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135화 (135/148)

< 여름이었다. >

백악관 만찬회가 끝났다.

데이비드 모건은 김태주를 만나 의사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지만 이미 사라진 후였다.

‘간다더니 진짜 갔나?’

어이가 없었다.

블러핑이었다면 아메리카 공화국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밀당했을 것이 분명했지만 아예 떠나버렸으니···.

기사도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김태주 회장의 백악관 만찬 선언.

MRC 발명만큼이나 위력적이었다.

<태홍 바이오 김태주 회장의 백악관 선언! 끊긴 바닷길이 복원될 것이다.>

<컨테이너선으로 태평양을 건너겠다. 실현 가능성은?>

<엘리트 해양 마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관건.>

<뜬구름 잡는 허풍일까? 아니면 확신에서 나온 진심일까?>

<만약 그의 말이 실현된다면 인류는 또 한 번 진보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모건은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생각할수록 황당무계하군.’

태평양 횡단이라니.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타고 바다를 건넌다고 치자.

일반 마수들은 그 커다란 선박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체급 차이는 무시할 수 없으니까.

또한 제철소에서 생산되는 일반 강철에도 결정체가 섞여 있어 웬만한 마수의 공격엔 흠집도 나지 않을 거고.

그러나 엘리트 해양 마수라면 다르다.

그놈들도 마나 보호막과 강기를 다룰 수 있다.

배의 밑창이 아무리 두꺼운들, 설령 엘리트 결정체가 섞인 철판으로 배를 만들었다고 해도 마수의 강기 공격에 종잇장처럼 찢겨 나갈 것이다.

‘절대 불가능해.’

강기를 온전하게 막는 건 불가능하다.

세계 최고의 제철 기술을 가진 아메리카 공화국도 엄두를 못 내는 상황.

‘그럼 해양 마수 레이드를 계획하려는 건가?’

각성자 레이드팀을 배에 태워 엘리트 마수에 대비한다고 해도 문제.

어떻게 싸울 건데.

깊고 깊은 태평양.

해양 마수를 막으려면 바닷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물론 마스터들은 강하다.

몇 명이 모이면 엘리트 마수 정도는 가볍게 사냥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육지에서나 적용되는 이야기.

물속이라면 전투력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질 것이 뻔하고.

절반이 뭐야?

몸이나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겠나.

해양 엘리트 마수의 먹잇감이 될 것이 뻔하다.

‘멍청한 놈!’

데이비드 모건도 김태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단순한 제약회사의 대표가 아니라는걸, 각성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스터보다 더 강한 무력을 갖췄다는 걸.

‘그걸 믿고 이렇게 나대는 모양인데.’

놈은 제 발등을 스스로 찍었다.

‘그래,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

이제 데이비드 모건에게 화이백 같은 건 아무 상관 없다.

김태주, 그놈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모욕했다.

지금부터 그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

데이비드 모건은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아메리카 공화국의 모든 언론에서 동시에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절대 건널 수 없다. 전문가들, 어떤 방법으로든 태평양 횡단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

<주장은 거창했다. 하지만 방법도, 설명도, 계획도 없었다.>

<제약회사 대표의 무책임한 발언, 이건 신약 개발 차원이 아니다.>

<설마 태평양에 독을 풀려는 건가? 환경단체의 반발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 ※ ※

삼한 제국 뉴서울 황궁.

황제와 금수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라기보단 태반이 한숨.

“후우.”

“···하아.”

“나 원 참,”

“이걸 어떻게···,”

처음, 아메리카 공화국을 방문 중인 김태주 회장이 전화를 걸어와 협조를 요청했을 땐 그야말로 황당함, 그 자체였다.

폐업한 조선소를 인수해서 다시 가동할 거라고? 조선 기술자들을 섭외해 달라고? 양산 조선소 근처에 세워진 선박 호텔을 인수해 바다에 띄우겠다고?

이게 무슨 쎅토끼 순결 서약하는 소리인가?

가까운 바다가 아닌 먼 바다로 항해하겠다는 말 아닌가?

진정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협조하는 척은 해야지.

삼한의 영웅이자 인류의 구원자인 그의 부탁을 어떻게 외면하나?

일단 양산 조선 산업단지는 국가 소유,

50년 동안 애물단지라서 민간에 파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리고 조선 기술자들.

세월이 지나 현재는 70대 중후반에서 80대, 90대의 노인들, 거의 은퇴했거나 혹은 사망했을 것이다.

그래도 찾으려면 찾을 수 있다.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아메리카 공화국 백악관에서 전해진 뉴스.

백악관 만찬 선언.

끊긴 바닷길을 복원하겠다.

태평양을 컨테이너선으로 건너겠다.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게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대체 어떤 방법으로?

“독을 쓰려는 건 설마 아니겠지요?”

“···독? 태평양에 독을 푼다고?”

“김 회장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허허허,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진짜 걱정되는군.”

“독 때문에 바다의 환경이 오염될까 봐서요?”

“무슨 소리! 고작 독으로 바다 환경이 변할 거로 생각하나?”

“으음, 그렇긴 하죠.”

이미 바다 환경은 300년 전에 변했다.

마나의 침범, 갑작스러운 지구 온난화.

그로 인해 바다에 어떤 일이 생겼나?

각국의 원자력 발전소들이 물에 잠겼다.

동시에 심각한 방사능 유출이 일어났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방사능으로 인한 환경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마나의 피해가 방사능보다 강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마나는 방사능마저 먹어 치워 힘을 키워나갔다.

옛 중국 땅을 횡행하고 있는 비욘드 엘리트 마수의 예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바다란 말이야, 그것도 태평양! 거기에 독을 푼다 한들 표시나 나겠어?”

태평양은 너무 넓다.

거길 횡단하려는 배의 크기도 엄청나고.

“아마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 바다에 어떤 마수들이 사는지 지금도 잘 파악이 안 되고 있잖아. 독에 면역을 가진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도 저렇게 자신 있게 주장한 걸 보면 뭔가 다른 수가 있지 않을까요?”

“흐음, 정녕 알 수가 없군. 대체 어떻게···.”

그때였다.

지이잉,

금수호의 스마트폰에 울리는 메시지.

“아! 김회장이 뉴서울 공항에 도착했답니다.”

“그래? 그럼 어서 황궁으로 들어오라고 하게. 대체 무슨 계획인지 이야기나 들어보지.”

※ ※ ※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황제가 만나고 싶다고 해서 급하게 왔는데 물어본다는 말이,

“내가 태평양에 독을 풀다니요, 아니, 태평양이 무슨 동네 연못도 아니고.”

기가 막힌다는 태주의 표정.

황제가 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 그렇지? 독 안 풀 거지?”

“제가 모든 문제를 다 독으로 해결하는 사람인 줄 아십니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근데 수호가···,”

발끈하면서 소리치는 금수호.

“제가 언제요?”

“아까 김회장이라면 가능하다면서?”

“김회장 독이 그만큼 강하다는 칭찬이었잖아요.”

태주, 자신의 책임도 있다.

그냥 말만 내뱉고 자세한 사항은 설명하지 않았으니까.

오해는 풀어줘야지.

“어쨌든 독은 절대 아닙니다.”

“그럼 뭘로? 힌트만 주시게.”

태주는 무한공간에서 흑암철 주괴 1개를 꺼내 황제에게 건넸다.

“이걸로 건널 겁니다.”

“응? 이게 뭔데?”

“일명 지옥의 철, 마수들을 쫓아내는 성질이 있죠.”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표정.

“아니, 보통 철 같은데···,”

“가지고 가서 실험해보세요. 끝나고 반납하시는 거 잊지 마시고.”

“···정말?”

“일단 해보시라니까요. 전 양산 조선소에 가 있을 테니까.”

“아, 알았네.”

태주는 궁궐에서 빠져나와 만리비검을 타고 양산으로 날아갔다.

한참을 날아가자 발밑에 보이는 커다란 배 한척.

‘저게 선박 호텔이구나.’

이미 구매했는지 선박 호텔은 크레인과 중장비를 이용해 비어있는 도크로 천천히 이동 중이었다.

도크에 안착하면 바로 수리 작업에 들어가겠지.

태주는 검에서 뛰어내려 선박 이동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백서연에게 다가갔다.

“회장님! 언제 오셨어요? 황궁으로 입궁하신다고 들었는데.”

“갔다 왔습니다.”

빠르게 수리 시작하자.

수리는 배 밑창 용접 작업부터, 흑암철을 철판으로 가공해서 배 밑창에 일정 간격으로 붙일 예정.

조선 산업단지라 흑암철 가공도 쉽게 할 수 있다.

노동력만 충원되면.

“여긴 제가 맡을게요. 서연씨는 생기불끈하고 새살쑥쑥 양산 작업 서둘러주세요. 최소 컨테이너 1만 개 분량 이상을 목표로.”

“네! 찍어내 보겠습니다.”

확실히 백서연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의심이라고는 단 한 점도 없었다.

당장 황제와 금수호만 해도 꼬치꼬치 캐물었는데.

구례 공장은 MRC 생산에 전념.

나머지 공장들은 죄다 생기불끈과 새살쑥쑥 생산에 집중한다.

설비는 충분히 갖춰져 있다.

뉴서울 공장과 백두 사이언스, 인수가 끝난 구(舊)미리내 태홍 바이오 공장, 더불어 파주 공장까지.

태주도 뉴스 기사를 봤다.

아메리카 공화국 언론에서 낸 다소 악의적인 보도.

불가능하다, 무책임하다, 태평양에 독을 풀려고 하나?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배의 수리가 끝나고 컨테이너선이 바다에 띄워지면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 건지 궁금하다.

배의 성능이 예전 그대로라면 태평양을 횡단하는 데 채 열흘도 걸리지 않는다.

잠시 후,

지이잉!

태주의 스마트폰으로 황제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 자넨 대체 정체가 뭔가? MRC도 그렇고, 이 지옥의 금속이라는 물건도 그렇고, 외계인이야? 설마 신(神)인가?

실험해봤나 보다.

“외계인도 아니고, 신도 아닙니다.”

그러나 조금 비슷하다.

같은 영혼이 신선이긴 하지.

- 이런 기적의 금속을 어디서···? 엘리트 마수들도 기겁하고 달아나더군.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이건 된다고 확신하네! 도와줄 건?

“노동자들이 필요합니다. 중장비들도.”

- 최우선 국책사업으로 지정해서 지원해주지. 현재 진행 중인 국가 주도의 토목사업과 건설사업을 중단하는 한이 있더라도.

태주는 전화를 끊었다.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나저나 사업체가 늘어나게 생겼다.

동시에 두 개씩이나.

조선업과 해운.

바다를 건너려면 흑암철로만 가능하니 전 세계 독점.

회사 창업 신고나 해두자.

이름은 무엇으로 지을까?

※ ※ ※

당군악은 흐뭇했다.

멀티플렉스 앞에 흑암철 주괴가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거의 건물 반 정도 높이만큼 올라갔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다음 배송은 흑암철 주괴 10만 개, 600톤.

간신히 수량을 맞췄다.

초열지옥으로 파견된 신선들이 제 몫을 톡톡히 해낸 모양.

귀곡 선인과 갈홍 선인도 이 흑암철 주괴가 지구에서 어떻게 쓰일지 당군악에게 들었다.

“그러니까 그 큰 배로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물건의 양이, 봉지라면 5억 5천만 개 수준이라고?”

“허허, 그게 어느 정도인지 상상도 안 되는군.”

“대체 300년 전의 지구는 어떤 세상이었는지 궁금해.”

“내 말이! 그렇게 바다를 오가던 배들이 바다 요괴 때문에 멈춰 버렸다니, 얼마나 피해가 컸을꼬.”

하지만 곧 바닷길이 복원될 것이다.

사실 흑암철로 바닷길을 건너는 건 편법에 가깝다.

바다 요괴들을 깨끗하게 쓸어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바다 요괴라면 어렵긴 해.”

“그렇고 말고, 물속에서 헤엄치기도 어려울 텐데.”

“수공을 익히면 안 될까?”

“수공은 인간 대 인간의 싸움에서나 의미가 있지.”

맞는 말이다.

수공 가지고는 턱도 없다.

“동해 용궁의 고등어 새끼 한 마리만 지구에 보내도···,”

“고등어? ···아! 용궁 평위장군 말하는 거요?”

“그렇소. 그 등푸른 생선 놈.”

바닷속에도 영물이 있다.

귀곡과 갈홍이 말하는 건 평범한 생선이 아닌 영물로 진화한 고등어, 용왕에게 제수받은 벼슬이 평위장군.

본체는 등푸른 영물 대형 고등어지만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고, 본체일 때의 힘과 능력은 신선이라도 무시할 수 없다.

바다 요괴 따위는 스쳐도 사망.

“문어도 괜찮지.”

“용궁의 문어 승상 말이오? 그놈은 학사 출신이잖소.”

“학사라고 얕보면 큰일 나오. 수틀리면 용왕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데.”

“뭐, 그렇게 따지면 털게 문지기나 청상어 교위, 범고래 대장군도···,”

“쯧, 이런 이야기해 봐야 무슨 소용인가,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기나 하오? 우리도 못 가는 판에.”

“하긴, 건너갈 수만 있다면···,”

당군악은 귀곡과 갈홍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상위 계 전체가 태주와 인연을 맺게 됐지만 용궁은 빠졌다.

여래계는 어차피 생각도 안 했고.

용궁엔 뭐가 있을까?

그쪽과도 거래할 물건이 있다면 좋을 텐데.

물론 태주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어야 한다.

바로 그때.

찌르르르,

때마침 뜬 배송 신호.

“왔군.”

“오! 빨리 흑암철 집어넣으시오.”

“다 들어갈까?”

“넣어보면 알겠지.”

당군악은 공유창고를 확인했다.

그런데?

“헉!”

깜짝 놀랐다.

하지만 침착하게 먼저 흑암철 주괴와 선계 꽃들을 아공간 가방과 공유창고에 나누어 넣고.

“뭐요?”

“이상한 것이 왔소?”

“빨리 보여주시오.”

당군악의 무한창고에서 붉은색의 무언가가 쑤욱 빠져나왔다.

생각보다 컸다.

“세, 세상에!”

“미친!”

투도어 쿠페, 컨버터블 오픈형 빨간색 스포츠카.

당군악은 운전석에 앉았다.

“타시오. 기분전환이나 합시다.”

“···우, 우린 두 명이잖소. 남는 자리가 하나뿐인데.”

“축골공 뒀다 뭐 할거요?”

부아아아아아앙!

빨간색 스포츠카가 선계 도로를 달린다.

부아앙, 부앙! 부아아앙!

원래 전기차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액셀을 밟을 때마다 스포츠카 특유의 배기음이 외부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모두가 주목했다.

소리를 듣고 바깥으로 나온 신선들도, 선계 월드 공사를 진행 중인 판관과 차사, 사자, 죄인들도, 몰래 놀러 온 천계 신장들도, 그저 입만 떡 벌렸다.

천인 아이들이 타고 다니던 전동카보단 훨씬 큰, 아름답고 빼어난, 지붕 없는 스포츠카가 도로를 질주했다.

마주 달려오던 검선의 할리 바이크도 멈춰 섰다.

그리고 지나가는 스포츠카의 꽁무니만 하염없이 쳐다봤다.

여름이었다.

< 여름이었다.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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