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 행복한 개
『불사종족은 그 자체로 커다란 위협입니다. 죽지 않는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섞여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총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을 피하지 않으며, 폭력에 대해 둔감합니다. 날붙이에 손가락이 잘려도 웃어넘기며 다시 붙이는 그들입니다. 자신이 칼에 찔려도 상관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다른 이들이 왜 칼을 무서워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섞여들어간 마을이나 도시에는 늘 혼란이 뒤따랐기에 군 당국은 결국 불사종족이 군국 내부에서 거주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골렘은 꿈틀거리는 오른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더불어 불사종족의 피를 가장 진하게 이어받은 이 존재는, 외부의 힘과 완벽하게 격리된 무저갱에서도 죽지 않는군요. 예상 이상입니다. 그들은 매우 강인하고 위험한 종족입니다. 귀하가 감당하기는 버거울 것이라 사료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죽이면 더 귀찮을 일이 없을 거라는 말이죠?"
『귀하의 입장에서도, 이 이상 교육생이 하나 더 늘어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도 그러하다. 회귀자한테 접힐 뻔한 것도 있고, 흡혈귀에게 찢길 뻔한 적도 있다. 아지에 이르러서는 나를 공격하지 않지만 차분하게 내 어깨의 수명을 갉아먹는 중이다.
여기에 한 명이 더해진다? 확실히, 부담이 더욱 늘겠지.
골렘의 제안에 혹한 나는 넌지시 물었다.
“제거는 어떻게 하는 건데요?”
『현 시점에서 방법은 기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이 탄탈로스에서 확실하게 그를 추방할 수 있다는 것만은 약속드립니다. 그는 결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그걸 누가 하고요?”
『귀하가 해야겠죠.』
아, 그러니까. 내가. 저 몸뚱아리를 들어서 직접 '제거' 해야한다고.
난 또 뭐라고.
나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안 합니다.”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후회고 뭐고,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제거한다니 그 무슨 잔인한 발상입니까? 하면 안 되죠.”
당연하다. 사람이 왜 살인을 저지르면 안 되는 줄 아나? 그건 보복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 상대가 법이든, 아니면 피해자의 가족이든, 그것도 아니면 잘린 오른팔이든. 보복당하면 어쩌려고? 책임져 줄 거냐?
불사종족이라며. 안 죽는다며. 이미 팔다리가 잘렸는데도 움직이잖아. 혹시 그 제거라는 거 하다가 어찌저찌 부활해가지고 나한테 보복하러 오면 어떻게 하냐. 아니, 굳이 부활할 필요도 없이, 잘린 팔다리 중 하나만 복수하려고 찾아와도 이길 자신이 없다.
나는 강한 사람보다 스스로 움직이는 오른팔이 더 무섭다.
“그냥 밥이나 먹이고 소생시킵시다. 괜히 제거니 추방이니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의외입니다. 귀하가 그토록 도덕적인 사람이었을 줄은.』
“댁은 나를 뭐라 생각하는 겁니까.”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도덕적이다. 그야, 세상 그 누구보다도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가진 사람은 조심하는 법이며, 타인을 조심한다는 게 바로 예의와 도덕을 지키는 것.
이것이 그 뒷골목에서 내가 살아온 방식이며, 나를 살려준 원칙이기도 하다.
“보급은 오는 거 맞죠? 지금 입이 하나 늘었는데 보급까지 오지 않으면 좀 곤란한데.”
『대기 중인 보급품이 있습니다. 탈옥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기착지에서 멈추었습니다만, 탄탈로스가 정상화되었다고 고지하면 운송이 재개될 겁니다.』
“좋습니다! 바로 재개해주시죠! 언제 오는 겁니까?”
『3시간 이내 도착합니다.』
“빠르잖아!”
『불만이라도?』
“당연히 불만 하나도 없이 좋다는 뜻이지! 그런데 그게 가능은 합니까?”
『군국의 행정력은 세계 제일입니다. 전달되는 과정 중에 있던 보급품을 다시 보내는 것 따위 문제조차 되지 않습니다.』
골렘의 생각은 읽을 수 없지만, 왠지 지금 골렘을 조종하는 본체는 으스대고 있을 것 같았다. 자기가 잘난 것도 아니면서 뭘 콧대를 세우나 싶지만, 그렇다고 보급을 끊어버리면 나만 곤란하니 가만히 있자.
“보급 물자는 얼마나 되는데요?”
『탄탈로스의 보급계획 기준으로 3일 치 식량이 보급될 예정이었습니다.』
“미쳤냐? 그걸 누구 코에 붙.”
『다만, 이 보급계획은 탈옥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세워진 것이니. 인원수가 급감한 지금 단순 수량으로만 따지면 90일 치 정도 될 겁니다.』
“내 코에 붙이면 되겠네요! 와! 군국의 행정력은 정말 대단해!”
그렇다면 이제부터 식량을 아낄 필요가 없다. 90일치 식량이라면 콩 통조림으로 메주를 쑤어도 남는다.
아, 여기는 무저갱이라 메주는 안 되나. 어쨌든 양만 충분하다면 할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가 무한대로 늘어나는 법.
좋아. 오랜만에 물질적인 풍요를 느끼겠구나. 나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아지야! 지지다! 그거 건들지 마!”
“멍?”
오른팔에 붙은 뼈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던 아지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내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고 흔들자, 아지는 곧장 나에게로 달려와서 내 손 위에 턱을 얹었다. 나는 아지의 턱을 간질이며 말했다.
“그딴 싸구려 고기 말고 맛있는 걸 먹자. 보급도 곧 오겠다, 약속한 맛있는 밥을 만들어 줄게!”
“멍!”
아지가 기쁘게 짖었다. 나는 아지의 턱과 머리를 연달아 간지럽히며 생각에 잠겼다.
어떤 요리를 만들어볼까. 스튜는 이제 질렸으니, 한 번 데친 다음 팬에 볶아서 과자처럼 먹을까? 아니면 고기를 다진 뒤 전분과 삶은 콩을 같이 갈아서 구워볼까. 영양면에서는 비효율적이지만 콩을 간 뒤 체에 걸러 콩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좋을지도.
내가 음식으로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사치를 머리로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무언가 내 발뒤꿈치를 툭 건드렸다. 나는 뭔가 하고 고개를 돌렸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른팔이었다.
오른팔이 손가락만으로 기어 와서 결국 나에게까지 도달한 것이다.
“군식구가 하나 늘었구만.”
찬장에서 통조림 하나를 꺼내 딴 뒤 그대로 뒤집어 오른팔 손바닥에 통째로 쥐어주었다. 벽돌과도 같은 강도를 자랑하는 딱딱한 압축 콩이었으나 오른팔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체에게로 향했다. 열심히 본체까지 걸어간 오른팔은 먹이를 물어오는 어미새처럼 벌어진 입에다가 콩을 털어 넣었다.
“오른팔이 참… 유능하네.”
본체가 가사상태여도 열심히 일하는 팔이 있어야 불사종족인 걸까, 아니면 불사종족이라 저런 걸까.
어쨌건 확실히, 사지를 찢지 않은 건 잘한 선택이다. 저 오른팔이 왼팔 양다리랑 편먹어서 복수하러 오면 이길 자신이 없다. 시체나 다름없는 몸이 통조림 한 캔을 다 처먹은 건 대단히 아니꼽지만.
좀 그로테스크하기는 해도 당분간 골렘과 ㅇㅣㄴㄱㅏㄴ은 식당에 둬야겠다.
“멍! 멍!”
“그새를 못 참고 보채네. 알았어. 할게.”
압축 통조림 속에 든 콩과 고기를 꺼낸다. 군국 특제 압축 통조림의 성능은 여전해서, 수분 하나 없이 바위와 같은 딱딱함을 자랑한다. 과거에 벽돌과 비견되고는 했던 육포조차도 비견되지 못할 것이다. 이걸 물도 없이 먹으려면 한세월 걸리겠지.
압축 고기에서 기름 많은 부분을 잘라내고 팬 위에 올려놓았다. 불을 붙이니 기름이 녹아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나머지 고기는 콩과 같이 물에 불린다. 이번에는 스튜를 할 것이 아니라서 물의 양을 반 정도만 잠기게 적당히 조절했다.
바싹 마른 압축 콩과 고기가 물을 머금는 동안 저번에 만들어둔 밀가루 반죽을 꺼냈다. 슬쩍 들어서 내부를 확인하니, 타조알처럼 희고 동그란 밀가루 반죽이 만들었을 그 당시 모습 그대로 있었다.
“으음. 역시. 발효가 일어나지 않아.”
부풀어 오르기는커녕 박제당한 듯 색도 변하지 않았다. 대지모신에게 저주받은 땅이라, 썩어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무저갱의 밑바닥이잖아? 내가 발을 디딘 곳이 땅이라면, 땅의 일꾼들은 좀 있어야 할 텐데….”
무언가가 걸리는데, 무엇이 걸리는지 모르겠다. 하아, 답답하네. 대지모의 생각을 읽을 수도 없고.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어보았으나, 그렇다고 없는 지식이 나올 리 없다. 머리는 쌀독이 아닌 것이다.
“에이. 몰라. 그런 커다란 일은 큰 힘을 가진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이곳에서 부드러운 빵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차라리 보급품에 쌀이 있기를 기대하자.
딱딱한 밀가루 반죽을 오븐에 넣고 불을 키웠다. 동시에 살짝 빡빡하게 불린 콩과 고기를 가지고 와 아지의 앞에 내려놓았다.
“밥!”
“아직 아니야. 기다려. 더 맛있게 먹어야지.”
아지의 손을 수건으로 깨끗이 닦았다. 깨끗한 천자락이 발에 닿자 간지러운지 몸을 뒤틀었으나 용케 도망치지는 않았다. 칭찬 삼아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뒤에 아지를 향해 명령했다.
“아지야. 주먹으로 때려.”
“안 돼! 고기가 아파해!”
“원래 고기는 괴롭힐수록 맛있어지는 법이야.”
“멍?”
“저번에 불에 구웠더니 훨씬 맛있어졌잖아. 고기는 아플수록 맛을 낸단다.”
그래서 복날에 개를 그렇게 팬대. 어유.
뒷말은 삼키며 나는 아지를 설득했고.
“멍! 그렇네!”
납득한 아지가 곧장 주먹을 휘둘렀다. 얼마나 빠른지 주먹이 보이지도 않았다. 퉁, 소리가 나면 다진 고기에 움푹 들어간 흔적이 생겨났다.
물기가 부족해서 아직 뻑뻑한 감이 있는 고기와 콩이, 아지의 멍멍펀치에 순식간에 다져진다. 그야말로 인간, 아니, 개 분쇄기.
고기가 아파한다며. 맛 앞에서는 일말의 자비심도 보이지 않는구나.
아지가 다지는 동안 전분을 살살 넣어가며 치댄다. 계란 대신 콩이 들어가 있어 찰기가 부족한 편. 팬 위에 올리면 사정없이 뭉개지겠지.
다만 인간의 사회와는 달리, 요리의 세계는 겉모습보다는 내면을 더 중요시한다. 아무리 모양이 흉측해도 맛만 좋으면 그만.
“자자. 기름은 충분하고. 그럼 들어갑니다~.”
동그랗게 뭉친 콩고기, 그러니까 콩이랑 고기를 더한 햄버그가 팬 위로 떨어졌다. 그 직후 지글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햄버그가 익기 시작한다. 단백질 타들어가는 냄새. 고기가 기름에 살짝 튀겨지는 소리. 장맛비가 젖은 땅을 두들기는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머, 머멍.”
아지는 압도적인 풍취에 경도된 모양인지, 짖는 것조차 잊고 팬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천사를 영접한 종교인조차도 저런 눈을 하지는 못할 거다. 피식 웃으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룰루랄라.”
불과 열은 모든 색을 빼앗아간다. 총천연색은 빛으로만 존재해야 한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하며, 붉은 빛깔을 탐한 발칙한 핏물을 탄화된 갈색으로 물들인다.
빛깔을 잃는 대신 얻는 건 감칠맛과 풍미. 인간에게는 기꺼운 변화다. 불 위의 고기는 맛있어지기를 원치 않았겠지만.
조금 흐트러진 모양을 뒤집개로 잡아주고 접시에 담는다. 번들거리는 고기 기름 역시 위에 살짝 흩뿌려준다. 자아, 한 접시. 원래 개보다는 사람이 먼저이나, 오늘만은 아지 먼저.
“머--엉.”
아지의 앞에 햄버그를 내려놓았다. 아지는 이 걸작을 차마 먹을 생각도 못하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지가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내 몫까지 챙겨서 탁자 위에 놓은 뒤 의자에 앉았다.
내 몫의 수저를 내려놓으며 탁자 위에 놓인 골렘에게 말했다.
“에이비 대위. 내려와서 한 입 하시겠습니까?”
『신경 쓰지 마십시오. 감시자는 욕망에 휘둘리지 않기에.』
“알겠습니다! 그러면 눈으로만 즐기세요!”
『….』
골렘은 탁자 위에 놔두고 숟가락을 들었다. 아지의 몸은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였다. 단거리 경주 선수라도 된 것처럼, 신호만 되면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럴 때 이게 빠질 수 없지. 학습의 기회다.
나는 차임벨을 꺼내들었다. 아지의 눈이 기대감으로 물든다. 내가 무엇을 할지. 이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짤랑. 벨을 흔든다. 그 순간 아지의 침샘이 터진다. 한껏 벌어진 입과 아래로 흐르는 침. 눈가는 반짝이다 못해 고기 속으로 빠져들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를 기다리다니 착하긴 착해. 흐음. 앞으로는 먹을 걸로 의심하면 안 되겠는걸.
나는 차임벨을 내려놓으며 선언했다.
“먹자!”
“멍--!”
아지는 그대로 접시에다가 얼굴을 박았다.
지금 이 순간, 아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