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108화 (108/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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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나 거부증 치료제(2) >

백홍표는 태홍 고아원 양호실에서 침대에 누운 남자아이의 땀을 수건으로 닦았다.

아이의 나이는 15세.

그러나 외견상 10살도 채 되어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이름은 우명진.

원래 태홍 고아원에 있던 아이는 아니다.

저 멀리 안동까지 가서 직접 데리고 온 아이.

그곳 보육원이 재정 문제로 문을 닫았다.

다른 고아원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할 운명에 놓인 원생 30여 명.

그들을 한꺼번에 구례로 데리고 온 것.

각각의 사연에 의해 이미 부모들과 한번 이별을 경험한 아이들이다.

그런데 또 서로 헤어져야 한다고?

백홍표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모두 거뒀다.

태홍 고아원 재정이야 튼튼하다 못해 흘러넘치니까.

공간이 좁으면 건물을 더 지으면 되고.

그런데 그중 한 명인 명진이가 마나 거부증이었다.

처음 볼 때부터 심하다 싶을 정도로 약한, 중학생인데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보다 더 못한 겉모습, 이 아이가 버려진 이유였다.

보약도 구해 먹이고, 고라니 사골곰탕도 푹 끓여서 입에다 떠먹여 줬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오래 버티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이젠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다.

‘태주의 치료제 연구가 성공했으면 좋으련만.’

똑똑,

벌컥,

양호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태주.

“어떻게 왔나? 연구 중이라더니,”

“잠깐 시간을 냈어요. ···이 아이인가요?”

“맞아. 마나 거부증, 불치의 천형을 가지고 태어났어. 이름은 우명진이고, 나이는 15세.”

“증세가 너무 많이 진행됐네요.”

“하아, 최소한 스물은 넘길 줄 알았는데.”

자신은 남들보다 오래 버텨 20대 후반까지 살아남았지만, 이 아이는 15살을 넘기지 못할 지경에 처해있었다.

태주는 우명진의 맥문을 손으로 짚었다.

맥이 약하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위급한 상황.

‘으음···,’

우명진이 신음을 흘리며 깨어났다.

눈이 부시는지 실눈을 뜨면서.

“며, 명진아!”

“···원장님.”

“그래, 나다. 어서 정신 차리고 벌떡 일어나야지.”

“···저 알아요. 아마 오늘을 모, 못 넘길걸요?”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그, 그냥··· 옆에서 소, 손이나 잡아주세요. 외롭지 않게.”

“이놈아!!!”

“무서워요. 무서워서···,”

백홍표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우명진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태주는 아이 곁으로 다가갔다.

“네가 명진이니?”

“누, 누구세요?”

“김태주. 내 이름이야.”

우명진이 힘없이 고개를 돌려 태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이제야 뵙네요.”

“날 알아?”

“그, 그럼요. 마, 마나 거부자라면 모를 리가 없죠.”

“그래?”

“제 롤모델이 회장님인데.”

태주가 마나 거부자였다는 건 매우 잘 알려진 사실.

사실 마나 거부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간혹, 매우 희박한 확률로 천형을 극복하는 케이스도 있다.

심지어 각성까지도 가능하다.

그래서 마나 거부자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한다.

하지만 명진은 이미 자신의 삶을 포기했다.

더는 버틸 여력이 없었다.

“흐흐흐, 주, 죽기 전에 회장님 얼굴 보고 가서 좋아요.”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내가 고쳐 줄 거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봐. 포기하지 말고.”

“···제 마음 편하게 해주시려고 무리하실 필요는 없어요. 전 준비됐어요.”

“진짠데?”

태주는 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내 우명진의 눈앞에 흔들었다.

“이거, 뭔질 알아?”

“네?”

“마나 거부증을 억제하기 위해 내가 시험 중인 약.”

“···어.”

“먹어볼래? 하지만 각오는 해야 할 거야. 미완성이라 잘못될 수 있어.”

우명진은 멍하니 있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태주는 그의 입으로 방금 만들어온 따끈따끈한 치료제를 흘려 넣었다.

잘못될지도 모른다고 겁을 줬지만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다.

“기분이 어때?”

“아직 잘···, 윽!”

태주는 명진이의 맥문을 잡았다.

“어디가 아파?”

“시, 심장이, 심장이 찢어질 듯···,”

심장이라면 맹독 고로쇠나무 수액인가?

고로쇠 수액 독은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해 약효를 온몸으로 돌게끔 촉진한다.

‘조금만 줄이자.’

혼원무상독령공으로 고로쇠 수액의 독기를 반쯤 흡수하고.

“괜찮니?”

“네, 조, 조금.”

“다른 데는?”

“피부가 많이 근질거려요.”

피부에 스며든 마나를 중화시키는 독이···,

‘붉은 날개 땅벌 독.’

상피 세포를 파괴해 흐물흐물하게 만든다.

이것도 양을 줄이고.

“오줌은 마렵지 않아?”

“글쎄요. 그다지.”

마려워야 정상이다.

신장과 방광에 고여 있는 마나를 오줌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하는 독 질경이.

‘조금 더 집어넣자.’

그러자.

“어억! 오, 오줌이 너무 마려워요.”

“싸.”

“네?”

“기저귀 차고 있잖아. 원장님이 갈아주실 거야.”

“···어음.”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하고.

그러자.

“어때?”

“잘 모르겠지만···, 괜찮아진 느낌이 들어요.”

“일어날 수 있겠어?”

“흐음, 그, 그건 아직.”

나아지긴 했지만 많이 부족하다.

마나 침범 이후, 지구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약재에 일정 성분의 마나가 포함되어 있다.

당연히 태주가 만든 약에도.

“저 나은 건가요?”

“천만에! 이거 하나 먹었다고 완치될 리가.”

“···아!”

“하지만 실망하지 마. 내가 있으니 최소한 죽진 않을 거야.”

“그러면 정말 감사하죠. ···회장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세요.”

“아직 아니야.”

태주는 백홍표에게 말했다.

“형님,”

“으응?”

“내일부터 다른 마나 거부증 환자들도 모두 한곳에 모아주세요.”

“본격적으로 임상 들어갈 건가?”

“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아무튼 가능성은 확인했으니까.

하지만 다음날.

“명진이 상태가 어떻습니까.”

“좋지 않네. 어제 하루는 괜찮아 보이더니, 오늘 다시···.”

약 기운이 사라지니 예전 그대로 되돌아갔다.

일시적인 효과만 보였을 뿐.

“후우, 일단 어제보다 발전된 치료제 가지고 왔으니 먹여보죠.”

증세가 영구적으로 나아져야 하는데.

약이 지속되는 시간만 괜찮아질 뿐.

그렇다고 평생을 먹일 수도 없는 노릇.

약이라고는 하나 본질은 독.

계속 장복하게 되면 다른 부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선기로도 안 되는 거였나?’

사실 선기는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

그 수많은 독을 포용해서 조화를 이루게 만들어줬으니.

‘뭔가 새로운 것이 있어야 해.’

그걸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태주는 절대 실망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믿고 있는 환자들이 몇 명인데.

고아원에 중증 이상의 마나 거부자들이 모였다.

태주의 치료제 연구는 계속됐다.

거의 일주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말이다.

그사이에 한 번씩의 지구, 선계 간의 배송 신호가 떴다.

물론 커진 공유창고만큼 많은 양이 물건이 오고 갔고.

그러던 중 천천히 퍼져나가는 소문.

내용은 바로, ‘태홍 바이오 제약 김태주 회장이 마나 거부증 치료제를 연구하려고 한다.’

입에서 입으로,

혹은 인터넷과 SNS로,

그리고 제국의 영역을 넘어 해외까지.

전 세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 ※ ※

상위 계 중에서 가장 넓은 곳이 바로 천계.

따라서 천계에 사는 사람들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그들을 통틀어 ‘천인’이라고 부른다.

악한 자들이 가는 지옥이 있으면 당연히 선한 자들을 위한 천당도 있어야지.

천계가 바로 천당의 역할을 하는 곳.

인간이었을 때, 남을 위해 희생하고, 도와주고, 배려하고, 아무튼 착한 일을 많이한 사람들은 죽어서 천계, 즉 천당으로 간다.

이곳에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사후 세계를 영위한다.

개중엔 천계에 집을 지어 평범하게 사는 천인이 있는가 하면, 상제의 자미궁에서 일을 하는 천인도 있다.

해맑 선녀는 자미궁에서 일한다.

이름처럼 해맑고 천진난만한 선녀.

오늘은 쉬는 날, 어젠 손님맞이를 하느라 열심히 뛰어다녔으니까.

“으흥, 흥흥흥, 랄라라라라···.”

해맑 선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천계 꽃밭에서 꽃송이들을 하나하나 따서 줄에 엮었다.

머리에도 커다란 거 한 송이 꽂고.

이렇게 꽃을 꺾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천계에 피는 꽃과 꽃나무다.

꺾인 꽃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다시 꽃송이가 맺히고 금세 아름답게 피어난다.

만들어진 꽃목걸이를 목에 걸어보는 해맑.

“헤헤, 예쁘다.”

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어제 자미궁에 행차했던 서왕모의 아름다운 자태가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왕모님은 너무 아름다우셨어.’

천인이라고 해서 욕망이 왜 없겠나?

다른 세상에서 온 물건들로 치장한 태상노군과 서왕모, 그리고 선자들.

해맑도 가지고 싶다.

최소한 어떤 물건이 있는지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다.

‘선계에서 팔고 있다고 했지? ···가볼까?’

가는 거야 어렵지 않다.

그녀는 자미궁 선녀.

이동에 불편함이 없도록 지급받은 선녀복과 축지 술법 신발이 있다.

‘···보고만 오면 되는 거야. 누가 알아?’

그래서 해맑은 선계로 뛰어갔다.

축지법으로 쭉쭉.

마침내 도착한 선계.

‘그 물건들은 어디 있는 거야?’

한참을 헤매다 보니, 돌판으로 평평하게 만들어진 길이 보인다.

‘누가 만들었지? 와! 잘 만들었다. 혹시 이 길을 따라가면···,’

그때였다.

푸다다다닥! 푸다다닥!

뒤쪽에서 들리는 굉음.

“에구머니나!”

해맑 선녀는 깜짝 놀랐다.

뭔가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철로 만든 말?’

타고 다니는 사람의 복색도 이상하다.

까만색 가죽옷에, 길다란 가죽 신발에, 등에는 검을 매고.

끼익!

철마가 멈춰 섰다.

해맑을 처음 본 검선의 소감은 이랬다.

‘···미친 년인가?’

딱 보면 각이 나온다.

머리에 큼직한 꽃을 꽂고, 꽃목걸이도 하고.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누구시오?”

“처, 천계에 사는 해맑이라고 합니다.”

“오! 천인이시군. 난 검선이라고 하오. 그런데 선계엔 무슨 일로.”

“으음, 전 그저 구경만 하려고.”

검선은 빙그레 웃었다.

해맑이라는 천인이 왜 여기 왔는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타시오.”

“네?”

“구경하러 왔다고 하지 않았소? 안내해드리리다.”

“근데 어딜 타요?”

“내 등 뒤에.”

꿀꺽.

아무리 신선이라고 하지만 외간 남자인데.

하지만 이 희한한 철마를 타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해서.

“여기 타요?”

“꽉 잡으시오.”

푸다다다다다닥!

“꺄악!!!”

빠르게 달려 나가는 할리 바이크.

든든한 남자의 등.

해맑은 저도 모르게 검선의 허리를 꼭 잡았다.

그렇게 달려오니.

“아!”

그녀의 눈앞에 거대한 7층 누각이 보인다.

“다 왔소. 나를 따라오시오.”

검선이 앞장섰다.

순진무구한 해맑이 뒤를 따랐다.

그리하여 멀티플렉스 안으로 들어갔는데.

“어머?”

그녀는 처음 보는 모던한 인테리어에 깜짝 놀랐다.

1층 휴게실에서 담소를 나누던 선인들도 그녀를 발견했다.

‘미쳤나?’

‘미쳤군.’

‘쯧쯧, 겉은 멀쩡한 여인이.’

‘저렇게 큰 꽃을 머리에.’

‘많이 아픈 모양이군.’

‘비가 안 내리길 다행이야. 아니면 머리에 꽃 꽂은 채로 비 맞으러 뛰어다닐 텐데.’

검선은 해맑을 2층 쇼핑몰로 데리고 갔다.

“마음껏 구경하시오.”

“아아아아···,”

탄성을 지르는 해맑 선녀.

죄다 다른 세상의 물건들.

‘이렇게나 많아?’

서왕모, 그리고 선자들이 입었던 옷, 구두, 모자, 가방···,

한마디로 별천지였다.

그녀는 정신이 없었다.

이리 가서 구경하고, 저리 가서 구경하고,

차마 만지지는 못했다.

귀한 물건에 때가 탈까 봐.

순간!

스윽!

그녀의 뒤로 접근하는 한 사람.

“어떻소? 마음에 드시는지?”

“까, 깜짝이야! ···누구?”

“여기 주인, 독선이라 부르면 되오.”

“아···, 전 해맑이라고 하옵니다.”

“검선에게 이미 들었소. 천계에서 오셨다고?”

“네.”

“처음 오셨으니 하나 골라보시오.”

“···제가 가진 게 없어서.”

당군악은 빙그레 웃었다.

“돈이 없어도 되오. 공짜로 드리지.”

“···괜찮아요, 구경만으로 만족한답니다.”

역시 천계 주민이다.

심성이야 말할 것도 없다.

머리에 커다란 꽃을 달고 온 것이 웃기긴 하지만···, 가만!

‘꽃?’

그것에서 상서로운 진한 향기가 느껴진다.

킁킁, 킁킁킁킁.

당군악은 해맑의 머리에 가까이 가서 연신 냄새를 맡았다.

움찔,

뜬금없는 독선의 행동에 당황한 듯, 뒤로 한걸음 물러나는 해맑 선녀.

“가, 갑자기 왜? 설마···,”

“큼큼, 오, 오해 마시고.”

당군악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에 꽂혀 있는 꽃송이를 가리켰다.

“이건 무슨 꽃이요?”

“네? 천계에 피는 흔한 꽃인데, 우린 금정화(錦淨花)라고 불러요.”

“금정화?”

“먹을 수도 있어요. 피를 맑게 해주거든요.”

“천계에 많이 피어있소?”

“당연하죠. 천계 전체가 꽃밭인데, 헤헤.”

“허어.”

보통 꽃이 아니다.

무려 천계에서 피어나는 꽃.

“먹어봐도 되겠소?”

“꼭꼭 씹어 드세요.”

당군악은 해맑이 건네준 금정화 꽃잎을 따서 입에 넣었다.

질근질근 씹으니 몸속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기운.

‘역시.’

태주와 영혼이 연결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

‘마나 거부증 치료제라고 했지.’

그가 어떤 방법으로 치료제를 만들려고 하는지도 알았다.

‘이 꽃이 피를 맑게 해준다고 했으니, 큰 도움이 될 거야.’

당군악은 다시 해맑을 보며 말했다.

“목에 걸고 있는 꽃목걸이도 먹어봐도 될는지.”

“그, 그럼요. 여기.”

당군악은 형형색색의 꽃잎을 하나씩 따서 맛보았다.

그럴 때마다 꽃의 효능을 하나하나 이야기해주는 해맑.

“그 꽃은 반월화(半月花)라고 해요. 소화능력을 북돋아 줘요. 그리고 이 꽃은 천상화(天上花), 피부를 깨끗하게 해주고, 음양화(陰陽花)는 몸의 균형을 바로 잡아···,”

대박이다.

이건 꽃이 아니라 약.

당군악은 해맑에게 넌지시 말했다.

“혹시 돈이 필요하시오? 이 물건들을 살 수 있는 화폐 말이오.”

“필요하긴 하지만.”

“내가 이 꽃들을 코인으로 바꿔주겠소. 한 송이당 1코인, 열 송이면 10코인.”

“무, 무슨 말씀이신지?”

“그게 뭔가 하면···,”

그리하여 시작된 선계 화폐에 관한 설명.

해맑 선녀의 표정이 점점 해맑아졌다.

< 마나 거부증 치료제(2)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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