을 다니며 숙련한 암기술을 시전했다.

‘폭우침.’

츠리리릿! 츠리리리리리리리릿!

사혈침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무한공간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용오름처럼 치솟아 올랐다.

만천화우보다 숫자도 적고 위력도 그닥 강하지 않다.

하지만 시각적 효과만은 비슷하다.

괜히 짝퉁 만천화우라고 부를까?

지이이이이잉!

사혈침 하나하나에 강기가 맺힌다.

맞으면 수초 안에 사망하는 극독과 함께.

정점에 오르자 마치 투망처럼 퍼지는 사혈침.

촤아아아아악!

사혈침이 농장의 하늘을 덮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부회주 자말.

그는 저 작은 침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저건 맞으면 안 돼!!! 피해!!!”

자말은 다급하게 외쳤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후둑, 후두두둑! 후두두두두두두···,

분노한 자말.

비겁하게 기습을 해?

그리고 회주를 바라보면서,

“회주시여! 불충한 제가 직접 저들을···,”

그런데,

“···어?”

없었다.

“무, 무슨?”

회주가 사라졌다.

방금까지 옆에 있던 회주였다.

“···회주님.”

천경호는 이미 농장 밖에 있었다.

파파파파파파파!

엄청난 속도로 고비 초원 서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회주가···, 도망을?’

남아있는 마인들도 마찬가지.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도망?’

‘정말 도망이라고?’

‘마, 말도 안 돼.’

‘왜?’

회주가 달아났다.

만마의 지존, 자신들의 주인, 그토록 존경해마지 않았던 마인들의 든든한 버팀목, 마음의 기둥, 삶을 이끌어주시는 정신적 지주.

그 회주가 꽁지 빠지게 줄행랑쳤다.

자신들은 내버려 두고 말이다.

어찌나 빠른지 이미 까만점으로 변했다.

그리고 폭우침이 마인들을 덮쳤다.

푸푸푸푸푸푸푸푹!

“피,피해!”

“악!”

“커헉!”

“끄아아악!”

기가 막히는 건 태주도 마찬가지.

황당함도 황당함이지만, 회주란 놈이 달아나면서 사용한 보법.

익히 알고 있던 무공이었다.

이걸 지구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천마군림보를 도망치는 데 사용해?’

어처구니가 없었다.

※ ※ ※

각인된 공포.

영혼과 영혼이 연결될 때부터 새겨진 것이었다.

육체에 새겨진 흉터는 환골탈태하면 사라진다지만, 영혼의 흉터는 지우기가 불가능하다.

천경호는 하늘 위로 솟아오른 사혈침을 목격한 순간,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야 말았다.

촤라라락!

펼쳐지는 강기의 꽃.

확실하다.

만천화우다.

공포에 질린 천경호.

저게 진짜 만천화우인지 판단이나 할 수 있었을까?

파파파파파파파!

천경호의 몸이 빛처럼 쏘아졌다.

지금 당장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았다.

일단 여기를 벗어나고 나서.

천마이자 회주, 천경호는 제국 남부 대전 출신의 일반인이었다.

그래도 일명 금수저 출신.

그의 아버지는 꽤 잘나가는 군수업체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경호는 집안의 둘째 아들.

회사는 형님이 물려받게 예정이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회사 지분이 형에게로 갔다.

그래서 형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천경호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였으니까.

그에게 중요한 건 오직 자신.

이익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

그게 뭔데? 먹는 건가?

사고로 가장해 형을 죽이고, 형의 죽음을 의심해서 자신을 추궁해오는 아버지와 어머니도 함께 죽였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경찰의 수사망이 자신에게 좁혀왔다.

제국의 경찰들이 이렇게 유능했나?

결국 자살을 택했다.

아니, 자살로 위장해서 도망가려고.

적당한 시체 하나 구해 방에 놓고,

집안과 방 구석구석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붙인 후, 도망치려 했지만 탈출하지 못했다.

기름을 너무 많이 뿌렸다.

방에서 시작된 불길이 순식간에 집안 전체로 옮겨붙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 가득 찬 유독가스.

기를 쓰고 나오려고 했지만 정신은 희미해지고.

바로 그때!

다른 세상의 자신, 천마와 마주했다.

덕분에 죽음의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났고.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의 일이었다.

천경호는 천마로 다시 태어났다.

역용술로 얼굴을 바꾸고, 이름은 숨긴 채, 숨어 살았다.

그 누구도 자신이 천경호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자신이 포섭한 부회주도, 각성 마인도, 공들여 키운 진마도.

따라서 제국만 벗어나면 완벽하게 안전해진다.

‘일단 유럽제국으로 가서···,’

바다를 건너 아메리카 공화국으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신분.

천경호는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불안하지?

아무리 숨어도 결국 들킬 것 같은 예감,

‘대체 왜?’

< 각인된 공포(3)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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