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도 보내보자. 혹시 모르니까. >
언론에선 조용했다.
그 어디에도 딮웹 관련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묻으려는 걸까?
조사할 것이 많아서 그런 걸까?
자치경찰이 아닌 제정원에 신고했으니 묻어버리진 않을 것이다.
‘아공간 가방이나 살펴보자.’
미나모토 신이치가 가지고 있었던 아공간 가방.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자체만으로 보물.
이제 태주가 가진 아공간 아이템은 총 5개.
가방을 열자 안에 들어있는 것들이 의식 속에서 떠올려졌다.
‘어이쿠, 뭐 이런 걸 다···,’
거의 결정체.
일반 마나 결정체가 대다수, 엘리트 마나 결정체도 20개나 들었다.
결정체만큼 유동성이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언제, 어디서든 돈으로 바꿀 수 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약이구나.’
미나모토 신이치와 부하들이 먹었던 알약도 약병에 가득.
하나를 꺼내 냄새를 맡아보니.
‘쯧, 온갖 혼탁한 기운이 뒤섞여있네.’
확실하게 알아보려면 먹어봐야 한다.
입에 넣어서 꼭꼭 씹었다.
‘마약에다가, 도핑에 쓰이는 각종 스테로이드제, 결정체 성분도 있고.’
그냥 즉효성으로 힘을 올려주는 성분이라면 아무거나 막 집어넣은 모양.
이건 약이 아니다.
저급한 마약 각성제다.
하지만 이런 약이 만들어지는 것도 이해가 된다.
부작용이 크다 하더라도, 쓰이는 곳이 있기 때문에.
가장 대표적인 쓰임새가 바로 마수 레이드.
대부분 각성자들의 사냥 목표는 비교적 잡기 쉬운 일반 마수,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변수는 늘 존재한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엘리트 마수와의 전투.
좀처럼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놈이어서 거의 만날 일이 없다고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정해진 방향으로 움직일까?
사실 전투라고도 볼 수 없다.
일반적인 레이드 팀 구성으로는 엘리트 마수를 이길 수 없다.
도망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 뿐.
짐꾼들이 가장 먼저 죽는다.
그다음으로 적합자, 각성자···,
운이 좋으면 절반 정도는 살아남고, 운이 나쁘면 전멸한다.
그런데 일정 시간 동안 능력치를 끌어올려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약을 있다면?
물론 양날의 검이긴 하다.
부작용도 매우 심각한 편이고, 약을 먹어도 탈출에 실패하면 무조건 사망.
하지만 종종 쓰인다.
지구에서도, 강호 무림에서도.
당군악도 복용했었다.
동시에 연구도 많이 했고.
따라서 태주의 머릿속에도 근력과 마력, 그리고 민첩과 속도를 순간적으로 최소 3배 이상 끌어올릴 방법이 무궁무진···,
‘가만!’
이거 괜찮은데?
각성 마약이 위험한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부작용.
만약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방법이 있다면?
당군악은 줄이지 못했다.
누구라도 줄이지 못한다.
이런 약은 원래 그렇다.
기존 능력을 억지로 뻥튀기하기에, 그에 따른 부작용은 필수.
그러나 태주는 당군악과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찌르르르.
머릿속에서 울리는 배송 신호.
‘왔어.’
일단 물건 바꾸기부터.
공유창고에 가득 들어있는 선도와 천계 꽃들.
주로 금정화와 음양화, MRC의 주요 재료들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다른 종류의 꽃도 보내고 있다.
죄다 고유한 효험을 가진 꽃들.
뭉친 근육을 풀어준다거나, 일시적으로 몸을 빠르게 해준다거나, 오감을 극대화해준다거나.
천계 꽃이라면 가능하다.
그리고 조화의 선기를 가진 선도도 넣어보고.
‘연구해서 만들어 보자.’
배송된 물건들을 옮겨놓고, 배송할 물건들을 채워놓고.
미리 준비해뒀다.
주로 먹거리들.
갑자기 선계에 사람들이 많아져서 간식거리가 많이 필요하단다.
특히 맥주와 치킨의 인기가 많다면서,
무한공간에 보관해두면 음식이 상하지 않는다.
처음 넣었을 때 그대로 보존된다.
‘피자도 200판 준비했으니까.’
이 정도면 양껏 먹을 수 있겠지.
보낼 것이 더 있었다.
바로 전력선.
그리고 전기 발전 설비 일부분.
전선은 전봇대가 아닌 땅속에 매설할 예정.
선계 전력 생산을 위한 1차 발송분이었다.
모든 설비를 다 보내 설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앞으로 선계에서 전기 걱정할 필요는 없을 터.
그때.
지이이잉!
스마트폰의 진동음.
‘응?’
제정원 문경식 차장에게서 온 전화였다.
- 회장님.
“네, 접니다. 차장님.”
- 혹시 알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딮웹을 운영하고 있던 조직이 소탕됐습니다.
“아, 그래요? 전 몰랐는데, 뭐, 잘됐네요.”
- ···으음, 모르셨군요.
“그렇죠.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해커도 아니고.”
- 어쨌든 딮웹에 저장된 모든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안 파는 게 없더군요. 마약에, 무기에, MRC에, 사람까지.
“저런!”
- 안형대 교수도 연루된 것이 맞았습니다. 심지어 어린 여자아이를 거래하려다가 실종 당한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죽어도 싼 놈이었네요.”
- 그렇죠. 폐하께서도 분노하셨습니다.
“일이 많으시겠어요.”
- 네, 삼한제국뿐 아니라, 유럽, 그리고 아메리카 공화국 등에도 자료를 넘길 예정입니다. 지금 체포 작업이 진행되는 중이며 곧 있으면 언론에도 나올 겁니다.
언론이 조용한 이유도 알겠다.
딮웹과 관련된 모든 놈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잠시 숨겼을 것이다.
“참, 전엔 깜빡 잊고 못 물어봤는데, 혹시 블랙 마피아에 대한 정보는 없나요?”
- 현재로선 그 어떤 정보도 없습니다. 유럽 제국 경찰과 정보기관이 열심히 수사하고 있지만 다 잔챙이뿐이고, 간부들에 대한 단서는 아직 찾지 못했답니다.
제대로 숨은 모양.
‘한번 가봐야 하나?’
만약 놈들을 직접 찾아야 한다면 그쪽에 모든 걸 올인해야 한다.
숨고자 작정했다면 찾기도 힘들고, 유럽 제국이 얼마나 넓은데.
- 그리고 현재 유럽 제국 정부에서 블랙 마피아보다는 전쟁에 더 신경을 쓰는 상황이라···.
“전쟁?”
그러고 보니 동훈이가 정리한 기록에서 열람한 기억이 난다.
- 모스크바 왕국 내전이 임박했다는 정보가 딮웹에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왕국 정부와 유럽 제국도 알고 있고요.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 매우 희박합니다. 설령 일어난다고 해도 유럽 제국에서 즉시 개입할 겁니다. 다른 국가라면 모르겠지만 모스크바 왕국이 전쟁에 휘말리면 절대 안 됩니다.
알만하다.
과거 300년 전 강대국이었던 러시아.
마나의 침범으로 인해 지금은 작은 도시국가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이, 모스크바 공화국은 핵보유국.
핵보유국에서 내전?
까딱하면 중국 꼴이 날수도.
- 그럼 건승하십시오. 중요한 정보가 나오면 즉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그리고 제가 생기불끈, 몇 상자 본부로 보내드릴게요. 그거 드시고 힘내시길.”
- 어이쿠! 너무 감사합니다. 그 구하기 어려운걸···,
아무튼 자신의 역할은 다한 것 같다.
이제 신약 개발과 회사 일에 집중하자.
그럼 첫 번째로 할 일은?
‘화이백부터 인수해볼까?’
수출보다 현지 공장을 세워 생산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수출은 물류비가 너무 많이 든다.
비행기로 운송해야 하므로.
게다가 대량 수출도 불가능하다.
바다를 이용하면 수출도 생각해봄 직하지만 문제는 해양 마수, 아무리 피해서 간들 태평양은 너무나 넓다.
언제 어디서 마수들의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
뱃길만 뚫리면 아마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 혁명이 될 터.
※ ※ ※
태주는 백서연과 만났다.
“동훈이는 어때요?”
“어쩜, 회장님은 어디서 그런 인재만 쏙쏙 데려오는 거예요?”
“일을 잘한다는 말이죠?”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모르는 게 없던데요? 우리 태홍 바이오 인트라넷 보안 취약점을 벌써 몇 개나 찾아냈는지 몰라요.”
데려온 보람이 있다.
“그래도 서연씨에 비하면 손색이 있죠.”
“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은 백홍표 원장님과 서연씨 만난 건데요.”
“갑자기 훅 들어오시네요.”
“하하하, 진심입니다.”
립서비스 한번 해주고.
“아메리카 공화국 방문해야겠어요.”
“아! 혹시?”
“그래요. 화이백 인수해야죠.”
“지, 직접 가신다고요?”
“다른 사람들은 바쁘잖아요. 회사에서 제일 많이 놀고먹는 사람은 저 같은데.”
“어머, 회장님만큼 바쁘신 분이 또 어딨다고··· 아무튼 인수 실무단 구성해보겠습니다. ”
“일단 인수 이야기는 꺼내지 말고···, 놀러 가는 걸로 하죠. 백악관 초청받아서.”
“네!”
실제로 초청받았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진짜 놀러 가는 목적도 있다.
쇼핑도 하고.
“법적인 문제를 담당할 로펌 정도는 물색해 놓겠습니다. 또 회장님 보좌할 수행원들도 꾸리고.”
“너무 거창하게 하지는 마세요. 소박하게.”
“걱정하지 마세요. 회장님 체면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잘 준비할게요.”
하지만 백서연은 결코 소박하게 꾸릴 생각은 없었다.
인류를 구원한 영웅이 해외로 출장을 가시는데, 소박? 그러다 욕먹는다.
더구나 외유 명목이 백악관 초청이지 않나.
격에 맞춰 준비해야지.
태주도 슬슬 움직였다.
개인적인 준비는 해야지.
‘일이삼백이는 제자들에게 맡겨두고.’
공식적인 방문이다.
당연히 비자도 신청해야 하고.
과거와 다르게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대사관이나 가볼까?’
가만히 있어도 백서연이 알아서 하겠지만.
직접 가보는 것도 좋겠다.
겸사겸사 아메리카에 방문한 계획이라고 미리 알려주고.
그래서 태주는 뉴서울 아메리카 공화국 대사관으로 갔다.
신청서를 작성해 비자를 발급해주는 대사관 직원에게 제출하면서.
“비자 신청하러 왔습니다.”
“네, 김태주씨, 방문 목적은 어떻게 됩니까?”
“거기 초청이라고 적혀있습니다만.”
“이보세요. 이러면 비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너무 두리뭉실해요.”
대사관 직원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태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보세요. 어디서, 누구에게서 초청받았는지.”
“흐음, 백악관? 빌리 피트먼 대통령이···,”
“하아, 진짜! 김태주씨, 시간 낭비하지 말고 돌아가세요. 다음에 오실 땐 명확한···, 어?”
갑자기 말을 멈추는 대사관 직원.
그러더니 신청서 이름과 태주의 얼굴을 번갈아 확인하고는···,
“호, 혹시 태홍 바이오 김태주 회장님?”
“네, 접니다.”
“으아아, 지, 직접 오셨어요? 비서를 안 보내시고···,”
“뭐, 다른 사람들은 할 일이 많아서.”
솔직히 비서가 무슨 필요가 있나?
회사 업무는 남들에게 다 맡겨두고, 혼자서 이쪽저쪽으로 다니는 판에.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대사님 모시고 오겠습니다.”
“아니, 급하지 않아도···,”
삼한 주재 아메리카 공화국 대사관에 비상이 걸렸다.
잠시 후, 아메리카 대사가 미친 듯이 달려왔다.
※ ※ ※
당군악은 하루에 한 번씩 도화궁으로 간다.
이미 찜해 놓은 천도.
혹시라도 어떤 놈이 와서 채갈까.
‘특히 원숭이를 조심해야 해.’
그러나 여전히 때가 아니었다.
대체 언제쯤 허락해줄까?
다시 터덜터덜 멀티플렉스로 돌아왔는데,
“험험, 이보게. 독선.”
기다리고 있었는지.
염라가 할 말이 있는 듯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무슨 일이오, 대왕?”
“물어볼 것이 있어서···,”
“뭐든 물어보시오.”
“혹시 선계 월드 공사가 끝나면 더 이상 죄인들이 필요치 않겠지?”
“당연하오.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해도 되오만.”
“허허, 그렇군.”
어쩐지 풀이 죽어 보이는 염라.
당군악은 염라가 무슨 의도로 질문해왔는지 짐작이 갔다.
아마도 코인 때문에 그럴 거다.
공사가 끝나면 코인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니까.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다른 세상의 귀중한 물건들을 대가 없이 누릴 수 있나?
신선들은 선도를, 천인들은 꽃을, 그것이 공정거래다.
“쓸만한 보패라도 가지고 오면 교환은 가능하오. 선도 코인으로.”
“보패? 흐음, 보패라, 보패···, 그럼 이건 어떤가?”
염라는 손에 끼고 있던 반지 하나를 벗겨 당군악에게 건넸다.
“뭐요? 이 촌스럽게 생긴 구리 반지는?”
“어허, 촌스럽다니! 망자 재판을 담당하는 판관들이 필수적으로 착용하는 보패야.”
“기능은?”
“참과 거짓을 판별하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대상이 거짓을 고하고 있으면 반지가 알려주지.”
“흐음,”
괜찮은 보패다.
태주가 사회 생활하는 데 도움도 될 것이고.
세상에 구라쟁이들이 얼마나 많나.
당장 신선들도 사기 치고 다니는 판에.
“사겠소. 3만 코인. 선도 300개의 가치요.”
“조, 조금 더 쳐줄 수 없나.”
“싫으면 안 팔아도 되···,”
“팔겠네.”
염라는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선도 300개, 아껴 쓰면 몇 년간 영화나 드라마 보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걸로 부족하다.
지속적인 코인 수급처.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이거···, 감정 부탁하네.”
염라가 주섬주섬 꺼낸 물건.
바로 검정색 돌덩어리.
“···.”
뜨악한 표정의 당군악.
“거, 너무한 거 아니오? 하다 하다 돌멩이까지 주워 와 사달라니.”
“어허! 단순한 돌멩이가 아니라 광석이야. 흑암철 광석.”
“흑암철? 쯧, 철은 저쪽 세상에서도 많은데, 재활용도 잘 되고.”
“하, 한 번만 봐주게. 이래 봬도 황천의 기운이 담겼네.”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황천의 기운이 뭐요? 물건 팔려고 왔으면 자세하게 설명해주셔야지.”
“잡스러운 마귀나 요괴들이 겁에 질려 가까이 다가오지 못해.”
“부적하고 비슷한 거군.”
“어허, 부적은 종이잖아. 이건 철이고, 내구도가 같나.”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괴라면 지구의 마수도 포함될 터.
마수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한다?
딱히 쓸모가 있을까?
마수야 때려잡으면 된다.
흑암철, 황천의 기운 때문에 도망친다면 쫓아가서 잡아야 한다.
오히려 귀찮아진다.
‘그래도···, 울타리 정도는 만들 수 있겠네.’
한번 보내볼까?
하지만.
“광석이라, 태주가 제련하기 귀찮아할 텐데.”
“여기 철 주괴로 가지고 왔네, 특히 초열지옥에서 녹여 제련해 황천의 기운이 듬뿍 서려 있지.”
“무게가?”
“열 근.”
초열지옥에서 제련한 흑암철.
이러면 어설픈 마수들은 보자마자 도망치겠는데,
“일단 그거 하나만 줘보시오. 저쪽으로 보내보게.”
“자, 잘 부탁하네. 계속 납품됐으면 좋겠어.”
“그야 태주가 결정할 문제고.”
“태주 대협에게 이야기 좀 잘해주게.”
“봐서···.”
그때였다.
찌르르르,
‘오!’
신호가 떴다.
물건 빼고 넣고.
‘문제는 이 철괴인데···.’
이딴 거 보내봐야 뭘 하겠나?
쓰잘데기없고 무겁기만 한 철 덩어리 보냈다고 욕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지.
‘그래도 넣어보자.’
판단은 태주가 하겠지.
일단 뭔지는 알려주고.
당군악은 철괴 표면을 유엽비도로 긁어서 간단하게 글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공유창고 안으로 넣었다.
< 그래도 보내보자. 혹시 모르니까. > 끝
ⓒ 꾸찌꾸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