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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계는 오늘도 즐겁다. >
MRC 1차분 출고를 마치자마자 태주는 미리내 제약 공장으로 갔다.
기다리고 있던 백서연이.
“회장님.”
“인수는 끝났나요?”
“거의 끝나가는 중입니다. 곧 소유권이 넘어올 겁니다.”
“흐음, 그런데 공장이 왜 이렇게 썰렁하죠?”
실제로 그랬다.
명색이 대기업 제약회사 공장인데, 마치 정전이라도 된 것처럼 설비들이 멈춰있었다.
직원들도 몇 명 보이지 않고.
“회사가 어려워서, 그동안 공장이 잘 돌아가지 않았어요. 정리해고 당한 직원들도 많고, 월급도 몇 개월씩 밀려있었고.”
“쯧, 안타깝네요.”
진작 인수했어야 했다.
피해를 본 직원 중에 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도 있었을 텐데.
‘이병우, 그놈도 똑같은 놈이군.’
딱 기억해뒀다.
“해고된 직원들 전원 복직시키고 밀린 월급은 무조건 일괄 지급하세요. 연봉도 우리 직원들 기준으로 올려주시고.”
“당장 처리하겠습니다.”
“파주 공장 진행 상황은요?”
“정연희 지점장이 직접 나서서 완공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거기도 곧 생산에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파주도 방문해야겠다.
가서 격려라도 해줘야지.
재료는 충분하다.
이제 곧 치료제를 쏟아낼 수 있을 터.
지금까진 설비와 노동력이 부족했을 뿐.
전 세계 마나 거부자의 숫자는 약 2억 명, 그들이 모두 5회차까지 MRC를 투여받는다고 가정하면 당장 필요한 개수만 10억 개.
게다가 지금도 많은 아이가 마나 거부자로 태어나고 있다.
최종 목적은 마나 거부증을 감기보다 못한 평범한 질환으로 만드는 것.
‘마나 거부자구나? 괜찮아. 주사 맞으면 나아.’
‘마나 거부자라서 조퇴하고 싶다고? 고작 그 핑계로? 꾀병 부리지 마. 안 돼!’
‘태어난 아이가 마나 거부자입니다. 네, 다른 질환은 없어요, 천만다행입니다.’
이럴 날이 머지않았다.
이제 개인적 일을 처리해볼까.
태주는 뉴서울 대형 완구 쇼핑몰로 갔다.
솔직히 송수희가 구매한 장난감들이 마음에 안 들었다.
우선 양이 턱없이 적다.
한도 없는 카드 주면서 다 긁어오라고 했는데.
무슨 죄다 블록쌓기 같은 교육용 아니면 불빛 번쩍번쩍하는 장난감 칼에다 총, 인형···, 차라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나 더 보내는 게 낫지.
분명 10살 이상이라고 말했는데.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그런가?
‘이런 건 남들 시키면 안 되겠어.’
일단 배송은 보류했다.
직접 사서 보내야지.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게 딱 하나 있었다.
하지만 고작 하나.
지금 완구 쇼핑몰에 가는 이유가 그걸 대량 구매하려고.
“이 제품, 배터리는 얼마나 오래가나요?”
“마나 결정체 배터리를 적용해서 하루 10시간 작동한다고 가정하면 3개월 이상은 충분합니다.”
마음에 든다.
이참에 발전기도 몇 개 더 보내고.
엘리트 결정체야 무한공간에 잔뜩 들어있으니까.
“이런 거 몇 개 있습니까? 전시된 게 전부인가요?”
“아뇨. 창고에 더 있습니다. 얼마나 더 필요하세요?”
“다!”
“···네?”
“다 주세요. 여기 물류창고로 배송해주시면 됩니다. 지금 당장.”
“아, 알겠습니다.”
부피가 생각보다 크다.
다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항상 선계로 물건을 보낼 때마다 드는 생각.
‘아공간 가방이 몇 개 더 있으면 좋겠는데.’
아공간 아이템.
사실 생각해보면 매우 신기한 물건.
대체 어디서, 누가 만드는지 모르겠다.
무한공간이야 신선의 술법이니 그렇다 쳐도 아공간 아이템은 지구에서 만들어지는 거 아닌가?
‘각성자 제작 스킬로 아공간 아이템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수상하다.
다른 마법 아이템도 의심스럽고.
시대를 벗어난 물건.
거의 오파츠나 다름없다.
‘···영혼 연결자가 만든 물건일 수도 있어.’
아니, 거의 확실할 것이다.
‘나도 그렇고, 천마도 그렇고···,’
영혼 연결자들은 확실히 더 있다.
숫자가 몇 명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중에 만나게 되겠지.’
천마 같은 놈만 아니면 된다.
잠시 후, 물류창고에 완구 쇼핑몰에서 보낸 물건들이 도착했다.
무한공간에다 집어넣으려고 하는 순간!
찌르르르.
마침 배송 신호가 떴다.
“오케이!”
기막힌 타이밍.
공유창고에 들어있는 천계 꽃들을 옮기고, 아공간 가방과 호리병박에 든 꽃도 비우고.
‘시간은 충분해.’
과거 혼원무상독령공 대성으로 인한 영혼 연결 이벤트 이후, 공유창고도 커지고, 반짝임의 지속 시간도 늘어났다.
덕분에 물건 받고 보내기에도 여유가 생겼다.
먼저 공유창고부터 채우고, 그리고 두 개의 아공간 아이템에도 물건을 넣고.
그래도 아직 반짝이고 있었다.
시간이 넉넉해서 좋다.
그나저나 이 물건들, 천인들이 마음에 들어 할까?
※ ※ ※
삼한 제국과 전 세계로 공급되기 시작한 마나 거부증 치료제, MRC, 초중증 환자들을 위한 1차 긴급 투여분이었다.
비교적 증상이 가벼운 거부자들은 후순위로 밀렸다.
하지만 누구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아메리카 공화국 빌리 피트먼 대통령의 딸, 레이첼 피트먼도 초중증으로 분류되어 다행히 치료제를 투여받을 수 있었다.
쌔액, 쌔액, 쌔액.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레이첼.
“시작할까요?”
“어, 어서!”
백악관 주치의가 MRC 치료제가 든 주사기를 링거 줄에 달린 약물 투입구에 찔러넣었다.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빌리 피트먼과 그의 아내.
과연 어떻게 될까?
치료제의 효과는 이미 검증되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새근, 새근, 새근.
한결 숨소리가 편안해진 레이첼.
그러더니,
슬며시 눈을 떴다.
“오오오!”
“레, 레이첼!”
심지어 산소호흡기를 제 손으로 벗기고.
“아빠, 엄마···,”
대체 얼마 만인가?
딸의 목소리를 들어본 지가.
“레이첼, 괜찮니?”
“으음, 편안해. 숨도 잘 쉬어지고.”
“하하하하! 그래, 이젠 더 좋아질 거다.”
빌리 피트먼은 크게 웃었다.
이로써 그도 약효를 실감했다.
아무리 목숨이 경각에 달해도 MRC 주사 한 대만 맞으면 산다.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이게 다 누구 덕분인가?
태홍 바이오의 김태주.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 기적이었다.
‘삼한의 류태현 황제가 부럽군.’
김태주 회장의 단점이라면 그가 아메리카 공화국 시민이 아니라는 것.
빌리 피트먼은 스마트폰을 들어 백악관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날세.”
- 대통령님, 레이첼 양은 어떻게 됐습니까?
“한결 나아졌어. 고비는 넘겼네.”
- 아아! 축하드립니다.
“고마워, 그건 그렇고, 전에 내가 지시한 거 알아봤나? 아공간 아이템 말이야.”
- 현재 소유자와 접촉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가격을 세게 불러서.
“될 수 있으면 꼭 구하게. 부탁하네.”
- 노력해보겠습니다.
현재 국가 소유의 아공간 가방이 하나 있다.
마수 토벌 작전 때 군부대 지원용으로.
그걸 주면 되겠지만 하나로는 성이 찰까?
나름 강대국인데 최소 2개 이상은 준비해야지.
그리고 그걸 빌미로 김태주 회장을 아메리카로 초청할 생각.
한번 만나보고 싶다.
카피약에 대해 사과하고 감사를 표하고 싶다.
진심으로.
※ ※ ※
선계(仙界).
멀리서 선학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꺄악, 꺄악!”
곤륜 선인에게 당한 상처도 제법 회복되어 머리에 붉은 빛깔이 돌아온 선학.
태상노군이 학에서 내렸다.
이제 그의 상징이 된 옷차림, 검정색 수트에 구두, 그리고 선글라스.
한 손은 주머니에, 나머지 한 손은 클러치 백을 들고 당당한 걸음으로 선계 멀티 플렉스에 들어갔다.
그가 제일 처음 간 곳은 주선이 운영하는 칵테일 바.
“마티니 한 잔.”
“···오랜만에 오셨소. 노군.”
“뭐, 많이 바빴네. 놀고먹을 수 없는 처지라,”
꿈틀,
주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놀고먹는다니,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은데.
“선불이요.”
그러자 태상노군이 무심코 바 스탠드에 던진 신용패가,
툭!
미끄러지듯 나아가 주선 앞에 놓였다.
스으윽!
“아예 석 잔 긁게. 안주도 하나 내어오고, 치즈나 햄 같은 거 말이야.”
“···.”
갈수록 기분 나쁘네.
신용패를 던져?
아무리 큰손이라도 그렇지.
‘진상노군이군.’
그래도 손님인데 어쩔 수 있나.
“여기 있소. 그런데 엉덩이도 무거운 노군께서 어쩐 일로?”
“흐흐흐, 그야 좋은 소식 전하러 왔지.”
“좋은 소식이라니?”
“다들 내게 감사해야 할 거야.”
태상노군은 클러치백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마음 한구석에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 기대감.
선도 인상에 관한 말을 하려고 직접 왔다.
그러면 신선들이 얼마나 자신을 추앙할까?
비록 독선만큼은 아니지만 선계 이인자의 지위는 확고하게 굳힐 수 있을 터.
“도화궁 서왕모와 합의를 봤네.”
“무슨?”
퐁!
언제 들어도 경쾌한 듀퐁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휘유우우, 이제부터 우리 신선들에게 선도를 하루에 한 개씩 지급하기로 결정했어.”
노군이 뿜은 희뿌연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이게 좋은 소식이야.”
어때?
죽이지?
그런데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지는 주선.
“이 미친 영감탱이가! 여기가 어디라고 연초에 불을 붙여?”
뭐지?
태상노군은 어리둥절했다.
지금 나한테 소리친 건가?
그때였다.
서걱!
태상노군의 눈앞에서 번뜩이는 검광.
“히익?”
불을 붙인 담배 끝이 정확하게 잘려 나갔다.
검선이었다.
“무, 무슨 짓인가? 갑자기 검을 들이대?”
“애들 드나드는 장소에서 뭐 하는 짓이오? 노군!”
“···애, 애들이라니.”
그러자 휴게실에서 쉬고 있던 신선들도 우르르 다가와 손가락질하며 욕했다.
“공기 청정기를 백 대 가동해도 모자랄 판에 담배를 피워?”
“아이들 폐암 걸리면 책임질 거요?”
“쯧쯧, 저 흉측한 담뱃갑 그림 보고도 피울 생각이 드나?”
“기고만장이 극에 달했어.”
“입혀주고, 키워주니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야.”
“라이터 3일간 압수!”
“그걸로 되겠소? 아예 손모가지를 분질러야지.”
태상노군은 당황했다.
하루에 선도 하나씩 주겠다고 분명히 이야기했는데···,
왜 대접이 이렇지?
하루에 선도 하나.
백수 신선 놈들이 시위까지 하면서 주장했던 요구 사항 아닌가?
상위 계 대표자 모임에서 상제와 날을 세워가며 이뤄낸 성과였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애들 핑계 대면서 사람을 몰아세워?
여기 아이들이 어디 있다고?
마침 독선도 위층에서 내려왔다.
“태상노군 아니시오.”
“오! 독선! 왔군. 글쎄 내 말 좀 들어보게. 대표자 회의에서 선도를 하루에 하나···,”
“잠깐!”
당군악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누가 여기서 담배 폈소?”
그러자 태상노군에게 집중되는 신선들의 손가락.
“노군이요.”
“노군이 폈소.”
“라이터 퐁퐁거리면서 뻔뻔하게 피더만.”
‘어우! 꼬라지 하고는···.’
“저게 신선이 할 짓이오?”
“매너가 신선을 만드는 법인데.”
찌릿!
태상노군을 노려보는 당군악의 시선.
“아, 아니, 진짜 다들 왜 이래? 내가 무슨 잘못을···,”
순간!
우르르르르!
“밖으로 나가서 놀자.”
“맞아! 계속 게임만 하면 폐인이 된대.”
“근데 이게 무슨 냄새야?”
“으으으···,”
계단을 통해 아이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헉!”
태상노군은 깜짝 놀랐다.
‘진짜 아이들? ···아! 천인들이로군.’
그제야 이해가 간다.
물론 좀 억울하긴 하지만.
‘미리 이야기해주면 어디 덧나나?’
멀티플렉스에 놀러 온 모양.
모두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등 뒤엔 다른 세상에서 쓰이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고, 손에는 머리통만 한 공과 희한하게 생긴 신발도 신고.
“오늘은 내가 공격할 거야.”
“아니야! 넌 골키퍼 해야지.”
“왜 나만 키퍼야? ”
“공을 잘 잡잖아.”
“그래? 그럼 나 골키퍼 할게.”
신선들도 그들을 보자 신이 났다.
“우리도 끼워줄 테냐?”
“네! 빨리 나가요.”
“아이스크림 내기, 콜?”
“반칙 쓰면 안 돼요! 날아가도 안 되고.”
“선기는 절대 쓰지 않겠다.”
“그럼 딜!!!”
함께 나가서 편을 먹고 공놀이, 아니 축구를 하는 신선들과 천인들.
당군악은 흐뭇한 미소로 그들을 바라봤다.
바로 그때!
찌르르르,
지구로부터 온 배송 신호.
‘왔구나.’
당군악은 공유창고를 열었다.
서둘러 물건을 빼내면서, 천계 꽃을 공유창고에 넣고,
태주가 보내온 물건들, 공기계 스마트폰과 아공간 아이템, 그리고 아이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
“오! 이런걸?”
모두 비우고 다시 천계 꽃으로 채우고.
‘더 보낼 건 없지?’
당분간 선도 대신 꽃만 보낸다.
치료제가 충분히 생산될 때까지는 말이다.
이제 확인해보자.
태주가 보낸 물건들.
평범한 장난감인 줄 알았는데···,
‘천인들이 좋아하겠어.’
당군악은 밖으로 나갔다.
천인과 신선들이 멀티플렉스 앞마당에서 한창 공놀이 중이었다.
우선 한 대를 꺼냈다.
순간 당군악에게 집중되는 시선.
“응?”
“저건···,”
“자동차?”
“삼각뿔이면 벤츠 아니오?”
“그런데 왜 저리 작아?”
어린이용 전동카였다.
유아용보다 조금 더 큰.
몸집이 작은 어른도 탈 수 있을 정도.
속도도 상당히 빠르다.
당군악은 전동카 위에 올라탔다.
‘좀 끼나?’
어쩔 수 없다,
몸을 줄이는 수밖에.
우드득, 우드드득, 우득!
축골공을 시전하자 작아지는 당군악의 몸.
그리고 악셀을 밟자,
위이이이잉!
검선이 만들어놓은 도로 위로 전동카가 질주했다.
“우와!”
“와아아아아!”
“독선님, 멋져요!”
“저도 타고 싶어요.”
환호성을 지르며 당군악이 탄 전동차를 쫓아가는 천인들.
부끄럼도 모르는지 신선들도 따라서 쫓아왔다.
“허허허!”
“요지경이구나.”
“도, 독선, 한 번만 타봅시다.”
검선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직접 건설한 선계 도로, 만든 보람이 있었다.
그동안 혼자 사용하느라 외로웠는데,
이젠 함께 달릴 수 있겠다.
‘도로를 더 넓힐까?’
길이 연장도 하고.
아예 천계까지 이어지도록 만들어야지.
< 선계는 오늘도 즐겁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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