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147화 (147/148)

< 여전히 선계는 변화 중 >

비록 꿈속이지만,

태주는 검선이 너무너무 반가웠다.

진짜 현실에서 검선을 만난 듯한 기분.

당군악이 보내준 스마트폰 영상 속 검선의 모습과 그대로였다.

짧게 자른 머리, 단정하게 정리한 수염, 그리고 핏이 기가 막히게 떨어지는 양복, 명품구두와 손목시계.

거기에 검까지 등에 메고 있으니.

‘누가 저분을 신선이라고 여기겠어?’

재벌 회장이면 몰라도.

아니면 현역 모델?

‘이건 뭐, 당장 무대에서 워킹 시작해도 되겠네.’

완벽한 미중년의 모습.

웬만한 모델은 뺨 칠 정도.

‘스포츠카는 잘 받았겠지?’

만리비검도 그렇고, 할리 바이크도 그렇고, 이번엔 스포츠카까지, 탈것을 너무나 사랑하는 검선이었다.

전에도 쭉 생각했었지만 저분은 선계가 아니라 지구에서 사는 게 더 잘 어울린다.

과연 검선은 꿈속에서도 자신을 알아볼까?

태주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봤다.

“안녕하세요, 검선님!!!”

함박웃음을 머금으며 손 인사를 해오는 검선.

“반갑네, 태주 대협!!!”

그러고는 이모탈킹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손날로 자신의 목을 긋는 몸짓을 보여주면서,

“죽일까?”

태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하지만 부탁드립니다. 제가 직접 싸울 수 없는 처지라서.”

검선이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랗게 만들었다.

“오케이!”

※ ※ ※

관전 모드로 한 손은 턱에 괴고, 다리를 꼰 채 의자에 편하게 앉아있는 카르멘.

그녀는 조소했다.

저것이 김태주의 한계였다.

놈이 꿈속 대전사로 불러온 존재는 결국 인간.

그것도 지구인이 분명했다.

명품 수트에 구두, 손목시계까지 착용한 걸 보면.

누굴까?

삼한의 황제? 아니면 2인자라던 황궁 비서관?

“호호호, 가소롭구나.”

영혼 연결자이면서도 경험의 깊이가 저렇게 얕을까?

자신이 아는 절대자가 겨우 저 노인네?

게임은 끝났다.

감히 인간이 어떻게 이모탈킹을 상대해?

카르멘은 서튜버스퀸과 계약을 맺었다.

그녀에게 가장 적합한 대악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큐버스퀸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초극강의 악마.

그가 바로 이모탈킹.

이성이 사라지고 본능만 남아 눈앞에 보이는 건 일단 파괴하고 만다.

육신은 그 어느 악마보다 강하더라도, 결코 고위 귀족, 혹은 마왕이 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

그래서 더더욱 좋았다.

몽환의 마법진 대전사로는 안성맞춤.

이모탈킹에 비해 김태주가 만든 꿈속 대전사는 얼마나 초라한지, 검 한 자루를 들고 있긴 하지만 저걸로 가죽이나 벨 수 있을까?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아?”

김태주가 자신의 꿈속 대전사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쳐도,

“···무슨?”

김태주의 대전사 노인도 화답하고 있었다.

그것도 직접 대화로서.

“···.”

저게 가능해?

대전사 시스템.

실제 존재가 꿈속으로 소환되는 건 아니다.

저 이모탈킹도 카르멘, 자신이 경험한 기억이 몽환의 마법진 속에서 재구성되어 나타난 존재.

즉, 서큐버스 퀸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복사본 같은 거다.

진짜가 아니다.

그러므로 서로 교감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몽환의 마법진에서 꿈을 꾸는 존재는 2명이다.

자신과 저 김태주.

‘설마···,’

카르멘은 몽환의 마법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여기 들어와 있는 존재는 몇 명이지?’

[현재 몽환의 마법진에서 함께 꿈을 꾸는 개체는 모두 3명입니다.]

잘못 들었나?

‘3명이라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 ※ ※

검 끝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경기장에 꼿꼿이 선 검선.

마계의 대악마라는 이모탈킹은 크게 포효했다.

“쿠오오오오!”

쿵쿵쿵쿵!

자신의 앞에 있는 건 무엇이라도 부수겠다는 듯, 거대한 두 다리를 움직여 걸어오는 이모탈킹.

나지막한 산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육체 능력으로는 마왕도 어찌하지 못한다는 파괴의 대악마.

하지만 검선은 태연했다.

저깟 요괴 따위가 뭐가 대수냐는 듯.

검이 허공에 띄워졌다.

손에 든 건 한 자루였지만,

슈웃, 슛! 슛! 슈슈슈슈슈슛!

무형의 기운에 의해 만들어진 검.

바로 선검(仙劍)이었다.

계속해서 띄워졌다.

백 자루, 삼백 자루, 오백 자루···, 천 자루, 이천 자루.

마침내 꿈속 하늘을 가득 뒤덮었다.

제천대성과의 전투에선 이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독선이 비슷한 걸 이미 하고 있었으니까.

캐릭터가 겹치지 않나?

그건 절대 참을 수 없다.

또한 독선이 움직이는 암기 수가 더 많고.

그래서 일격필살의 이기어검이나 신검합일만 사용했다.

‘자, 시작해볼까?’

태주 대협이 친히 부탁해왔다.

자신을 가장 믿고 있다는 의미.

그럼 깔끔하게 처리해줘야지.

꿈속이라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손맛은 느껴질 터.

츠피피피피피핏!

강기로 만들어진 수천여 자루의 선검이 동시에 어검 비행했다.

마치 SF 영화에서나 나오는 레이저 광선 폭격 장면 같았다.

※ ※ ※

카르멘은 벌떡 일어났다.

보고 있는 광경이 너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 김태주가 꿈속 대전사와 서로 교감한 건 그렇다 치자.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지만 같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도 넘어가자.

그런데 저 노인 정체는 뭐지?

지구에 저런 자가 있었나?

엄청난 능력이었다.

양복을 입은 채 무형의 강기로 검을 형상화해 자유자재로 움직여?

수천 자루의 검이 허공에서 폭격하듯 쏟아졌다.

콰콰콰콰! 콰콰콰콰콰콰콰콰!

수천 개의 벼락이 한꺼번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저 빛이었다.

푸푸푸푹! 푸푸푸푸푸푸푹!

단 한 자루도 빗나가지 않고 이모탈킹에게 박히는 빛의 검.

머리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다음으로 상체, 가슴, 허리, 하체···,

이모탈킹이 걸어가는 도중에 녹아내렸다.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했다.

이걸 결투라고 말할 수 있나?

김태주의 노인 대전사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손을 들어 검을 만들어 띄우고, 무심하게 손을 내려 떨어뜨렸다.

‘···신?’

신이라고 가정해야 저런 위세가 가능하다.

그래야만 설명이 된다.

몽환의 마법진으로 난입한 이유도 알겠다.

서큐버스퀸의 권능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한 걸 보면 최소, 반신, 데미갓이 틀림없다.

“이건 사기야! 사기! 계약은 무효야!”

카르멘이 바락바락 악을 썼지만···,

[몽환의 마법진을 통한 대전사 결투가 끝났습니다.]

[승리자는 김태주의 대전사입니다.]

[전리품 계약을 실행합니다.]

“안 돼!”

그리고,

째째재쟁!

몽환의 마법진이 산산이 조각나면서 부서졌다.

※ ※ ※

태주는 잠에서 깼다.

그러자,

“냐앙!”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자신의 옆을 지키고 있는 일백이.

“너 언제 왔어?”

“냐아아아아,”

“벌써 왔다고? 아하, 옆에서 지키고 있었구나.”

“냐앙?”

“피곤해서 잔 건 아니야. 걱정 안 해도 돼.”

아쉽다.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검선과 헤어졌다.

검선이 너무 빨리 이모탈킹을 죽였기 때문이다.

조금만 시간을 끌어주지.

그랬다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아무튼 간에.

‘후우, 무시무시했어.’

검선이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강기 덩어리로 이루어진 수천 개의 검.

그것이 한꺼번에 내려꽂히는 광경이란,

‘마치 만천화우와 비슷한 느낌이야.’

만류귀종.

각기 다른 흐름이라도 궁극에 이르면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진다더니.

그에 반해 이모탈킹?

마계의 대악마라고?

‘대’자는 빼자.

그냥 좆밥 악마였다.

‘참! 전리품은?’

그때였다.

쓔우우우웃!

무언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와장창!

총사령부 방안 창문을 깨고 방안으로 데굴데굴 굴러온 여자 하나.

전리품이 신속 배달됐다.

“카르멘?”

“···으아아아! 마, 말도 안 돼. 넌 대체 뭐야? 그, 노인은 누구였지? 신? 정말 신이야?”

머리를 산발한 채 정신없이 말을 쏟아내는 카르멘.

웬만하면 받아주고 싶지만 시간이 별로 없다.

“전리품 내놔.”

“으아아아아,”

“빨리!”

“브, 블랙 마피아는···,”

카르멘의 입에서 줄줄이 나오는 정보들.

두목의 정체와 이름, 어떻게 조직이 만들어졌는지, 무슨 일을 해왔는지, 그리고 왜 모스크바 내전을 일으켰는지, 의식의 진행 상황과 다른 장로들이 숨어있는 곳.

‘흐음.’

카르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 진실이었다.

모든 걸 다 알아냈지만 하나가 빠졌다.

“드렉 카락스는 어디 있나? 영혼 연결자, 너희들 두목 말이야.”

“그, 그건 나도 몰라. 모스크바 어딘가에 계시겠지.”

“정말?”

“내가 아는 건 다 이야기했어. 맹세코.”

판관의 반지가 잠잠하다.

카르멘이 한 말은 모두 진실이었다.

가장 가까운 심복에게까지 자신의 거처를 숨기다니.

아무튼 카르멘은 어떻게 할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우우우우웅!

풍선처럼 부풀기 시작하는 그녀의 몸.

“허억!”

알만하다.

“너도 금제를 당했구나. 에드워드처럼.”

“아아아아···,”

“쯧쯧, 그분, 그분 하더니, 결국 너도 버려진 거냐?”

전리품 계약이 끝난 직후, 발동해버린 금제.

카르멘이 필사적으로 태주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아, 아니! 난 살 수 있어. 부활할 거야. 그러려면 넌 여기서 죽어야 해. 가, 같이 죽자! 같이···,”

순간!

“캬악!”

어느새 도약한 일백이가 앞발로 카르멘의 관자놀이를 냅다 후려쳤다.

츠핏!

콱!

“악!”

머리가 한 바퀴 돌았다.

동시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벽으로 처박히는 카르멘,

꽈당!

그리고,

펑! 하고 터져버리고 말았다.

“으음···,”

“냥?”

“아니, 잘했다.”

이제 다음 장소로.

나머지 장로 3명의 은신처라는 모스크바 전쟁 기념박물관.

거기 가보면 드렉 카락스의 은신처를 알아낼 수 있겠지.

어차피 마법진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바로 그때!

쿠쿠쿠쿠쿠쿠쿠쿵!

“헛!”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드드드드드드드···,

모스크바 군부대 건물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뭐지?”

깨어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버섯구름.

“이런 미친 새끼가!”

핵폭발이었다.

방향은 모스크바 전쟁 기념박물관이 있는 곳.

꼬리 자르기를 이런 식으로?

“하아,”

이럴 때가 아니다.

스팟!

태주는 즉시 움직였다.

수초 후, 충격파가 덮쳐올 것이다.

일백이를 안아 든 태주는 표홀질풍보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만리비검에 올라탄 후, 핵이 터진 반대 방향으로 쏜살같이 날았다.

※ ※ ※

선계(仙界).

멀티플렉스 1층.

신선들이 소복하게 모여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정신없이 설명하는 검선.

“아니 글쎄, 슬슬 졸리기 시작하더라고.”

“그런데?”

“이상하지 않소? 갑자기 졸린다니, 이게 말이나 되오?”

“뭐, 그럴 수도 있지.”

“내가 하선고요? 잠잘 시간도 아까운데,”

“뭐? 왜 날 끌어들여? 대체 말하고 싶은 게 뭐야?”

하선고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선은 침을 튀겨가며 말을 이었다.

“딱 보면 모르겠소? 이건 누군가가 일부러 유도한 거야. 날 잠이 들게 하려고.”

“그래서 잤소?”

“처음엔 안 자려고 했는데, 그냥 당해주기로 했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런데 꿈에서 누가 보였는지 아오?”

“뭐, 인간계에서 만났던 첫사랑이라도 만났나 보군.”

“어허, 내가 첫사랑이 어디···, 험험, 아무튼 누구였나 하면,”

“거참!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보시오.”

“태주 대협이었소. 그가 날 꿈속으로 부른 거요.”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오자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바짝 다가오는 신선들.

“태주 대협?”

“그렇소.”

“꿈에서 뭐 했는데?”

“요괴 하나 처리해달라더군. 그래서 처리해줬소.”

“또?”

“뭐, 그게 끝이오. 하지만 너무나 생생했단 말이지.”

앉아있던 신선들이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하나둘씩 일어났다.

“쯧쯧, 어디서 개꿈을 꾸고 와서는.”

“잔뜩 기대한 내가 잘못이오.”

“에이, 괜히 시간만 버렸네.”

“꿈에서 요괴 잡은 게 뭐 대단한 거라고, 현실에서 잡아도 시원찮을 판에.”

검선은 억울하고 답답했다.

“아니, 진짜 태주 대협이 꿈속으로 날 불렀다니까? 서로 인사도 했소.”

“원래 그렇소. 개꿈일수록 더 생생한 법이지.”

“허어, 얼마나 놀라운 경험이었는데,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이렇게밖에···,”

“됐고,”

귀곡이 손뼉을 짝짝 치면서 말했다.

“자자, 쓸데없는 검선 이야기 듣느라 시간 낭비했으니 이제 일이나 합시다. 오늘까지 설치 완료해야 하오.”

얼마 전 지구에서 도착한 배송.

검선이 기다리던 스포츠카도 있었지만 선계 인트라넷 설치를 위한 통신 장비도 있었다.

당군악의 선계 발전 계획의 청사진.

신용패의 사용은 곧 중단될 것이다.

앞으로 굳이 멀티플렉스에 오지 않더라도 스마트폰을 통해 결제도 하고, 영화도 보고, 물건 주문도 가능하게 할 생각.

일명 선계 페이.

그러려면 인트라넷 설치가 시급하다.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영상 매뉴얼을 통해서.

“태주 대협 동생이라는 김동훈이라는 청년 말이오. 아주 똘똘하더군.”

“맞소, 혹시 귀곡과 같은 영혼 아니오?”

“허허, 어찌나 자세하게 설명해주던지, 우린 따라 하면 그만이잖소.”

먼저 부분적으로 광통신 케이블을 깔아야 한다.

상위 계 전체를 무선으로 커버할 순 없는 일이니까.

메인 서버 건물은 멀티플렉스 옆쪽에 지어놨다.

그곳에서 광케이블이 선계와 천계로 뻗어나갈 것이다.

그럼 황천계는?

독선에게 인트라넷 계획을 들은 염라는 황천계 업화궁과 선계를 연결하는 문, 즉 상설 게이트를 설치했다.

닫히지 않고 언제나 유지되는 문.

그걸 통해 광케이블을 연결하면 그만.

남은 건 전용 앱과 어플이 깔린 스마트폰.

이미 태주와 이야기가 끝났다.

다음 배송 때 선계로 도착할 것이다.

“그나저나 원숭이는 뭐 하고 있나?”

“상영관에 틀어박힌 지 한참 됐소.”

주선이 맘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독선은 너무 착해서 탈이야. 죄인이나 다름없는 새낀데, 차라리 황천계로 보내버리지.”

“맞소. 염라도 벼르고 있던데, 해맑이가 말리지만 않았어도 진작에 대가리가 터졌을 거요.”

“쩝, 벌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반대로 포상을 내리게 생겼으니.”

“내 말이 그 말이오! 우리가 선계 발전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소? 헌데 그놈은 영화관에서 꿀이나 빨고 말이야. 이게 무임승차지.”

“해맑이 봐서 참읍시다.”

어쨌거나 선계의 변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 여전히 선계는 변화 중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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