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 마법은 장난이 아니야
그렇게 외친 회귀자가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회귀자의 팔이 팔꿈치에서 잘려나갔다.
아니, 잘린 게 아니다. 다시 보니 회귀자는 공간을 찢고는 그 균열에 손을 박아넣고 있었다. 팔꿈치 위쪽은 보이는데 그 아래쪽이 어디로인가 사라졌다. 마치 창문 밖으로 팔을 내민 것처럼.
차이점이 있다면,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라는 점.
개인용 아공간, 포켓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물을 회귀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회귀자는 공간의 균열을 한번 휘적여 동그랗고 단단한 것을 꺼냈다.
“그래! 어디 얼마나 잘 가르치는지 보자!”
팅, 하고 꺼낸 물건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받으려고 무심코 손을 뻗었다, 묵직한 무게감에 손이 뒤로 확 젖혀졌다. 몸 전체가 딸려나갈 정도의 충격이었다.
인대가 살짝 늘어난 것 같다. 간신히 그것을 잡아낸 나는 회귀자를 흘겨보며 손 안에 잡힌 물건을 보았고.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세상에. 금화다. 그것도 연금가치 1만 알케가 넘는 고순도 연금화야. 이걸 어떻게?”
연금술사들이 물질을 마음껏 바꾸어내던 시대. 화폐뿐만 아니라 물건의 가치마저도 급변했고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조차 믿지 못하게 되었다. 금조차도 제 가치를 지키지 못했으니, 금고 속 재산이 언제 고철더미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에 불안감이 넘실거릴 때였다.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이 연금화.
연금에 필요한 리소스 자체를 화폐로 빚어낸,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화폐였다.
그걸 적선하듯 건넨 회귀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개인 자산이야.”
“개인 자산은 체포되는 순간 전부 압류되었을 텐데요?”
“내 아공간 아이템, 포켓에 들어있던 거니까. 그들이 알아차리지 못했지.”
회귀자가 짧게 일축했다.
포켓이라니. 별별 보물을 다 모으는 회귀자답게 주머니도 뭐에 비할 수 없는 보물이잖아.
나는 연금화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가짜는 아니겠지….”
“포켓도 갖고 있는데 급 떨어지게 가짜 금화를 가지고 다니겠어?”
그건 그러네. 포켓이라면 연금화 백 장을 주더라도 살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니까. 나도 딱히 의심한 건 아니었다. 그저 감탄사의 일부였지.
애초에 연금화는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고 있어 복제하기 가장 어려운 화폐.
연금술이 보편화 된 이후, 지상의 모든 국가는 연금술로 만들어진 위조화폐를 막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썼다.
당연하게도 가장 쉬운 방법은 화폐 자체가 가치를 지니게 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 연금화. 연금화를 이루는 물질 자체가 연금술 재료로 대단한 가치를 지녔다.
연금화는 세상 어디에서나 통용되며, 마법진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연금술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이 화폐를 분해하여 마도구도 만들 수 있다.
현금화와 현물화가 동시에 가능한 최고의 화폐, 연금화.
연금가격 1만 알케라면… 군국에게 빼앗긴 내 마술 도구까지 다시 만들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답은?”
나는 금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 금화에 대해 잊었다.
원래 금화는 주머니 속에 들어간 순간 이전 은원은 전부 사라지는 법. 그게 뒷골목의 법칙. 괜히 금분세수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지.
“어허! 자랑스러운 군국의 교관이 뇌물에 넘어가리라 생각했습니까? 오산입니다! 부정청탁 법에 의거, 이 돈은 압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뜨린 회귀자는, 허공에서 금화 두 개를 더 꺼내며 흔들었다.
“티르칸쟈카에게 제대로 알려주면 금화 두 개를 더 주지.”
“그와 별개로, 사실 저는 오늘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마법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왠지 마법 같은 날이었거든요. 오늘은 마법에 대해 배워보도록 하죠.”
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었다. 나는 즉시 교탁 앞으로 서서 수업을 할 준비를 끝마쳤다.
그동안 회귀자는 흡혈귀에게 자꾸만 무언가를 납득시키려고 들었다.
“…티르칸쟈카, 다시 말하는 데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거라니까. 저거 봐. 중등학교 나와봤자 금화 하나면 뜻대로 움직이는걸….”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나는 내 주머니 안에 금화만 들어오면 돼. 자존심은 잠시 접어두고, 얼굴에 철판을 깐 채 수업을 시작했다.
“마법이란, 기본적으로 세계에 규칙을 덧씌우는 행위입니다…. 라고 말해봤자 이해할 수 없겠죠?”
어차피 흡혈귀가 원하는 건 호기심 충족이다. 기초부터 시작되는 지루한 배움의 길이 아닌 것이다. 이론은 집어치우자.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겁니다. 하지만 뭐 말은 쉽지 그게 시킨다고 되나요?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 진학하는 중등학교에서는 신체를 매개로 한 마법을 가르칩니다. 신체는 내부와 외부가 완전히 분리된 일종의 세계라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손가락을 들어올리고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핏줄을 타고 움직이는 마력이 느껴진다. 오른손으로 왼팔을 한 번 쓸어올리고, 손바닥을 탄주하듯 톡톡 두들겼다.
“숙련된 조교의 시범이 있겠습니다. 자. 보세요. 세트, 리, 체크.”
적절한 동작과 주문, 그리고 마력의 배치만 한다면 뭣도 모르면서 마법을 구현할 수 있는, 군국이 만들어낸 합리주의의 산물.
0 레벨 마도.
“볼트.”
검지에서 전류가 번쩍였다. 나는 허공에 스파크를 일으킨 뒤 팔에 문질러 방전시켰다.
“피렌하이트.”
중지에서 불꽃이 일었다. 불꽃은 형태를 갖추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서 손가락을 흔들어 꺼야 했다.
“아쿠스.”
약지가 얼어붙었다. 물기를 모으는 마법인데 자칫하다간 손가락이 얼어붙는 게 단점이다. 다른쪽 손으로 감싸서 녹였다.
“파스칼.”
새끼손가락에서 팡 하고 공기가 터졌다.
후, 인생업적 중등학교 전교 1등(독심술 사용) 실력은 어디 안 가네. 나는 양팔을 벌리며 자랑스럽게 외쳤다.
“이 정도. 신체를 매개로, 손가락을 통해 발사하는 마법입니다. 심상을 구축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저기,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있다만?]
흡혈귀가 내 손가락을 가리키며 외쳤다. 나는 마법을 일으킨 내 손가락을 돌아보았다.
전기를 썼던 내 검지는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고.
불꽃을 쐈던 내 중지는 검게 그을렸고,
얼음이 맺혔던 내 약지는 퉁퉁 부풀어 올랐고,
바람을 일으켰던 내 소지는 붉게 물들어 쭈글쭈글해졌다.
아, 쓰읍. 다시 생각해보니 아프네. 네 가지 고통이 동시에 느껴져서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아픈 티를 냈다간 가오가 떨어지니, 나는 허세를 부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는 말했다.
“제가 말했죠? 마법은 세계에다가 규칙을 덧씌우는 행위라고요.”
[그래.]
“저는 제 신체를 매개로 규칙을 덧씌웠습니다. 검지에는 정전기가 더 강하게 일어난다는 규칙을, 중지에는 불꽃이 훨씬 낮은 온도에서 타오른다는 규칙을, 약지에는 물이 잘 들러붙는다는 규칙을, 소지에는 바람이 평소보다 더 거세게 움직인다는 규칙을.”
현상 그 자체를 국소적인 범위에서만 일으키는 기초 마법. 이게 0레벨 마도.
손가락을 펼쳐 그 흔적을 내보였다.
“그 결과가 이것이죠.”
흡혈귀는 큰 호기심을 보였다.
[확실히, 신기하구나. 헌데 손가락은 반드시 다쳐야 하는 것이냐?]
“신체를 매개로 써서 어쩔 수 없어요. 규칙이 달라지는 곳은 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하필 제 몸이 그 경계선이었으니까. 대가도 제가 받을 수밖에 없죠.”
나는 쓰라린 손가락을 몸 뒤로 숨기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신체 매개 마법은 이렇기에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몸 말고 다른 매개를 찾죠. 지팡이나 완드 같은 물건을 쓰는 사람도 있고, 사역마를 쓰는 사람도 있고. 경지에 이르면 세상 그 자체를 주무른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거기까지는 못 봤네요. 실력이 뛰어날수록 더욱 넓은 범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신비하고 위력적인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해요.”
내가 그렇게 설명을 끝마쳤을 때였다.
“딱 중등학교 수준의 교육이네.”
이제는 회귀자가 치고 들어오는 것도 슬슬 익숙해졌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야 중등학교 수준의 교육이니까요.”
“그래. 유용하지도 않고, 쓸모도 없어. 심지어 약하기까지 하지.”
“기초니까요. 수학으로 따지면 구구단 수준이잖아요.”
“그래. 확실히 기초는 잘 다졌어. 0레벨 마법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울 정도의 속도와 완성도야. 하지만 내 생각에 신체 매개 마법밖에 쓰지 못하는 너는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데?”
한껏 으스대며 흘리는 비웃음에는 유치한 우월감이 드러나 있었다.
아니, 설마. 회귀자면서 지금 나한테 경쟁심을 느끼는 거야? 어처구니가 없네. 너는 똑같은 인생을 열세 번 반복한 프로잖아. 나는 내 인생이란 무대의 아마추어라고. 나와 경쟁하고 싶으면 공평하게 1회차 상태로 찾아와.
“저는 마법이 전공이 아니니까요.”
“흐흥. 나 역시 마법은 전공이 아니지만, 전술 급 마도까지는 쓸 수 있다구?”
“아. 그래요.”
“너는 현상 급 마도가 끝. 헤헹. 이게 재능 차이려나?”
솔직히 안 부끄럽나? 몇 번 죽어가며 어거지로 배운 마법을 꼭 자기 재능인 것처럼 말해?
양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그걸 온전히 홀로 이룩했다면, 재능 차이겠죠.”
차가운 눈으로 회귀자를 보며, 말에 뼈를 담아 한마디 했다. 그러자 회귀자는 움찔하고는 마음속으로 변명했다.
‘…회귀를 거치며 목숨을 대가로 배운 거지만. 그래도 회귀도 능력이니까. 이 정도 잘난 척한다고 잘못될 건 없겠지! 맞아, 그래! 회귀도 능력, 스펙이야!’
다행히 아직 양심은 있는지 자기 변명은 하는구나. 진짜 양심이 없는 사람은 변명도 안 한다. 그런 의미에서 회귀자는 아직 부끄러움은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회귀자도 딱 그 정도에서 끝내고는 흡혈귀에게로 몸을 돌렸다.
“티르칸쟈카. 마법은 내가 가르쳐줄게. 저깟 녀석보다는 내가 마법은 더 잘할 거야.”
그러자 흡혈귀는 조심스럽게 반응했다. 마치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참으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 초등학교만 나왔다고 하지 않았더냐?]
“나올 필요가 없어서 안 나왔던 거라니깐!”
[아, 그래. 그렇지. 괜찮다, 얘야.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단다.]
흡혈귀 딴에는 배려한다고 한 말이다. 다만 배려심이 너무 깊은 나머지, 배려 받는 대상도 그것을 알아차렸을 뿐. 회귀자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지금…. 흡혈귀를 꼬박꼬박 노인네 취급하던 저 남자의 심정이 격하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어…!’
말했잖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노인이라니까. 흡혈귀는 나를 흘긋거리며 말을 끌었다.
[굳이 가야 하느냐? 여기서 보여주면….]
“마법은 비장의 수단이자, 내가 밑바닥부터 쌓아 올린 세상이야. 내 힘이면서 동시에 약점이기도 해. 남에게 함부로 보여줄 수는 없어.”
[저 녀석은 보여주지 않았느냐.]
“저딴 거랑 비교하지 마! 저건 군국 제식 마법. 일정한 조건만 만족하면 누구나 쓸 수 있는 보편적인 거야! 나의 마법은 이 세상에서 나만 쓸 수 있는 고유 마법이니까!”
[아, 음. 알겠다. 알겠어. 가자꾸나.]
회귀자가 쿵쿵거리며 방을 나섰고, 새카만 관이 둥실둥실 떠서 그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도 자꾸 미련이 남아 나를 흘긋 보았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마법이… 더 대단한 것 아닌가? 음. 잘 모르겠구나. 모르는 것 투성이야.’
나이를 허투루 드시지는 않았네. 현명하셔라.
‘그렇더라도, 이미 죽은 나는… 저 마법조차 쓰지 못하겠지만.’
…뭐, 둘이서 열심히 해보시기를 바란다. 회귀자는 마법 가르칠 생각에 신나겠지만, 실망하는 것도 자유지. 나야 할 일 줄었으니 좋지….
어? 잠깐만. 뭔가 깜빡한 게 있는데.
아, 맞다. 내 돈! 내 연금화 두 장!
나는 급히 그들의 뒤를 따라나서며 소리쳤다.
“셰이 교육생! 제 돈은 주고 가셔야죠!”
그러나 돌아온 건 귀찮다는 투의 대답 뿐이었다.
“티르칸쟈카는 나한테 배울 건데 왜 너한테 돈을 줘야 해?”
“연금화 두 장 주겠다고 했잖아요! 약속을 어길 거예요?”
“약속?”
회귀자는 몸을 빙글 돌리고는, 나를 보고 피식 웃었다.
“내가 조언 하나 해줄게. 누구와 약속했든, 얼마를 받기로 했든…, 자기 주머니 속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네 돈이 아니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딴 게 어딨어요! 주겠다고 했으면 줘야지!”
“선금으로 만족하라구. 그것도 큰돈이니까… 너한테는 말이지.”
회귀자는 한 점 미소를 남기고는 경쾌한 걸음으로 걸어갔다.
지금 읽히는 저 생각을 가장 단순한 단어로 표현하면 ‘메롱’ 정도일까. 잔뜩 약이 오른 나는 씩씩거리며 다시 교육실 안으로 들어왔다.
“감히 나를 속이다니!”
내가 사기를 쳤으면 쳤지 당해본 적 없는 사람인데. 심지어 저거, 중반까지는 그냥 주겠다고 마음 먹은 상태였다! 그러다 내 강의 듣고는 마음을 바꿔먹었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종이 저렇게 변덕스러운 것들이다. 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때그때 머리에서 주사위를 굴리는 이들. 1초 전 생각이랑 지금 생각이랑 다르니 알 수가 있어야지! 폭풍우 치는 밤바다의 파도도 저것보다는 읽기 쉬울 거다.
“젠장. 내가 저 말을 듣는 입장이 되다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두 배로 화가 난다. 내가 교육실 문을 거세게 닫아버렸을 때였다.
“멍.”
불만스럽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렸다. 저 뒤쪽에 배를 깔고 앉은 아지가, 여전히 토라진 채 꼬리를 흔들고 있다.
슬슬 심심하니 관심 좀 달라는 표시다. 생각을 못 읽어도 개 마음이야 뻔하지.
짜증이 치밀어서 손을 내저었다.
“뭐. 어쩌라고.”
“멍.”
“오늘은 끝이야. 너도 네 방으로 돌아가.”
“멍.”
“왜? 너만 기분 나쁘냐? 나도 기분 나쁘거든. 지금 손가락도 아파서 놀아줄 기분 아니야. 알아서….”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있을 때, 아지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느릿하게 나를 향해 다가왔다. 여전히 무언가 불만스러운 티를 팍팍 내면서도 결국 다가온다.
지조도 없는 짐승 같으니. 자기는 잘못은 없지만 화해는 하고 싶다 이거지? 내가 받아줄 줄 알고.
“손가락 안 보여? 다쳤다니까?”
서로 다른 색으로 물든 네 손가락을 보여주며 윽박질렀다. 아지는 뭔가 새초롬한 눈으로 가만히 내 손가락을 보고는, 얼굴을 들이대며 손가락을 핥기 시작했다.
“뭐야? 다쳤다고 핥는 거냐?”
아지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할짝거렸다. 미끈한 혀가 손가락을 핥아 올린다. 따뜻하고 몰캉한 촉감이 손가락을 마사지한다. 나는 콱 얼굴을 찌푸리려다, 그 다정한 몸짓을 보고는 인상을 풀었다.
“너….”
짐승은 상처가 나면 핥는다. 감염을 막기 위해, 간지러움이 느껴져서, 혹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기에.
하지만 관념의 존재인 짐승의 왕에 이르러서 핥는다는 행위 자체가 구체적인 치유력을 가진다. 모든 상처에 유효한 건 아니지만 효력은 포션을 바르는 것보다 뛰어나다고 전해진다.
“치료해주는 거구나.”
“멍.”
작게 대답한 아지는 남은 손가락도 꼼꼼하게 핥았다. 본질이 개일지언정 겉모습은 인간이라 그런가, 작고 도톰한 혀가 구석구석 파고 든다.
사람들이 화를 불에 비유하고는 하는데, 근거 없이 한 건 아닌 모양이다. 손가락이 젖으면서 고통도, 화가 가라앉았으니까.
에휴. 그래. 화를 내서 뭐해.
“그래. 사람보다는 개가 낫지.”
손을 뺐다. 질척한 침이 길게 늘어진다. 침으로 번들거리는 손가락은, 어느덧 다 나아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상태였다.
인간의 가장 큰 적은 인간이며, 개는 언제나 아군이었지.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래! 밤에 몰래 밥 좀 먹으면 어떠냐! 배고프면 먹을 수도 있지. 먹으라고 만든 음식인데 말이야! 안 그래?”
“멍.”
“좋아. 기분이다! 오늘은 고기 통조림이나 뜯자!”
“고기?”
아지의 눈이 반짝였다. 방금까지 토라진 상태였다는 게 거짓말인 것처럼 들썩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오늘 점심은 고기다!”
“멍! 나, 고기 좋아!”
“가자, 식당으로!”
“아우우우우!”
신이 나서 먼저 달려나가는 아지의 뒤를 따라갔다.
나간 돈은 잊자. 연금화 하나를 효율적으로 분해하면 카드 한 벌은 만들 수 있다. 운이 좋다면 한 장에 인챈트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뭐, 어차피 회귀자는 실패할 테니까. 그때 이자까지 쳐서 받지 뭐.
식당으로 향한 나는 경쾌하게 고기 통조림을 뜯고는 온갖 솜씨를 부려 요리했다. 그리고.
“이 똥개가! 고기만 건져 먹지 마!”
“깨갱?! 아우우우우!”
결정했다. 개밥은 앞으로 콩으로 고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