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15화 (15/384)

EP.15 필요하기에, 어머니는 발명하였다.

회귀자는 삐딱하게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생체 단말을 새겨넣으면 좋으나 싫으나 군국에 매인 몸이 되어버려. 이 정보를 토대로 군국에서 일거수일투족 감시를 당하는 것도 모자라, 군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볼 거야. 제국이나 연방처럼 군국과 적대적인 국가에서는 감시가 붙을 수도 있어.”

또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만. 나 역시 삐딱한 자세로 지나가듯 말했다.

“타국으로 망명할 사람이 아니라면 별로 상관없는 문제죠.”

회귀자가 나를 노려본다. 마주 노려봐주었다.

군국을 욕하는 건 괜찮아. 그 나라는 애꿎은 죄인도 무저갱에 떨어뜨리는 유사 국가니까.

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생체 단말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어! 나는 군국에 충성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편리해서 생체 단말이랑 의복 패킷을 사용하는 거라고!

“…거기다 생체 단말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약점이야. 내 몸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마법적인 장치. 그건 모양만 다르지 과거에 있었던 노예각인과 다를 게 없어.”

뭐? 그러면 내가 노예라는 거야?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네.

나도 군국이 망했으면 좋겠다고 하루에도 몇 번 바랐던 사람이고, 탄탈로스에 갇히고 나서는 군국 욕이 입에 붙었다. 뒷골목에서 내로라 하는 잡범으로 어긴 죄의 가짓수만 따지면 너의 몇 배는 될 거다. 사기, 도박, 횡령, 협박, 뇌물수수 등등으로!

그런 나를 군국의 노예 취급해? 아니, 나는 군국 최악의 경범죄자! 너와는 죄질이 다르지만, 가짓수는 훨씬 많다고!

나는 한껏 발끈해서 쏘아붙였다.

“그건 너무 나갔죠.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뭐가 안전하죠? 꽉 끼는 정장을 보고 나를 옥죄는 감옥이고, 넥타이를 보고 내 목에 차는 목줄과 다름이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따지면 세상 모든 만년필도 회수해가야 하겠네요.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니까요.”

회귀자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나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눌어붙은 적의가 나를 콕콕 찌르고 있다. 만성적인 증오다. 지긋지긋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는, 열세 번의 죽음을 거치는 동안 늘 따라붙었던 어두운 그림자. 군국의 그늘에서 찌든 때는 아직도 그녀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너라고 모르지 않을 텐데.”

회귀자는 몇 회차의 감정을 담은 싸늘한 시선을 건넸다. 그녀의 마음은 너무 차가워서 다시는 불타오를 일 없어 보였다.

그 시선에 간담이 서늘해져, 속으로 중얼거렸다.

군국. 너희는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회귀자에게 미운털이 박혔니? 조심해야지. 세상은 넓고, 어딘가에 나라와 맞설 수 있는 개인도 있는 법이야. 예를 들면 무한히 회귀하는 회귀자 같은.

앞으로는 사람들 좀 작작 고문하고, 좀 잘 좀 대해….

“군국에서 생체 단말을 가지고 가장 먼저 활용한 것이… 고문이라는 사실을.”

희미한 흔적, 짧고 굵은 회상. 나는 독심술로 회귀자가 떠올린 과거를 읽었다. 꽤 오래 전, 초회차. 그때의 해묵은 기억이 떠오른다.

거기서 느껴지는 건 오직 단편적인 고통뿐이었다.

뇌리에 담긴 생각이라고는 ‘아파.’ 두 글자가 끝. 그것은 질 나쁜 행위예술처럼 마지막 페이지를 새카맣게 채우고 있다. 너덜너덜해진 상흔과 함께.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군국, 너희는 이미 늦은 것 같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이 나라를 떠야겠다. 아디오스.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지 말자.

“생체 단말은 연금술과 마법을 통해 외부에서 강제로 연 아키 아바타. 내 몸의 분신이야. 생체 단말을 강제로 열어젖혀서, 특별히 제작한 독성물질을 집어넣으면…. 훗, 감각은 살리면서 고통만 줄 수 있지. 전기를 흘리면 한순간에 전신으로 퍼져 나가. 분명 철침은 내 손목에 닿는데, 발끝이 제멋대로 오그라들지. 큭. 군국은 평범한 기술만 발달시킨 게 아니야. 가장 빠르고 급격하게 발달한 건 무기를 만드는 기술과… 고통을 주는 기술이었지.”

어두컴컴한 감정이 밀려온다. 흡혈귀가 할 말을 잊고, 둔한 아지마저 꼬리를 쫑긋 세우고 눈치를 볼 정도로.

흡혈귀는 침묵하고 있다.

다만, 그 마음이 어디로 기우는지는 명백했다. 마음이 나침반으로 표현된다면, 흡혈귀의 자침은 회귀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회귀자는 고통을 떠올리며 허탈하게 생각을 되뇌었다.

‘그 고문에 당한 사람은 다 죽었어. 나도 버티지 못하고 자살했지. 그날 이후, 나는 언제든지 고통 없이 죽을 수 있게 독을 가지고 다녔고.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할 수 없어. 군국….’

조졌다.

나도 알았으면 교관을 사칭하지는 않았지. 이런 아픈 기억은 못 읽었다고!

왠지 칼부터 날리더라니. 지금까지 살아있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회귀자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손 떨림을 멈추기 위해,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이래도, 생체 단말이 필요할까?”

‘이 남자가 군국의 어둠을 알고도 그들을 편든다면. 이르든 늦든 부딪히게 되겠지.’

회귀자는 지금 나를 가늠하고 있다. 여기서 섣불리 행동했다간, '적'으로 낙인이 찍혀 영겁토록 고통받을 것이다. 회귀자에게는 이번 회차가 끝이 아니니까.

지금 와서 교관이 아니라고 해봤자 안 믿어주겠지?

그렇다면.

목소리를 깐다. 반 톤 정도 높았던 유쾌한 목소리를, 변검이라도 하듯 한순간에 갈아 끼운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 의식을 초기화시켰다. 뚝, 하고 대화의 맥을 억지로 끊는다. 만일 대화가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그 죽음은 이것일 터. 이전까지와는 상관이 없다 주장하듯 침묵의 벽을 두어 간격을 벌렸다.

한 대화의 끝, 다음의 시작.

채비를 마친 뒤, 새로이 대화를 펼쳤다.

“처음에 생체 단말과 의복 패킷이 만들어졌을 때. 그런 용도는 상정하지 않았습니다.”

목소리는 한참 먼곳에서 바라보듯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온정을 담은 목소리로.

가능한 깊은 울림을 담아 옛이야기를 읊었다.

“의복 패킷을 처음으로 고안한 사람은 며느리를 둔 한 노파입니다. 작은 포목점을 꾸려나가던 한 노파는, 손재주 없는 며느리가 손이 부르트도록 바느질과 빨래하는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았습니다. 활달하고 밝았던 며느리의 얼굴에는 늘 수심이 깃들었죠. 하지만 아들을 도와 가업을 이어나가야 할 며느리에게는 재봉과 세탁은 반드시 짊어져야 할 업이었습니다. 노파는 며느리가 집안일에 익숙해질 방법을 궁리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죠. 그러는 와중, 노파는 한 귀족에게서 옷을 의뢰받습니다.”

가파른 비탈도 날카로운 바윗조각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부드러운 풍광을 꾸미는 하나의 섬세한 묘사일 뿐이다. 이야기만으로는 그동안에 흘렸던 눈물과 고통을 다 담을 수 없겠지.

하지만 감정 중 일부만 담더라도, 하나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감정을 움직일 수 없다.

“그 귀족은 노파가 만들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주문했습니다. 주문을 들은 노파는 대경실색했죠. 온갖 장식을 이어붙인 그것은 어찌 보아도 의복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노파는 귀족 앞에 부복하여 대답했습니다.”

저의 능력으로는 이 옷을 지을 수 없나이다.

지어라.

천과 실이 뒤엉켜 싸우는 개새끼처럼 이리저리 꼬여있으니, 이대로 지었다간 입고 벗을 수가 없나이다.

문제없다. 지어라.

천자락이 너무 많아 바늘을 잡을 줄 아는 아이 중 가장 작은 아이도 그 틈을 비집을 수 없으니, 옷이 해지고 찢어져도 고칠 수가 없나이다.

문제없다. 지어라.

무릇 태생이 다른 비단과 천이 한몸처럼 얼기설기 얽혀있으니, 더러워져도 물에 닿아서는 안 되며 붓에 묻힌 안수로도 닦아낼 수 없나이다.

문제없다. 지어라.

귀인께서는 어이하여 다시 입을 수 없고, 고칠 수 없고, 닦을 수 없는 옷을 바라시나이까?

하루, 단 하루만 쓰기 위함이다. 그날이 지나면 벗을 것이고, 찢을 것이고, 땅에 묻을 것이니. 네 걱정은 불필요하다.

그것은 옷이라 부를 수 없는 흉물입니다.

문제없다. 지어라.

소리꾼이라도 된 것처럼 문답을 홀로 이어간다. 타는 목을 침으로 축이고 말을 이어갔다.

“변덕스러운 귀족의 별난 주문이었죠. 세상 그 누구도 쉬이 수락하기 힘든 주문이었습니다. 기벽이라며 무시할 수도, 무리라며 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며느리를 위해 한참 궁리해왔던 노파에게는 기적과 같이 찾아온 영감이었죠.”

손재주가 없어 빨래와 바느질이 영 신통치 않은 며느리. 겉으로는 타박했지만, 소맷자락에 찍힌 피와 물방울을 보고는 남몰래 눈물을 삼켰던 노파는.

“옷을 하루만 쓰고 버리면, 빨래도 바느질도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천의무봉에 이른다.

“불가능했죠. 불가능할 터였습니다. 입을 때마다 옷을 새로 짓고, 벗는 대신 연금술로 해체한다니요. 말이나 됩니까? 그렇게 쉬웠을 리 없습니다. 매우 힘들었겠죠. 노파는 남은 수명을 전부 불태웠어야 했을 겁니다. 눈이 침침해져 은퇴를 고려할 나이에 다시 바늘을 잡았을 겁니다. 기예에 가까운 솜씨를 가지고 있으나 그 나이가 애석합니다. 힘이 없어 떨리는 손에 수십 개의 바늘 구멍이 났고, 젊었을 때와는 달리 쉬이 아물지 않았죠. 피가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나는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의도적으로 호흡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다시 내 몸에 난 구멍을 들어 보였다.

이 자그마한 구멍에 담긴 것을 알려주기 위해.

“생체 단말의 본질, 그것은 바늘에 찔려 난 상처입니다. 의복 패킷의 정체는 며느리를 위해 지어준 옷입니다. 단지, 군국은 이것을 조금 더… 마도공학적으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나쁜 것을 만들어낸 건 군국이다.

그러나 나쁜 것이 나쁘게 되기 전까지는.

훨씬 더 사소하고, 더욱 소중했던 마음이었다.

나는 회귀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면서 의복 패킷을 역소환했다. 누군가 전신에 난 실밥을 한꺼번에 잡아당기는 것처럼 섬유가 올올히 풀려나가 내 왼손으로 몰려들었다. 누에가 고치를 만들고, 거미가 먹잇감을 감싸듯. 가느다란 실은 반투명에서 불투명을 거쳐 자그마한 구슬로 돌아왔다.

몇 걸음 걸었을 때, 나는 다시 보급형 셔츠와 반바지의 차림으로 돌아와 있었다.

톡, 하고 생체 단말에서 교관복 패킷이 빠져나왔다. 나는 그것을 낚아채고는 회귀자의 책상 앞에 섰다.

“저는 군국을 대신할 수도 없고, 셰이 교육생도 모든 고통 받은 이들을 대변하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다만, 나 역시 거기 속해있기에, 나의 몫만큼 용서를 구하겠다.

그런 뜻을 가지고 회귀자의 손을 잡았다. 생체 단말을 찾기 위해.

회귀자는 말없이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업적을, 지옥불로 달구어 끌어올린 이들의 죄를.”

그렇게, 생체 단말이 있어야 할 곳에, 손가락을-.

어라, 매끈한데. 구멍은커녕 폴짝폴짝 뛰는 맥박만 느껴진다.

나는 의아해져서 물었다.

“뭐야. 생체 단말이 없잖아요?”

왜 없지? 이상하다. 분명 고문 당한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었는데.

내가 고개를 갸웃하려는 때, 회귀자가 당황해서는 손을 휙 잡아뺐다.

“아, 아니. 잠깐.”

‘내가 고문을 당했던 건 2회차, 뭣도 모르고 날뛸 때…. 지금은 애초에 시술을 받지 않았어.’

아, 맞다.

고문을 받은 건 이전 회차였지? 들리는 생각과 기억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잠깐 잊어버리고 말았다. 워낙 강렬한 기억이었어야 말이지.

상황을 파악한 나는, 말을 멈추고 떨떠름하게 회귀자를 보았다. 회귀자 역시도 이 분위기가 대단히 어색한지 어렵사리 나를 보고 있었다.

어라. 그러면 내 꼴이 우스워지는데.

멋대로 생각을 읽고 과하게 공감해서 분위기 잡은 거잖아. 나는 회귀자가 고문당했는지 알았다고. 아니, 고문당한 건 맞지. 저번 회차 때.

이번 회차는 오히려 깽판을 쳐대고 왔지만.

이야기가 갑자기 복잡해졌다. 회귀자는 회귀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거짓말을 했고, 나는 독심술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내용을 알아버렸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지? 만일 내가 독심술사라는 것을 들키면?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양팔을 휘저으며 소리 높여 외쳤다.

“거짓말쟁이! 고문당한 것처럼 말해놓고는! 나는 고문 당한 사람이 당신인 줄 알았잖아!”

도리어 화 내기!

회귀자에게 속았다는 티를 팍팍 내기 위해 나는 발을 크게 구르며 외쳤다.

“고문은 무슨! 생체 단말도 없구만! 엉? 여기에, 이 매끈한 손목에 어떻게 뭘 집어넣겠다는 거야!”

“이, 이건.”

“그렇게 허세를 부리고 싶었어? 아니면 고문당했다는 아픈 상처마저 빼앗아가려는 거야? 그걸 당신의 삶을 장식할 표창장으로 삼아서? 이 얼마나 파렴치한! 가난에 이어 고문과 고난까지 도둑맞다니!”

“기, 기다려! 나는 분명!”

“분명?”

내가 고개를 쳐들고 추궁하자, 회귀자는 억울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을 채 언어로 빚어내지 못했다.

‘아직… 내가 회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말 못 해!’

당연하겠지. 회귀자의 회귀란 가장 나중에까지 숨겨야 할 비밀일 테니.

그러면 어떻게 설명하려고? 내가 몰아넣은 지금 이 곤경을 어떻게 탈출할 생각이지?

해답은 은근히 간단했다.

쾅!

회귀자는 몸을 날려 도망쳤다. 탈출(물리)를 해버린 셈이다.

후. 내가 대항할 수 없는 수단으로 튈 줄이야. 한 방 먹었군.

[참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흡혈귀는 내 오늘 수업이 참 마음에 들었는지 흐뭇하게 다가왔다.

[칩거를 깨고 나들이 나온 보람이 있구나. 하나, 아직 이야기의 결말을 듣지 못했구나. 그리하여 그 노파는 어떻게 되었지?]

“아하하.”

[…왜 웃느냐?]

“아니요. 왜 노파라고 부르시는지 의아해서. 그분은 그래도 근대에 계셨던 분이에요. 지금까지 살아계셨어도 200살이 채 안 될 거예요. 티르칸쟈카 교육생보다 훨씬 어리죠. 그러니 노파라 부르지 말고 꼬마라고 불러주세요. 이야, 세상에. 그런 분을 꼬마 취급할 수 있다니….”

쾅!

흡혈귀는 건물 외벽을 부수고 나가버렸다. 도망친 거다.

후. 입만 털어서 여자 한 명과 시체 한 구를 도망치게 만들었다. 누군가 나를 보면 자랑스러워하겠구나.

그나저나 저 관은 재질이 나무인데 어떻게 콘크리트 벽을 부수고 멀쩡하담. 상식이 어긋나는 기분이다.

“이거 기물파손인데…. 에이, 몰라. 될 대로 되라지.”

내가 군국 예산부도 아니고, 알아서 하겠지. 적당히 잘 곳만 있으면 된다.

“자, 이제….”

교실 뒤쪽에서 꾸벅꾸벅 조는 아지를 향해 다가갔다. 발걸음이 가까워지자, 아지의 꼬리가 먼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 귀가 쫑긋 서고, 아지가 고개를 들더니, 내 접근을 알아차리고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입가에 침이 흐른 걸 보니 오늘도 개팔자 상팔자를 실현한 모양이다. 내 손에 침을 비벼 닦으려는 아지를 피하며 말했다.

“아지야. 수업은 잘 들었니?”

“멍!”

“오늘은 내가 무슨 수업을 했는지 말할 수 있니?”

“멍!”

“아예 기대도 하지 말라는 거구나?”

“응!”

“…이럴 때만 사람 말하는 거 좀 화나네.”

“화나?”

“그래! 화난다, 이 똥개야! 들을 생각은 좀 해!”

“똥개?! 왈! 왈!”

에휴. 이 똥개를 진짜 어쩌지.

엄청 온순하고 인간을 잘 따르지만, 회귀자의 미래에서 본 바에 따르면 이 녀석도 인간을 잡아 찢는 흉수로 변해버린다.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그건 막아야 하는 미래. 아지에게도 상식을 좀 넣어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했는데.

“내가 미쳤지.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격언을 만든 사람도, 진짜 개를 데려다 놓으면 비유도 모르냐며 타박할 텐데.”

내가 머리를 긁적이는 때, 아지가 상체를 쭉 뻗고는 맹렬하게 짖었다.

“멍! 멍멍! 멍!”

아지의 시선은 내 왼쪽 손목을 향해 있었다.

혹시? 수업을 듣고 이것이 뭔지 알아차렸단 말인가?

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왼쪽 손목을 아지에게 보였다.

“왜. 혹시 기억이라도 나니? 그래. 봐봐. 이게 바로 생체 단말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여기에 의복 패킷을 꽂으면.”

“앙!”

“끄아아아아아아악!!”

날카롭고 딱딱한 송곳니가 내 몸에 난 구멍을 파고드는 감각과 함께.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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