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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팔이는 심판해야 한다.(1) >
시간이 흘러 어느덧 MRC 2차 출고.
1차 때보다 물량이 두 배로 늘었다.
태주는 출고 마지막 과정을 검수하려고 구례 공장으로 왔다.
여기가 군대인지 공장인지 모를 정도로 바글바글한 군인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삼엄한 경계 태세.
모든 태홍 바이오 공장과 지점에 완전무장한 제국군이 투입되어 철통 방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MRC 공장에 마인들이 나타났는데, 가만히 있으면 직무유기지.
당연히 구례에도 지리산 방어부대가 총출동했다.
부대 지휘관들이 태주를 보자마자.
“김회장님께 대하여 경례!”
“멸마! 멸마! 멸마···!”
태주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난치지 마시죠. 오중장님.”
“아니, 이게 장난일 것 같나? 얼굴 보기도 힘든 삼한 제국 실세님께서 떡하니 행차해주셨는데, 부대 총 사열을 해도 모자랄 판이지.”
“···.”
싱글벙글 웃고 있는 지리산 방어군단 사령관 오진형 중장.
왜 이렇게 업돼 있어?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설마?
“진급 결정 났나요? 별이 4개?”
“흐흐, 역시 눈치가 빨라.”
“근데 왜 아직 여기 계세요?”
“자리가 나야 말이지, 병사든, 부사관이든, 장교든···, 군인은 보직이걸랑.”
“아하.”
태주도 흐뭇했다.
구례에 처음 왔을 때 오진형의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았나?
그가 잘 되면 당연히 기분 좋지.
“그건 그렇고, 자네 결혼은 언제 해?”
···결혼이라니,
이 양반이 말을 함부로 하네.
“먼저 여친이 있는지 물어보는 게 순서 아닙니까?”
“엥? 있잖아.”
“뭐가요?”
“여친.”
대체 무슨 소리?
“제가 여친이 어디 있다고,”
“다 들통났다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태주는 오진형이 스마트폰으로 직접 보여준 뉴스 기사를 보고 나서야 무슨 일인지 알았다.
‘어?’
다스패취에서 보도한 기사였다.
유명인들 염문설 보도로 이름난 그 언론사.
<백두 그룹 재벌 3세 정연희씨와 파주 시내를 거니는 남자는 누구?>
- ···사진 속 남자가 누구인지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따라서 단순히 생각하면 부하직원과 회장과의 관계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러기엔 둘 사이가 매우 친밀해 보인다. 중요한 건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는지···, -
이거 언제 찍힌 거지?
“기사가 이것뿐인가? 여기도 봐. 지금 난리가 났어.”
<태홍 바이오 김태주 회장, 벌써 품절남?>
<백두 그룹 측,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태도, 다만 지나친 억측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
<주식 시장이 불타오른다. 백두 그룹 계열사 주가, 속속 상한가 행진.>
‘후우,’
이거 골치 아프네.
왜 갑자기 이런 기사가.
“언제 결혼할 건가? 청첩장은 보낼 거지? 식장은 어디서? 구례나 파주는 제외하게. 될 수 있으면 뉴서울에서 해야지. 황궁 연회장을 빌려서···,”
그때였다.
“야! 남녀가 같이 붙어다니면 무조건 사귀는 줄 아나? 사업 때문에 이야기 나눈 것뿐이겠지. 설마 김회장이 결혼이라는 지옥으로 제 발로 들어가겠어!”
금수호 비서관이었다.
“하여간 군인 놈들은 나이가 젊으나 늙으나 다 똑같아요. 여자 저항력이 없어! 이 새끼들은 여자와 눈만 마주쳐도 자식 유치원부터 알아볼 놈들이야.”
그러자 오진형 중장이 뚱한 표정으로.
“신빙성 있으니까 그렇죠. 금비서관님은 총각이시라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닥쳐! 군바리 새끼야! 저리 가서 공장 방비나 제대로 해! 진급 취소되기 싫으면.”
“왜 나만 보면···, 자기도 군인 출신이면서.”
오진형이 구시렁대면서 자리를 피하자 금수호가 주섬주섬 2개의 작은 가방을 꺼내 태주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받게. 아메리카 공화국에서 보낸 선물이야.”
“오! 드디어!”
아공간 가방이 추가됐다.
이제 총 4개.
“얼마랍니까?”
“글쎄, 가격 이야기 안 하는 걸 보니···, 공짜? 그냥 가지게.”
“그럴 수야 없죠.”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
더구나 가방 하나에 한두 푼도 아니고.
“가격 알려달라고 하세요. 값은 반드시 치른다고.”
“알았네. 그건 그렇고, 유럽 제국에서 연락이 왔어. 블랙 마피아 건 말이야.”
“수사는 잘 되고 있답니까?”
“사실 블랙 마피아는 유럽에서도 주시하고 있었던 갱 조직이었다더군.”
“그래요?”
이름에 마피아가 들어가니 당연히 갱 조직으로 알고 있었겠지.
“그래서 이번 마인 테러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자마자 유럽 제국 경찰과 정보 요원이 각 대도시 블랙 마피아 지부들을 급습했다고 알려왔어.”
“···잡았나요?”
“아니! 이미 한발 늦었다네.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고, 남아있는 물건들도···,”
알만하다.
흑마법사 에드워드를 매개로 흑막과 나눈 대화.
놈은 숨기로 결정했나 보다.
그럼 찾기 난감하다.
놈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그나마 마인의 정체는 확인해줬네. 중국계 유럽 제국민 모영강, 난민 출신으로 주로 살인 청부를 주업으로 삼아왔던 놈이야.”
사실 마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그놈을 도구로 삼아왔던 블랙 마피아의 장로들.
5명이라고 했으니까 4명 남았다.
거기에 놈들의 우두머리인 영혼 연결자.
“유럽 제국에도 비상이 걸렸어. 어쨌거나 마인 조직 실체가 확인되었거든. 전력을 다해 수사할 테니 기다려보자고.”
“그래야죠.”
“그럼 난 이만, 계속 고생하시게. 결혼할 생각은 접고.”
“···.”
금수호와 헤어진 후, 태주는 개인 연구실로 갔다.
그놈들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해보자.
천마의 경우엔 행운이었다.
당군악이 다 해준 거지.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연결된 영혼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잡긴 잡아야 하는데···,’
세계 평화의 임무를 맡은 건 아니지만, 그놈들은 존재만으로 위협 요소.
그놈이 가만히 있을까?
언젠가는 분명 공격이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태주에겐 지켜야 할 사람이 아주 많아졌다.
‘기다리라고 했었어. 날 맞이할 준비를 한다고.’
그게 무슨 준비인지는 모르겠지만.
태주는 주머니에서 흑마법사 에드워드가 떨어뜨렸던 반지를 꺼냈다.
현재 남아있는 단서는 이것뿐.
여기에 무슨 실마리가 있을지 조사했지만 그 어떤 마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엘리트 마나 결정체가 박혀있다는 사실 말고는.
‘용도가 뭐지?’
직접 껴보면 된다.
태주는 반지를 오른손 약지에 끼웠다.
효과가 생길까 기다렸지만···,
‘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문가에게 넘겨서 세밀하게 조사해볼까?
순간!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회장님, 저 백서연입니다.”
“들어오세요.”
심각한 표정의 그녀.
“무슨 일이죠?”
“저어, 다름이 아니라···,”
목소리도 가라앉아 있었다.
몹시 화가 난 것 같은데.
“회사 차원에서 회장님과 관련된 SNS 게시물을 관리하는 건 아시고 계시죠?”
“아! 전에 보고 받은 기억이 납니다.”
“방금 우리 홍보실에서 한 게시물을 찾아냈습니다.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보고드리려고요.”
혹시?
다스패취 기사와 관련된 것인가?
어떡하지?
사귀는 사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나?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사실은 비즈니스적인 차원에서···,”
“이걸 보십시오.”
“어?”
깜짝 놀랐네.
염문설 기사와 관련된 게시물은 아니었다.
동남아시아 계열인듯한 한 소녀가 올린 짧은 SNS 영상.
흐느끼는 목소리로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삼한 제국민은 아닙니다. 이 소녀의 이름은 에일라, 국적은 버마 공화국입니다. 현재 하는 말을 번역해보면···,”
“아뇨, 번역은 괜찮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네요.”
“네? 어떻게···,”
태주는 흑마법사 에드워드가 남긴 반지의 용도가 무엇인지 알았다.
‘통역 반지였어. ···뭐, 득템인가?’
처음엔 낯선 언어였다.
그리고 그 뜻을 뭔지 궁금해하려는 찰나, 반지에서 흐르는 기운, 순간 영상 속 소녀의 말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심지어 말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선계에도 비슷한 술법이 있다.
학선(學仙) 갈홍 선인의 천리신통(千里神通) 술법진.
광범위한 언어 공유 기능.
물론 이 반지와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술법진이 텔레파시 형식으로 언어를 공유한다면 이 반지는 AI 번역기 같은 거, 그래서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말도 해석이 가능했다.
“이거 사실입니까?”
“따로 조사해봤습니다. 불행하게도 전부 사실입니다.”
300년 전엔 미얀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지만 지금은 버마 공화국.
동남아시아에선 타이 왕국 다음으로 큰 나라, 사실 이름만 공화국이지, 군부에 의해 통치되는 독재 국가였다.
군부 독재자의 이름은 민타누, 버마 최강의 마스터이자 정부군 최고 사령관.
태홍 바이오는 버마에도 마나 거부증 치료제 MRC를 공급하고 있었다.
이 소녀의 오빠가 초중증 마나 거부자였는데, 치료제를 투여받지 못해 결국 사망했단다.
그녀는 슬픔에 못 견뎌 SNS 숏 영상으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고.
“버마에 공급된 MRC 개수는요?”
“약 1만 병입니다. 그러나 단 하나도 유통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유통되지 않았다면? 다른 나라로 빼돌려 되팔았다는 말인가요?”
“네, 최소 5배 이상 부풀려서, 아니 그보다 더 비싸게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되팔이구나.
그것도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한 아주 파렴치한 되팔이.
이게 살인하고 뭐가 다를까?
“독재자 민타누가 예전부터 주장해왔던 발언들이 있습니다.”
“뭐죠?”
“마나 거부자들은 공동체를 좀먹는 벌레들이라고, 사회 발전을 위해선 도태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며, 국가의 복지혜택에서도 그들을 제외해 왔습니다.”
“미친 새끼군요.”
“전형적인 각성 계급주의자입니다. 자국 마나 거부자들에게 약을 공급하는 것보다, 다른 곳에 팔아서 국가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듯합니다.”
“후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눈앞에 민타누인가 뭔가 하는 놈이 있었다면 그대로 머리를 잡고 한 바퀴 돌려버렸을 것이다.
태주도 마나 거부자였던 적이 있어서 잘 안다.
지금은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지만, 사실 마나 거부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별로 좋지 못했다.
- 마나 거부자는 사회의 짐 덩어리다.
- 하등의 쓸모가 없는 존재들이다.
- 세금이 아깝다.
- 어차피 죽을 거 왜 그들에게 투자해야 하나?
심지어 삼한 제국 내에서도 차별이 존재했다.
태주도 경험하지 않았나?
군 소위였지만 이등병들도 자신을 무시했었다.
그냥 둬선 안 된다.
버마 공화국의 수십만 마나 거부자들을 위해서라도.
“삼한 제국 정부는 알고 있나요?”
“곧 알게 되겠죠.”
“어떻게 대응할까요?”
“버마 정부에 항의하는 게 전부 아닐까요?”
“걔들이 오리발 내밀면?”
“그럼 방법이···, 수출 금지하는 것 말고는.”
씨발 새끼들.
수출 금지는 안 된다.
버마 국민들이 더 고통받는다.
“항의가 안 통하면 버마 초중증 환자들에게 몰래 치료제 공급하는 방법도 알아보라고 전해주세요.”
“네.”
이걸로는 부족하다.
“또 다른 국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전수조사해주시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버마 공화국 권력자들 명단과 사진이 필요한데···, 제정원이나 정부 통하지 않고 입수할 방법 있습니까?”
정부 쪽은 한계가 있다.
군대를 파병할 것도 아니고.
백서연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 물음에 답했다.
“독재자에 대항하는 반군 세력이 있습니다. 그들이라면···,”
“그래요? 그럼 아예 그 반군 세력을 만나보는 게 더 빠르겠네요.”
“접촉해보겠습니다. 비밀리에.”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는 백서연.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뭘 하려는지 아는 것처럼.
태주도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독재자 민타누.
놈은 악인이다.
게다가 멍청하기까지 하다.
마나 거부자들을 살려서 인구를 늘리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 아닌가.
하긴, 악인 중에 영리한 자들이 몇이나 될까?
그저 보통 사람들과 비교해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놈들일 뿐, 저런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안다.
국가를 운영할 재목이 안 되는 새끼.
갱생시킬 가치가 있나?
※ ※ ※
선계(仙界).
귀곡과 갈홍은 태주가 보내온 놀이공원 설계도를 보며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여기부터 비교적 타기 쉬운 어트렉션을 배치하면 되겠군.”
“회전목마 정도가 좋겠소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우주선도.”
“중간중간에 도로를 건설해서 이동에 불편함이 없어야 하오.”
“이쯤엔 양말도 젖고, 속옷도 젖는 아마존조로존존존을 만듭시다.”
“물은 어디서 끌어오게?”
“신선이면서 호풍환우도 모르시오? 구름 하나 소환해서 비를 내리면 되지.”
“아, 맞다. 나 신선이었지? 가끔 헷갈려서 그러오.”
주선이 슬며시 끼어들면서,
“우리가 탈 만한 거 없나?”
“신선이? 재미나 있겠소? 공포에서 오는 짜릿한 느낌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고말고. 보통 사람이라면 모를까···, 가만!”
뭔가 떠올랐다는 듯 눈빛을 반짝 빛내는 귀곡,
“부적이나 보패로 일정 시간 동안 선기를 봉인하면 되겠군.”
“선기 봉인?”
“그러고 나서 어트렉션을 탑승하면 오줌을 질질 쌀 거요.”
“오오오, ···죽진 않겠지?”
“그깟 선기 봉인한다고 신선이 죽어? 뭐, 이참에 한 번 죽어봤으면 좋겠소.”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공사 기간.
최대한으로 단축시켜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천인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숫자는 얼마나?”
“신선들 숫자가 50명이 채 안 되오. 거기에 제법 힘을 쓸 수 있는 무림계 선인들은 극소수이니.”
“쯧쯧, 노동력이 문제야.”
“독선은? 해결 방법이 있답니까?”
“그 양반은 바빠. 열외시킵시다. 한창 서왕모 꼬시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때였다.
멀티 플렉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시커먼 형상의 한 남자.
“저, 저어기···.”
주선이 친근하게 말을 건네며 아는 체를 했다.
“오! 강림 아니시오? 어쩐 일이요? 요즘 뜸하더니,”
행색을 보니 매우 초라해졌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일단 앉으시오. 목이나 축이고 이야기해봅시다.”
엉거주춤 자리에 앉은 강림.
“쯧쯧, 몰골이 말이 아니오. 게다가 시계는 어디에 두고?”
“압수당해서,”
“응? 압수? 누구에게?”
“그, 그게, 어찌 된 일이냐고 하면···,”
강림차사가 울먹이는 음성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신선들의 눈이 점점 초롱초롱해졌다.
뭐? 염라가?
노동력 문제 금방 해결되겠는데?
< 되팔이는 심판해야 한다.(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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