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회귀도 열세 번이면 지랄맞아진다
[귀하가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군 당국에 있어 어떠한 의미도 없으니까요. 귀하는 그저 이곳을 채우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죽는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골렘이 전한 말은 너무나도 의외였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범죄자는 물론, 심심하면 평범한 시민들도 노역을 시키는 군국이 어떠한 임무도 내리지 않는다?
좋아하기엔, 나는 군국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의외의 태도를 보일 때는 언제나 그 안에 숨긴 진의를 읽어야 한다.
위기감을 느낀 내가 골렘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려는 때였다.
굉음과 함께 감옥 정문이 부서져라 젖혀졌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맹렬한 기세로 튀어나왔다. 그 존재가 마당을 벗어나자 이상 사태를 알리는 경고음이 울리고, 탐조등이 맹렬하게 탈주자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미가 없다. 달리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탈주자를 쫓는 탐조등도 그녀를 쫓지 못했으니. 빛이 목표물을 비추려는 순간 그녀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탐조등조차 목표를 잃고 허둥대는 사이, 소녀는 번개처럼 뛰어 내 앞에 내려앉았다. 난데없는 등장에 나도 골렘도 말을 잃은 때였다.
그리고 잠시, 소녀는 고개를 팍 들고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짖었다.
"멍! 반가워! 반가워!"
세모로 쫑긋 선 귀, 허리춤에서 살랑살랑거리는 금빛 꼬리. 큼직한 눈망울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한없는 호의를 내보이고 있었다.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들썩인다.
머나먼 과거의 인간이 저지른 죄악의 후손, 개 수인이었다.
개 수인은 진짜 개라도 된 것마냥 네 다리로 쪼그려 앉은 채, 내 발치 부근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뭐지, 도대체? 나는 어설프게 손을 들어서 인사했다.
“어… 안녕?”
“안녕! 안녕! 안녕!”
그러자 개 수인은 펄쩍펄쩍 뛰며 나를 반겼다. 공격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고, 몸짓조차도 우호적이다. 인간이라기보다는 꼭 잘 길들인 개와 같은 반응이었다.
너무나도 순진무구하고 호의적인 모습에, 나는 낯선 이와 마주쳤을 때 필연적으로 느껴야 할 경계심조차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깨닫는 게 좀 늦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나에게 호의를 품는 것 자체가 대단히 이상하다는 걸.
그리고 독심술사인 내가, 이 존재의 생각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는 것을.
"놀자! 놀자! 놀자!"
"뭐? 내가 왜."
"멍! 놀자!"
개 수인이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고는, 입으로 내 바짓단을 물고는 잡아당겼다. 뭐지, 하고 떼어내려는 때.
갑자기 짐마차에 달린 밧줄이 내 발을 낚아챈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성인 남성의 체중을 지탱하던 다리가 속절없이 들린다. 내 몸은 그대로 쓰러지고, 개 수인은 그런 나를 붙잡고는 쌩하니 달려나갔다. 몸이 속절없이 끌려간다. 통, 통. 어마어마한 속도에 물수제비라도 당하는 것마냥 몸이 튕긴다. 짐마차가 나를 매달고는 질주하는 것만 같다.
뒤를 이어 고통이 찾아왔다.
“끄아아악!”
악명 높은 탄탈로스에서 못 볼 꼴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난데없이 거열형을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그것도 나에게 호의를 지닌 상대에게!
무언가를 붙잡아도 소용이 없다. 더 큰 힘이 나를 잡아끌 뿐. 마찰 때문에 옷이 뜨거워진다. 콘크리트에 쓸린 피부에서 핏방울이 멍울져 떨어졌다.
죽는다. 이러다가는 진짜 죽는다. 나는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다급히 외쳤다.
"잠깐, 기다려!"
"멍!"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치악력만으로 나를 끌고 갈 힘이 있는 개 수인이, 내 명령에 따라 ‘기다렸다’.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 내 말을 듣는다고?”
꼭 마음을 읽는 능력이 없더라도, 세상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 것이다. 나의 말을 들어처먹는 사람보다는 개소리로 치부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만일 그게 누군가의 행동을 방해하고자 하는 말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이 소녀는 내가 기다리라고 명령하자,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기다렸다’. 고민도, 저항도 없이.
잠깐만. 뭐지? 나는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이 소녀의 생각을 읽었다.
읽히지 않았다.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
아니, 정확히는. 읽히기는 하고 대충 무슨 느낌인지도 알겠지만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가 없다. 꼭 다른 나라의 책을 번역하지 않고 보는 것 같다. 풍기는 분위기나 느껴지는 감정으로 막연하게 짚어낼 수 있을 뿐.
생각이, 읽히지 않아.
말도 안 돼. 사람이 아닌 건가?
‘기다리라고 했으니’ ‘기다린다.’ 의심도 주저도 없이. 꼭 순수한 어린아이…. 아니, 되묻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보다는 개에 가까운 사고방식이다. 인간에게 복종하는 충견처럼.
하지만 겉모습은 개의 귀와 꼬리가 달린 인간이며, 나를 끄는 힘은 인간을 가볍게 초월했다.
잠깐. 혹시 자기가 개라고 믿는 미친 수인이 아니라면, 이 존재는 설마.
"짐승의 왕?"
땅 위를 거니는 짐승 중 두 발로 걷는 인간이 명실상부하게 지상을 지배한 이후, 짐승의 왕은 인간의 육신을 취했다. 그들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처럼 말하며, 한 종족의 짐승을 대표하여 인간에게 그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그 본질은 한 종족의 왕. 모든 짐승을 대표하고 대언하며 대행하는 존재.
그중에서도 눈앞의 개 수인은, 모든 개를 대표하는 개의 왕. ‘강아지’였다.
“미친. 짐승의 왕이라면 신성의 존재잖아. 이딴 걸 왜 감옥에 가두는 거야?”
하물며 그 장소가 탄탈로스라니. 군국이 진짜 미치다 못해 돌아버렸나? 내가 즉각 몸을 돌려 골렘에게 항의하려는 때.
'…피의 향이 느껴지는구나.'
저 깊은 곳에서 생각이 들려왔다.
직후,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내 상처에서 나온 핏방울이 부르르 떨렸다. 어둠이 나를 옭아맨다. 나는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곁눈질로 내 핏방울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콘크리트에 묻어나온 내 핏방울이 거칠게 진동하더니, 이윽고 어느 한쪽으로 또르르 굴러갔다. 평상시 같다면 길게 핏자국이 남아야 하건만 탄탈로스에 떨어진 핏방울은 그러한 상식조차도 무시했다. 콘크리트 바닥이 꼭 얼음이라도 된다는 듯, 구슬처럼 방울져 굴러가는 핏방울.
나는 떨리는 눈으로 핏방울의 움직임을 쫓았다. 그것들은 저 멀리 있던, 깊고 어두운 문으로 다가가더니, 그 틈으로 스며들었다.
그 뒤 문 너머에서 아찔한 만족감이 느껴졌다. 포식자가 살을 한 점 베어 물었을 때 느낄 법한, 피식자의 것으로 목을 축이는 충만감이.
…그리고 그게 내 피라는 사실에 공포가 앞섰다.
'…탁하다. 내 입맛이 까다롭다 생각한 적은 없으나, 이 피는 도저히 먹을 게 못 되겠구나.'
준 적도 없는데 지가 먹어놓고 맛없단다. 갇힌 주제에 입맛도 까다롭다.
하지만 그런 불만을 함부로 표할 수가 없었다.
그야, 저 문 너머의 존재가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데에는 독심술도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저 너머에 있는 건 흡혈귀. 천 년을 살아왔고, 죽지 않는 한 영원히 살아갈 피의 여왕.
시조 티르칸쟈카.
인간과의 갈등이 귀찮아 스스로 무저갱에 틀어박힌, 가장 오래된 어둠이었다.
"미친…."
흉악범? 그 어떤 흉악범을 데려와도 저 둘에는 비견되지 못할 것이다. 개의 왕은 신성을 지닌 존재이며, 흡혈귀는 그런 신을 비웃는 역천의 괴물이다. 평범한 자는 마주칠 일도, 감히 마주 볼 수도 없는 이들.
나는 내 범위를 벗어난 스케일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내심 안도했다.
다행스럽게도 저 둘은 인간에게 우호적이거나 무관심하다. 개의 왕이야 인간에게 애정을 보이고, 흡혈귀는 피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나를 살려둘 것이다. 내가 심기를 대단히 거스르지 않는 한 내가 저들에게 죽지는 않겠지.
어쩌면, 저 둘을 꼬드겨서 내 편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
그때.
“날아라.”
딱딱하면서도 날카로운 미성이 들렸다.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고개를 한 번쯤 돌아볼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였으나, 거기서 느껴지는 건 차가운 적의와 칼날처럼 벼려낸 살의뿐.
나는 그걸 읽자마자 다급히 골렘으로부터 멀어졌다. 직후.
“천앵.”
공간에 실금이 생겼다.
빛과 어둠뿐인 땅. 공간 자체를 도려낸 듯, 빛과 어둠이 어그러진다. 암흑에 사선으로 단층이 생겼다. 베인 공기에서 스파크가 작열하며, 어두운 무저갱에 벼락이 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칼날이 정확히 골렘을 반으로 갈랐다.
골렘은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 그 안에 담긴 마도공학의 정수도, 정밀하게 설계된 기계장치도, 회로도 마나도 모두.
한 번의 칼질에 둘로 나뉘었다.
골렘의 반쪽이 천천히 미끄러져 땅으로 떨어졌다. 파직, 간단한 파찰음과 함께, 골렘의 몸체가 허물어졌다.
단면도라도 보는 것처럼 너무 깔끔한 절단이었다. 이대로 이어붙여도 그대로 기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러나 골렘의 수정구가 빛을 되찾는 일은 없었다. 그것으로 원격조종 골렘의 작동이 정지했다. 마이크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나오다가 픽, 하고 꺼졌다.
대신, 칼날로 벼려낸 듯한 미성이 들렸다.
“아직도 스페어 골렘이 남아 있었나? 바퀴벌레도 아니고, 지긋지긋하네. 설마 더 있지는 않겠지.”
짧게 자른 흑발에 낙낙한 바지를 입은 소녀가 천천히 걸어왔다. 소녀는 허공에서 투명하게 일렁이는 검을 잡아채고 원수라도 보듯 골렘을 노려보았다.
골렘에게 잠시 머물던 그녀의 눈동자는 이윽고 나를 향했다.
“자, 그럼 이제… 너는 누구지?”
본능이 경종을 울린다. 지금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외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독심술을 사용해 그녀를 읽었다. 최대한 자세하게.
그녀는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평범하게 고아원에서 자라 뒷골목에서 생활하다, 범죄와 질병, 폭력 등에 노출되어 시달리다 죽은, 너무 흔해 이야깃거리조차 되지 않는 엑스트라였다.
검을 좀 배우다가 낭인 검객에게 목이 잘리고, 마법도 배우다가 용병 마법사에 의해 전신이 불탔다. 무언가를 하더라도 재능이 부족해 대성할 수 없는, 기회를 잡아도 성공으로 이끌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기회가 무한히 많다는 것 뿐.
…응? 이게 뭔 소리야.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아? 이해가 안 되는데.
그녀는 다섯 번의 죽음 동안 칼을 휘둘렀고, 검성과 검을 겨룰 실력을 갖췄다.
다른 일곱 번의 죽음 동안 직간접적으로 마법을 전수받았고, 마왕에 맞설 마력을 얻었다.
어디까지나 앞에 설 자격을 획득했다는 거고, 그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면 처참하게 패배하겠지만.
그마저도 끝이 아니다.
“대답해.”
소녀는 보검 천앵을 회수했다. 가장 높은 산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전설의 검. 미래를 알고 있지 않다면 결코 얻을 수 없을, 하늘을 닮은 검이 웅-하고 울었다. 그녀는 천앵을 다시 치켜들며 내 쪽을 향했다.
열세 번의 죽음을 넘어,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무한한 시도를 반복하는 자.
회귀자 셰이가 검을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대답하지 않으면… 죽인다.”
더욱 강해지기 위해.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회귀를 끝내고 영원한 안식을 얻기 위해.
기연을 찾아 헤매다 무저갱에 도달한 회귀자.
그녀는 진지하게 내 목숨을 재고 있었다. 이걸 죽여야 할지, 살려야 할지. 어떤 게 '이번 회차'를 이끌어나가는 데 옳은 선택일지.
만일 내가 그녀의 기준에 알맞지 않다면, 나를 죽여 ‘변수’를 없앨 작정이었다.
"…하."
탐조등조차 쫓지 못할 속도로 뛰어다니고.
수백 미터도 떨어진 곳에서 피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전쟁에서도 쓰이는 군용 마도 골렘을 단숨에 박살 내는 괴물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마음이 놓여서, 양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그래. 여기 남은 이들은 엄청나게 강하다. 아마 나 같은 잡범 만 명이 있어도 몇 초 내로 학살당하겠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하지만 뭐, 내가 언제 강해서 살아남았던가?
내가 십 년을 넘게 살아온 뒷골목. 그 좁은 뒷골목에서조차 나보다 강한 자는 수두룩했다.
그러나 결국 살아남는 건 나였다.
맨손으로 바위를 부수는 괴력의 사나이는 강철을 베는 검사에게 목이 날아갔다. 그 검사는 떠돌이 마법사가 설치한 함정에 걸려 전신이 불탔다. 보수금을 요구하던 마법사는 독이 든 음료를 마시고 한 줌의 핏물로 변했다.
오직 나만이, 생각을 읽는 나만이 검사의 비위를 맞추고, 마법사의 함정을 빙 돌아갔으며, 독이 든 컵을 정확하게 골라내어 목숨을 부지했다.
여기도 마찬가지.
상대가 아무리 괴물이라고 한들, 내가 생각만 읽을 수 있다면.
저 절대자들의 비위를 맞추고, 마음 한복판에 난 역린을 피해가며, 충분히 친분을 쌓는다면.
나를 죽일, 아니. 내가 죽을 이유가 어디 있겠어?
뒷골목 사기꾼으로 평생을 살아온 나다. 남의 비위를 맞추고 관심을 끄는 데에는 나만한 사람이 없지.
나는 양팔을 벌리며, 소리 높여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