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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나 거부증 치료제(1) >
천계(天界) 자미궁의 대전.
둥글게 원을 그리며 넓게 띄워진 의자마다 앉아있는 사람들.
상제와 여래, 염라와 용왕, 서왕모와 태상노군이었다.
각자의 표정들이 오묘하다.
눈을 반쯤 뜨며 명상하는 여래.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만 쉬어대는 상제.
긴 곰방대로 뻐끔뻐끔 연초를 피워대는 염라.
못마땅하다는 눈초리로 서왕모와 태상노군을 노려보는 용왕.
이미 긴 이야기가 오고 갔다.
하지만 전혀 진전이 없는 토론.
사실 토론이라기보다는 선계의 잘못을 지적하는 성토장이나 다름없었다.
지친 표정의 태상노군이 말했다.
“이거 원, 옷 한번 다르게 입었다고 죄인 신세가 됐군.”
푸념 섞인 노군의 말에 터져 나오는 불평과 불만들.
“우리가 옷 하나 가지고 그러는 건가? 지금 상위 계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네.”
“언제부터 신선들이 세속적 물욕에 그리 집착했나?”
“쯧쯧, 청담의 도가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야. 선계의 혼란을 마냥 좌시할 수 없는 노릇···,”
다리를 꼰 채, 손을 들어 올리는 태상노군,
“아아! 이제 그만 합시다.”
그러고는 클러치 백에서 빨간색 종이 곽을 꺼냈다.
“···그건 또 뭐요?”
“연초, 말도 안 통하고 답답해서 한 대 피워야겠소.”
연초라는 말에 호기심을 보이는 염라.
“무슨 연초가 저렇게 생겼나? 그리고 그 종이 곽 위에 시커먼 그림은? 인간의 폐 아닌가?”
“계속 피우면 폐가 이렇게 된다는 뜻이지. 뭐, 필터도 없는 곰방대보다는 낫소.”
태상노군은 담뱃갑의 비닐을 벗기고는 한 개비 입에 물었다.
그리고 어느새 꺼낸 반짝반짝 빛나는 금속 물체.
퐁!
경쾌한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리고.
칙!
불꽃이 피어오른다.
“그, 그것도 다른 세상에서 온 물건인가?”
“듀퐁 라이터···, 쯧, 자꾸 물어보지 마시오. 대답하기도 짜증 나오. 물욕이니 뭐니 하면서 실컷 욕이나 해대 놓고서는.”
“···.”
듀퐁 라이터로 불을 붙이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자, 소매에서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는 손목시계.
다리를 꼬며,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고.
이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이 흘러갔다.
독선과의 특훈을 통해 익힌 동작이었다.
한입 깊숙이 빨아대니,
파스스스스,
새빨간 담뱃불이 자미궁 대전 안에서 빛났다.
“후우!”
입에서 뿜어지는 하얀색 연기.
태상노군은 불붙은 담배를 손가락에 끼운 채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모두가 말이 없었다.
다들 멍한 표정으로 태상노군이 펼치는 퍼포먼스를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을 뿐.
수컷들의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유는 모르지만 다들 그랬다.
반면 서왕모는 같잖다는 듯 조소를 머금으며.
“나도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없겠네요. 당신들이 우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았으니까.”
용왕이 서왕모를 보면서 아니꼽다는 어투로 쏘아붙였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러오? 대체 언제까지 신선들과 놀아나면서 상위 계의 질서를 망가뜨릴 작정이오?”
“말은 바로 하세요. 혼돈이 아닌 조화라고 이미 판정이 났잖아요.”
“하! 염라가 만든 저울추? 그깟 기물 하나로 그렇게 쉽게?”
발끈하는 염라.
“용왕, 말조심하시오. 그깟 기물이라니, 천지의 이치에 따라 제작한 보패를!”
“바로 그게 문제지. 당신의 저울추 때문에 선계가 저 모양 저 꼴로···,”
“그건 용왕의 말이 맞소. 그 보패가 얼마나 오래됐나? 탈이 났는지, 멀쩡한지 검증을 해 볼 필요가 있소이다.”
“이, 이런! 어디서 감히 그런 망발을!”
순간!
“닥치세요들!”
서왕모는 분노한 눈빛으로 소리쳤다.
“그대들이 우릴 어떻게 보는지 상관없어요. 내가 여기 온 것은 통보를 하기 위함이에요.”
상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통보라니?”
“앞으로 천계, 여래계, 황천계, 용궁으로 들어가는 선도(仙桃)는 더 이상 없을 거예요.”
“···뭐?”
“귀가 먹었나요? 선도를 공급하지 않겠다는 말이죠. 천도 또한 꿈도 꾸지 말아요.”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선도와 천도에 대한 모든 권한은 오롯이 서왕모가 가지고 있다.
또 도원은 선계에 있다.
그곳이 복숭아가 가장 잘 자라는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맥과 선맥의 기운을 받고 자라는 상위 계의 보물 천도도.
“여분의 선도는 신선들에게 돌아갈 예정이에요. 하루 하나씩.”
“허어, 어처구니가 없군.”
태상노군도 거들었다.
“대체 뭐가 불만이신가? 우리 신선들을 하루에 하나씩 선도를 받으면 안 된다?”
“허허, 정녕 제정신이요? 신선들에게 무턱대고 선기를 퍼 먹여주면 천지의 질서가···,”
“그놈의 질서, 질서! 입 밖에도 내지 말라! 우리 선인들이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더냐?”
“···.”
모두가 묵묵부답이었다.
태상노군이 변했다.
그도 한 달에 한 번 선도 지급에 동의했는데 인제 와서 딴소리라니.
게다가 서왕모도 한통속이 되었다.
상위 계의 협정이 깨어지는 순간.
서왕모는 벌떡 일어났다.
태상노군도 꼰 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만 갑시다.”
“노군,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요?”
“지금 나가면 될 거요. 독선이 감사하게도 세일 시간을 조금 늦춰줘서, 하지만 빠듯하오. 서두릅시다.”
그러자,
“자, 잠깐!”
제지하는 상제.
“그렇다면 천계도 인간계로 통하는 문을 닫겠네. 앞으로 신선들이 인간계로 강림하지 못할 거야. 서왕모 그대도.”
“그러시던지.”
“···진심인가? 진짜 인간계로 가지 않아도 된다고?”
“선계가 더 재밌거든. 강호의 인간계보다 훨씬! 궁금하면 놀러 와도 막지는 않겠소.”
휘적휘적,
뒤로 돌아보지 않고, 태상노군과 서왕모는 함께 자미궁을 나섰다.
※ ※ ※
백서연은 바로 금수호 비서관에게 생기불끈 카피약 사태에 대해 알렸다.
그리고 금수호는 황제에게 즉각 보고했고.
“이런 망할 새끼들이!”
듣자마자 분노하는 황제.
감히 삼한 제국의 특허 약물을 마음대로 베껴?
“어떻게 할까요?”
“아메리카 공화국 대사관에 연락을 넣어. 백악관으로 들어가 항의하라고 해!”
“수위는요?”
“강하게! 카피한 제약 회사에게 생산 중지 명령부터 시행하라고.”
“손해 배상 요구는?”
“당연하지. 그냥 넘어가면 우리도 보복하겠다 통보해.”
300년 전과는 달리 아메리카의 영광은 사라졌다.
과거 미국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했던 그때와는 다르게.
태평양은 해양 마수의 소굴이 됐다.
미국이 자랑했던 항모 전대와 전투기는 운용이 불가능해졌다.
핵무기?
있으면 뭘 하나?
핵은 상호 확증 파괴의 전략 무기다.
삼한 제국도 미국 본토까지 핵을 실어나를 초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아메리카 공화국은 여전히 강국.
멕시코와 캐나다 영토까지 집어삼킨 광대한 공화국.
인구도 많다.
사실 국가의 힘은 바로 인구에서 나온다.
그래서 내수 경제도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하지만 여전히 국가 간 무역 거래는 이루어지고 있다.
항공과 육로를 통해서 말이다.
또한 마수 밀집지대가 토벌됨에 따라 점점 무역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
그런 이유로 저작권과 특허권을 무시하고 타국의 상품을 무단으로 도용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지됐다.
저작권과 특허권은 국가의 고유 재산이다.
그것을 무시하면 무조건 갈등이 생긴다.
또한 갈등이 심화되면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마나의 침범과 마수 때문에 지구가 거의 망할 뻔했는데, 다시 인간들끼리 전쟁을 벌이자고?
비록 UN이나 WTO 같은 국제기구는 없지만, 국가끼리 수교를 맺었다.
아메리카 공화국엔 삼한 제국의 대사관이 있었고, 삼한 제국에도 아메리카 공화국의 대사관이 있다.
삼한과 아메리카는 우방국.
요구가 받아들여질 줄 알았다.
아메리카 공화국 대통령 빌리 피트먼은 삼한 제국 황제의 요구를 절대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대사 말로는 빌리, 그 새끼 반응이 뜨뜻미지근 하다고 합니다.”
“뭐?”
“확답도 없고, 어영부영 넘어가려는 눈치라던데요.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의도 같습니다.”
이 새끼들 봐라?
지금 막 나가자는 거 맞지?
황제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직접 통화해야겠군. 핫라인 연결해.”
※ ※ ※
아메리카 공화국 대통령 빌리 피트먼은 삼한 제국 황제에게 걸려온 전화를 끝내고 피곤한 기색으로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욕을 한 바가지 들었으니 오래는 살겠다.
백악관 비서에게 질문하는 빌리 피트먼.
“조사 결과가 나왔나?”
“네, 태홍 바이오 제품과 화이백 제품의 성분이 완전히 일치합니다. 다만 배합 문제인지, 재료 문제인지, 약효는 그보다 떨어지고요.”
“제기랄! 어쩐지 세게 나오더라니.”
상당히 곤란하게 됐다.
삼한 제국과는 우방국.
탁월한 마수 사냥 기술로 지금도 영토를 쭉쭉 넓히는 아시아 초강대국이다.
엘리트 마수 사냥에 대한 노하우도 교환하고, 항공기를 통해 생산품을 수출하고 수입하면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카피약 사태가 터져버렸다.
다시 자세한 상황을 물어보는 빌리 피트먼 대통령.
“화이백 프레드 밀러 입장은 어떤가?”
“자신들은 무고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랜 연구 끝에 자체적으로 개발한 신약이라고.”
“자네 생각은?”
“말도 안 되죠. 연구 자료도 내놓지 않는 판에.”
“이 뻔뻔한 새끼가!”
“지금 결정해야 합니다. 삼한 제국의 요구를 받아들일지, 화이백의 손을 들어줄지.”
빌리 피트먼 대통령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프레드, 그놈이 뿌리는 정치자금이 얼마지?”
“공식적으로요, 비공식적으로요?”
“합쳐서.”
“올해만 3천만 달러입니다.”
상당히 큰 액수다.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바이탈 주스에 대한 경제적 가치는 어떤가?”
“수익과 일자리 창출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일단 약으로 인해 국민들의 삶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저도 하루에 2병씩 꼭 챙겨 먹고 있을 정도니까요.”
카피약이 그 정도라면 진짜는 대체?
빌리 피트먼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계속 시간을 끌어. 당장 판매 중지를 내리면 난리가 날 테니까.”
국민들이 반발할 것이다.
이미 약의 효과에 길들어졌을 테니까.
지지율 폭락이 눈에 선하다.
과거 미국이 그랬든, 아메리카 공화국의 국가 정책 기조 또한 철저한 국익 우선,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자잘한 불법 따윈 눈감아 줄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빌리 피트먼의 가장 큰 고민은 따로 있었다.
국가적 차원이 아닌 오로지 개인적 차원.
회의를 끝내자마자 빌리 피트먼은 자신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지금 병원이요?”
- 그래요. 레이첼과 같이 있어요.
“의사는 만나봤소?”
- ···방금 이야기 나누고 병실로 왔어요.
아내의 목소리가 침울했다.
“어, 얼마나 남았다는데?”
- 길어야 3개월이라고···.
“후우, 알았소. 이따 나도 시간 내어 들러보지.”
레이첼 피트먼.
빌리 피트먼 대통령의 사랑스러운 딸이자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보물.
하지만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겨우 3개월이란다.
마나 거부증이라는 저주에 걸렸기 때문이다.
병이라면 고쳐보겠지만 이건 태어나면서 가지게 되는 천형이고 운명이다.
딸이 멀쩡해질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까지 팔 수 있으련만.
어쩔 수 없다.
3개월 동안은 대통령이란 역할보다 아버지라는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 ※ ※
태주는 실험실로 들어가기 전 백화점부터 들렀다.
이번에도 백화점을 통째로 쇼핑.
백화점 측도 물건을 가득 채워놓았다.
“전처럼 창고로 배달요.”
“매번 감사합니다!!!”
실험 도중에 신호가 오면 바로바로 보내야지.
공유 창고도 넓어졌으니.
태주는 개인 실험실 안으로 들어왔다.
혼자만 사용하는 장소지만 엄청나게 큰 공간.
중앙엔 정제수가 꽉 들어찬 대형 수조가 놓여있었다.
전체 인구의 5% 내외로 추산되는 마나 거부자.
40억 인구 중 2억에 가까운 숫자.
전 세계 곳곳에 있었다.
그중엔 이미 20대를 넘겨 증상이 심각해 침대에서만 생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0대를 넘지 않아 일상적인 활동 정도는 가능한 이들도 있다.
물론 현재 죽어가는 사람도 있겠지.
자신도 마나 거부자여서 안다.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얼마나 지독한지.
최대한 빨리 서둘러야 한다.
첫 번째 단계.
태주는 자신이 마나 거부자였을 때를 상상했다.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 기억해두고는.
‘독정에서 변종 3줄 무늬 모기 독을 뽑아서,’
그러나 모기독 만으로는 부족하다.
혈관으로 흐르는 마나를 없애줄 수는 있지만 이미 세포에 스며든 마나는 없애주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의 세포까지 침투해서 중독시키는···,
‘만년오공의 분해 독도 섞고.’
모기독과 만년오공의 독이 기본 베이스가 될 것이다.
거기에 지금까지 먹어왔던 수많은 독의 정수도.
혼원무상독령공 대성에 이르러 독에 대한 이해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하나 더 있다.
바로 선기(仙氣).
만물이 상생할 수 있게 하는 조화의 기운.
그리하여 더더욱 끈끈해진 독과 독의 융합.
서로 다른 성질의 것이 결합하니 전혀 새로운 성질의 무언가로 탄생한다.
독이 가진 두 얼굴.
독(毒)의 다른 얼굴은 약(藥)이다.
남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태주의 독정도 양면의 성질을 가졌다.
독정(毒精)은 약정(藥精)이라 불리어도 무방하다.
‘일단 한 방울.’
태주의 손가락 끝에서 새파란 독기의 정수 한 방울이 이슬처럼 응결하고 있었다.
똑!
정제수 수조에 떨어지는 독의 정수.
수조에 손을 대어,
우우우웅!
진동시켜 골고루 섞은 후.
스푼으로 떠서 맛을 봤다.
‘···너무 강해.’
독의 배합도 어정쩡하다.
생각했던 결과물이 아니다.
다시 수조에 손을 대, 독기를 회수하고.
독성을 줄여보자.
인체 실험이 가능할 정도로만.
그리고 배합도 새롭게 해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만들어낸다.
마나 거부증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해주고 말 것이다.
< 마나 거부증 치료제(1) > 끝
ⓒ 꾸찌꾸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