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판 >
마수 펫, 타이탄 이글은 이미 어디론가로 도망쳤다.
어차피 흑암철의 영향을 받아 주인을 도와주러 오지도 못했던 놈, 슬쩍 살기를 발산하니 꽁지 빠지게 달아났다.
펫이 무슨 죄가 있나?
주인이 나쁜 거지.
항복 선언에도 불구하고 태주는 멈추지 않았다.
시원하게 팼다.
자근자근 다져놓았다.
두 번 다시 눈도 못 마주치게끔
아마 온몸의 뼈가 다 부러졌을 것이다.
마스터라서 금방 회복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한 달은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할 정도로.
폭력의 효과는 일반인이나 각성자나 똑같다.
물리적, 정신적 피해를 동시에 끼치는 것.
당분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살려준 게 어디야.
배에서 적당한 밧줄을 찾아 인사불성이 된 놈들을 줄줄이 엮은 후.
태주는 만리비검으로 NEW LA시 대형 병원으로 날아가 응급실 앞에다 던져뒀다.
누구에게 맞았는지 입에 올리지도 않을 것이다.
개망신을 당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경찰에 신고한다 해도 백악관이 가만히 있겠나.
아무리 민간보다 위세가 약해도 국가기관인데.
‘자, 그럼 다음으로···,’
데이비드 모건.
태주도 미리 알아봤다.
금융가의 마왕, 추악한 하이에나, 지옥의 고리대금업자.
총이나 칼로 사람을 죽여야만 살인자가 아니다.
이놈은 돈으로 사람을 죽인다.
오히려 더 많이 죽인다.
단언컨대, 자신은 비교도 안 될 것이다.
대형 금융 사기는 물론, 강제 인수합병, 주가조작, 그리고 폭력과 협박으로 지분 갈취하기, 청부살인···, 이놈 때문에 죽거나 자살한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한 번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
고발이나 소송을 당해도 최고의 변호인단을 고용해 요리조리 빠져나갔고.
백악관에 알릴 생각조차 없다.
직접 처리한다.
태주는 무한공간에서 추적부를 꺼내 데이비드 모건을 떠올렸다.
화르르륵!
위치가 동쪽을 가리켰다.
아마 그놈은 수도 캔자스시티에 있을 것이다.
비행기로 3시간.
만리비검으로 날아도 그 정도,
지금이 밤 9시니까 잘하면 새벽녘까진 돌아올 수 있다.
‘일단 전화부터 한 통화 하고.’
※ ※ ※
캔자스시티 금융가의 최고급 펜트하우스 맨션.
데이비드 모건은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캔자스 금융가에 투신한 이후, 많은 돈을 벌었다.
그동안 쌓아 올린 부의 가치가 얼마인지 자신도 모를 정도.
앞으로도 아메리카의 자본 시장을 장악할 것이다.
그러면 오래오래 살아야지.
그를 위해 일반인에겐 그다지 효과가 별로라는 엘리트 영약도 거액의 돈을 들여 10개씩이나 구매해 기어코 적합자까지 올라왔다.
데이비드 모건은 절대 자기 것을 순순히 빼앗기는 사람이 아니다.
투자했으면 무조건 이익을 내든지, 아니면 최소한 손해는 내지 말든지.
욕심?
그보다는 일종의 신념이고 가치관이었다.
자신이 찍은 목표물을 가로채는 자는 누구든 용서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짓밟았고, 때로는 실제로 사람을 시켜 죽여버렸다.
사실 화이백 지분을 눈 딱 감고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것 때문에 망할 일은 없다.
손해는 다른 곳에서 벌충하면 그만.
하지만 이건 손익의 문제를 넘어섰다.
김태주는 자신의 투자 실패를 만천하에 드러나게 했고, 백악관 만찬에서 웃음거리가 되게 만들었다.
이젠 물러설 수 없다.
그냥 두면 자신의 체면은 땅에 떨어진다.
그래서 인피니티 길드를 움직였다.
김태주가 화이백 지분을 100억 달러에 인수하게 해준다면 그 10%인 10억 달러를 수고비로 주겠다고.
10억 달러가 걸린 일.
트로이 매카시는 무슨 짓을 동원하더라고 반드시 거래를 성사시킬 것이다.
아마 무력 행사가 제일 유력하겠지.
인피니티 클랜엔 마스터가 3명씩이나 있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데이비드 모건.
지금쯤이면 연락 올 때가 됐는데.
그때!
‘응?’
거실 쪽 베란다 창문이 열려있었다.
아까 열어뒀다가 깜빡 잊고 닫지 않은 것 같다.
창문을 닫은 다음,
거실 홈바로 가서 싱글 몰트 위스키를 잔에 따라 한 모금 마셨다.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잠을 청해 봐야지.
그때였다.
“잠이 잘 안 오나 봐?”
“헉!”
등 뒤에서 들리는 음성.
“누, 누구야?”
고개를 돌려 보니 누군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환각인가?
“기, 김태주?”
“그래, 네가 보낸 선물은 잘 받았다.”
“선물? 내가?”
“인피니티 클랜, 트로이 매카시 말이야.”
“···.”
처음엔 놀랐지만 데이비드 모건도 노회한 인물.
이런 경우 한두 번 당해보는 것도 아니고.
곧 평정을 찾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트로이가 어쨌다고?”
태주는 씨익 웃었다.
반지의 진동으로 보아 거짓말.
“태연하게 거짓말하네. 금융가들은 다 너 같은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보다 이렇게 밤중에 찾아온 이유는? 이렇게 쳐들어오면 내가 눈이나 깜짝할 것 같나?”
이것도 거짓말.
“트로이 말로는 내가 화이백 지분을 인수하면 그 대가로 거래 금액의 10%를 준다고 약속했다던데.”
“훗! 어림도 없는 소리. 난 이미 화이백에 대한 미련을 버렸어.”
3연속 거짓말.
“지금이라도 돌아가. 이곳 전체에 CCTV가 깔려 있어. 주거침입은 문제 삼지 않겠다.”
“또 거짓말이군.”
“···뭐?”
“넌 어떻게 입만 벌리면 구라야?”
태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움찔하는 데이비드 모건.
드르륵.
캔자스 금융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베란다로 걸어가 창문을 연 태주,
“그래, 난 바빠서 이만 간다.”
“···잘 생각했다. 다음에 또 볼 기회가 있겠지.”
“아니, 없을 거야.”
“흐음, 세상일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야. 그러니 장담하지 마.”
“난 거짓말을 하지 않아. 우린 보고 싶어도 못 봐.”
“왜?”
“넌 잠시 후에 죽을 거거든. 사인은 급성심근경색, 시체는 내일쯤 발견될 거고,”
데이비드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라고?”
“말했잖아. 넌 여기서 죽어.”
순간!
뜨끔!
가슴을 조여오는 격렬한 통증.
“크윽!”
비틀, 데이비드 모건은 홈바 의자를 손으로 잡고 쓰러지려는 몸을 가까스로 지탱했다.
“자, 잠깐!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아,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잖아. 크헉!”
“넌 어째 죽는 순간까지 거짓말이야?”
“으윽, 오, 오해가···.”
그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물들었다.
“난 여, 여기서 죽으면 안 돼. 으윽! 나, 난 데이비드 모건이라고,”
“네 이름이 죽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나?”
“이, 이런 제기랄···,”
“두고 가는 돈이 아깝긴 하겠지만, 남은 사람들이 너 대신 잘 쓸 거야.”
“···제, 제발, 끄어억!”
결국 쓰러지는 데이비드 모건.
“으어어어어, 사, 살려 줘, 내, 내가 잘못···,”
죽일 놈은 반드시 죽인다.
그게 절대독마의 방식이다.
물론 여긴 강호가 아닌 지구.
현대의 법체계가 강호 무림보다 우수하고 선진적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겨나는 부작용들.
돈 많고 권력 있는 범죄자들은 감옥에 가서도 호의호식하고, 피해자들은 정작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한 채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산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
태주는 스마트폰을 들어 번호를 눌렀다.
“동훈아, 나다.”
- 네! 회장님.
“잘 처리했지?”
- 맨션의 CCTV는 작동하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녹화될 리도 없고요.
“수고했다. 구례에 가서 보자.”
태주는 죽어가는 데이비드 모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시 만리비검을 타고 NEW LA항으로.
도착하니 해가 막 뜨기 직전이었다.
아침이 되자 삼한 양산 항구로 싣고 갈 컨테이너들도 도착했다.
신선 식품 운반용 냉장 냉동 컨테이너, 대마수용 첨단 무기, 그리고 컨버터블 오픈 스포츠카 10대.
자동차는 개인적으로 구매했다.
선계에 보낼 예정.
부피가 커서 한 번에 한 대씩,
삼한 제국도 자동차 생산국이다.
바로 백두 그룹.
‘연희씨 보기 미안하네.’
하지만 백두 자동차 라인에 컨버터블 오픈카가 없다.
주로 일반 경차, 중소형, 대형 세단, SUV, 트럭 같은 것.
‘사실 대형 세단은 백두 자동차가 최곤데···,’
신선들에게도 중후한 리무진 같은 것이 어울리고.
공유창고에 들어가기만 했어도 보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뿌우우우웅!
티제이호는 드디어 컨테이너 선적을 끝내고 다시 삼한 제국 양산항을 향해 출항했다.
※ ※ ※
모스크바 공화국의 한 저택.
네크로맨서 대마도사 드렉 카락스는 자신의 충직한 노예인 카르멘을 만나고 있었다.
“주인님, 모든 준비가 끝났사옵니다.”
“마법진은?”
“아브라힘과 욘슨이 모스크바 곳곳에 설치를 끝냈습니다.”
“그렇구나.”
실행만 남았다.
드렉 카락스도 김태주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MRC에, 태평양 횡단까지.
과거, 삼한 제국의 파주에서.
흑마법으로 에드워드를 희생시켜 놈과 간접 접촉을 했었다.
처음엔 연금술 영혼 연결자인 줄 알았던 김태주.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놈은 위험하다.
자신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마기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더 거대하고 순수한 마기가 필요하다.
빠르게 의식을 진행해야 한다.
피와 영혼을 제물로 삼아 이뤄지는 소환의식.
그리하여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의식이 성공하면 자신의 격이 달라진다.
인간의 탈을 벗고 반신(半神)의 존재로서 거듭나게 되는 것.
그러면 김태주가 연결하고 있는 다른 세상 영혼의 정체가 무엇이든 걱정할 것이 없다.
기껏 해봐야 인간계, 혹은 중간계에서 가장 강한 절대자의 영혼이겠지.
놈은 인간의 한계를 넘지 못할 것이다.
영혼 연결이 수십 차례 이뤄진다고 해도 말이다.
인간이 어떻게 반신을 이겨?
“그럼 진행시켜라.”
“알겠사옵니다. 주인님.”
드렉 카락스의 지시를 받은 카르멘은 곧바로 마츠모토 장로와 접촉했다.
첫 시작은 내전 유발.
사람이 많이 죽으면 죽을수록 좋다.
그래야 의식이 더 완전해질 테니까.
※ ※ ※
삼한 제국에서도 태평양 횡단 성공은 축제였다.
벌써 양산항구가 떠들썩했다.
태평양 횡단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돌아오는 티제이호를 축하하기 위한 행사가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아메리카 공화국에서 생중계된 화려한 입항식.
그걸 본 황제는 친히 황명을 내렸다.
축하 행사를 더 성대하고 화려하게 준비하라고.
태평양 횡단.
이제 시작일 뿐이다.
양산 티제이 조선소에서 대형 선박 건조 계획을 줄줄이 발표했다.
컨테이너선을 비롯해 가스선과 유조선, 그리고 대형 군함까지.
조선소에 존재하는 10개의 도크가 꽉 채워질 것이다.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예정.
조선에도, 해운에도, 무역업에도.
삼한 제국을 넘어 전 세계 각국에서 지원서가 쇄도하고 있었다.
제발 배를 타게 해달라.
나도 태평양을 횡단하고 싶다.
그 와중에 미리내 그룹 이병우 회장과 면담 중인 백서연.
이병우가 구례 태홍 바이오 본사로 그녀를 직접 찾아왔다.
비록 회장님과 악연이 있는 미리내 그룹이지만, 만나주기는 해야지.
“백사장님,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전과 달리 극히 저자세로 변한 이병우 회장.
심지어 굽신거리기까지.
어디 미리내 그룹뿐인가?
삼한의 10대 대기업도 그녀와 면담하기 위해 속속 약속을 잡으려고 했다.
“다음 출항에 컨테이너 3,000개만 배정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글쎄요. 확답은 못 드리겠습니다.”
뱃길이 열렸다.
따라서 컨테이너를 이용한 대규모 수출입의 시대도 함께 열릴 것이다.
미리내 그룹은 TV나 냉장고,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 수출을 노리고 있을 터.
지금까진 항공을 이용했다.
컨테이너 선박과 비교해 운송료가 20배 이상.
물량도 제한적이었다.
비행기로 보내봐야 얼마를 보낸다고
“3,000개가 안 되면 1,000개라도···,”
“으음, 최대한 노력은 해볼게요. 미리내 제약회사를 싼 가격에 팔아주신 고마움도 잊지 않고 있으니까요.”
갑자기 아픈 곳을 찔러오는 백서연이었지만 이병우는 내색하지 않았다.
“···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현시대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김태주 회장.
그에 동참하지 못하면 결국은 도태될 것이다.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병우를 보내고 난 뒤, 백서연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처음 태홍 바이오에 입사하면서 회사를 삼한 최고의 대기업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었다.
‘목표를 이뤘네.’
제약회사에, 조선, 해운,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진 무역회사까지, 이젠 그룹을 만들 때가 됐다.
‘사명 변경을 해야겠어.’
아버지도 말씀하셨다.
제약회사 사명을 티제이로 빨리 변경하라고.
티제이 그룹.
이제 김태주 회장님은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진정한 그룹 ‘회장님’이 되실 것이다.
※ ※ ※
선계(仙界) 월드가 개장되었지만 누구나 다 놀이 공원을 즐기는 건 아니었다.
멀티플렉스에서 영상 컨텐츠를 즐기는 이들도 많았다.
가장 인기 있는 상영관은 막장 컨텐츠관.
주로 황천계 관리, 혹은 신장들에게 인기였다.
“참나, 학교 잘 돌아간다.”
“와! 고데기로 머리만 마는 게 아니었군.”
“저거 쇼핑몰에도 팔걸?”
“서왕모가 사 가지 않았소.”
“혹시 저걸로 선자들을···,”
“에이! 설마.”
요즘 제일 인기 있는 드라마였다.
‘영광의 날’이란 제목.
주제는 학교 폭력과 복수.
재탕에, 삼탕, 사탕으로 사골처럼 우려서 재방송되고 있었다.
“시원시원하군.”
“암, 복수는 저래야지. 복수만큼 속 시원한 것이 또 있겠소?”
“멋져! 부라보야!”
하선고도 숨죽이면서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복수를 당하는 저 못된 년이 서왕모라고 상상하니 속이 후련하다.
정말이지 제대로 된 대리만족이었다.
며칠 동안 극장 안에서만 있었다.
다양한 영상물을 섭렵했다.
그것들만 봐도 다른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정말 희한해.’
저 지구라는 다른 세상과 이곳은 전혀 접점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신선과 한 인간의 영혼을 매개로 이어져?
의도된 걸까? 아니면 우연일까?
의도라면 천지신명과도 버금가는 존재의 힘이 개입했을 것이고, 우연이라면 드라마에서 나오는 단순한 교통사고 같은 거다.
‘···혹은 둘 다 일수도.’
세상만사가 그렇듯, 일어나는 사건들 대부분은 우연.
우엽이 겹치면 필연이 되는 것이고.
생각하면 복잡해진다.
단순하게 이 순간을 즐기자.
연결이 계속되는 한 재미는 영원할 테니까.
‘아직 세일 기간이지?’
극장으로 올라오면서 잠깐 목격했다.
3층 쇼핑몰이라는 공간에 진열된 갖가지 지구 물건들.
무려 반값에 살 수 있다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지.
< 심판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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