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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으러 가자. >
태주가 폐관 수련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천경호가 폭우침을 만천화우로 착각하고 겁에 질린 나머지 정신없이 도망쳤던 그때.
천경호는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고비 초원을 내달렸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그제서야 드는 생각.
‘···진짜 만천화우가 맞을까?’
무간지옥의 진짜 천마와 기억을 공유한 천경호.
그래서 십만대산 마교 본단에서 당한 그 끔찍한 만천화우의 위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흐음, 조금 모자란 것 같은데.’
하지만 도망친 건 잘했다.
현장엔 황제와 금수호, 거기에 김태주의 명령을 따르는 엘리트 이상급의 마수가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싸웠어도 밀렸을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절대 자신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잠시 쉬자.’
조금 지친다.
천마 신공이라도 돌리면 괜찮을 텐데 매개체가 없다.
급하게 도망치느라 엘리트 결정체 하나 챙기지 못했다.
고비 초원을 통과했으니 중앙아시아쯤인가?
가까운 곳에 도시라도 있을 법한데.
바로 그때!
부르릉! 부릉! 부우우웅!
‘음?’
저 멀리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자동차들,
거의 다 오프로드 SUV였다.
‘설마?’
천경호는 벌떡 일어났다.
추적자가 붙었나?
‘이런!’
눈에 힘을 주고 자세히 살펴보니.
‘휴우.’
제국군은 아니었다.
평범한 사냥꾼 복색.
머리와 눈동자를 보니 중국 유민 혹은 제국민.
부르릉, 부릉!
천경호를 가운데 두고 뱅뱅 도는 자동차들.
차 유리창을 열고 소총과 권총을 든 놈들이 고개를 내밀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끼얏호!”
“겁도 없는 놈이구나. 여길 혼자 지나가다니.”
“크하하하하!”
“쫄았냐? 새끼야?”
중국어.
어떤 놈들인지 알겠다.
‘마적이네.’
대부분 일반인, 각성자는 단 한 명, 저놈이 두목 같다.
그런데 저 각성자가 평범한 놈이 아니다.
‘···이게 웬 떡이지?’
그렇지 않아도 지쳐서 마기가 고프던 참이었는데.
천경호의 얼굴엔 각성 문양이 없다.
그래서 안심하고 달려왔겠지.
끼익!
SUV 차량들이 멈췄다.
그 안에서 줄줄이 나오는 마적들.
“손들어!”
“어딜 꼬나봐?”
“야! 넌 저 새끼, 홀라당 벗겨버려.”
그러자 천경호가 한발을 내디뎠다.
쿠웅!
파아아앗!
발밑에서 피어오르는 먼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강렬한 기세.
“흡!”
“···어.”
“이, 이게?”
“으으으으으.”
“···.”
모두들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툭! 투투툭! 투둑!
가지고 있던 총기들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천마군림보.
단 한 발자국 움직임으로써 상대를 제압하는 천마의 독문 무공.
때로는 빠르고 변화무쌍한 보법의 일종이지만 동시에 상대를 제압하는 공격 기술이기도 하다.
천마군림보는 원래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다.
도망치는 게 아니라.
뿌득! 뿌드드득!
마적 중 딱 한 명 있던 각성자의 몸이 변했다.
커진 몸체, 길어진 손톱, 날카로운 이빨, 털이 숭숭 올라온 얼굴.
놈은 마인이었다.
천마군림보로 인해 강제 마수화됐다.
저벅저벅 다가가는 천경호.
“제, 제발 사, 살려···,”
씨익, 웃으며 마인의 정수리로 손을 뻗었다.
“큭!”
삽시간에 빨려가는 마기.
“끄아아악!”
그 커다란 마인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마기 흡수.
동시에 천마 신공이 운기를 시작했다.
“한숨 돌렸군.”
여전히 다른 마적들은 꼼짝도 못 했다.
천경호가 그들을 보며 물었다.
“여기서 유럽으로 가는 길 아는 놈? 손 들어봐.”
그러지 슬며시 손을 올리는 일반인 마적.
“운전은?”
“···하, 할 줄 아, 압니다.”
“그래?”
순간!
퍼벅! 퍼버버버벅! 퍼벅!
손을 든 마적을 제외하고 나머지 놈들의 머리가 한순간에 터져나갔다.
“허억! 제, 제발!”
“쫄지마. 살려줄 수도 있어.”
“저, 정말입니까?”
천경호는 오프로드 자동차 한 대에 올라타며 말했다.
“가자.”
“네, 네!”
덕분에 편하게 가게 생겼다.
유럽 제국에서 적당한 도시를 골라 일단 거기서 숨어지낸다.
될 수 있으면 조용히.
그리고 다시 아메리카 공화국으로.
아메리카 대륙은 숨을 데가 많은 곳이다.
특히 남부 아메리카는 마인의 천국이라 불려서 먹을 것도 많다.
일단 유럽에서 여비도 마련하고 숨을 돌렸다가 건너가야지.
누가 자신을 알아봐?
절대독마 김태주와는 절대 마주칠 일이 없을 것이다.
천경호의 생각은 맞은 듯했다.
유럽에 도착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 ※ ※
태주의 자택 지하수련실.
아직 당군악과의 영혼 연결이 끊기지 않았다.
독정 폭발.
거의 하루 꼬박 이루어졌다.
인면지주의 환각독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육체가 아닌 정신에 작용하는 극독.
때마침 독정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바깥으로 나가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모른다.
파파팡! 팡팡!
독정 폭발로 인한 분해, 그리고 재구성.
혼원무상독령공 10성 대성의 순간.
독에 대한 이해도가 급상승했다.
머리로 익히는 지식이 아니라, 독정의 독 분석 및 조합 능력 말이다.
또한 당군악과의 영혼 연결.
그간의 경험과 기억이 머릿속에 쏙쏙 박혔다.
‘선계가 많이 변했네.’
더 이상 무료한 감옥이 아니었다.
활력과 생동감 넘치는 세상이었다.
당군악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영혼이 연결되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주고받는 교감.
순간!
찌르르르, 찌르르르, 찌르르르.
마구마구 울리는 배송 신호.
이게 왜 지금?
‘···어.’
두 개의 창이 떠올랐다.
하나는 자신의 무한공간, 하나는 당군악의 무한공간.
심지어 옮길 수도 있었다.
이게 웬 대박?
자신과 당군악의 무한공간이 공유되었다고?
영혼이 연결되면서 이루어진 반짝 이벤트.
‘어서 가져가요. 연결이 끊길라.’
당군악이 태주의 무한공간에 든 물건을 자신의 공간으로 옮겼다.
태주가 일상에서 쓰는 물건들을 제외하고,
예를 들어 암기라든가, 독물이라든가, 개인용 장비라든가.
태주도 그렇게 했다.
당군악의 무한공간엔 수백 개의 선도가 가득 쌓여있었다.
개중엔 상품과 최상품 선도들도
‘다 가져가도 되나?’
이 귀한 물건들을.
그럼 염치없는 짓이다.
지구로 따지면 100억 넘은 최상급 영약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 선도인데.
그러자 당군악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해왔다.
먼지 한 톨 남기지 말고 싹 가져가라고, 자신도 그렇게 하겠다며.
뭐, 하는 수 없다.
싹 옮겨야지.
그래서 당군악이 선계에서 사용하는 물건만 빼고 싹 옮겼다.
서로 비워지고 채워지는 무한공간.
너무 기분이 좋다.
이런 이벤트 또 한 번 안 하나?
아마 독령이 씨앗을 틔워 완전하게 각성하면 다시 기회가 생길 수도.
그리고 잠시 후.
영혼 연결이 결국 종료됐다.
‘하아,’
많이 아쉽다.
그냥 얼굴 대고 마주 앉아서 밤새도록 썰이나 풀고 싶다.
아니면 정연희, 황제, 금수호처럼 둘이서 대련이나 해보던가.
물론 상대도 안 되겠지만.
아무튼 이룰 건 다 이뤘으니.
‘밖으로 나가자.’
지하실 수련장 문 가장자리를 용접해놓아서 열지도 못한다.
태주는 탈명비도에 강기를 일으켰다.
찌이잉잉!
선명하게
확실히 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독기뿐만이 아니라 강기도 농밀해졌다..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은 바로 무한공간.
엄청나게 커졌다.
그에 발 맞춰 공유창고도.
쑤욱!
생크림 케이크에 칼을 집어넣듯 별 저항 없이 들어가는 탈명비도.
서거거거거거!
그 두꺼운 강철문이 네모반듯하게 잘렸다.
“어? 스, 스승님!”
“순철아. 잘 있었니?”
“넵! 기다렸습니다.”
순간!
어떻게 알았는지 삼백이가 조그만 발을 빠르게 움직여 달려오더니.
도도도도도도!
폴짝, 뛰어서 달려와 안겼다.
“니앙!”
마침내 폐관 수련이 끝났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
※ ※ ※
폐관 수련이 끝난 뒤, 태주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돌렸다.
그동안 받아놓고 답장을 하지 못해 쌓였던 엄청난 숫자의 미확인 메시지들.
황제부터 시작해서 금수호, 오진현 중장, 리더스 클럽 오너 이고르, 백두 그룹 정욱철 회장···.
그러고 나서 고아원 원장 백홍표를 만났다.
“어떤가? 진전이 있었나?”
“거의 다 왔습니다.”
“흐음, 내가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했네만···,”
어쩐지 표정이 어두운 백홍표.
“무슨 일 있습니까?”
“사실 얼마 전에 우리 고아원에 마나 거부증을 앓고 있는 아이가 왔거든. 청소년인데도 증상이 심해서 계속 누워지내는 상황이라.”
서둘러야겠다.
혼원무상독령공을 대성은 마나 거부증 치료제를 만들기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다.
천마 처리하고 돌아와 바로 실험에 들어갈 생각.
그러고 나서 태주는 백서연을 만났다.
“또 가신다고요?”
황당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백서연.
물론 김태주 회장님이 계시지 않아도 회사 돌아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아니, 거의 한 달 동안이나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봤으면 됐잖아요. 그리고 전화도 받을 수 있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주세요.”
“흐음, 딱히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주 후에 파주 공장 준공식이 예정되어 있어요.”
“그때까지는 돌아올게요.”
그리고 태주는 파주 영주관으로 갔다.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는 장소가 있다면 바로 선계(仙界)와 파주일 것이다.
서필명은 얼굴도 보지 못했다.
영주관 직원들과 파주 영지 곳곳을 돌아다니느라 영주관에 있는 시간도 거의 없단다.
지금도 곳곳에서 기반 시설 공사가 이루어지는 파주.
돈 들어갈 데가 좀 많나?
그래서 태주의 몫으로 들어오는 약품 판매 수익금 통장 중 하나를 서필명에게 맡겼다.
“류 부대장.”
“네! 영주님. 흐흐.”
류과장, 이젠 파주 영지 영지군을 맡게 된 류진철 부대장.
“현재 영지군 상황은?”
“일반 병사 50명, 적합자 부사관 5명, 그리고 각성 장교는···, 저 한 명입니다.”
상당히 열악하다.
원래 영주였던 김웅방 준장이 파주 영지를 다시 제국에 반납하겠다는 뜻을 밝히자마자, 각정 장교와 적합자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떠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후, 태주가 영지를 물려받았다는 소식이 들리자 다시 영지군에 입대하겠다고 신청이 쇄도했지만, 절대 받아주지 않았다.
떠난 사람들을 왜 받아?
“DMZ 마수 밀집지대 토벌 계획은 그대로 진행될 거니까, 걱정 말고 그에 맞춰 준비해.”
“하하하, 형님, 아니 영주님만 계셔도 마수들은 죽은 목숨인데, 제가 걱정을 왜 합니까?”
정연희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저도 있어요.”
“아! 그러네요.”
자신에 찬 정연희의 표정.
한 달 동안 실력이 얼마나 늘었을까?
“70% 달성이에요. 아마 반년 안에 100% 달성 확신하고 있어요.”
반년?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아마도 그보다 더 빠를 것이다.
특성이 검후인데, 그깟 복마검법쯤이야.
“검은 잘 쓰고 있죠?”
“너, 너무 좋아요. 어디서 이런 검을···.”
“황제 폐하가 바꾸자고 해도 바꾸면 안 돼요.”
“절대!”
어쨌거나 사람들 잘 들이니 편해서 좋다.
대가는 충분히 줬다.
서필명에겐 거액의 연봉과 집, 그리고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을 줬고, 정연희에겐 복마검법과 검을 줬다.
오황자 류진철은?
생명을 구해준 은혜 때문에, 자신의 옆에 붙어있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누구에게 붙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놈이다.
당연히 황제의 눈에 들려고 말이다.
나쁘지 않다.
만약 황권에 욕심이 있다면 그 정도 머리는 있어야지.
태주는 오랜만에 파주 영지 영주관에 머물렀다.
제정원 문경식 차장이 메일로 보내온 천경호에 대한 자료를 읽어보는 태주.
역용술로 변한 얼굴이 아닌 놈의 진짜 얼굴 사진, 동영상, 그리고 존속 살해 용의자로서 경찰이 수사한 기록.
서서히 감이 잡힌다.
놈의 정체가 머릿속에서 구체화 되었다.
천마.
절대독마 당군악의 대적자.
그러나 태주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놈은 아직 천마 신공을 대성하지 못했다.
자신은 대성했고.
당군악에게 미안하지만 그가 혼원무상독령공을 대성했을 때보다 지금의 자신이 훨씬 강하다.
독정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존 독의 기운에, 마나와 선기까지 각인된, 그래서 이미 독령으로 성장을 준비 중인 독정.
따라서 만천화우가 없어도 놈을 죽이는 건 너무나 쉽다.
어느덧 늦은 밤.
영주관 앞마당에서 선계의 보패, 추적부를 꺼내 천마 천경호의 존재를 떠올리자,
화르르륵!
추적부가 불타면서 하얀 재가 훨훨 날아갔다.
‘북서쪽이구나.’
방향이 정해졌다.
혼자 갈 생각이다.
그래서 일이삼백이도 구례에 두고 왔다.
그깟 천마 하나 잡는 데 둘이나 갈 필요가 없지.
※ ※ ※
선계(仙界).
싱글벙글, 당군악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허허허, 검선! 기름이 떨어졌으면 바로바로 이야기하지, 그랬소.”
“···.”
“자자, 내가 넣어드리리다. 서비스요.”
“괜찮···,”
“어허! 가만히 계시오. 내가 다 할 테니.”
주선이 영업하는 칵테일 바로 가서.
“주선! 황금종을 울리시오.”
“화, 황금종을?”
“오늘 신선들이 마시는 술은 전부 내 앞으로 달아놓으시라고.”
딸랑딸랑!
멀티플렉스에 황금종, 골든벨이 울렸다.
“헉! 고, 공짜 술?”
“독선 만세!”
“김태주 만세!”
“화선, 저 뒤에 태주 대협 얼굴을 그려서 붙여놓으시오. 매일매일 보면서 인사하게.”
“좋지. 솜씨 한번 부려볼까?”
쇼핑몰에도 물건이 꽉 들어찼다.
커다란 플래카드엔.
<우주의 자랑 김태주, 혼원무상독령공 10성 대성 기념 전 품목 30% 세일>
“자자, 오늘 아니면 이 가격에 못삽니다. 지금 바로 결정하시오.”
“이거, 이거 빨리 계산해주시오! 신용패 여기 있소.”
“내가 먼저 잡았잖아!”
“증거 있어?”
축제였다.
선계에 활기가 가득가득 흘러넘쳤다.
< 잡으러 가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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