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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 개시 >
태주는 뉴서울 공장 연구실에 있었다.
3차 임상은 뉴서울에서 실시될 예정.
대상 인원수가 1,000명이다 보니 넓은 장소가 필요했다.
태홍 바이오 뉴서울 지점의 마석우 부장과 송수희 팀장도 지원을 나왔다.
“회장님!”
“아! 잘 오셨어요.”
매우 반가워하는 기색의 태주.
“도와드릴 일이 없을까 하고 왔습니다.”
“할 일이야 아주 많죠.”
“뭐든 시켜만 주세요.”
마석우와 송수희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려 마나 거부증 치료제 개발에 합류하는 일이다.
선택받은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임무.
나중에, 아주 먼 미래에 역사책에 실릴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김태주 회장과 함께 치료제 개발에 기여한 태홍 바이오 직원 마석우씨와 송수희씨.’ 하면서.
태주는 10개의 스마트폰 공기계를 마석우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이건?”
“여기 화면에 OTT 플랫폼 어플 보이죠?”
“보, 보입니다.”
“다 내 계정으로 가입해 둔 겁니다. 여기에 10살 이상의 아이들이 볼만한 애니메이션과 인형극 같은 거 다운받아 주세요. 펭귄과 상어 나오는 건 꼭.”
“···네?”
“진짜 중요한 일입니다.”
멍한 표정의 마석우.
그러나 중요한 일이라는데 어쩌겠나?
“어어, 아, 알겠습니다.”
아직 하나 더 남았다.
“그리고 수희씨는 이 카드 들고 장난감 쇼핑몰 가셔서 거길 싹 털어오세요. 역시 10살 이상의 아이들이 가지고 놀만 한.”
“···털어오라는 의미가?”
“말 그대로입니다. 쇼핑몰 전체를 사도 좋으니 장난감 종류별로 모조리 구매해서 적당한 창고에 넣어두세요. 카드 한도 없으니까 펑펑 써요.”
“네, 네.”
마석우와 송수희는 어리둥절했다.
마나 거부증 치료제 개발의 대업에 동참하려고 여기 왔다.
하지만 아이들 보는 영상과 장난감을 구해오라니?
“참! 아이들 옷과 신발도 사이즈 별로 구해다 주세요.”
고아원에 보낼 건가?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회장님 지시다.
무조건 따라야지.
※ ※ ※
시베리아 개척 군단.
군단 직속 엘리트 마수 스페셜 레이드 팀을 이끄는 김웅방 준장은 부대 최고 사령관 양일국 군단장의 호출을 받았다.
“멸마! 준장 김웅방, 부르심 받고 왔습니다.”
“오! 어서 오게. 불편한 데는 없지?”
“없습니다.”
오늘따라 유독 사근사근한 양일국 군단장.
“일단 앉아.”
“괜찮습니다.”
“어허, 내가 불편해서 그래.”
김웅방은 부담스러웠다.
자신보다 두 계급이나 높은 사령관이 자신에게 이렇게 대하는 이유가 뭘까?
다 아들의 후광 덕분일 터.
“김준장, 오늘부터 사냥을 중단해야겠어.”
“중단이라뇨.”
“다른 임무가 주어질 거야.”
“···.”
사냥 중단이라고?
한창 레이드에 가속이 붙어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속속 복원되고 있는 판에.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나?
‘설마 태주 때문에···?’
알아서 기는 것이다.
잘 보여서 점수를 따보려고.
얼마 전 고비 초원 개척 부대 서강진 중장에게도 연락이 왔다.
이리로 올 생각 없냐고, 만약 와준다면 지휘관 자리도 주고, 승진에도 힘써보겠다며.
그러나 김웅방은 거절했다.
안 그래도 미안한 마음뿐인데,
아들 덕을 보는 건 염치없는 짓이지.
“애초에 여길 온 이유가 최전방에서 마수와 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니 계속 싸우게 해주십시오.”
“하하하, 나도 명령이라 어쩔 수 없어. 자네 아드님 때문에 그러는 거니까.”
그럴 줄 알았다.
태홍 바이오 김태주.
제국의 떠오르는 실세.
이것 때문에 상관들도 자신 앞에서 극히 저자세.
“죄송하지만 아들 덕을 볼 생각 없습니다. 그럴 처지도 아닙니다.”
“응?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오해라니요?”
“이걸 보게. 오늘 하달된 명령서야.”
김웅방은 양일국 중장이 건넨 명령서를 읽어보았다.
거기 적힌 내용들.
- 태홍 바이오 김태주 회장, 마나 거부증 치료제 개발 성공.
- 대량 생산을 위한 재료 확보 시급, 제국군 전격 지원 결정.
- 모든 제국국 병력은 즉시 현 임무를 중단하고 재료 확보에 만전을 기하라.
- 개척 사단이든, 방어 사단이든, 예외 없이 적용한다.
‘···아!’
아들 때문이 맞긴 하지만 자신이 생각한 그게 아니었다.
김웅방은 멍하니 명령서를 보고 또 봤다.
아들이 이룩한 위업.
‘또 해냈구나.’
정말이지 너무 대견하다.
직접 마나 거부증을 극복한 것도 모자라 남을 위해 치료제도 만들어냈다.
저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어떤가? 할 거지? 마수 때려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임무야.”
“지금 당장 병력을 이끌고 약재 채취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자네가 지휘를 맡아줘야겠어. 여기 재료 목록이 있으니 숙지하고.”
“네!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멸마!”
시베리아 개척 사단뿐이 아니었다.
삼한 제국의 전 부대가 재료 채취에 나섰다.
그리하여 뉴서울, 구례 태홍 바이오 공장에 속속 재료가 공급되고 있었다.
※ ※ ※
백서연은 미리내 그룹 이병우 회장과 면담하고 있었다.
한때 미리내 그룹을 일선에서 지휘했던 이기언은 아직 병원에서 깨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 맏아들인 이병우가 그룹을 이어받았다.
“미리내 제약 지분을 인수하시겠다고?”
“네, 제가 제안드리는 가격입니다. 본인 지분, 차명 지분, 움직일 수 있는 우호 지분까지 싹 다!”
이병우는 피식 웃었다.
3,000억?
지금 장난하나?
시건방지게.
“이봐, 백서연!”
“네?”
“지금 장난하는 거야? 지분들 다 합치면 55%가 넘어. 이 가격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하! 전에 미리내 그룹 전략 기획실에 있었다고 했지? 어떻게 그 머리로 일했는지 모르겠군.”
백서연의 안색이 굳어졌다.
다 쓰러져가는 회사를 인수해 주겠다는데.
“지금 마나 거부증 치료제 임상 성공으로 잔뜩 고무된 건 알겠어. 하지만 넌 선을 넘었어.”
“제가요?”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내 지분을 가지고 가겠다고?”
“그럼 얼마를 원하시는데요?”
“동그라미 하나 더 붙이면 생각해보지.”
“···.”
현재 치료제 대량 생산이 시급한 상황, 충분한 생산 설비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 기존 제약회사를 인수하는 것, 그것도 대규모 시설을 완비한 공장을.
“회장님,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낄낄낄, 착각은 네년이 하는 거지. 미리내 제약? 상황이 안 좋은 건 맞아. 팔 수도 있어. 하지만 태홍 바이오에겐 절대 안 팔아!”
“하아, 끝내 이렇게 나오시겠다는 거군요.”
“뭐? 어쩌라고? 김태주 회장에게 가서 일러바치게?”
“아뇨, 일러바칠 분은 따로 있어요.”
“무슨···,”
그때였다.
벌컥!
미리내 그룹 회장실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한 남자.
“어이, 네가 이병우란 놈이구나.”
“···.”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지?”
백발 성성한, 그러나 다부진 근육질의 몸을 자랑하는 황궁 비서관 금수호였다.
이병우 회장은 깜짝 놀랐다.
왜 저 사람이 여기에?
“백사장, 아직 안 끝났나? 갈 길이 바쁜데, 어서어서 진행해야지.”
저벅저벅 걸어와 책상 위에 놓인 지분 인수 제안서를 보더니.
“3,000억? 부실투성이 회사를 이 비싼 가격에 사려고?”
백서연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촉박해서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설비는 확보해야죠.”
“쯧쯧, 너무 비싸, 동그라미 하나 빼. 아니, 기존 부채를 떠안겠다면 하나 더 빼야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의 이병우.
지금 사람을 앞에 두고 뭐 하자는 짓인지.
이런 식으로 자신의 회사를 빼앗아 가겠다고?
“아, 아무리 제국 정부라도 이건 월권입니다. 법이 있는데···,”
“법? 그거 좋지. 나도 법을 좋아해. 제국이 폐하의 입맛에 따라 운영되는 국가는 아니니까.”
“그걸 아시는 분이 왜?”
“나도 법대로 하려고, 어디 보자, 미리내 그룹이 세무조사를 받은 지 얼마나 됐지?”
“네?”
“흐음, 아무리 생각해도 세무조사론 너무 약해. 이참에 검찰을 투입해 탈탈 털어볼까? 예를 들어 숨겨둔 비자금이라든지.”
“···.”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이병우.
심장이 두근거렸다.
협박성 수준의 말이지만 진짜 할 것 같았다.
미리내 그룹이 어디 법을 지켜가며 성장했나?
털면 우수수 나온다.
툭 건드려도 쏟아진다.
“우리가 몰라서 가만히 놔둔 줄 아나? 제정원에, 검찰에, 네놈들 비리가 서류 상자 수십 개씩 가득가득해. 네놈들 따윈 당장 집어처넣을 수 있었어. 미리내 직원들 밥줄 때문에 참고 있었던 거고.”
금수호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네? 무려 마나 거부증 치료제를 만드는 일이야. 그 대업을 위해선 미리내 그룹 따윈 산산조각 내 공중분해 시킬 수 있어.”
이병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황제 다음가는 권력의 금수호, 아니 이건 황제의 의중이었다.
“자, 여기 지분 인수 제안서가 있다. 네가 직접 적당한 가격으로 고쳐봐.”
어쩔 수 없었다.
이병우는 떨리는 손으로 동그라미 하나를 지웠다.
“겨우?”
하나 더 지웠다.
3,000억이 30억으로 변했다.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의 금수호.
백서연이 나섰다.
“됐습니다. 이 금액으로 하죠. 저도 헐값에 후려치고 싶진 않으니까.”
“역시 우리 백사장이야. 마음이 넓어.”
이병우는 황당한 표정이었다.
마음이 넓다고?
저게?
“좋아! 빠른 시일 안에 모든 지분 정리해서 김회장에게 넘겨, 아! 차명 지분도 마찬가지야. 하나라도 숨겼다간···, 알지?”
이병우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후회스럽다.
처음에 3,000억 제안이 들어왔을 때 사인을 해야 했었는데.
앞으로 몇 가지 절차만 끝내면 미리내 제약은 태홍 바이오의 소유, 이로써 대규모 생산 설비가 확보됐다.
※ ※ ※
사실 3차 임상은 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까지 나온 결과만으로도 약효가 입증되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대량 생산에 돌입하기엔 무리.
설비도 모자라고, 무엇보다 재료가 충분치 않았다.
선계 꽃은 물론, 다른 독물 재료들도,
공장 직원들 교육도 시켜야 하고.
각 공장에서 파견 나온 숙련된 제조 노동자들이 태주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도 치료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가족 중에도 마나 거부자가 있는 직원들도 많았다.
3차 임상이 진행됐다.
삼한 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마나 거부증 환자들.
각 100명씩, 10개 그룹으로 나누어 뉴서울 대형 병원에 분산 수용됐다.
1일 차.
첫 번째 투약이 시행됐다.
그리고 2일 차, 3일 차, 4일 차, 5일 차.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F그룹 환자군이 다른 그룹보다 효과가 월등합니다. 모두 완치 판정을 내려도 문제없겠는데요?”
“제일 효과가 떨어지는 그룹은 B그룹입니다. 아무래도 한두 차례 더 접종이 필요합니다.”
“모든 그룹에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때가 됐다.
태주와 백서연, 최동일 지점장이 모여 최종 단가를 논의했다.
“재료비, 인건비, 그리고 유통비까지 합하면 1회분 기준으로 50만 원 정도가 적당할 듯합니다.”
5회분까지 맞는다고 봤을 때 드는 비용은 250만 원.
“의료보험 공단은요?”
“수가 적용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삼한 제국에선 가난 때문에 접종하지 못하는 환자는 없을 것이다.
“생산에 들어갈까요?”
아직은 확보한 재료가 충분치 않았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태주는 결정을 내렸다.
“네, 생산 시작합시다.”
이름도 정했다.
해외 수출까지 감안해서.
마나 거부증 치료제(Mana Rebuff Cure).
줄여서 MRC.
제국 정부는 즉각 특허를 통과시키고 식약청 허가도 내줬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아직 치료제를 받지도 않았는데 허가가 떨어졌다.
심지어 약이 생산되기도 전에 선금부터 들어왔다.
모두 안달이 나 있는 상태.
대체 언제 올까?
F그룹에 적용된 제조식을 기준으로, 구례 태홍 바이오 공장, 뉴서울 공장, 그리고 백두 바이오 사이언스에서 일제히 마나 거부증 치료제, MRC가 생산됐다.
파주는 공장이 완공되는 대로 합류할 것이고, 이젠 태홍 바이오의 소유가 된 미리내 제약도 일주일 안에 생산에 돌입할 예정.
목표는 삼한 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의 초중증 환자들을 위한 1차 투여분 공급.
한 번만 맞아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침대에서 일어나진 못해도 산소호흡기를 떼고 자가호흡 단계에 이르는 데는 문제가 없다.
각국에서 군 수송기가 뉴서울 공항에 착륙했다.
거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MRC 이송 작전.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눈이 빠져라, 대기하고 있던 환자들에게 치료제가 투약됐다.
<드디어 마나 거부증 치료제 MRC 공급 개시.>
<각국 초중증 환자들부터 투약 시작.>
<효과는? 예상대로였다. 3차 임상의 기적이 그대로 재현돼.>
<단 한 번 맞았을 뿐인데 초중증 환자의 의식이 돌아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마나 거부자들.>
<제약의 신이 지구에 강림하셨다. 김태주를 찬양하라!>
└ 김태주!!!
└ 태주 킴!!!
└ 완전히 찢었다.
└ 진짜 너무너무 감사하다. 내 동생이 살아났어.
└ 축하해.
└ 고맙다.
└ 흐흐, 기다리다 보면 내 차례가 오겠지?
└ 그래, 끝까지 버티라고!
세상이 들썩이고 있었다.
모두가 마나 거부증 치료제 MRC 이야기뿐이었다.
당연히 개발자 김태주의 이름도.
└ 와! 정말 이 사람 신인가?
└ 최소한 천사는 맞다. 1회분 가격 봐. 겨우 400달러야.
└ 화이백 프레드 밀러 그 새끼였으면 아마 백만 달러는 받았을걸?
└ 이 사람 얼굴 사진 없어? 방에다 붙여놓고 매일 절하게.
└ 찾기 힘들어. 삼한 제국 정부에서 엄청나게 단속하더라고. 인터넷이고, SNS고 올라오는 즉시 지워버리던데.
└ 왜 그렇게까지?
└ 신이잖아! 신의 얼굴을 함부로 보면 안 되지.
김태주의 얼굴은 제국 정부의 통제로 인해 널리 퍼지진 않았지만 그 이름만은 세계인들에게 똑똑히 각인됐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마나 거부증 때문에 사망한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기적이었다.
< 생산 개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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