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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나 거부증 치료제(3) >
삽시간에 퍼진 소문.
김태주 회장이 마나 거부증 치료제를 발명하려 한다고?
삼한 제국 전체가 들썩였다.
만나면 그 얘기,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믿음.
김태주 회장이 이번에도 해낼 것이다.
실제로 증명해오지 않았나?
그가 만들어온 신약들,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다.
다른 하나는 불신.
아무리 김태주 회장이라도 마나 거부증 치료제는 어려울 거다.
이번엔 경우가 다르다.
마나 거부증은 질병이나 후천적 질환이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되는 체질적인 문제.
인위적인 처치로는 극복이 힘들다.
기적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
상반된 두 개의 태도.
믿음과 불신.
삼한 제국의 황제 류태현은 전자였다.
굳게 믿었다.
자신도 기적을 경험했으니까.
“설마 수호, 자넨 불신하는 건 아니겠지?”
금수호가 발끈했다.
“참나! 사람을 뭐로 보시고, 불신 지옥 모르십니까? 복숭아에, 신비한 술에, 몇 가지만 떠올려도 충분히 믿고 남지.”
“하긴, 자네도 복숭아는 못 먹었지만 술은 마셔봤을 테니까.”
“···쳇!”
만약 김태주 회장이 마나 거부증 치료제를 만들어낸다면?
혁명이고, 기적이며, 천지개벽이다.
삼한 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거부증 환자들, 우리 제국민만 해도 약 2천만 명입니다.”
“그들이 모두 치유된다고 가정하면···, 후우, 어마어마해. 우리가 도울 일은 없을까?”
“특허와 식약청 심사를 간소화해서 빠르게 출시되도록 도와야죠.”
“그건 당연한 거고. 설사 부작용이 좀 있다고 해도 어때? 무조건 통과시켜.”
부작용?
죽지만 않으면 된다.
“그건 그렇고,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지?”
“무슨 기회요?”
“아메리카 공화국 말이야. 여론전 시작해보자고,”
“네?”
황제가 혀를 끌끌 차면서 말을 이었다.
“자! 김회장이 마나 거부증 치료제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고. 그럼 아메리카 공화국에 팔 것 같나? 안 팔 것 같나?”
“흠, 당연히 팔겠지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려있는 문젠데,”
“맞아. 김회장 성정으로 보아 절대 외면하지 않을 거야. 카피 약으로 인한 갈등이 생겼어도 팔거야. 하지만 놈들 버릇은 고쳐줘야지?”
“그야 저도 동의합니다만, 어떻게요?”
“악역은 우리가 맡아보자고, 먼저 아메리카 언론사들 몇 개 선정해서···,”
금수호가 즉시 작업에 들어갔다.
아메리카 공화국의 주요 언론사와 방송사를 섭외해서 동시에 터뜨려버렸다.
<마나 거부증 치료 시대가 열리나?>
<삼한 제국의 T 바이오 제약사에서 마나 거부증 임상 시험 돌입.>
<익명의 관계자에 따르면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아메리카 약 4천만 명의 마나 거부자 및 가족들, 기대감에 부풀어.>
카피약 분쟁도 그 위에 살포시 끼얹었다.
<화이백에서 생산 중인 바이탈 주스와 외상 치료제, 알고 보니 T 바이오의 생기불끈과 새살쑥쑥을 무단 카피한 불법 의약품.>
<우방국의 신뢰가 무너질 상황, 이대로 두면 안 된다.>
<카피약 문제가 터진 나라에 누가 신약을 수출하겠나?>
<하루빨리 갈등을 풀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
당연히 아메리카 공화국 시민들이 당혹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먹은 피로회복 드링크가 불법 카피약이라고?
└ 퍼킹! 그럼 지금까지 내가 가짜 드링크제를 먹고 있었단 말이네.
└ 몰랐어? 난 진짜를 마셔봤거든. 바이탈 주스와는 차원이 달랐어.
└ 제기랄! 쪽팔리게 뭐 하자는 짓이야? 처음부터 로열티 계약 체결했어야지.
└ 맞아. 그랬으면 좀 더 질 좋고 싼 피로회복 드링크를 살 수 있었을 거야.
즉각 반박 기사가 터져 나왔다.
<마나 거부증 치료제, 아직 확인되지 않는 뜬소문이다.>
<바이오 전문가들 하나 같이 부정적, 그전에도 이와 같은 사례들이 많이 있었다. 벌써 몇 번을 속았는지 기억해야 한다.>
<화이백 CEO 프레드 밀러, 마나 거부증 치료제는 허상, 사기일 가능성 농후.>
<거짓말이 분명하다. 마나 거부증 환자와 가족들을 우롱하는 2차 가해 행위.>
<불법 카피도 근거 없는 뜬소문, 우리 아메리카 공화국의 바이오 제약 기술은 만만하지 않다.>
└ 그래, 너무 성급해. 아직 약은 발명되지 않았다고. 임상 시험 중이라잖아.
└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임상 시험하다가 엎어진 약이 얼마나 많았어?
└ 그리고 바이탈 주스도 그래, 진짜 카피했는지 확실하지도 않고.
└ 동의, 정부에서도 아무런 제재가 없어. 카피가 맞았다면 생산을 중단시켰겠지.
└ 난 바이탈 주스 포기 못 해! 중단하기만 해봐! 당장 백악관으로 달려간다.
여론전은 금방 끝났다.
삼한 제국이 아닌 아메리카 공화국이었으니까.
하지만 황제와 금수호는 만족했다.
그래도 불씨는 피워놨기 때문이다.
※ ※ ※
화이백 제약 CEO 프레드 밀러는 마나 거부증 치료제 임상 시험 소식을 듣자마자 같잖다는 표정으로 조소했다.
‘웃기는군.’
마나 거부증?
그게 질병이나 독에 의한 것이라면 이해나 한다.
프레드가 보기엔 김태주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었다.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지.’
차라리 새로운 몸을 만드는 게 더 빠를 것이다.
0.000001%의 기적을 바라거나.
사실 프레드는 마나 거부자가 기적적으로 완치됐다는 여러 사례들도 의심하고 있었다.
애초에 마나 거부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질환과 착각했을 수도.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았다.
마나 거부증으로 알고 쭉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전혀 다른 질병이었다든가.
‘치료는 절대 불가능해.’
삼한 제국, 혹은 태홍 바이오의 치졸한 언론 플레이가 확실하다.
마나 거부증 치료제 기사가 나오고, 거의 동시에 불법 카피 문제가 터졌다.
‘이딴 걸로 날 어떻게 해보려고?’
너무 하찮아서 가소로울 지경.
가만히 있긴 뭐하고 해서 즉시 반박 기사를 냈다.
아메리카 공화국은 자신의 영역이다.
여론전 따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아마 빌리 피트먼 대통령 딸이 마나 거부증이라는 걸 알고 이런 식으로 나오나 본데.
‘오히려 역효과야.’
절대 실현되지 않을 희망을 안겨주는 것보다 더 잔인한 것은 없다.
빌리 피트먼 대통령은 딸의 병실에서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자신의 약점을 담보로 삼아 카피약 분쟁을 해결하려는 것이 틀림없다.
‘망할 것들이, 그러면 내가 머리 굽히고 사과할 줄 알았나?’
두 번 다시 속지 않는다.
지금까지 딸을 치료해주겠다며 자신에게 접근한 사람만 몇 명이었는데.
그러나 죄다 사기꾼들이었다.
옛 아메리카 원주민 후손이라는 주술사, 치유 마법 스킬을 익히고 있다는 각성자, 오랜 연구 끝에 치료제를 개발했다는 사이비 과학자.
다 돈만 받아 처먹고 달아났다.
이번 언론 보도도 사기가 분명하다.
그것도 다분히 의도적인.
그래서 매우 괘씸했다.
“류태현, 이 개자식!”
아무리 불법 카피가 사실이라고 해도 딸 레이첼의 마나 거부증을 이용해 여론을 움직이려고 들어?
빌리 피트먼의 반감만 커졌다.
※ ※ ※
태주는 계속 연구에만 몰두했다.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일이삼백이도 연구에 방해될까 제자들에게 맡겼다.
심지어 카피약 분쟁마저도.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한가.
자신의 어깨 위에 놓인 목숨이 몇 명인데.
하지만 도통 나아가지 않는다.
약효가 지속되는 순간에는 증세가 좋아졌지만, 하루가 지나면 말짱 도루묵.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
선도도 갈아 넣어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마찬가지.
할 수 있는 건 연명치료밖에 없었다.
‘결국 체질이 문제야.’
물론 이걸 고칠 방법은 있다.
환골탈태를 시키면 된다.
그럼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지.
하지만 환골탈태를 유도하기 위해 영약을 먹이면 어떻게 될까?
일반인, 적합자, 각성자들하고는 다르다.
마나 거부자들에게 마나는 독이다.
영약을 먹는 순간 몸이 뻥! 터져 죽을 것이다.
‘하나가 더 있긴 한데···,’
바로 혼원무상독령공.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독정을 만들어내어 마나 거부증을 극복해내는 것.
이것도 실현 가능성이 없다.
자신이야 당군악과 같은 영혼이라 쉽게 배웠다지만 혼원무상독령공은 결코 만만한 무공이 아니다.
가르친다 한들 몇 명이나 배울까?
그리고 이건 당군악의 무공이다.
아무리 같은 영혼이라도 마나 거부증 치료를 위해 세상에 퍼뜨릴 수는 없는 노릇.
‘방법이 있을 거야.’
무조건 만들어야 한다.
독공의 성취가 부족하면 독령의 경지에 올라가서 만든다.
그래서 태주는 지금도 독정에 각인된 독물을 조합해 치료제를 만들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찌르르르르!
머릿속에서 울리는 배송 신호.
‘왔구나.’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당군악에게 보내는 물건은 꽉꽉 채워야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공유창고를 확인했는데.
“···응?”
뭐지?
공유창고 안에서 보이는 형형색색의 식물들.
‘꽃이잖아.’
꽃 말고는 없었다.
몇 송이 되지도 않았다.
어림잡아 20~30송이?
다른 물건은 오직 공기계 스마트폰 하나.
심지어 아공간 아이템도 없다.
‘흐흐, 무슨 기념일도 아니고,’
남자와 남자 사이에.
혼원무상독령공 대성했다고 보내주는 건가?
그거야 예전의 일이다.
아무튼 물건을 옮기고, 백화점에서 산 물건들을 집어넣고.
‘스마트폰이나 확인해 보자.’
꽃을 보낸 이유가 있을 테니.
태주는 최근에 찍은 동영상을 실행했다.
당군악의 모습이 보인다.
맨날 봐도 반갑다.
이어지는 영상.
들려오는 말소리.
그리고.
“···어? 꽃?”
천계 꽃밭이라니.
그럼 이 꽃들이 모두···.
“마, 맙소사!”
바보같이.
단번에 알았어야 했다.
그냥 꽃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당군악이 보낸 물건 중에 어디 평범한 것이 있긴 했나?
선도도, 신선주도, 하늘을 나는 검에, 부적, 그리고 혼원무상독령공 대성을 이루게 해준 독물.
그리고 이 천계 꽃.
당군악이 꽃의 효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태주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되겠는데?’
마나라는 잡스러운 기운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천계의 영험한 꽃.
‘금정화(錦淨花)와 음양화(陰陽花)라면···,’
무조건 된다.
태주는 확신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군악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를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금정화, 깨끗해진 피는 정맥, 동맥, 모세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흘러 장기와 세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몸의 균형을 조절해주는 음양화, 마나의 침범으로 무너진 몸의 균형을 바로 잡아 달라진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
그리고 거기에 마나를 삭제시키는 독물들을 섞어 넣으면?
태주의 머릿속에서 실험대가 차려졌다.
어떤 독을 천계 꽃들과 결합해야 할지, 어느 걸 빼야 할지.
하지만.
‘천계 꽃은 약점이 있어.’
꽃 자체로서가 아닌 얼마만큼의 재료가 수급되느냐가 관건.
아무리 좋아도 물량이 충분치 못하면 치료제를 만들었다고 해도 꽝이다.
당군악도 영상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 지금 보낸 건 샘플이네. 일단 연구나 해보라는 거야.
- 대량 생산은 기다리게.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면 그때부터 생산에 들어가지.
태주도 동의했다.
일단은 연구부터 해보자.
※ ※ ※
선계 멀티플렉스.
오늘도 여지없이 머리에 커다란 꽃을 꽂은 해맑 선녀가 발랄하게 뛰어 들어왔다.
청바지에 티셔츠, 등에는 커다란 자루를 메고 문을 박차고 들어와.
“안녕하세요오오! 신선님들! 헉헉!”
신선들이 깜짝 놀라며 해맑의 손에서 자루를 넘겨받았다.
“어이쿠! 너, 넘어질라.”
“천천히, 천천히 와.”
“쯧쯧, 이마에 땀 봐라, 어쩌자고 그렇게 힘들게 뛰어왔어?”
“에잉! 검선 뭐 하는 거요? 할리 바이크로 마중 나갔어야지!”
검선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다들 해맑이가 얼마나 빠른지 모르는···,”
“아니! 이 연약한 애가 빠르면 얼마나 빠르다고.”
“당신은 손자 손녀도 없나?”
“애초에 결혼도 안 한 검선 아니요.”
“어쩐지, 감수성이 없더라니.”
“···.”
사실 검선만 결혼을 안했나?
여기 있는 신선들 태반이 거의 꼬질꼬질한 홀아비.
그래서 해맑은 해맑 선녀는 금세 신선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녀는 선하고 착했다.
예의 바르며 남을 배려하고, 귀여운 외모에,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미소를 항상 달고 다닌다.
한마디로 긍정의 에너지 그 자체.
선계에도 여자는 있다.
눈만 마주쳐도 무서운 서왕모, 요망한 미호 선자, 얼음장 같은 월궁 선자, 어디 갔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는 하선고.
어찌 이들과 해맑을 비교할까?
그래서 요즘 하루라도 해맑이 안 보이면 신선들의 걱정이 태산.
“독선님은요?”
“위에 있다. 올라가 보려고?”
“네!”
“여기서 쉬고 있어라. 내가 불러오지.”
잠시 후.
계단에서 내려오는 당군악.
“해맑 선녀 오셨소?”
“넵! 제가 자루 한가득 꽃을 따 왔어요.”
“하하, 수고 많으셨소. 오! 꽃이 큼지막하군.”
“자미궁 근처에서 딴 거라 그래요.”
흠칫, 놀라는 당군악.
자미궁 근처라면···?
“혹시 상제가 꽃을 따가는 모습을 봤소?”
“당연히 보셨죠. 왜 따가는지도 제게 물어보셨어요.”
“···대, 대답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솔직하게 말했어요. 앞으로도 마구마구 따갈 거라고.”
“아!”
처음 만났을 때 당군악은 해맑에게 왜 꽃이 필요한지도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그래서 상제가 뭐라고···?”
“아무 말씀 안 하셨어요. 그리고 천계 전체가 꽃밭인데 아무리 따도 티도 안 나는걸요? 헤헤.”
천계에서 천인과 상제의 관계는, 왕과 백성의 관계가 아니다.
해맑이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천계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한, 그녀의 행동을 제지할 권한이 상제에게 없다.
사실 천계의 주인은 바로 천인들.
상제는 그저 천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천계를 관리하는 역할이다.
“저 열심히 꽃을 따서 사람을 많이많이 살릴래요.”
“···.”
“내일부터 아는 동생들도 불러서 함께 자루마다 가득 채워서 올게요.”
“···.”
당군악은 말이 없었다.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해맑 선녀는 천상 천인이었다.
미친 신선들과는 차원이 다른, 보기만 해도 마음이 행복해지는 그녀.
이러니 신선들이 환장을 하지.
그래서 부끄러웠다.
고작 물건 몇 개로 그녀를 꼬드겼던 자신이.
“당 떨어질라, 초콜릿 하나 드시려오?”
“넵!”
해맑 선녀는 목소리도 해맑았다.
아무튼 물량은 충분할 것 같다.
< 마나 거부증 치료제(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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