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4화 (4/384)

EP.4 장막을 들추고 미래를 엿보았지만, 그곳엔 오직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탄탈로스는 안전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아군입니다!”

나는 맹렬한 확신을 담아 그렇게 외쳤다. 듣는 사람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그런 대사를.

그러나 회귀자는 내 연설을 듣고도 코웃음을 쳤다.

'우리들의 아군이라고? 어처구니가 없네. 군국에게 아군이라는 게 있기는 해?'

어라, 믿지를 않네.

어디, 조금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볼까? 귀여운 동물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고들 하지?

그렇다면야. 나는 개의 왕을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부서진 골렘을 발로 툭 쳤다. 눈 부분에 박혀 있던 수정구가 빠져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발로 수정구를 퍼 올린 뒤 허공에 몇 번 던졌다 잡았다를 반복했다.

“멍! 멍!”

그러자 개의 왕이 열렬히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개의 왕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는 있다지만 본질은 개. 사냥 본능을 자극하는 공놀이에 환장하는 법.

개의 왕은 시선을 수정구에 고정한 채, 내가 수정구를 던질 때마다 몸을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쫑긋 선 귀와 반짝이는 눈망울에서 가득 차오른 흥이 느껴진다. 시선을 충분히 끌었음을 직감한 나는, 온 힘을 다해 수정구를 던졌다.

"물어 와!"

"멍!"

수정구는 포물선을 그리며 저 멀리 날아갔다. 그 순간 개의 왕이 땅을 박차며 그 뒤를 쫓았다. 개의 왕이 순식간에 멀어진다.

개와 놀아주는 데에는 역시 공놀이만 한 것이 없지. 나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귀여운 멍멍이네요. 여기서 키우는 건가요?”

이 정도면 충분히 경계심이 옅어졌겠지. 나는 곁눈질로 회귀자의 시선을 살피며 그녀의 생각을 읽었다.

자, 어디 보자.

‘멍멍이, 라고? 개의 왕을… 고작 개 취급을 해?’

이상하다. 분명 경계심을 풀려고 했는데 도리어 나에 대한 경계심이 한층 늘었다. 왜지? 평범한 사람들은 동물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다들 안심하던데.

다시 한번.

“개란 참 좋은 생명체이죠. 인간에게 충성스러우면서도 도움도 되고, 무엇보다 귀엽잖아요? 양질의 고기를 제공하지 않는데도 이토록 도움이 되는 동물은 많지 않죠.”

‘…거기다 개 수인을 완전히 인간 아래로 취급하잖아. 심지어 가축에 고기 발언까지? 혹시 종족 차별주의자야?’

어라. 오해가 하나 더 늘어나는 건 예상 밖인데.

그보다 나는 개 수인을 개로 취급한 게 아닌데. 개의 왕 저거, 겉모습은 수인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간의 모습을 한 개잖아. 개를 개 취급한 게 뭐가 문제인데?

너도 여왕개미한테 사절단을 보내지 않을 거 아니야. 개의 왕이라고 한들 사람이랑 겸상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저는 말이지요. 여러분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러 왔습니다. 저는….”

상대방과 교류를 하기 위한 가장 첫 단계, 공감대 형성.

여러분과 같이 잡혀 온 신세라고 말하면 안전하겠지. 저쪽도 별달리 경계하지 않을 테고 말이야.

내가 그렇게 말을 하려는 때였다.

‘1년 뒤, 이 탄탈로스는 붕괴해. 무저갱은 가라앉고 수많은 목숨이 저물지. 거기서 살아남은 이들은 고작 한 줌.’

어.

잠깐만.

탄탈로스? 이곳이 무너진다고?

‘개의 왕 아지, 시조 티르칸쟈카. 이들은 탄탈로스가 붕괴하는 와중에도 살아남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저갱 속에서 타락해버리지.’

거기다 한때 세상을 기울게 했던 흡혈귀의 시조와.

모든 개의 총의를 대변하는 개의 왕이…. 타락? 타락을 해?

‘타락한 종말의 씨앗들은, 10년 뒤에 찾아올 종말을 앞당겨. 이들은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학살하며 세상을 혼돈으로 몰아넣지. 그리고.’

늦어도 10년. 필연으로 약속된 그날이 찾아오면.

진정한 의미의 ‘종말’이 찾아오고.

세계가 멸망한다.

거기까지 읽은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군국에 잡혔을 때도, 탄탈로스로 끌려갈 때도. 절망스러운 기분을 느끼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헤쳐나갈 자신은 있었다. 독심술을 사용하며 교관이나 죄수들의 비위를 맞추고, 평판을 쌓으며 점점 은밀한 비밀을 캐낸 뒤, 협박을 하던 협상을 하던 해서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방금 읽은 사실로, 계획이 통째로 어그러졌다.

정해진 미래는 그 자체로 비극이며 절망이다. 괜히 숱한 예언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미쳐간 게 아니다.

더불어. 그게 필연적으로 다가올 종말을 예고한다면.

…나는 어떻게 하지?

‘그리고, 내가 아는 그 어떤 미래에도 이 남자는 나타나지 않아.’

보이지 않는 거야 당연하지. 나는 잡범이라고. 그런 내가 세상을 구하는 싸움에 끼어들 리가 없잖아. 별 같잖은 생각을 하고 있어….

라고 속으로 투덜거렸으나, 이어지는 생각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심지어 바로 이전 회차에서 탄탈로스가 붕괴하고 곧장 찾아왔을 때, 그때 이 남자는 없었어. 저 아래 시체들만 가득했을 뿐.’

회귀자는 나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이런 시기에 뒤늦게 탄탈로스에 찾아온 남자, 이 남자가 타락의 씨앗일 수도 있어. 혹은 불운한 희생자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내가 아는 미래에 이 남자는 없다는 것.’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이 세상은 10년 뒤에 멸망하고.

나는 그 멸망이 다가오기도 전, 무저갱에서 죽는다는 말이지?

“하, 하하.”

허탈해서 웃음이 다 나왔다.

인생을 스포일러 당했다.

심지어 그 끝은 비극, 탄탈로스라는 공간이 공간이니만큼, 차마 입밖으로 꺼내기 힘든 끔찍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겠지.

미래를 보고 온 회귀자의 생각을 읽고, 나 역시 미래를 읽어버렸다.

숱한 다른 예언자들처럼.

그러나.

나는 그들과 다르다.

이번 회차는 회귀자도 있고, 나는 그녀의 생각을 읽었다. 회귀자는 시간을 넘나들며 과거를 바꾸고 존재할 리 없는 미래를 찾는 자. 내가 그녀의 생각을 읽었으니, 내 죽음이라는 미래 또한 바뀔 수 있다. 관측된 예언은 달라질 수 있으니까.

긴장하지 마. 몸을 풀어라. 웃음을 가면 삼아 당당하게 나서라.

지금까지와 똑같다. 내가 언제 강해서 살아남았던가? 강한 자는 아군으로 삼았고, 혹여나 적이 되면 그를 피했다.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건 힘이 아니라 지식이었다.

운명이라는 거대한 적도 마찬가지다. 맞서 싸울 필요는 없다. 운명으로 하여금 나를 죽이지 않게끔만 하면 된다.

다행히도, 조각은 갖추었다.

흡혈귀의 시조.

개의 왕.

그리고 회귀자.

이들의 호의를 산다.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다. 친분을 쌓고 연을 맺어, 이들이 나를 죽이지 못하게끔 하자. 아니, 도리어 나를 보호하게끔 만들자.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좋아. 결심했다.

아마 이전 회차에서의 나는 이들 앞에서 사실대로 털어놓았을 것이다. 나는 노역자이고, 당신들과 같이 군국에 잡혀온 몸이며, 우리는 절대로 적이 아니라고. 그렇게 설득하고는 이 위험한 인종들과 가능한 엮이지 않게 조용히 살았겠지. 그게 살아남기 위한 최선이니까.

그러나 미래를 읽은 지금, 꼴통처럼 원래 계획을 고수하는 건 바보짓이다. 필연적으로 할 선택을 피해야 다른 미래를 움켜쥘 수 있다.

운명을 상대로 사기를 치자. 이전의 나와, 이전 회차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는 거다.

나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는, 큰 소리로 소리쳤다.

“교육생 여러분을 지도하기 위해 찾아온, 군국의 교관이니까요!”

“교관?”

회귀자가 날카로운 눈으로 물었다.

군국에서 군인 사칭은 중범죄. 하지만 뭐 어때? 1년 뒤에 죽는 것보다야 사칭범으로 잡혀가는 게 낫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마음을 먹은 나다. 사방팔방에 얼굴을 들이밀려면 직함 하나 정도는 달고 있는 편이 좋다. 나는 뻔뻔하게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교육생 여러분! 여러분들은 대단히 위험한 능력과 난폭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사회성이 부족하여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탄탈로스에서 사회화 교육을 받을 예정이었습니다! 다만, 탄탈로스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고 말았지요!”

골렘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읊으며, 나는 말을 이었다.

“이번에 있던 대탈출 사태를 맞이한 군 당국은 흉악한 교육생을 대상으로 재사회화 교육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판단, 저를 직접 파견했습니다! 저는 이곳에 거주하며 여러분을 관리, 감독할 것입니다!”

첫 단추를 바꿔 끼운다.

아주 사소한 한 걸음의 변화.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미래는 크게 바뀌겠지. 앞으로 내가 처할 상황도, 입장도 큼직하게 바뀌어나갈 것이다….

그런데 잠깐만.

변수…라고 한다면. 나는 미간을 좁히며 회귀자를 바라보았다.

회귀자도 저번 회차에는 탄탈로스에 없었던… 변수가 아닌가? 이미 변수가 나타났는데, 내가 나설 필요가 있었나?

괜한 짓을 했나, 막연한 후회가 찾아올 때.

“교관…. 그래. 그렇다는 말이지.”

차가운 살의가 나를 관통했다.

어? 하는 사이, 그녀는 이미 천앵을 꺼내들고 있었다. 발작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군국을 향한 날카로운 적의가 드러났다. 그 적의는 명확한 형태를 가지고 나를 노리고 있었다.

실수했다.

회귀. 죽으면 과거로 돌아오는 사기적인 권능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래서 방심해버렸다. 상대의 권능을 토대로 상대를 너무 고평가해버렸다. 나를 차분히 지켜보는 이 시선을 부동심이라고 착각했다.

그저 회귀자 특유의 관망하는 시선이었는데.

열세 번의 회귀 동안 강해졌다는 건, 다시 말해 열세 번은 죽었다는 것.

즉, 저 여자는 걸어다니는 PTSD 덩어리였다!

심지어 그중 7번은 직간접적으로 군국에 의해 살해당한, 일곱 목숨 분량의 원한을 가진!

‘죽인다.’

살의가 느닷없이 부풀어 오른다. 조현병이 의심되는 수준의 격렬한 감정변화였다. 하긴 열세 번 죽었다면 정신병 하나둘 달고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곧장 칼을 휘두를 줄이야.

심지어 그 궤적에는 내 오른팔이 걸려있었다.

‘일단 팔 한 짝을 잘라내고 시작하자. 그리고 심문하는 거야. 죄수들이 다 탈출한 감옥에 무슨 볼일이 있는지, ‘무엇’을 노리고 왔는지.’

나, 혹시 자폭 스위치를 건드린 건가? 아니면 이게 운명의 강제력?

그것이 뭐든, 지금 내 앞에 당면한 현실은.

무게가 없는 검이 내 오른쪽 어깻죽지를 노리고 휘둘러졌다는 것이다.

천앵은 무게도, 두께도 없는 검. 천앵의 속도에 비하면 내 몸은 지독하게 느리다. 회귀자가 손목을 꺾는 것만으로도 투명한 칼날이 주욱 늘어난다.

미래가 보였다. 천앵이 내 어깨를 훑고, 오른팔이 뚝 하고 떨어지는 미래가.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대처하지도 못하고 팔이 잘렸겠지.

하지만 나는 생각을 읽는다.

회귀자가 칼을 휘두르기 조금 전, 나는 살의를 감지하고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막아? 그럴 수 없다. 상대는 13번의 회귀 동안 능력을 갈고 닦은 회귀자. 내가 방어 자세를 취하면 그 째로 잘려나갈 것이다.

피해? 그러기에는 너무 빠르다. 생각을 읽고 먼저 움직였음에도, 천앵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잘 피해봤자 어깨 잘릴 거 상박이 잘리는 걸로 바뀔 뿐.

남은 방법은?

없다.

어? 나 죽어? 설마 1년 뒤가 아니라 1분 뒤에 죽는 거였던 거야?

그럴 수는 없다.

나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이 비루한 목숨을 이어가야 한다.

어떻게 지금까지 아득바득 살아남았는데. 그 뒷골목에서 얼마나 비굴하고 비참하게 살아남았는데!

이딴 무저갱에서 목숨을 잃으려고 살아남은 게 아니라고!

“으앗!”

나는 발작적으로 손발을 휘둘렀다. 발악이었다. 그저, 살아날 가능성을 0.1%라도 높이기 위한, 뭣도 없는 발악으로.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구하는 자만 구원받는 법.

‘뭐?!’

팅, 하고 청명한 소리가 들렸다. 투명한 칼날에 파문이 번진다. 살짝 비틀어진 궤적이 내 어깻죽지 한 톨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검의 궤적을 따라 스파크가 번쩍인다. 천앵은 공기조차도 베어내는 검, 칼날에 걸린 공기들이 깨지며 위아래를 가지치기한 듯한 벼락이 새겨진다. 한 박자 늦게 천둥이 몰아쳐 내 고막을 괴롭힌다.

전신의 털이 쭈뼛 섰다. 정전기 때문인지, 아니면 공포 때문인지는 나조차도 알 수가 없다.

‘천앵을 튕겨냈다고?!’

어? 살았나?

팔, 멀쩡. 몸 상태, 양호. 고통, 없음.

살았다. 천앵이 빗나갔다.

아니, 잠깐.

내가 휘두른 손에, 천앵이 맞고 튕겨나갔나?

뭐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걸, 막아낸 것도 아니고… 손가락으로 튕겨냈다고? 말도 안 돼.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는데…! 설마 힘을 숨기고 있었나?’

회귀자의 생각을 읽었고, 그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강 알아냈다.

나는 생각을 읽는다. 그러니 상대가 그 누구든, 공격하려는 의도와 공격 방법을 미리 읽을 수 있다. 이건 내 쓸모없는 독심술의 몇 안 되는 장점.

내 오른팔을 베려는 의도를 읽은 순간, 죽음을 직감한 나는 발작적으로 손을 휘둘렀다. 당연히 그 궤적에 포함된 오른손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회귀자의 검이 내 생각만큼이나 빨랐던 것이다.

그 시점이 서로 맞물린 탓에, 회귀자의 칼날이 움찔거리는 내 손가락과 정확히 부딪혔다.

본래라면 턱도 없는 일이나, 회귀자의 검은 무게 없는 검 천앵이다. 내 손가락에 닿은 것만으로도 검날이 휜 탓에 종이 한 장 차이로 팔이 잘리는 일을 피했던 것이다!

이걸 성공하네. 이야. 인생에 몇 없을 업적을 달성했다.

아니, 이게 아니지.

경악한 회귀자는, 뒤로 몸을 튀기듯 물러나며 검을 곧추세웠다. 아까까지의 그녀가 일을 하는 태도였다면. 지금은 강적을 상대하기 위한… 일종의 경계 태세.

미친년이. 왜 네가 경계를 해? 난데없이 공격당한 내가 경계하는 쪽이 맞지 않을까?

“…실수했어.”

그럼. 큰 실수를 했지. 내가 죽을 뻔했잖아.

회귀자는 궁지에 몰린 고양이처럼 온몸에 힘을 잔뜩 준 채 나를 노려보았다.

“탄탈로스에 파견될 교관이면 최소한 그만한 무력을 갖고 있을 텐데…. 얕본 걸 사과하지.”

“아니. 사과하는 방향이 잘못되었잖아요?”

자기가 방심해서 나를 멋대로 올려치기 해준 거야 고맙지만,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회귀자에게 ‘적’이라고 찍힌다면 미래는 물론이고 다음 회차의 나까지 위험해진다.

진짜. 갑자기 공격당한 게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지만. 죽든 살든 같이 탄탈로스에 갇힌 관계. 얼굴 마주하고 몇 개월 동안 지낼 입장이다.

아무리 상대가 괘씸하다고 해도, 지금은 최소한 우호적인 방향으로 말하자.

그러니까.

“얕본 걸 사과하는 게 아니라, 난데없이 사람을 공격했던 일을 사과해야죠! 당신에게는 예의도 없습니까!”

느닷없는 훈계에 회귀자의 미간이 좁아졌다. 나는 답답한 척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신들의 불안해하는 태도도 이해합니다. 며칠 전 이곳에서 그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으니까요…. 폭동을 일으켜 사람들을 죽이고, 장비를 약탈하며, 탈옥까지 하다니. 당신들을 지켜야 할 군국에 신뢰를 잃은 것도 당연합니다. 당신들이 군국을 의심해도, 그건 군국의 녹을 받아먹는 제가 받아들여야 할 업이겠지요.”

‘아니, 군국은 애초에 믿지를 않았는데. 이딴 나라를 왜 믿어.’

“하지만!”

나도 안 믿어! 그냥 그렇다고 해!

나는 회귀자의 생각에 끼어들고는 소리쳤다.

“그래도 그런 공격적인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죄를 짓고 이곳에 갇힌 당신들이 그런 사회성이 결여된 태도를 취하면 당신들을 도우러 온 제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도우러…왔다고?”

“그렇습니다!”

마침 수정구를 물고 온 개의 왕이 내 발치에 수정구를 내려놓았다. 개소리 그만하고 공이나 던지라는 듯, 코로 내 종아리를 톡톡 치고 있었다.

쓰읍. 말하는 도중에 거슬리게.

나는 아예 수정구를 감옥을 노리고 던져버렸다.

“물어 와!”

“멍!”

신이 난 개의 왕이 저 멀리 날아가는 공을 따라가는 가운데, 나는 다시 회귀자를 보고는 말했다.

“여러분은 그런 난리가 나는 와중에도 통제에 따라 교육대를 탈출하지 않고 대기했습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등장하는 법. 공포와 혼란이 지배하는 한가운데에서 꿋꿋하게 법규를 지킨 당신들을, 군국 상층부에서는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니. 개의 왕은 ‘약속’이 이행될 때까지 탈출할 생각이 없고, 흡혈귀의 시조는 잠들어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 건데.’

무슨 말만 하면 자꾸 딴지를 걸어! 사람이 왜 이리 부정적이야. 좀 받아들이라는 말이야!

태도가 불량하다. 저런 타입의 사람은 잠깐이라도 생각할 틈을 주면 상대방을 반박하기 위한 논리를 짜내는 타입이다. 나는 회귀자가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몰아쳤다.

“그렇기에 제가 직접 파견되었습니다! 여러분을 서포트하기 위해서, 군국 상층부가 직접 저를 파견한 것입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나는 노역을 하기 위해 이곳에 파견되었으니까. 군국 상층부가 파견한 것도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그저 죽어나가도 상관이 없는 잡일꾼이 필요했을 뿐이지만.

하지만 말이 어 다르고 아 다르듯, 말의 강조점을 ‘서포트’가 아니라 ‘나’에 집중한다면.

“그러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만 믿고 따라오십시오, 교육생 여러분!”

꼭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상대방을 착각하게끔 할 수 있고.

모두가 그렇게 믿는다면.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야.'

나는 실제로 대단한 사람이 된다.

“멍!”

마침 개의 왕이 다시 수정구를 물고 다가왔다. 아무리 멀리 던져도 귀신같이 찾아서 가지고 오네. 나는 그냥 냅다 공을 걷어찼다. 딱딱한 수정구에 부딪힌 발등이 시큰했지만, 그 아픔이 무색하지 않게 수정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멀리 날아갔다. 개의 왕은 헥헥거리면서 다시 공을 쫓았다.

‘개의 왕을 상대하면서도 느껴지는 저 여유로움…. 천앵을 쳐낸, 느긋하면서도 여유로운 움직임…. 밑바닥을 알 수 없는 남자야. 얼마나 강한지 전혀 가늠이 안 돼. 지금의 나로서는….’

얼마나 강한지 가늠이 전혀 안되겠지. 무력으로 따지면 나는 길가의 벌레. 검성이나 성녀처럼 규격 외의 강자랑 부대낀 네게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버러지의 삶이다. 절대자는 버러지의 마음을 모른다.

나는 네 마음을 알지만.

어쨌든, 성공이다.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인간도 본디 짐승이라. 잘 모르는 상대를 마주하면 위험을 느끼고 경계하기 마련이다. 무지란 곧 위험이고, 위험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게 생존의 기본 원칙이니.

그러니 저쪽도 나를 함부로 건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좁은 무저갱에서 계속 서로를 경계하며 살아갈 수는 없지. 최소한 중립적인 태도는 유지해야 한다. 나는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회귀자를 향해 쭉 손을 뻗었다.

회귀자는 흠칫 놀라 천앵으로 내 팔을 겨누었다. 그대로 힘을 줬다면 내 팔은 두부처럼 잘렸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겁을 먹고 뺀다면, 상대방에게 물어뜯을 곳을 내보이는 셈이다. 평정을 가장하며 손끝 하나 떨지 않고 회귀자를 향해 악수를 권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잘 지내자는 의미에서 악수나 할까요?”

회귀자는 내밀어진 손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천앵을 휙 거두고는 몸을 돌렸다.

“…흥.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어라. 방금 공격당한 사람은 저 아니었던가요? 칼 휘두른 쪽이 도리어 피해자인 것처럼 구네.”

회귀자의 생각을 읽은 덕분에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미래까지도 엿보았다. 고작 한 층. 눈앞의 사람 한 명만 파고들 수 있는 내가 세상의 흐름을 꿰뚫는 예언자처럼 미래를 알아차린 것이다.

몰랐을 때는 당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미래는 부끄럼쟁이라, 엿보인 순간 모습을 감춘다고 했던가. 이왕 감춘 김에 영영 사라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를 죽이겠다고 설치는 앙칼진 미래는 사양이다.

“그렇다면 자기소개라도 하죠. 존경과 경의를 담아 교관님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내 가슴을 툭툭 두들기며 다짐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만일 미래가 내 죽음을 고하고 있다면, 그 미래를 속여서라도.

나를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던 회귀자는, 이윽고 천앵을 머리 위로 던져버리며 짧게 대답했다.

"…셰이."

그와 동시에, 그녀의 마음속 다짐이 내 귓가로 들려왔다.

'일단은 지켜보자. 정 안 되면 이번 회차를 포기하고 다음 회차까지 넘어가면 돼.'

다행스럽게도 회귀자는 일단 관망하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몇 번 죽어본 사람은 다르네. 내가 위협적이라 생각하면서도, 일단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는 쪽이다. 호기심, 혹은 조그마한 단서라도 일단 지켜보자는 회귀자의 안일함이다.

회귀자는 나를 향해 눈을 치떴다.

'…저딴 경박한 남자와 같이 지내는 건 불안하지만. 다른 이들은 쉽게 당해주지 않을 테고.'

사람을 무슨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거야. 저기 있는 건 사람의 탈을 뒤집어쓴 개와 죽은 지 천 년이 지난 시체잖아. 개랑 시체를 두고 도대체 무슨 엄한 생각을? 나는 이상성욕자가 아니다. 평균적인 인간에 걸맞은 지극히 정상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완벽하게 남장을 하고 있기도 하니까, 괜찮겠지!'

아….

그러셨구나.

자신이 완벽하게 남장했다고 굳게 믿는 회귀자와 몇 개월을 같이 살아야 한다니, 쉽지 않겠는걸.

속으로 중얼거린 나는, 회귀자를 향해 어설프게 미소를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