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21화 (21/384)

EP.21 진실은 언제나 하나

내 등이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니면 콘크리트 바닥이 내 등으로 떨어졌던지. 사실 별 차이는 없다. 더럽게 아프다는 사실은 똑같으니까.

펑! 하고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혹여나 누군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인간 가죽으로 만든 북소리는 어떨까 궁금해한다면 지금 내 등에서 난 소리를 들으면 된다. 내 등이 바로 인간 가죽 북이었다.

비명이 나오지 않은 건 허파에 있는 공기가 한순간에 다 빠져나와 소리를 만들 호흡이 없어서. 나는 침묵으로 고통을 다스리며 가만히 있었다.

나를 내던진 회귀자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스스로 뛰어서 충격을 줄였어.’

너희들은 이걸 충격을 줄였다고 하니? 미쳤구나. 우리끼리 이런 공격 했으면 말이야.

‘와, 존나 개쩔게 들어갔다! 나 유도에 재능이 좀 있는 듯?’

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잘못 떨어졌다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이었다. 스스로 뛰기는. 뭔가 낌새를 읽은 순간 너무 놀라 튀어올랐고, 그대로 메쳐졌을 뿐이다.

‘내 천반경은 반격에 특화된 기공. 몸에 새긴 동작이라면, 생각하기도 전 찰나의 딜레이도 없이 발동해. 그것을 보고 같이 뛴 걸 보면 반응은 좋아. 그런데….’

신체에 녹아든 반격기라니. 이런 건 반칙이잖아. 완벽한 사각을 노리고 들어갔는데, 건드린 순간 그림처럼 완벽한 업어치기 자세가 나왔다. 교본에 나올 법한 이상적인 동작이라 도리어 어디가 잘못 접히지는 않았지만, 등을 때리는 충격이 너무 강력해서 움직이기가 힘들다. 수천 개의 작은 바늘이 등을 파고든 것 같다.

‘반응이 좋은 것 치고는, 손맛이… 별로인데?’

이래서 인간을 쥐어패면서 살아온 이들과는 상종을 하면 안 된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어떻게 손맛이야? 내가 횟감이라도 되나. 기분 더럽게.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발 치워요. 사람을 업어치기 했으면 됐지, 밟으려고까지 합니까.”

“아.”

회귀자는 내 쇄골을 밟고 있던 발을 치웠다. 나는 누운 채로 셔츠에 묻은 신발 자국을 툭툭 털어냈다.

“네 탓이야. 거기서 내 몸에 함부로 손을 대면 어떻게 해?”

“참나. 몸도 귀하셔. 어깨 좀 붙잡는다고 다 업어치면 일상생활은 어떻게 합니까?”

“뭣도 모르는 사람이 나의 어깨를 탁탁 잡아대는 세상이라면 일상 따위는 필요없지.”

“우리가 남입니까? 서운하게.”

“…그럼 남이지. 아니면 뭔데?”

“교육생과 교관이죠. 선생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했거늘, 업어 메친 다음 그냥 몸뚱아리를 밟네요. 와. 서러워서 살겠나.”

충격이 다 해소되지 않아 일어나지도 못하겠다. 나는 계속 누워있는 채로 한탄했다.

‘무방비하게 다가온 게 잘못이라고 하기에…. 여기가 전쟁터는 아니긴 하지. 확실히, 선공을 한 건 내쪽이야.’

아주 조금이지만, 회귀자는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회귀자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가 뭐든. 나를 방해한 이상 그만한 각오는 했어야지.”

이게 미안해하는 사람의 말이냐?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거 봐. 미치겠다. 내가 독심술사가 아니었다면 복장이 터졌을 것이다.

사실 독심술사인데도 복장이 터질 것 같다.

“이게 원통함인가요? 이게 억울함인가요? 칼로 벽을 부수고 골렘을 베어내려고 하는 시점에서 누군가 제지할 거라는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은 모양이죠?”

회귀자를 상대로 할 때 필요한 건 첫째도 정론, 둘째도 정론이다. 회귀자는 정론에 꽤 약한 경향이 있다. 도덕이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이치에 맞는 말을 하면 일단 수용하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도 교관이었지. 군국의 눈이나 마찬가지야. 나는 이 남자를 가만히 두고 골렘을 처리하려고 했네….’

알아들었다면 다행이다. 후우. 말이 안 통하는 건 아니라서 다행.

‘그냥 이 기회에 이 남자도 처리해버릴까? 왠지,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취소다. 같은 인간이라고 딱히 서로 말이 통하는 건 아닌가 보다.

이럴 때는 화제를 돌려야지. 머리 맡에 있던 소형 마도 골렘을 향해 말을 걸었다.

“이봐, 에이비 대위.”

『에이비 대위입니다. 현 상황 파악했습니다. 귀하의 행동에 감사를.』

“아니, 됐으니까 지금은 닥치고 있어. 부서지기 싫으면.”

골렘이 입을 열면 내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으니. 나는 일부러 약간 윽박지르듯 골렘의 말을 끊었다. 다행스럽게도 에이비 대위는 눈치가 빨랐다. 이 무저갱에서 자신을 도울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나는 누운 채로 골렘을 들어올렸다. 금속으로 된 몸체를 가진 골렘은 작은 인형 정도의 크기였지만 인형답지 않게 묵직했다. 얇은 금속 팔과 다리가 허공에서 대롱대롱 흔들린다.

“셰이 교육생.”

목소리를 깔았다. 회귀자가 살짝 이채를 느낄 때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말했다.

“셰이 교육생은 벽을 잘라내고 골렘을 망가뜨렸을뿐더러 저에게 폭력을 휘둘렀죠?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데?”

“좋아요. 뭐 벽은 이미 망가졌고, 골렘도 대부분 부서졌고. 제 몸이야 원래 굴리려고 있는 거니까 그렇다고 칩시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니 골렘에 대한 감정도 일단 내려놔요.”

“뭐….”

‘어차피 교관이 있는 이상, 골렘이 있든 없든 별 차이 없겠지. 둘 다 군국의 개나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남겨두는 쪽이 더 나을 수도 있고.’

짧은 시간 동안 판단을 끝난 회귀자는 검을 회수했다.

“저게 나를 감시하지만 않으면 돼.”

“하라고 해도 안 해요. 아까 보셨잖아요. 식당에 숨어있던 거. 셰이 교육생을 감시할 생각이었다면, 식당에 몸을 숨기지는 않았겠죠. 남들 다 부족한 보급물자로 끼니를 때울 때 혼자 사식 까먹는 부르주아는 식당에 나타나지를 않으니.”

“으음.”

“알았으면 이만 가세요.”

“여기서 뭐하려고?”

“골렘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보급 요청이나 해야죠. 누가 밤 중에 음식을 훔쳐먹어서 슬슬 통조림이 바닥을 보이고 있던 때였으니까요.”

“그래….”

‘저 남자와 싸우지 않겠다고 결정한 시점에서 어느 정도의 정보 유출은 피할 수 없어. 일단 두고 보자. 오히려 역으로 저 남자에 대한 정보를 캐낼 기회일 수도.’

고개를 끄덕인 회귀자는 골렘을 향해 한 번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고는 몸을 돌렸다.

“혹 피를 보급해줄 수 있는지 물어봐. 티르칸쟈카가 오랜만에 움직여서 그런지 피가 조금 부족한가 봐.”

“확인해보고 연락드리죠.”

그딴 걸 누가 보급해.

“나는 이만 방으로 돌아갈게.”

“살펴 가세요.”

회귀자는 가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어두컴컴한 식당에는 이제 오직 나와 골렘만 남게 되었….

잠깐.

“셰이 교육생. 돌아간다면서요?”

흠칫. 벽 너머에서 당황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회귀자가 변명하듯 말했다.

“그, 금방 돌아가려고 했어. 잠깐 뭐 좀 하느라.”

어딜 엿들으려고. 나는 문쪽을 빤히 노려보았다. 회귀자는 큼직한 발소리를 내며 멀어졌다. 나는 길게 신음하고는, 다시 골렘을 들어올렸다.

“에이비 대위. 오랜만이야.”

『귀하의 생존을 확인합니다. 용케 살아계셨….』

“잠깐만.”

골렘의 입을 막은 나는,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아이고, 목이야. 바닥을 친 건 등인데 왜 목이 결리냐. 스트레칭이라도 하듯 목을 이리저리 흔들다가 허공 어느 부분을 노려보며 말했다.

“뭐 먹을 게 있다고 다시 오셨습니까? 방에 간다고 했으면 빨리 돌아가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새카만 어둠. 그곳에서 작은 일렁임이 일었다. 은신술을 쓰고 있던 회귀자는 당황했는지 숨도 멈추고는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를… 눈치챘어? 어둠 속에서는 일렁거림조차 보이지 않는 이 암흑의 장막을 꿰뚫어보았다고? 아, 아니야. 설마. 저번에는 눈치채지 못했잖아.’

“장난하지 마시고요. 너무 속보이잖습니까. 누가 복도를 그렇게 소리나게 걸어요. 나 간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윽. 내가 너무 속 보이게 행동했나? 하지만 저 남자도 근거는 없을 거야. 그냥 찔러보는 거겠지. 여기서는 일단 모른 척….’

“아! 가라고!”

나는 탁자 위에 있던 냄비를 냅다 던졌다. 회귀자는 냄비에 맞기 직전 급히 몸을 숙였다. 빗나간 냄비가 깡깡 소리를 내며 식당 바닥을 두둘겼다. 격렬한 움직임 때문에 은신술이 잠깐 풀렸고, 회귀자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회귀자는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으, 으으.”

“셰이 교육생. 당신은 분명 마도 골렘보고 자기를 훔쳐보았다며 뭐라 하지 않았습니까? 똑같은 상황이네요. 은신술까지 써가며 남의 말을 엿듣는 건 악취미입니다.”

“아, 알아. 그냥….”

“알았어요.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죠. 누구나 실수할 수도 있고 궁금할 수도 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테니 그냥 돌아가십시오.”

“으, 응….”

‘제길, 제길, 제길! 처음부터 너무 속 보이게 행동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까 느껴진 손맛 때문에 상대방을 너무 무시했어!’

회귀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뛰쳐나갔다. 도리어 화를 내어 나를 죽이려들지 않을까 했는데, 완벽주의 때문인지 자기 실수에는 자책감이 큰 편이었다. 회귀자는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며 복도를 내달렸다.

가만히 보고 있던 골렘이 말을 꺼냈다.

『귀하에게도 능력이 있었군요.』

“내가 어떻게 벌어먹고 살았는지 대충 알잖아? 심리전이지, 뭐.”

『나름 잘 생존하고 계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뭐? 다행?”

『다음 보급품 목록에 노역자를 추가할 예정이었는데, 지금 보니 그럴 필요 없다고 판단됩니다. 인적자원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아. 비용적인 측면에서 말이냐.”

회귀자도 회귀자지만 군국도 참 정 붙이기 힘든 놈들만 모았다. 내가 죽을 거라고 반쯤 확신하고 내려보낸 거잖아.

“여기 있으면서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 알지? 그럼 설명할 필요 없겠네.”

『부정. 본관은 교육생 ‘셰이’를 피해 본 개체를 숨겨놓고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있던 일 외에는 관찰하지 못했습니다.』

“아하. 그래?”

좋은 정보다. 나만 알고 있는 정보가 있다는 뜻이니. 이걸 조건으로 더 뜯어낼 수 있겠다.

『귀하가 특이사항을 보고해주신다면, 본관은 귀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겠습니다.』

심지어 이해도 빠르기까지. 자기 처지와 나의 의도를 읽고는 알아서 교환조건을 제시한다. 일처리가 빠른 점은 마음에 들어.

『특이사항이나 요구사항이 있으십니까?』

“하나 있어. 내가….”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다른 방법이 남아있어.’

아, 잠깐만. 또 이상한 생각이 들리는데

설마. 같은 짓을 두 번 당하면 바보고, 세 번 당하면 역사다. 회귀자는 기어코 역사에 이름을 한 줄 남길 생각인가.

회귀자는 1층에 있는 수감실을 멋대로 개조해서 살고 있다. 방에 돌아가서 이쪽에 관심을 끄고 있다면 생각이 읽히지 않아야 하는데.

지금 이 생각이 들리는 이유는.

‘7회차 때였나. 귀 좋은 수인들로부터 멀리 듣기 기술을 배웠지. 그때는 사방의 소음에 파묻혀서 쓸데없는 기술이라 여기고 폐기했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쓸만하겠어. 사방이 고요하니 잡음이 섞여 들어오지 않을 거야. 자, 어디….’

“잠깐만.”

나는 아까 던진 냄비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찬장을 뒤져 다른 냄비도 하나 꺼냈다. 좋아, 깨진 부분 없고, 재질도 좋고.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며 둘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비록 수인의 귀는 듣고 있지 않지만, 바로 아래층에서 천장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으면…. 충분히 분간할 수 있.’

회귀자의 생각이 들린 순간 냄비를 힘껏 부딪쳤다.

깡!

‘!!!!!!!’

둥그런 구조의 강철은 그 자체로 훌륭한 울림통이다. 심지어 냄비에 쓰이는 건 물 한 방울 새어나가지 않도록 치밀하게 단조되고 코팅까지 끝마친 연금 철. 이것들을 전력을 다해 부딪히자, 탄탈로스 전역에 들릴 법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소리는 복도를 내달리고 건물을 울렸다. 종소리와 비견될 정도로 장엄한 울림. 무저갱 속에서 메아리가 길게 들린다. 나는 은은한 메아리가 멎을 때까지 기다렸다.

‘아, 아으. 아.’

소리없는 아우성이 아래층에서 들려왔다. 나는 쪼그려 앉아서 콘크리트를 향해 말했다.

“셰이 교육생.”

‘아아, 설마.’

“무슨 소음인지 물어보러 오지도 않네요. 혹시 엿듣고 있는 건 아니죠? 그렇게 믿겠습니다.”

‘….’

우냐? 아니, 설마. 그럴 리 없겠지. 울고 싶은 마음이랑 우는 거랑은 별개니까. 눈물이 없는 사람도 마음속으로는 흐느끼곤 한다. 서글픔과 부끄러움에 울고 싶을 정도로 격한 감정을 느끼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아깝네. 우는 걸 직접 봤다면 진짜 세계가 끝날 때까지 놀려줄 수 있는데.

어쨌든.

“이제 방해꾼도 없으니까”

『그가 엿듣고 있었습니까?』

“아마 그랬을걸.”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냈습니까?』

“심리전이라니까. 저런 사람은 극한의 이득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보상심리가 강해서, 한 번 당해도 이번에는 아니겠지 하면서 끝까지 따라오는 타입이야. 무언가를 얻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고.”

거짓말이다. 생각을 읽었다. 하지만 뒤늦게 갖다붙인 이유라도, 정답이라면 옳은 설명이 되는 법.

“그리고 뭐, 실패해서 잃을 게 없잖아. 리스크는 0에 수렴하고 이득은 충분하지.”

『이해했습니다. 앞으로 더 엿들을 가능성은?』

“솔직히 말할까? 지금부터는 엿들어도 손해야. 포기도 제때 해야지. 도대체 얼마나 더 추해져야 해?”

‘…………….’

회귀자의 생각이 끊겼다. 아, 괜찮냐, 이거. 거의 기절 수준의 끊어짐인데.

너무했나 싶지만, 아직 내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하면 이 정도야. 원래 정신적인 고통 같은 건 육체의 고통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

어쨌든 성공적으로 회귀자를 떨쳐낸 나는 남은 용건을 다 말하기로 했다.

“이 골렘, 인간의 모습을 본땄네. 감각을 공유하는 타입이지? 네 몸과 싱크로하여 조종하는.”

『긍정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골렘의 몸체를 톡톡 두들겼다. 골렘이 반응하자, 나는 손가락을 똑바로 세워 넓적한 골렘의 몸체에다가 글씨를 썼다. 골렘의 배와 가슴에서 내 손가락이 일필휘지로 움직였다.

-중요한 내용은 글씨로 쓸 테니까 알아들어. 대답은 고개만 끄덕이고.

골렘의 몸체가 잠시 움찔하더니, 이내 머리가 작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아무리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조심해서 나쁠 거야 없지.

이럴 거면 왜 냄비를 부딪쳤냐 싶지만, 회귀자가 고통스러워하는 꼴을 보았으니 만족한다.

“계속 식당에 있었다고 했지?”

나는 평범한 대화를 이어나가는 척, 골렘의 몸체에 대고 글씨를 썼다.

-이곳에서 나는 교관 행세를 하고 있어. 살아남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지.

골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시에 입에 달린 마이크로 대답했다.

『긍정합니다.』

“그렇다면 나와 아지가 같이 식사하는 모습은 다 보았겠네.”

-그러니까 너도 내가 교관인 척 대해줘.

이번에 골렘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눈을 부라리자, 골렘은 또박또박 말했다.

『다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아까 언급했던 대로, 본 개체는 극도의 위협 속에 있었기에 활동하는 낮 동안에는 간헐적으로 작동을 정지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경고합니다. 사칭 및 허위보고는 중죄입니다.』

말 끄트머리에 덧붙이는 방식으로 대답하는 건가.

하긴 교관 사칭은 군국이라면 결코 허용하지 않을 범죄이긴 하지. 이 상황이 되어서도 딱딱하구나. 군국 통신병.

“그러면 밤 중에는 계속 작동하고 있었겠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너를 비호할 이유가 없어지는데. 그럴 권리도 없어지고. 네가 나를 돕지 않으면 나는 너를 데리고 다닐 수 없어.

골렘이 잠깐 작동을 멈추었다. 아마도 이곳을 감시한다는 임무와, 교관 사칭이라는 범죄에 협력해야 한다는 점이 충돌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골렘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층 더 기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긍정하겠습니다.』

좋아. 이걸로 일단 일단락 되었고, 이제 군국 당국과 탄탈로스를 잇는 창구 역할을 하며 내 이득을 챙기면 된다.

업어치기 당한 보람이 있네. 더럽게 아프지만 얻는 건 있었어.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약간 고민하던 골렘은, 조금은 주저하듯 말했다.

『본 개체는 감각 공유를 하고 있기에. 접촉할 때 주의하기를 요구합니다.』

무슨 말이지? 생각을 읽을 수가 없어서 무슨 말뜻인지 알 수가 없다. 혹시 중요한 이야기인가? 어조가 조금 흔들렸던 거 같은데.

나는 다시 골렘을 들고는, 손가락을 꼿꼿이 세워 배와 가슴에다가 글자를 써나갔다.

-알았어. 아주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만 글씨로 쓰면 되는 거지?

『읏. 전혀 이해를….』

어라. 이상한 반응인데. 골렘이 고장이라도 났는지 묘하게 부들부들 떨고, 딱히 말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말한다.

그때 골렘이 내 손을 떨쳐냈다. 인형 크기의 소형 골렘이라지만 군국 마도 골렘. 강철로 만들어진 팔다리는 내 손 정도는 밀어낼 수 있었다.

『…됐습니다.』

뭐야? 무슨 반응이지? 알 수가 없네.

골렘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게 이토록 아쉬울지는 몰랐다. 이게 사람을 대하면 생각을 다 읽고 우위에 설 수가 있는데, 하필 원격조종 골렘이라 알아낼 방도가 없다. 심지어 표정도 없어서 어조만으로 짐작해야하고.

평범한 일반인은 다 이러고 사는 거야? 생각보다 불편하네. 팔다리 하나 떼어놓고 사는 것 같잖아.

…어, 잠깐만.

밤에 계속 작동하고 있었다고 했지?

그러면 누가 음식을 몰래 훔쳐먹었는지도 알겠네?

딱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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