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141화 (141/148)

< 전쟁 발발(1) >

모스크바 왕국.

과거 러시아의 영광은 사라지고,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들어 겨우 도시국가의 형태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소국.

러시아 시절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를 아직 가지고 있다지만, 그것 말고 기본 군사력은 변변치 않은 수준이다.

왕국 수호파와 공화 혁명파의 대립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었다.

한쪽은 모스크바의 왕정을 유지하자고 주장했고, 또 한쪽은 국왕의 하야를 요구하며 총선거 실시를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시위는 왕국 정부군에 의해 철저하게 탄압받았고, 이에 반발해 공화파 지도부는 결사 투쟁을 선언하며 여론을 주도했다.

그 와중에 열린 군부대 시가행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네콜라 로마노프 모스크바 국왕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가 열렸다.

군기 잔뜩 들어간 각성 군인들, 탱크와 장갑차, 미사일 발사차 등, 첨단 무기들이 총동원되어 세력을 과시했다.

연단 위에선 군부대의 사열을 받는 네콜라 로마노프 국왕.

국왕이 손을 흔들자 왕국 지지자 시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때였다.

우르르르르르르.

평상복을 입은 한 무리의 시민들이 접근 금지선을 넘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왔다.

“뭐, 뭐야?”

“···테러범?”

“전하를 보호하라.”

“각성자 경호팀!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

“뭐하나? 발포해! 싹 다 죽여버려.”

타탕! 타타타탕!

의문의 사람들은 총에 맞고도 끄떡없었다.

총알을 맞아 몸에 구멍이 생겨도 그 속도가 전혀 줄지 않았다.

분명 각성자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얼굴이 창백하다는 걸 빼면 말이다.

그리고,

붉은 광장 전체에 귀가 따가울 정도로 커다란 음성이 울려 퍼졌다.

“혁명을 위하여!!!”

“모든 권력을 신(新) 볼셰비키로!!!”

“모스크바 공화국 만세!!!”

순간!

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쾅! 콰쾅! 쾅!

시뻘건 화염이 광장을 뒤덮었다.

‘됐군.’

블랙 마피아 장로 마츠모토는 인파들 틈에 숨어 비릿하게 웃었다.

상급 언데드 구울을 이용한 자살폭탄 테러.

배 속에다 폭탄을 숨겼기 때문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네콜라 로마노프 국왕과 관리들, 다수의 정부 요인들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왕세자 미하일 로마노프가 즉각 왕위를 계승해 공화파 무리들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모스크바 내전의 시작이었다.

결국엔 터지고 말았다.

사실 예견된 전쟁이었다.

왕당파와 공화파의 대립.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해묵은 갈등이었으니까.

딱히 충격이랄 게 있나?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는 느낌 정도?

※ ※ ※

유럽 제국.

수도 메가 로마에 지어진 중세풍의 거대한 성, 그곳이 바로 황궁이었다.

황제의 집무실.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 역시 갈색의 풍성한 수염, 단순하지만 목 부분에서 올라와 왼쪽 뺨 중간까지 그려진 각성 문양.

유럽 제국의 지배자.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였다.

집무실 벽에 걸린 커다란 TV.

마침 화면에서 삼한 제국 태홍 바이오 김태주 회장 태평양 왕복 성공이란 속보가 흘러나왔다.

황제의 심복이자 제국 정보국 M-19 국장 오거스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외입니다. 대체 정체가 뭐길래?”

“연금술이겠지. 아마도 대현자 급일 테고.”

“그럴까요? 현자 계열 같긴 하지만···, 무력도 상당하다지 않습니까?”

“이상한 일도 아니야, 대현자라고 해서 약해야만 하는 이유가 없으니까.”

“빈센트 님과는 또 다르네요.”

알렉스 황제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빼내 오거스트에게 툭 던지며 지시했다.

“빈센트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반지가 너무 헐렁해. 검을 쓸 때 방해되는군.”

그러자,

스르륵, 변하는 얼굴, 각성 문양도 사라졌다.

이것이 알렉스 카이사르의 본모습.

유럽 제국의 황제가 각성자가 아니라는 건 누구도 모른다.

초기 국가를 건설했을 때부터 각성자 행세를 해왔다.

권위를 내세우고 국가를 다스리기 편했으니까.

“빈센트 님에게 줄여달라고 할까요?”

“그래, 기왕이면 쓸데없는 장식 같은 것도 떼버리고.”

폴리모프 반지였다.

빈센트는 아티팩트 제작자다.

역시 마법 인챈트 대마공학자와의 영혼 연결자였고.

빈센트와 만난 지는 거의 150년 전.

영혼 연결로 힘을 얻은 후, 프랑스 지역을 정벌하다가 우연히 만났다.

그때 수하로 거두어 잘 써먹고 있었고.

“아무튼 김태주의 배후 영혼이 연금술을 익힌 대현자 계열이라면 쓸모가 많겠네요. 영입할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아니다. 섣불리 접근하진 마라. 대현자라는 것도 추측일 뿐이야. 좀 더 알아보고 나서.”

“네.”

아무리 연결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혼 연결자라지만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영혼 연결의 매카니즘, 절대 평범한 영혼과 이어지는 법이 없다.

김태주가 연결한 영혼도 한 차원의 최강자일 터.

“일단 우리도 배 한 척은 가지는 게 좋겠군.”

“네, 특히 컨테이너선은 욕심이 납니다. 주문이라도 넣어볼까요?”

“외교 채널로 삼한 정부에 직접 의뢰해보아라.”

“알겠습니다, 폐하.”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TV 화면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다.

화면에 나타난 동양인.

‘김태주라···,’

강하다고 소문이 났긴 하지만 가소로울 뿐이다.

자신은 소드 카이저와 영혼이 연결됐으니까.

그것도 150년 전에.

연결된 이는 다른 세상 검의 황제 소드 카이저.

세계의 정복자이자 전쟁광, 아발란 제국의 황제 트릴리안 랜서.

그동안 영혼이 연결된 횟수만 무려 20번.

다른 영혼의 자신과 마찬가지로 알렉스에겐 주어진 사명이 있다.

황제가 해야 할 일이 뭔가?

대륙을 통일해 현명한 통치자가 다스리는 평화로운 제국을 만드는 일.

그래서 깨닫자마자 국가를 만들고, 마수를 몰아내 영토를 넓히고, 타국을 정복하면서 유럽 제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다른 세상의 아발란 제국은 대륙을 통일했지만 유럽 제국은 지구 영토의 일부만 차지하고 있었다.

남부 유럽과 서부 유럽은 정복했어도 동유럽과 북유럽은 남아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존재한다.

그중 제일 큰 이유는 바로 중국의 멸망.

유럽을 통일하고 동쪽으로 진출하려고 했지만 미친 중국 놈들이 마수 밀집지대를 소탕한답시고 제 땅에 핵무기를 떨어뜨린 것.

그리고 비욘드 엘리트 마수의 등장.

인류 공동의 적인, 최강 최악의 마수 출현.

그후로 국가 간 정복 전쟁은 중단되고 말았다.

하지만 알렉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간 반드시 지구 전체를 통일해야지.

먼저 유럽 완전 정복부터.

그러려면 전쟁이 필요하다.

명분 있는 전쟁 말이다.

순간!

띠링!

M-19 국장 오거스트의 스마트폰에서 난 알림음.

“오! 드디어···,”

“무슨 일이냐?”

“폐하, 모스크바 왕국에서 내전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래? 드렉 카락스인가?”

“그런 듯하옵니다. 놈이 기어코 발톱을 드러냈습니다.”

알렉스 황제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또 다른 영혼 연결자, 블랙 마피아의 수장, 최악의 네크로맨서 드랙 카락스.

예전부터 파악하고 있던 놈이었다.

하지만 잡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었다.

쓸모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으니까.

그래서 삼한 제국의 황제가 직접 블랙 마피아 수사를 요청해왔을 때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오리발을 내밀었다.

아무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놈이 움직였다.

모스크바 왕국 내전.

전쟁에 개입할 명분이 만들어졌다.

위치적으로 볼 때 동유럽의 끝, 그리고 북유럽과 맞닿은 국가.

마침내 유럽 전체를 정복할 기회가 오고야 말았다.

※ ※ ※

선계(仙界).

5일간의 개장식을 끝내고 선계월드는 잠시 문을 닫았다.

보수도 하고, 청소도 하고.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인력 문제.

관리할 직원이 부족하다.

잠시 닫고 대책을 세워봐야지.

그동안 다른 매장도 열었다.

바로 선계 카페와 무인 아이스크림 전문점.

지금은 인테리어 중이고.

멀티플렉스는 계속 운영했다.

하지만 이곳도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이 많아서 좁은 느낌이 들었다.

1층에서 장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주선 태백 선인.

사실 파는 술보다 자신이 직접 마시는 술이 더 많다.

그래서 늘 취해있었다.

“안녕, 주정뱅이야!”

주정뱅이?

누가 싸가지없이 함부로!

이런 말을 하는 년이 하선고밖에 더 있나?

“내가 누차 이야기했지? 말버릇 고치라, ···어?”

주선의 입이 떡 벌어졌다.

“독선이나 검선 못 봤어?”

“아, 아까 같이 나, 나갔는데,”

“알았어. 적당히 마셔라, 뼈 삭겠다.”

“···.”

술이 덜 깼나?

하선고가 맞긴 맞는데,

“저게 뭐야?”

갈홍 선인은 산책 중이었다.

수리 보수를 위해 문을 닫은 선계월드를 거닐며 추가하거나 뺄 것이 있나 점검하고 있었는데,

“오! 책벌레가 산책을 다 하네?”

책벌레?

누구겠나?

“하선고로군, 이제 실컷 즐겼으면 슬슬 거처로 돌아가 잠이나 처자···, 허억!”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 갈홍.

“미, 미친?”

“뭘 그렇게 놀라? 어제도 봤으면서, 검선은?”

“···어음, 으어, 그, 그, 그게, 으아, 흠.”

“어휴, 됐다. 다른 놈들에게 물어볼게.”

갈홍 선인은 하선고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거 포상인가?’

한편 단주 선인은 환수계로 가던 차였다.

또 주문이 들어왔다.

독선에게 부적을 납품하려면 재료가 있어야지.

주문 품목은 추적부와 투명부, 신속부.

요즘 태주 대협이 부적을 즐겨 사용한다고 들어서 뿌듯하다.

그런데,

“부적아!”

“누가 날 그딴 식으로 부르는가! 하선고, 너지?”

잘 만났다.

이참에 혼쭐을 내주려고 마음먹은 순간,

“···어이쿠, 씨발, 깜짝이야!”

“오, 제법 욕 잘하는데, 검선 봤어?”

“저, 저기 도, 도원에 갔소이다.”

“음? 거긴 왜 갔데? 알았다. 고마워.”

단주 선인도 우두커니 서서 입만 떡 벌렸다.

‘드라마를 찢고 나왔나?’

당군악은 반드시 빼먹지 않는 하루 일과가 있다.

도원에 가서 선도 확인하기.

선계의 변화만큼이나 천도의 숙성도 빨라졌다.

검선과 귀곡, 종리도 함께 왔다.

“곧 있으면 저절로 떨어지겠군.”

“맞소, 거의 다 익었어.”

“아마 다음 배송이나, 다음다음 배송이면 천도를 보낼 수 있겠군.”

감개무량하다.

드디어 태주에게 천도를 건네줄 때가 왔다.

지구를 위협하는 것이 마수뿐이라면야 굳이 먹을 필요는 없지만 문제는 영혼 연결자들.

얼마 전에도 사악한 기운을 쓰는 흑마법사라는 놈과 마주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놈도 천마나 자신처럼, 한 세상을 풍미했던 절대자인 것이 분명하다.

정도(正道)가 아닌 사도(邪道).

목적을 위해서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들.

태주를 가만히 놔둘까?

물론 현재 태주의 성취는 인간계에서의 자신을 넘어선 지 오래, 거의 신선급이라 봐도 무방하다.

강호였다면 언제 등선해도 이상하지 않을 경지.

태주는 신선이나 다를 바 없다.

고작 인간 따위가 어떻게 신선을 넘봐?

하지만 당군악은 만족할 수 없었다.

방심은 금물.

그래서 무조건 천도를 먹여야 한다.

“이제 갑시다. 선계월드 재개장 준비도 해야지.”

“참! 독선, 스?”

“안! ···좀 진중하게 기다리시오. 때 되면 오겠지.”

“크험!”

“심심하면 도로나 더 만들든가.”

그때였다.

“여기 다들 모여있었네?”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허어,”

“대, 대체?”

“망측하도다!”

“누, 눈 둘 때가 없군.”

달라진 외모의 하선고였다.

캡모자를 쓰고, 머리카락은 포니테일로 묶었다.

그것만이라면 다행이지만.

상의는 배꼽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크롭티.

흰 발목 양말에 삼선 슬리퍼, 하의는 짧디짧은, 착 달라붙은···,

“···돌핀 팬츠?”

“어때? 어울려? 늘씬하지?”

“어어어? 보인다, 보여!”

“다리 들지 마시오!”

“희, 흰색, 아니, 난 안 봤어!”

돌핀, 돌고래, 미끈한 맨다리.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어찌 신선이 저리 망측하게.?

귀곡이 눈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종라는 헛기침만 했다.

검선은 가자미눈이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피어싱도.

입술과 코, 그리고 배꼽이 반짝반짝 빛났다.

“···날라리?”

“일진녀인가?”

“담배도 입에 물고 다니지 그러냐.”

하선고는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뭐래? 일진녀는 무슨, 힙걸 컨셉인데.”

힙걸?

완전 일진녀구만.

“그러고 선계를 돌아다녔다고?”

“설마 불쌍한 신선들 패고 다닌 건 아니겠지?”

“삥도 뜯었어?”

하선고는 태연했다.

“무식한 패션 고자들아. 그냥 편하게 입는 거야. 나라고 지구 패션 스타일을 따라 하지 말라는 법이 있어?”

그런데 희한하다.

일진녀 하선고.

묘하게 잘 어울린다.

“참! 근데 이 천도, 지구로 보낼 거야? 김태주라는 인간에게?”

“알 필요 없다. 욕심도 내지 마라.”

“욕심 안나. 그거 먹어서 뭐 하게? 그리고 난 독선에게 물었어.”

하선고에게 지목당한 당군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이미 주인이 정해진 천도라 아무나 먹지 못할 거요.”

“흐음, 과연 그럴까?”

“···무슨 말이오?”

“사실 한 명 있잖아.”

“있다니, 누가?”

“천도를 이미 한번 먹어봤던, 그래서 그 맛을 잘 알고 있는 놈, 더불어 인과율과 천지의 법도를 단숨에 무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새끼,”

설마?

“···제천대성?”

“맞아. 그 원숭이 조심해야 할걸.”

“···.”

제천대성이 천도를 노릴지도 모른다고?

어처구니없지만 가능성은 있다.

여래계에 든 놈이다.

비록 강제적으로 해탈 당했어도 부처의 자격을 가진 제천대성.

그에게 있어 정해진 인연이란 건 무의미하다.

“조심해야 해. 그 새끼, 무늬만 부처야. 아직 본성을 못 버렸잖아. 또 뚜렷한 목표도 있고.”

“목표? 그게 뭐요?”

“당연히 여래계 탈출이지. 선계보다 더 지루한 곳이 여래계인데.”

사실 제천대성의 천도 탈취 시도는 한번이 아니었다.

적덕선(積德仙)이란 신선이 있었다.

현재 선계엔 없고, 인간계를 떠돌고 있지만.

신선이라고 다 천방지축인가?

절대 아니다.

적덕선.

선행을 쌓아 등선한, 상제도 인정하고, 염라도 존경해마지않는, 만인의 모범이 되는 신선 중의 신선.

그런 신선에게 주어진 천도를 도둑질하려다 관음(觀音)에게 사전에 발각되어 끌려간 놈이 바로 제천대성.

원숭이의 천도 약탈 시도.

이번에도 시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검선과 귀곡, 종리가 노성을 터뜨렸다.

“감히 원숭이 따위가, 태주 대협의 천도를!”

“전기면도기로 온몸의 털을 다 밀어주겠다.”

“그러고 보니 원숭이 골 요리 안 먹어본 지 오래됐군.”

당군악도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감히 태주에게 주어질 천도를 빼앗겠다고?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 전쟁 발발(1) > 끝

ⓒ 꾸찌꾸찌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