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145화 (145/148)

< 한번은 봐준다. >

삼한제국 양산항.

아메리카를 출항한 컨테이너선이 이번에도 무사히 복귀했다.

뿌우우우우!

바닷길의 완벽 복원.

모든 의심과 우려를 불식시키는 뱃고동 소리.

무조건 아메리카 공화국보다 더 화려한 행사를 거행하라는 황제의 지시에 따라 양산은 대축제의 현장이었다.

배가 항구에 접안을 시작했다.

대낮임에도 하늘엔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제국군에서 차출된 군악대가 장엄한 행진곡을 연주했다.

사방에 뿌려지는 꽃잎.

깃발과 팻말을 들고 환호하는 시민들.

그리고 화려한 카펫을 깔고 미리 마중 나온 황제와 고위 각료들.

박수와 함성이 이어졌다.

사다리차가 선박으로 접근했다.

선원들이 손을 흔들며 줄줄이 내려왔다.

견습 목적으로 승선한 사람도 있어서 숫자가 꽤 많았다.

일반 선원, 기관사, 항해사, 마지막으로 도민수와 장동조 선장까지 하선했는데,

“폐하! 티제이호 장동조 선장 및 선원 105명, 양산항에 무사히 도착했음을 보고 합니다. 충성!”

“됐다. 이제 민간인이면서 보고는 무슨, 그건 그렇고, 김회장은?”

“아! 저, 그, 그게···,”

“응? 왜?”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입항하기 전까지 분명 배에 타고 계셨지만,”

“허어.”

환영식이 부담스러워서 도망갔나?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했더니.

그러자 금수호가 슬쩍 옆에 붙어 소곤소곤 속삭였다.

“전 어디 갔는지 알 것 같습니다만.”

“흐음, 혹시?”

“네, 모스크바 공화국이겠지요. 김회장도 영상을 봤을 겁니다. 수상한 점도 발견했을 테고.”

“그렇군. 안 움직이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제정원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모스크바 내전은 희한한 전쟁이었다.

초기에 왕국군과 공화군의 대립 전선은 이미 와해된 지 오래.

지금은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모를 정도로 대혼돈 상황이었다.

이 전쟁에서 가장 끔찍한 부분.

죽은 인간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좀비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장면들이 재현되고 있었다.

시체들의 세상, 언데드의 창궐.

그것이 김태주 회장을 움직였을 것이다.

대체 원인이 뭘까?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지만 해답은 없었다.

마수와 마인처럼 마나의 부작용으로 일어난 현상? 혹은 특이한 스킬을 지닌 각성자의 짓? 그것도 아니라면 암중 세력이 퍼뜨린 질병?

그리하여 모스크바 왕국은 지옥이었다.

수많은 국민들이 왕국을 탈출했고 탈출 중이었다.

삼한제국 대사관도 교민들을 수습해서 모스크바 왕국을 벗어났다.

그래서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현재 정보가 단절된 상황.

유럽 제국이 개입을 선언했다.

제국 총동원령을 내리긴 했지만, 그것 말고는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솔직히 난 모스크바 내전보다 알렉스 카이사르, 그놈이 더 걱정돼.”

“동의합니다. 지금도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마치···,”

“전쟁이 확전되길 바라는 것처럼?”

“네, 동유럽 전체로요.”

“뭐, 놈이 가만히 있겠나? 전쟁광인데.”

물론 삼한제국도 전쟁 중이다.

그러나 오직 마수와 싸운다.

마수 밀집지대를 토벌하고 그곳을 삼한의 영토로 삼는다.

반면 유럽 제국은 국가가 대상.

인간끼리의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목적.

“알렉스 그놈이 전쟁을 꾸몄을 수도.”

“그건 아닐 거야. 그저 기회를 잡았을 뿐.”

“···후우, 김회장이 별일 없어야 할 텐데요.”

“그러게 말이야. 원래 마수보다 인간이 더 무서운 법이라네.”

※ ※ ※

태주는 구례에 잠시 들렀다가 일백이를 데리고 모스크바로 향했다.

쐐애애애액!

북서쪽을 향해 날아가는 만리비검.

조력자는 있어야지.

일이삼백이라면 충분히 제 역할을 해줄 테고.

지금은 삼백이였다.

“니아아아?”

“그래, 타이탄 이글, 흰색이었어. 깃털도 얼마나 탐스럽던지.”

“니아옹!”

“참 멋지더라, 하늘을 날고 그 위에 사람도 태우고.”

“캬아아악!”

삐졌구나.

하긴, 삼백이 면전에서 아메리카에서 봤던 펫 마수를 칭찬했으니.

순간!

“캭!”

태주의 품에서 하악질 한번 하더니.

스팟!

허공으로 점프해서 솟구쳐 올랐다.

자신도 하늘 정도를 나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오오!”

어느새 까마득한 점으로 변한 삼백이.

‘난다, 고양이?’

하지만.

쓔우우우웅,

점프했을 때보다 더 빨리 떨어지는 삼백이.

“니앙?”

“···참나.”

고양이가 날 리가 있나?

날개가 달렸으면 모를까.

쐐애애액!

태주는 만리비검을 움직여 떨어지는 삼백이를 받았다.

“니아아아···,”

“그래, 우리 부지런히 강해지자. 너도 언젠간 하늘을 날 날이 있지 않겠어?”

“니앙!”

태주는 일이삼백이를 차례로 불러내 선도 하나씩 먹였다.

물론 자신도 최상급 선도 하나 꺼내먹고.

한참을 날았다.

이윽고 도착한 모스크바 왕국 상공.

“···하아.”

오자마자 알았다.

모스크바 전역에 널리 퍼진 끔찍한 마기의 기운을.

너무 많아서 문제다.

그래서 흑마법사의 기운을 특정하기 힘들다.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나?’

어쩔 수 없었다.

태평양 안전 횡단이 우선이었으니까.

‘이제라도 바로 잡으면 돼.’

타타탕! 콰쾅! 콰아앙! 쾅!

곳곳에서 총성과 포성만 들려왔다.

저 앞엔 크렘린궁과 붉은 광장.

그 어디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아무리 영토가 좁은 도시국가라 해도 말이다.

먼저 마기의 냄새가 가장 짙은 곳으로 가보자.

“냐앙?”

“그래, 저기지?”

“냐아아아···.”

가까운 곳에 있었다.

붉은 광장의 남쪽에 세워진 그리스 정교회 성당.

마기의 구덩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더러운 악취가 풍겨 나왔다.

태주는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케륵!”

“키엑?”

“크에에에엑!”

대충 세도 백여 마리가 넘는 언데드들이 성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좀비와 구울, 그리고 뼈다귀만 남은 스켈레톤.

그러나 이들은 마수가 아니다.

그저 인간일 뿐이다.

“쯧.”

죽기 전엔 아무런 죄도 없던 사람들.

하지만 안식에 들지 못하고 이렇게 끔찍한 언데드로 남았다.

이들이 성당 안에 있는 이유.

예배당 바닥에 그려진 불길한 마법진, 둥근 원형에, 안쪽은 오망성의 문양.

우우우웅,

짙은 마기를 뿜어내며 검푸른색으로 빛났다.

‘아마 이걸 지키고 있는 것 같은데.’

마기와 마나의 기운이 한꺼번에 느껴졌다.

일단 성당 안의 마법진은 부숴버리자.

태주가 다가서자 언데드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일백아!”

“냥?”

“편하게 보내드려. 그래도 생전엔 사람이었잖아.”

“냐앙!”

쑤욱!

중간 크기로 몸을 키운 일백이가.

“크르르르릉,”

스팟!

언데드들에게 달려들었다.

콰직!

파삭!

앞발 공격 한방에 머리통이 날아갔다.

이미 선도를 꽤나 많이 먹은 놈.

일백이의 일격엔 삿된 것을 물리치는 선기의 힘이 담겨있었다.

언데드들은 일백이를 건들지도 못했다.

태주도 무한공간에서 신령비도를 꺼냈다.

이 역시 선기가 가득 담긴 무기.

마법진의 중앙에 그대로 꽂아 넣었다.

푸욱!

동시에 독정을 일으켜 독기를 주입하니,

파사사사사사사사···,

마법진이 순식간에 지워졌다.

‘하나는 파괴했고.’

이거 하나뿐일까?

여전히 모스크바 왕국엔 짙은 마기가 가득했다.

분명 더 있을 것이다.

천천히 살펴보니, 성당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검정색 선이 보였다.

지워진 마법진과 연결된 선.

‘전기선이나 통신선 비슷한 건가?’

이를테면 마기 송신선.

마기가 이 선을 통해 어디론가 이어지는 것 같다.

태주는 성당 밖으로 나와 마기의 기운을 따라갔다.

마기는 커다란 건물로 이어졌다.

표지판을 읽어보니 모스크바 국립 도서관.

“씨발,”

도서관에도 다양한 언데드들이 바글바글했다.

그리고 도서관 로비 바닥에서 빛나고 있는 마법진.

가슴이 아프다.

이미 죽었지만 영면에 들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들.

찢어 죽일 흑마법사 새끼들.

“일백아.”

태주의 음성이 착 가라앉았다.

그걸 느꼈는지, 일백이도,

“크르르르···,”

“보내드려.”

“캬악!”

그렇게 또 하나의 마법진을 파괴하고.

성당에서처럼 도서관에서도 마기 송신선이 어디론가로 이어져 있었다.

도시국가 크기의 모스크바이지만 면적이 뉴서울의 3배 정도.

대체 몇 개의 마법진이 있는 걸까?

‘계속 부숴보면 돼.’

그러다 보면 누군가가 나타나겠지.

이런 짓을 저지른 새끼 말이다.

도서관에서 나온 마기 송신선은 모스크바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과 연결되어 있었다.

‘···크렘린궁?’

모스크바 행정의 중심.

국왕이 사는 거처.

왕궁도 당했나?

그럴 가능성이 높다.

왕궁이라면 분명 밖을 지키고 있어야 할 근위병이나 군대가 있어야 하는데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태주는 크렘린궁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

“냐아아아···,”

왕궁 정원에서 군인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들 모두 언데드.

소총 같은 개인화기도 들고서.

다양한 계급장의 군복도 입었다.

중간엔 얼굴에 각성 문양을 한 군인 언데드도,

그런데 계급이···,

‘장군?’

최고 지휘관 계급.

그렇다면?

‘마스터였어?’

마스터도 당했다.

심지어 생전의 무력을 그대로 언데드화 되었는지, 품고 있는 마기의 기운도 만만치 않았다.

“캬아악?”

태주를 발견한 모양.

권총으로 가리키는 언데드 마스터.

다른 언데드들도 개인화기를 들어 사격 자세를 취했다.

‘설마···,’

타타타타타탕!

총탄이 빗발쳤다.

‘헛!’

스파팟!

환영미리보로 피하고.

언데드가 총기를 사용한다니.

단순한 좀비가 아니다.

이제야 알겠다.

크렘린궁마저 당했던 이유를.

“일백아.”

“크르릉!”

쏜살같이 튀어 나가는 일백이.

태주도 표홀질풍보로 언데드 마스터를 향해 돌진했다.

“키켁?”

그러자 허리춤에 찬 검으로 맞서오는 놈.

파앗!

언데드답지 않게 부드러운 동작이었다.

여태까지 마주했던 그들과는 훨씬 강하다.

‘···데스나이트라도 되는 거야?’

언데드의 지휘자, 최강의 데스나이트.

아니, 여긴 현대 지구, 기사가 아닌 장군이니까 데스제너럴이 맞겠지.

푸아아악!

선기가 가득 담긴 암기.

데스제너럴 바로 앞에서 비폭이 샷건처럼 발사됐다.

파바바바바박!

마스터 언데드의 몸체가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동시에 펼쳐진 폭우침.

만천화우의 열화판.

후두두두두둑!

독정에 독령의 씨앗이 자리 잡고 있는 터라 오백 개 이하의 암기는 충분히 조종할 수 있다.

푸푸푸푸푹!

맞자마자 언데드들이 치치치칙, 불타오르면서 재로 흩어졌다.

크렘린궁의 마법진도 파괴했다.

다음 장소로.

태주는 계속 움직였다.

그나저나 언데드들이 총기도 사용한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강한 화력의 현대 무기들도 사용하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핵무기까지 사용 가능한 건 아니겠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그 전에 막아야 한다.

※ ※ ※

요마계.

혼세마왕을 비롯한 요괴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졌다.

제천대성은?

신선들에 의해 제압당해 있었다.

요마계 중앙에 놓인 거대한 바위산.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신선들이 가져온 바윗덩어리를 쌓아 급조해 만들었다.

바위마다 덕지덕지 붙은 부적.

그리고 갈홍과 귀곡의 기문진도 새겨졌고.

제천대성의 몸체는 바위산 밑에 깔려 있었고 머리만 밖으로 쏘옥 나와 있었다.

머리 바로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손가락질하는 신선들.

이미 모든 걸 내려놓은 제천대성이었다.

자신의 모든 거나 마찬가지였던 천도가 물거품처럼 사라졌으니.

“새끼, 눈깔 봐라!”

“뒈질래?”

“흐흐,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 건데?”

“응, 약 오르쥬? 아무 것도 못하쥬? 킹받쥬?”

당군악도 용서할 마음이 없었다.

하마터면 천도를 빼앗길 뻔했다.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하지만.

“용서해주시면 안 될까요오오?”

“···흐음, 그, 그게.”

“제 부탁 들어주신다 했잖아요오오.”

“···.”

원숭이를 용서하고 풀어주라는 해맑의 부탁.

난감하다.

이놈 때문에 얼마나 식겁했나?

“다른 부탁 들어드리면 안 되겠소? 명품 가방은 어떻소?”

“이미 있는 걸요오.”

“스포츠카는?”

“으음, 갖고 싶어요오오, 그, 그치만 원숭이님이 불쌍해서···,”

해맑도 고집이 있었다.

절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부탁을 거두어 주시오. 풀어주면 또 사고를 칠 것 같아서 그러오.”

“사고···, 아! 맞다! 제가 좀 전에 어떤 아줌마를 만났는데, 독선님에게 이걸 전해드리라고 했어요오오.”

“···아줌마?”

“이거면 사고 쳐도 문제없데요오.”

해맑이 품에서 둥그런 금속 머리띠를 독선에게 건넸다.

“이건?”

그러자 신선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긴고아네?”

“맞아. 긴고아야.”

“오! 제천대성은 긴고아를 써야 제맛이지. 당장 씌웁시다.”

“근데 누가 전해줬다고?”

“아줌마라던데?”

“관음이겠지. 보살 주제에 음흉한 구석이 있어. 여래계 사고뭉치를 우리에게 떠넘기겠다는 수작 아니겠소?”

당군악은 긴고아를 들고 천천히 살폈다.

긴고아 안쪽에 새겨진 글씨가 보였다.

‘이건 주문이겠군.’

어떡한다?

이거라면 꼼짝 못 할 것 같기도 하고.

해맑의 부탁도 있고,

마침 선계월드에 인력도 부족하니···,

“좋소. 풀어주지.”

“감사합니다아아!”

한번은 봐준다.

제대로 부려 먹어주마.

당군악은 긴고아를 들고 제천대성에게 다가갔다.

“하아,”

제천대성은 긴고아를 보자마자 체념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의 머리에 긴고아를 씌우려 하자,

“젠장! 차라리 날 죽여.”

“너무 화내지 말 거라. 이게 너에게 복이 될 수 있으니.”

“뭐? 복이라고?”

“선계 멀티플렉스라고 들어본 적 있느냐?”

“···멀티?”

“심심하진 않을 거야. 오히려 선계가 천국 같을 거다. 내 말만 잘 들으면,”

“무, 무슨?”

“일단 나하고 같이 가서 드래곤볼이나 한편 때려보자. 정말 재미있을걸?”

어리둥절한 제천대성의 표정.

멀티플렉스라니, 드래곤볼은 또 뭐고.

그때였다.

찌르르르르.

당군악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배송신호.

“떴군.”

그러자 부리나케 달려오는 검선.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스?”

당군악은 공유창고를 확인했다.

“왔.”

검선이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으하하하! 내가 누구? 검선? 아니다. 컨퍼터블 오픈카 오너로다!!!”

당군악은 공유창고 물건을 빼내고 천도부터 집어넣었다.

다른 건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

오로지 천도와 그걸 복용할 때 주의점을 담은 편지만.

그리하여 당군악은 기어코 천도 지구 배송을 성공시키고야 말았다.

< 한번은 봐준다.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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