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123화 (12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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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 현장 기강 확립 >

상위 계도 하나의 세상.

기본적인 생활을 하려면 육신이 필요하다.

신선들은 문제없다.

우화등선으로 육신을 그대로 가지고 올라오기 때문에.

그러나 천인과 죄인들은 다르다.

몸을 만들어 줘야 한다.

천인에겐 기쁨과 행복을 영위하게 할 목적으로, 죄인에겐 고통과 절망을 느끼게 할 목적으로.

그런 이유로 천인들은 건강하고 활력 가득한 최상급의 육신을 부여받지만, 죄인들은 하찮고 볼품없는 육신이 주어진다.

비슷하게는 만들어졌지만, 죄인들의 육신은 한계가 있다.

그런데 아주 가끔, 하찮은 육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자들이 종종 나타난다.

특히 무림인들.

인간계에서 자신이 이룬 경지에 다가가려고 하는 자들.

한때 절대 고수를 경험했던 영혼들이었다.

과거 인간일 때 익혔던 무공 구결들을 모조리 다 기억하고 있었고.

그 중의 한명인 혈마.

혈교의 교주.

천마 신교가 탄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강호 무림의 공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무인.

사망한 이후, 흑저지옥(黑底地獄)에 떨어져 쉴 틈 없이 땅을 파면서 노역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지옥을 탈출하려고 굳게 마음먹었다.

혈마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인간계에서 가졌던 몸은 잃었지만 대체할 수 있는 육신이 있다.

비록 그것이 하찮은 몸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그것이 혈마의 도전 욕구를 자극했다.

역천혈마공.

하늘을 거스르는 마귀의 내공심법.

아무도 모르게 역천혈마공을 수련했다.

차사와 사자의 눈을 속이고, 그 무섭다는 판관의 이목도 피하고, 무시무시한 지옥에서, 불굴의 혼으로, 결코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역천혈마공은 모두 7단계.

진혈의 씨앗을 심는 혈종(血種), 여기부터가 시작, 그다음 혈근(血根)으로 뿌리를 내린다.

혈장(血長)으로 혈기의 공능을 키워나가며, 혈화(血和)로 육신과 영혼을 조화롭게 이끌고, 혈전(血全)으로 신공의 완성을 이루며, 혈천(血天)으로 인간의 격을 초월하면서, 혈신(血神)으로 전지전능한 존재가 된다.

역천혈마공의 대성은 바로 혈신(血神).

신(神)이 되어 이 빌어먹을 상위 계를 소멸시킬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흑저지옥의 형벌인 천장 압착 회피하기였다.

압착형을 당하게 되면 기존의 육신은 산산이 터져버리고 다시 새로운 육신을 부여받는다.

열심히 수련한 역천혈마공의 경지가 수포가 된다는 의미.

무조건 피해야 했다.

천장이 내려올 때, 땅을 깊숙이 파고 들어가 육신을 보호했다.

그래서 마침내 혈천(血天)의 역천혈마공.

만들어진 육신의 격을 초월했다.

강호 무림에서 이룬 성취를 다시 한번 재현했다.

어차피 시간은 많다.

혈신까지 올라선다.

그 와중에 이곳 선계 노역형에 끌려오게 된 것.

흑저지옥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일한다고?

이건 호재였다.

혈마도 귀동냥을 통해 들은 사실이 있다.

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는 황천계와는 달리 선계는 개방적인 공간, 주위 환수계와 요마계, 천계도 연결되어 있었다.

탈출해서 숨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이놈은 대체 누구지?

다짜고짜 자신을 지목해서 한다는 소리가···,

“춘삼이 대가리 박아!!!”

혈마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은 죄수 신분이지만 한때 강호 무림이 전설이자 울던 아이도 눈물을 그치게 만든다는 자신이었는데.

‘이 망할 신선 놈이···,’

참아야 한다.

혈천(血天)의 경지에 올라왔지만 여기서 힘을 드러내면 주목을 받게 되고, 주목을 받으면 탈출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만합시다. 시키는 대로 하겠소.”

“눈빛은 그게 아닌데? 잘하면 치겠군.”

혈마는 답답했다.

“대체 무슨 이유로 날 괴롭히는 거요?”

“그야, 네가 제일 수상하니까.”

“고작 그거 때문에? 지옥의 죄수 중에 수상한 놈들이 어디 한둘이요.”

검선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가까이 다가가 혈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 하지만 네놈이 가장 적당하구나.

- 적당하다니, 무슨 뜻이오?

- 너만 조지면 통제가 순조로워질 거란 말이다.

- ···허.

- 일단 처맞고 시작하자. 네 한 몸 희생해서 작업자들의 기강이 잡힌다면 이 또한 보람찬 일일지니.

- ···제기랄!

휘릿!

검선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한숨을 푹 쉬어대는 혈마.

‘맞아주는 게 좋겠지?’

이미 혈천에 오른 육신이라 전혀 아프지 않겠지만,

‘되도록이면 죽는시늉도.’

엄살 크게 피워주자.

자연스럽게.

그런데?

퍼억!

“···어?”

머리가 핑 돌았다.

뒤를 이은 끔찍한 고통,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비명을 질러댔다.

‘아, 아파? ···아, 아프다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혈마.

진짜 무지하게 아팠다.

고작 한 방 맞았는데 혈천에 이른 육신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

검선은 정신없는 혈마를 로우킥 한방으로 넘어뜨렸다.

툭!

“히익?”

털썩.

“지구의 무술 중에 파운딩이라는 게 있네.”

그리고 가슴 위에 올라타더니.

“얼핏 보면 그저 개싸움에 불과하지만···,”

“자, 잠깐!”

주먹을 번쩍 들어 혈마의 얼굴을 조준했다.

“망나니 교육하는데 이만한 건 없겠더라고.”

퍽! 퍼억! 퍽퍽퍽퍽!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살점도 함께 떨어져 나갔다.

“아악! 아아아아악! 으아아아···,”

“같잖은 놈아,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느냐?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퍽퍽! 퍼퍼퍼퍽!

혈마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영혼까지 뒤흔드는 무시무시한 주먹이었다.

주먹 한 방에 그동안 쌓아뒀던 혈기가 무기력하게 흩어졌다.

혈천(血天)에 다다른 육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그 와중에 차사와 저승사자들이 쪼그려 앉아 혈마가 맞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쯧쯧, 검선, 그러다 죄인 잡겠소.”

“춘삼이 생각보다 일 잘하는 놈인데,”

“아니야. 기강은 잡아야지, 아까 춘삼이 눈빛 봤잖아.”

“그런가? 하지만 얼마 못 버티겠어.”

혈마는 자신을 때리는 신선이 누군지 알았다.

‘거, 검선이라니.’

인간계에서 이름은 들어봤다.

하지만 이야기꾼의 입에서나 나오는 전설적인 존재가 바로 검선 아닌가.

전설의 검신이 시정잡배처럼 주먹질을?

퍽퍽퍽퍽!

“끅! 끅! 크헉! 그, 그만! 제, 제발, 머, 멈추시오.”

하지만 검선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제대로 본보기를 보여야지.

비록 너무 허약해서 손맛이 덜하긴 하지만.

이미 피떡이 된 혈마.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

육신도 거의 붕괴 직전까지 갔다.

“아이고, 살살 좀 때리지.”

“육신 교체해 줘야 하나?”

“좀 더 튼튼하게 만들어 줘야겠어.”

“가만있자, 현재 저놈 경지가 뭐지?”

“내가 확인해보지.”

차사 중 한 명이 지옥 명부책을 뒤적이면서 말했다.

“만들어진 몸으로 역천혈마공을 익혔고, 현 단계는 혈천(血天) 단계로군.”

“혈천? 그게 대성인가?”

“아니, 혈신(血神) 단계가 남아있어. 그게 역천혈마공 궁극의 경지라 적혀있고.”

“하아, 멍청한 새끼, 수백 년 동안 수련했으면서 아직 대성도 못한 거야?”

“저러니 몇 대 버티지도 못하는 거지.”

“빨리 혈신 단계로 대성시켜 줘. 새 몸 만드는 것보다 그게 더 편하겠다.”

“알았어.”

혈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다 알고 있었다고?’

역천혈마공을 수련해 혈천 단계에 이른 것까지 전부 다?

그것도 그렇지만···,

‘혈신으로 대성하게 해준다는 말은 또 뭐야.’

차사가 명부 책을 땅에 내려놓고 엎드렸다.

그리고 붓을 들어,

“어디 보자, 혈마 왕춘삼, 현재 경지가 혈천이니까, 천(天)자를 신(神)자로 고치면···,”

설마?

혈마는 느꼈다.

단전에서 피어오르는 충만한 혈기.

역천혈마공의 모든 단계가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아아아!”

끓어오르는 고양감.

역천이다.

하늘을 부술수 있는 절대적인 공력.

우우우웅!

몸 전체가 혈기로 들끓었다.

혈신(血神), 인간의 격을 벗고 전지전능한 존재로 나아가는 단계,

이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신이 됐다.

“이놈!!!”

혈마는 벌떡 일어서면서 가슴에 올라탄 검선을 털어냈다.

“으하하하하! 모두 죽여버릴 테다.”

그때였다.

획!

갑자기 혈마의 팔을 잡아채는 검선.

“어?”

그리고 훌쩍 뛰어올라 다리 사이로 팔을 끼우더니.

“이게 무슨 짓···,”

“응, 암바.”

검선이 힘차게 몸을 쭉 뻗어 뒤로 젖혔다.

뿌드드득!

“끄아아아아악!”

팔꿈치가 반대로 꺾였다.

단전에 가득한 혈기를 일으켜 검선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거 한번 해보고 싶었다네.”

으드드득!

평범한 파운딩이 아니고, 그냥 암바가 아니다.

검선이 시전하는 MMA 기술이었다.

역천혈마공 대성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 그래도 부러지지는 않는군. 차사 양반, 고맙소. 덕분에 손맛이 느껴지는구려.”

검선의 칭찬에 차사들은 의기양양해졌다.

“꽤 튼튼해졌을 거요.”

“이제 남들보다 일도 더 잘 할거고.”

“다른 애들도 만만치 않을걸? 머리 굴리는 놈이 저놈 한 놈뿐일까? 몰래 무공 익힌 놈들, 여기도 수두룩하잖아.”

“으음, 그러네. 이참에 다른 놈들도 경지를 올려줄까?”

“하는 거 봐서, 정 허약하다 싶으면 올려주고.”

만들어진 몸으로 무공을 익힌 죄인들.

사실 한둘이 아니었다.

그중에 한 명이 바로 천마.

천마도 혈마처럼 무간지옥에서 천마신공을 대성까지 다시 익혔다.

황천계 탈출을 꿈꾸며 말이다.

하지만 천마는 혈마가 검선에게 처맞는 걸 보고야 말았다.

꼼짝도 못 하고, 처절하게.

‘···조, 조심해야겠어.’

천마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처음 문을 빠져나와 건들건들, 미적대던, 불량 죄수들의 눈빛이 변했다.

기합이 바짝 든 모습.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자자, 이동! 일하러 가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죄수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후다다다닥!

천마도 눈치껏 달렸다.

“헛!”

누군가의 발에 걸려 나동그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꽈당!

“이 새끼 봐라? 감히 내 발에 걸려 넘어져?”

“건방진 놈! 곤륜 선인께서 발을 걸면 알아서 잘 피했어야지.”

“매화 선인 말이 맞소. 버릇이 없어 그러오, 버릇이!”

“아오, 발목 아프네.”

“어디 봅시다. 쯧쯧, 운동화가 더러워졌어.”

“삼봉 선인, 내가 참아야 하오?”

“어허! 참으면 스트레스 받소. 사이다 한 번 보여줍시다.”

곤륜, 매화, 삼봉, 무림계를 대표하는 3명의 신선.

쓰러진 천마를 포위하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왜, 왜들 이래?”

곤륜 선인이 스산한 미소로 먼저 말했다.

“네가 우리 곤륜 멸문시켰다면서? 내가 속세의 연을 끊어 상관 안 하려고 했는데, 눈앞에 네놈이 보이니 참지 못하겠구나.”

매화 선인도.

“천마신공 끝까지 익혔느냐? 얼마나 견디는지 보자.”

삼봉 선인도.

“무당의 한도 풀어주지.”

천마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물들어갔다.

한편,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말든,

드디어 멀티플렉스 1층에 발을 들인 염라와 고위 판관들.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허, 말로만 듣던 멀티플렉스로군.”

“1층부터가 대단합니다.”

“벽에 붙은 저 초상화는 누구지?”

“이름이 쓰여있잖소, 김태주라고.”

“오오오, 실로 훤칠한 청년이로군.”

“대왕, 계단으로 올라가 봅시다.”

2층이 바로 쇼핑몰.

염라는 올라가자마자 입을 떡 벌리며 탄성을 질렀다.

“처, 천국이로다.”

지옥이 자신의 집이었던 그들이었다.

오랜 세월을 어둡고, 축축하며, 지저분한 환경에서 살아왔다.

눈이 돌아갈 수밖에.

“담배는 어디 있나?”

“여기 한가득 쌓여있습니다.”

귀곡 선인이 재빨리 말했다.

“여기서 피우면 안 되오.”

“허허, 나도 그쯤은 알아, 지옥에서 피울 거야.”

쇼핑몰에 진열된 물건들.

염라와 판관들이 바구니를 들고 물건을 쓸어 담았다.

“결제 도와드리겠소.”

“여깄네.”

염라는 독선에게 받은 신용패를 꺼냈다.

아직 입금된 코인이 없어 마이너스로 찍힐 테지만···,

아무튼 바구니 한가득 쇼핑을 끝내고.

“참! 다른 세상의 문물을 이야기와 영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던데,”

“4층, 5층, 6층으로 올라가면 되오.”

“그, 그래?”

염라와 판관들이 부리나케 4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죄인들이 일을 마치고 지옥으로 돌아갈 때까지 말이다.

※ ※ ※

독재자 민타누의 집은 군부대 한가운데였다.

버마 공화국의 핵심 무력이 집중해있는 수도방위 사령부.

놈의 최측근들도 모두 이곳에 있었다.

따라서 여기만 정리하면 군부의 힘은 90% 이상 사라지는 셈.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이삼백이가 오랜만에 본체로 변신했다.

부대 연병장을 가득 채운 삼두백호의 거대한 몸체.

“크르르르르···.”

마스터라도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는 소름 끼치는 포효.

수도 방위 사령부, 아니 버마 공화국 수도 네피아 전역에 울려퍼졌다.

수도방위 사령부 전체가 정적에 휩싸였다.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못하고 공포에 떨었다.

그 사이 태주는 건물 구석구석을 뒤져 민타누의 최측근, 군부의 유력 권력자들을 붙잡아서 중독시켰다.

그리고 민타누와 같은 방안에 던져뒀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지.

그러고 나서.

‘독재자라면 비밀 금고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법한데···,’

출장비는 든든하게 챙겨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분명 저택 안에 있을 것이다.

현 시대에서 귀중품에 속하는 물건이라면 뭘까?

금괴? 보석? 미술품이나 골동품?

물론 그것들도 가치가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엘리트 마나 결정체.

만일 금고가 있다면 결정체가 가득 들어있겠지.

‘찾아볼까?’

태주는 기감을 확장했다.

혹시라도 결정체의 기운이 느껴질까.

민타누의 자택 맨 위층에서 천천히 아래로 한 층씩 내려가면서.

‘여긴 없고,’

밑층도, 그 아래층도, 결국 지하까지 내려가고 나서야.

“오!”

점점 기운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지하실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

잠겨있지만 부수고 들어가면 된다.

탈명비도 한자루를 꺼내.

끄걱, 끄거거걱!

문 자물쇠 부분을 도려내니.

애애애애애앵!

비상벨 소리가 자택 전체로 울려퍼졌다.

어쩌라고?

출동할 놈들이나 있나?

문을 여니 계단이 보인다.

내려가니 또 문.

끄거거걱!

또 자르고,

결국 맨 밑층까지 내려가고 나서야.

‘여기구나.’

대형 금고가 눈앞에 나타났다.

최하층 지하실 전체를 금고로 만든 모양.

‘역시!’

독재자의 비밀 금고는 이래야 정상이지.

이제 금고 문을 열어보자.

두꺼운 금고문.

태주는 검선의 검, 만리비검을 꺼냈다.

지이이잉!

짙게 어리는 강기.

푸욱!

그 두꺼운 금고문이 두부처럼 잘렸다.

< 건설 현장 기강 확립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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