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 나쁜 개
어제 회귀자를 향해 냄비를 내던졌을 때, 분명 스튜로 가득했어야 할 그 냄비의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누군가 냄비 안에 든 스튜를 다 먹어버렸던 것이다.
유력한 용의자는 둘. 아지거나, 아니면 식당에 숨어있는 어떤 존재거나.
그런데 식당에 숨어있던 존재는 골렘이었고, 골렘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용의자 한 명이 사라졌으니, 범인이 누군지는 이제 명약관화라 할 수 있다.
나의 추궁을 받은 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소리쳤다. 어떠냐. 화들짝 놀랐지?
“밥, 다 먹었어?! 너 혼자서?!”
“네가 먹었잖아!”
“아니야! 멍! 나, 안 먹어! 배고프지만 기다려! 같이 먹어!”
내 매서운 추궁에도 불구하고 아지는 끝까지 부정했다. 범인이 확실해진 지금 상황에서도 한사코 결백을 주장하는 모습에 내 냉철한 이성마저 흔들릴 정도였다.
진짜 아닌가? 아니면 개라서 불리한 사실을 그냥 잊어버리고 고집을 피우는 건가? 독심술이 안 통하니 진짜로 모르겠다. 사람이었다면 진실인지 거짓말인지 바로 파악했을 텐데.
하지만 나 말고 다른 비독심술사들은 진실을 몰라도 아득바득 살아간다. 누군가 거짓말을 할 때 증거니 증인이니 찾아서 나름대로 정확한 결론을 내린다. 오늘만은 그들의 방법을 따르자.
“어쨌건 확인해보면 알겠지. 에이비 대위! 어젯밤, 식당에서 계속 있었습니까?”
『긍정. 본관은 어제 4시경부터 본 개체에 접속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제 냄비에 담긴 스튜를 훔쳐먹은 사람도 보았습니까?”
『긍정.』
“좋아요. 확인 들어갑니다. 짠, 짜라잔.”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골렘의 겨드랑이를 잡아들었다. 왠지 골렘의 마이크에서 하아,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온 것 같다.
뒤쪽에서 골렘을 소중히 든 나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말했다.
“에이비 대위. 자, 여기서 골라주세요. 어젯밤, 어둠 속에서 쥐새끼처럼 기어나와 냄비에 담긴 스튜를 몰래 먹은 범인을!”
자, 과연. 골렘의 손가락은 누구를 가리킬까. 뭐, 가리킬 방향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약 하나 정도?
골렘은 천천히 손가락을 들었다. 나는 그 차가운 강철이 보여줄 미래를 기대하며 바라보았고.
골렘의 손은 내 쪽을 가리켰다.
어라?
“나였어?!”
세상에. 추리물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반전이! 진짜 나라고? 내 무의식이 저지른 짓이라고?
『부정. 귀하를 가리킨 게 아닙니다.』
골렘이 고개를 젓고는 손가락을 다시 들었다. 지금 보니, 골렘의 손가락은 나를 살짝 비껴가 있었다. 내가 고개를 살짝 비틀어 피해도 따라오지 않았다.
뭔가 싶어서 수맥을 찾듯 골렘의 손가락을 따라 조금씩 걸어갔다. 그때마다 골렘이 가리키는 방향이 미세하게 바뀐다. 그때그때 방향을 수정하며 더듬더듬 찾아가자, 이윽고 그 끝에서 촘촘하게 구멍이 뚫린 철 마개와 그 너머에 있는 배수구가 나타났다. 남은 음식 짬처리를 할 때 물을 흘려보내는 배수구였다.
사람이 들어가기는 좀 좁아보이는데. 설마 하는 심정으로 골렘을 내려다보았다.
“…이 안에. 음식을 훔쳐먹은 존재가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쥐새끼라도 안에 있는 겁니까?”
『우문입니다. 탄탈로스에는 그 어떤 땅밑짐승이나 벌레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 이곳은 곰팡이도 없지. 빌어먹을….”
대지모신의 저주를 받아 대지모의 일꾼들이 침범하지 못하는 땅. 그 탓에 당연히 음식을 훔쳐먹은 것이 아지라고 확신했다. 무저갱 속에서 살아있는 존재는 나나 아지, 그리고 회귀자 정도밖에 없었으니까. 그중에서도 가장 욕망에 약하고 멍청한 개라면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1순위로 의심했을 것이다.
더불어 나는 생각을 읽으니, 회귀자가 먹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았고. 소거법, 경험적 추정법 등 모든 단서가 아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제 3자가 범인이라니. 너무나도 의외인 결과였다.
생각해보니 저번에도 식당에서 희미하게 생각이 들려왔잖아? 그때는 무심코 넘겼으나 단서는 이미 주어진 셈이었다. 탄탈로스에 다른 어떤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데.
어쨌든, 과거는 과거. 이제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할지 판단하는 것이다. 벌집을 들쑤시고 싶지는 않지만, 이왕 처리할 거라면 아지가 있는 지금 손 쓰는 편이 낫다. 이게 괴물이라면 나 혼자의 힘으로는 무리일 테니.
위험이 앞에 있을 때 개는 인간의 오랜 친구였지.
“아지야.”
“멍!”
“이 아래에 너와 내 음식을 훔쳐먹은 녀석이 있대.”
“멍멍! 나빴어!”
“나빴지? 그러니까 꺼내서 혼내주자. 좀 꺼내줄래?”
내가 직접 꺼내 보기에는 무서우니 아지를 시켜야겠다. 개는 인간의 가장 훌륭한 친구니까.
아지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바로 배수구를 파헤치는 대신 못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너, 더 나빴어! 나, 안 먹었는데! 착하게 기다렸는데, 내가 먹었다고 화냈어!”
아. 그걸 기억하고 있네. 까먹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는 모양이구나. 아무래도 개는 금붕어보다는 나은 기억력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아지는 개의 왕. 말로 설득할 수 있는 존재. 개 따위, 내 언변으로 구워삶아 주지.
“아지야. 지금 그게 중요하니? 우리에게는 공공의 적이 있잖아. 우리 음식을 훔쳐먹은 진짜 도둑 말이야.”
“멍! 나, 안 먹었어!”
“그래. 의심해서 미안해. 일단.”
“멍! 나, 안 먹었어!”
“그래그래. 미안하다니까.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멍멍! 안 먹었어! 그런데 먹었다고 소리쳤어! 화냈어! 안 친해!”
“그게, 아지야.”
“나빴어! 멍! 나빠!”
“….”
후우. 어쩔 수 없나.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다. 대가를 치러야겠지.
나는 방으로 돌아가 오랜만에 가죽 공을 꺼냈다. 가죽 공은 며칠 관리 안했다고 벌써 바람이 다 빠져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후. 길게 한숨을 내쉬며 왼팔을 곧게 들어올렸다. 오른쪽 손가락으로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리드미컬하게 톡톡 건드렸다. 약속된 소매틱을 이행하자 비루한 몸이 마력을 짜내 왼팔로 밀려 올려보냈다.
“설마 내가 먼저 공놀이를 제안하는 날이 올 줄이야. 인간의 수치다. 하지만 기억해라, 똥개. 내가 패배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게 아니야.”
마력이 모여든다. 내 몸 전체에 퍼져있던 마력이 핏줄을 타고 왼손 손가락으로 향했다. 뭐든지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이 손끝에서 느껴진다. 동시에 이 전능감의 한계가 보인다. 고작 손가락 하나 정도만 채울 수 있는, 이 조막만한 마력을 다 쓰면 전능감 역시 끝난다는 아쉬움도 절절하게 느껴진다.
나는 왜 마력이 이리 적을까. 투덜거리며 손가락을 공 안에 집어넣고는 0레벨 제식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공기를 터뜨리는 현상, 그 자체를 불러일으키는 0레벨 마도.
“파스칼.”
펑 소리와 함께, 가죽이 팽팽하게 잡아 당겨지며 공이 큼직하게 부풀어 올랐다. 작은 조각을 안쪽에, 큰 조각을 바깥쪽에 기워 만든 공은 단숨에 부풀어오르면 틈으로 공기가 빠지지 않는다. 손가락을 빼내고 구멍을 연금술로 봉하고는 다시 들고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언제보다도 눈을 반짝이는 아지가, 책상 위에 앞발을 올려놓고는 꼬리를 맹렬히 돌리고 있었다. 가죽 공을 보고는 신이 난 것이다.
나는 가죽 공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공놀이면 되니?”
“멍멍! 맛있는 밥도!”
“그래. 맛있게 해줄게.”
“아우우우우! 좋아! 좋아! 너, 착해! 이제 착해!”
“자, 그러면 안에 든 걸 꺼내주라.”
고개를 끄덕인 아지는 곧장 배수구로 달려가더니 개가 앞발로 땅을 파헤치듯 콱콱 집어넣었다. 몇 번 바닥을 긁은 아지는 엉덩이를 쭉 빼고 배수구 안에 머리를 반쯤 처박은 끝에 기어코 무언가를 잡아챘다.
팔꿈치 아래에서 끊어진 팔 하나.
다리 하나.
이번에는 커다란 손.
그리고 아지가 낑낑거리며 마지막으로 꺼낸 건, 팔과 다리가 하나씩만 달린 커다란 몸통이었다.
골렘보다도 단단해보이는 근육질 육체에 짧은 수염과 머리카락. 고명한 무예승처럼 보이나, 팔과 다리가 하나씩 떨어져나간 그것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단면에서 선명한 근육이 돋보인다.
“우웩.”
구역질이 나온다. 저건 인간이 아니라 ㅇㅣㄴㄱㅏㄴ 이잖아.
단면은 깔끔하다. 비틀어진 흔적만 봐서는 커다란 거인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손발을 잡아 꺾은 듯한데, 피도 안 배어 나오고 뼈도 멀쩡하게 붙어있어서 잘 만든 인체모형인가 싶기도 하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처참한 모습인데 구릿빛 피부에는 핏자국 하나 없어서 진짜로 죽은 건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하지만 생각이 한톨도 들려오지 않는 걸 보니 죽은 건 확실한 것 같고.
누가 공격해서 전신을 아작 내버린 다음 배수구에 던져넣었나 보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며칠은 버텼지만,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쓸쓸히 죽어간 게 아닐까.
“아이고. 어쩌다 이런 곳에서 명을 달리하셨을까….”
내가 그때 들었던 생각이 마지막 단말마였던 모양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이 조각 난 시체를 묻어줄 생각으로 잘린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대지모신의 저주를 받은 땅이지만, 그래도 묻히는 편이 낫겠지….
내가 오른팔을 잡자, 오른팔도 마주 나를 잡았다.
어.
라?
“끄아아아악!”
너무 놀라서 오른팔을 내던지려고 했다. 그러나 나를 붙잡은 오른손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담겨 있어서 내 손과 함께 흔들릴 뿐 떨어지지가 않았다.
미친, 잘린 팔로도 이 정도의 힘이라니? 멀쩡한 상태였다면 악력만으로도 내 팔을 우그러뜨렸겠는데.
이럴 때가 아니다. 나는 다른쪽 손바닥을 뒤집어 숨겨두었던 카드를 꺼냈다. 다이아몬드 1, 연금술로 금속을 촘촘하게 짜내어 튼튼하고 탄력적인 트럼프.
그 얇은 카드를, 나를 붙잡은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는다. 살짝 비트는 것으로 손가락이 미끄러져 떨어진다. 그렇게 소지부터 중지까지 하나씩 떨쳐낸 이후, 나는 간신히 오른팔을 떼어내어 던질 수 있었다.
“허, 허억. 허억. 저게 뭐야?”
바닥에 떨어진 오른팔은 손가락만으로 바닥을 기어오려고 하다가, 결국 힘이 다했는지 멈춰 섰다. 호러를 넘어선 고어 앞에서 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이미 알고 있었는지, 무심하게 오른팔을 쳐다보는 골렘을 향해 물었다.
“에이비 대위. 저건 뭡니까?”
『끊어져도 움직이는 오른팔. 아마 불사종족의 것이라 추측됩니다.』
“저것도 교육생이었던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탈옥사건이 벌어졌을 때 다른 교육생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는데, 불사성으로 인해 죽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 정도 상처에서도 소생할 수 있다니, 평가를 한 단계 높여야겠군요.』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말해줘야지! 놀랐잖아요!”
아지는 호기심을 가지고 오른팔을 톡톡 건드려보고 있다. 오른팔이 꿈틀거릴 때마다 화들짝 뒤로 물러갔다가, 다시 잠잠해지면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나는 아지를 밀어내고는 오른팔을 조심히 들고 시체의 팔꿈치 아래쪽에가 갖다 대보았다.
단면이 딱 맞아 들었지만 붙지는 않았다. 오른팔은 완전히 별개의 존재인 것처럼 떨어져서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세상에. 스스로 움직이는 오른팔이라니.
“그러니까 저 오른팔이 스튜를 먹었다는 거죠?”
『긍정. 가사상태에 빠진 육신을 치유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식량을 찾아나선 것입니다.』
“뭐야. 그게. 무서워.”
이제는 잘린 손이 스스로 움직인대. 진짜 탄탈로스에는 별별 괴물들이 다 있구나.
골렘이 나를 보고는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요?”
『불사종족 말입니다.』
“저거를요? 저걸 뭐 어떻게 합니까?”
내 신경질적인 반문에, 골렘은 고개를 돌려 나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기질적인, 아니, 무기질 그 자체인 수정구에서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본관은 귀하에게, 불사종족이 소생하기 전에 제거하는 것이 어떤지 제안합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