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22화 (22/384)

EP.22 착한 개

잠이란 무엇일까. 도대체 왜 생명은 이토록 무방비하게, 외부의 자극을 차단한 상태에서 스스로를 향해 침잠하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가.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허나 잠이 인간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는, 그림자를 보고 형체를 짐작하듯 잠의 부재를 더듬어서 대략적이나마 유추할 수 있다.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심사가 꼬이고 날카로운 바늘처럼 예민해지며, 쉬이 피곤해지고 의식이 위태롭게 점멸한다. 성자라고 불리는 사람도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는 오만상을 찌푸리니, 분명 잠이란 정신적인 무언가를 채우는 행위이리라.

다만, 우리가 정신을 온전히 알 수 없기에. 잠의 역할 역시 이해할 수 없으리.

그저 무의식 속에서 유영하며, 무언가가 나를 깨우기를 기다릴 뿐….

그때 무언가가 나의 다리를 잡아챘다. 나는 순식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있어도 상관없다. 몸이 땅에서 떨어지는 아찔한 감각은, 잠은 물론이거와 모든 종류의 아늑함으로부터 나를 박탈한다. 대지모신께서 나를 저버렸다는 끔찍한 기분이 내 영혼을 몰아세운다.

대지모신의 저주란 별다른 게 아니다. 그저 대지모께서 받치기를 거부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심연으로 떨어지는 법이다.

“죄송해요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나는 떨어지면서 필사적으로 빌었다. 그리고.

콰당!

찰나. 1초조차도 절반을 채우지 못하는 시간이 지나고, 나는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충격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황급히 일어섰다.

“허억. 허억. 허억.”

경계자세를 취하며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떨어진 곳은 낮은 군용 침대로부터 50cm 밑. 잠을 자던 중 무언가가 내 발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나는 침대에서 떨어지며 잠에서 깨버린 것이었다.

무엇이 나를 잡아당겼는지 알아채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멍.”

아지는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짧게 짖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저번에 음식 훔쳐먹은 일 때문에 다툰 뒤로, 아직 나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기색이 역력하다.

다만 그 와중에도 잠은 깨워준 걸 보니, 내가 아주 싫어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니구나. 이상한 말을 했다.

개는 태생부터 사람을 싫어하지 않으니까.

“아지야.”

“멍.”

아지는 고개만 돌려 나를 보았다. 내가 부르면 전신이 이쪽으로 열렸던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시선만 보내고 있다.

하지만 뭐, 개는 뭘 해도 개지.

“식당으로 와.”

꼬리가 움직인다. 귀가 쫑긋 선다. 생각을 읽을 수는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비언어적 표현을 이렇게 확실하게 해내는 존재가 또 있지는 않을 테니.

“멍? 밥?”

“그래. 오늘 아주 중요한 요리가 있으니까.”

“멍! 밥!”

밥이라는 말에 바로 기분이 좋아져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뛴다. 하하. 그렇게 좋아할 필요 없을 텐데.

오늘은 바로 너를 요리할 날이니까.

“나 씻고 갈 테니까 먼저 가서 기다려.”

“너, 너무 자주 씻어! 멍! 털 다 빠져!”

“나 아직 탈모 아니거든?! 네가 너무 안 씻는 거겠지! 됐고, 빨리 가서 아래층에서 걔도 데리고 와! 너랑 나 말고, 걔!”

“아래? 멍! 알았어!”

아지는 근처에 있는 창문을 깨부수고는 아래쪽으로 뛰어내렸다. 아니, 아래층으로 가라고 꼭 최단경로를 선택할 필요는.

어쨌건 아지는 내 말을 알아듣고 회귀자를 부르러 갔다.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았냐고? 아지에게 있어 사람을 부르는 호칭은 나, 너, 걔로 세 개뿐이다. 참고로 '걔'라는 슬롯에는 두 명 이상 넣을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3인칭인 셈이다.

이 탄탈로스에 살아있는 인간이 둘이라서 다행이다. 한 명만 더 있어 봐. 엄청나게 헷갈렸겠지.

“자. 어디. 준비해볼까?”

나는 휘파람을 불며 배급된 물로 간단히 씻었다. 오늘, 지긋지긋하게도 나를 괴롭혔던 탄탈로스 스튜도둑 강아지와 끝장을 보고야 말 것이다.

의복 패킷을 착용하고 식당으로 향하니, 아지는 벌써 회귀자를 데려온 채였다. 둘은 완전히 대척되는 모습이었다. 밥 먹을 생각에 신이 난 아지와는 다르게 회귀자는 퀭한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곧 울컥하고는 소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왜 불러서….’

회귀자는 어젯밤의 치욕이 떠올렸다. 엿들으려고 했다 완벽하게 들키고, 부끄러움에 반쯤 정신을 놓고 자기 방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조금이지만 운 것 같기도 하다.

눈물을 흘리면서 엉엉 울었다는 건 아니고, 서러움과 자기혐오로 범벅이 되어 마음속으로 운 것 같다. 나에게 은신을 들킨 일이 그렇게 충격이었나 보다.

죽어도 회귀하니까 좀 대충대충 산다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보다 훨씬 예민하고 완벽주의인 모양이었다.

‘제길, 제길. 제길! 첫 시도가 너무 속보였잖아! 거기서 들키니까 상대가 경계하지! 셰이, 너는 언제쯤 그렇게 이득 보려는 생각을 버릴래? 한 번 한 번 최선을 다하란 말이야!’

아니, 그만 자책해. 어젯밤 내내 그 생각만 한 거야? 잠도 안 자고?

‘상대를 너무 무시했던 것도 문제야. 저번에 내 은신술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저 남자의 능력을 그 정도로 단정해버렸어. 방심했을 때 한 번 안 들켰다고 다음에도 안 들키리라는 보장은 없는데…!’

미치겠네. 나를 죽이려 들 때도 곤란했지만, 자기 자신을 죽이려 들 것처럼 구니 더욱 곤란했다. 거기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 들지도 않았다.

아이구. 별 헛짓거리를 다 한다. 분위기나 풀어줄까.

“셰이 교육생, 어젯밤에 잘 못 주무셨나요? 눈가가 퀭하네요.”

회귀자는 무어라 웅얼거릴 뿐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자기에게 말 걸지 말라는 의사표시 같았지만, 어림도 없지.

독심술.

‘치, 잇. 자기가 못 자게 해놓고 능청은….’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어차피 나밖에 못 들을 테니 오해할 리 없는 게 다행이다.

어지간히 분했나 보구나, 회귀자.

“어디까지 들으셨나요?”

“…뭐, 뭐가.”

“어제 내쳤는데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되돌아와서 제가 부메랑이라도 던지는 줄 알았잖아요. 다음부터는 그러지 좀 말아주세요.”

“끄윽…!”

평소라면 화를 내거나 검을 치켜들었을 회귀자는 현재 낮아진 자존감으로 인해 방어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리고 세계에는 묘한 보존법칙이 있어서 회귀자의 자존감이 낮아진 만큼 내 존재가치가 높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너무 재미있네.

“멍! 밥!”

조금 더 놀려줄까 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아지가 나를 보채고 있으니까.

“자, 아지야. 할 말이 있으니 잠깐 기다려 봐.”

“싫어! 멍! 밥 먹으면서 해!”

“이게 진짜.”

너는 어디서 자존감 안 낮아져 오니? 개는 풀 죽을 일이 없어?

“험험. 어쨌든. 제가 오늘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오랫동안 탄탈로스를 혼란에 빠뜨려온 식량도둑에 대한 단서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멍!”

아지는 별 관심도 없다는 듯 밥을 보챘다. 이 가증스러운 녀석. 증거를 눈앞에 들이밀어도 그대로인가 보자.

나는 식당 한구석으로 걸어가, 거기에 놓아두었던 인형 크기의 골렘을 꺼내 들었다. 작동은 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이곳저곳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그에 호응하듯 골렘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접속해있구나. 나는 골렘을 들어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그 증인으로, 오늘은 군국 통신병이자 식당에서 죽치고 앉아있던 골렘 에이비 대위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에이비 대위! 인사하세요!”

『….』

“네에, 반갑습니다!”

골렘을 보고도 회귀자와 아지의 태도는 별 달라진 바가 없었다. 회귀자야 어제 그냥 두겠다 결론을 내린 뒤로 신경 끄고 있는 중이었고, 아지는 인간이 아닌 것에는 그렇게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래서야 소개가 안 되겠구만. 소싯적에 꼬마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해주었던 솜씨 좀 발휘해볼까.

나는 골렘의 겨드랑이를 잡고는 인형극처럼 뒤뚱뒤뚱 움직였다. 아지가 그 움직임에 관심을 보이는 사이, 입술을 꾹 다물고 복화술을 써서 말을 걸었다.

“안녕, 아지야?”

“멍?”

아지가 고개를 갸웃하며 골렘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목소리는 이쪽에서 나는데 골렘이 손을 흔들고 있으니 뭔가 싶겠지.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는 골렘의 팔다리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복화술로 말했다.

“만나서 반가워! 나는 에이비라고 해!”

“멍멍? 인간?”

“그래! 나는 인간이야. 지금은 이 속에 갇혔지만! 너는 강아지지?”

“멍! 맞아! 나, 강아지야!”

“너 참 착하게 생겼다!”

“고마워! 너는 참 딱딱해 보여!”

“우리 친하게 지내자! 나를 한 번 핥아줄래?”

“알았어!”

『…그만하십시오.』

아지가 코를 들이대자, 골렘이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내 손을 툭 쳐낸 골렘은 두 발로 서서 아지의 얼굴을 피했다.

골렘의 스피커에서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군국에서는 감시자가 교육생과 직접 마주하는 상황을 가급적 삼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특수 조항 2항에 의거, 현 사태에 기해 보안 레벨 2 이하의 규정을 무시합니다.』

골렘은 그렇게 선언한 다음 두 다리로 똑바로 일어섰다. 생각보다 잘 만들었는지, 아니면 골렘에 익숙한 건지. 인간 사이즈와는 상이한 소형 모델인데도 싱크로를 이어나가고 있다.

『군국 통신병 에이비 대위입니다. 본관은 탄탈로스와 군국 당국 간의 통신을 맡고 있으며, 본 개체를 파괴할 시 의사소통 및 귀 교육생의 평가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합니다.』

독심술이 없더라도, 그것이 누구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지는 명백했다. 여기서 골렘에게 악의를 갖고 파괴할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으니.

회귀자는 탁자 위에 선 골렘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불이익 같은 건 상관없어. 저 남자와 한 말이 있으니, 네가 식당에서 기어 나와 이곳저곳을 들쑤시지만 않는다면 딱히 건드리지 않을게.”

『탄탈로스의 감시와 감독, 관찰은 본관의 의무입니다.』

“그래? 나는 감시와 도청을 일삼는 기기는 부수지 않고 못 견뎌서 말이야.”

『가끔 그러한 종류의 질환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을 향한 시선에 극도로 민감한 부류가. 군병원에서는 그러한 질환을 가진 이들을 무상으로 치료하고 있으니, 방문하여 치료받기를 권장합니다.』

“…어쭈.”

『하지만 현 상황에서 귀 교육생이 군병원에 방문할 수는 없겠죠. 귀 교육생의 의사는 확인했습니다. 보안레벨 2 이하의 규정을 무시, 본 개체의 안전을 위해 관찰 임무는 잠시 유보하겠습니다.』

둘은 잠시 서로를 노려보다가, 회귀자가 먼저 코웃음을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볼일 다 봤으면 나는 간다.”

어? 바로? 나는 떠나는 회귀자를 붙잡았다.

“아, 잠깐만요! 이번 일의 참관인이 되어주셔야죠!”

“관심 없어. 너나 저 골렘 잘 간수해. 만일 저 골렘이 식당 밖으로 혼자 나왔다간, 나도 모르게 부숴버릴 수 있으니까.”

회귀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식당을 나갔다. 기운이 없는 상황에서도 군국을 향한 증오는 여전한 듯 싶었다.

그동안 말뜻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아지는 맑은 눈으로 나에게 물었다.

“멍. 얘, 뭐래?”

얘는 골렘을 말하는 거겠지. 아지는 골렘이 하는 딱딱한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니.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자기를 때리지 말래. 깨물지도 말래. 아프대.”

“멍! 나, 안 물어! 나는 착한 강아지인걸!”

“그래, 그래. 나도 알지. 너는 착해.”

“아우우! 나, 착해! 착해!”

아지의 머리를 쓰다듬던 나는, 그 머리를 꾹 잡고는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젯밤, 냄비 속에 있던 그 고기 스튜를 다 처먹은 나쁜 강아지는 어떤 강아지일까?”

“머,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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