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26화 (26/384)

EP.26 레지스탕스 - 1

지금으로부터 약 일주일 전.

군국은 급작스럽게 병력을 소집했다.

군 당국이 치안을 지키기 위해 군인들을 차출하는 건 기삿거리도 안 되는 일상었으나, 이번 규모는 차원이 달랐다. 국경과 요충지의 방어에 필요한 최소한의 병력만 남긴 채 전 가용병력이 도시로 모였다. 꼭 도시를 상대로 전쟁이라도 벌이는 듯했다. 거리를 가득 메운 군인들을 보고 사람들이 집 안에 숨어 벌벌 떠는 사이, 군국은 모인 병력을 이용해 대대적으로 체포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죄질이 애매해서 방치하던 잡범들, 수배 전단에 이름만 올린 이들, 시민들의 협조를 받아 숨어있던 레지스탕스들.

그리고 꽤 많은 수의, 그저 운이 없고 억울한 시민들.

그 모두가 거리 곳곳을 누비는 군홧발 아래 짓밟힌 채 구속되었다.

카니센 역시도 검문을 피해갈 수 없었다.

과거 군국이 아직 왕국이던 시절, 명망 높은 기사단의 종자로 있었던 카니센. 군국이 집권한 뒤 은거하고 있었으나 군국 정보부는 여전히 그를 위험인물로 여기고는 주시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번 일을 계기로 그의 조그마한 집도 군인들의 방문을 받았다.

이 정도까지는 군국에서 일상적인 일이었다. 왕국 시절 요인들이 느닷없이 군인의 방문을 받는 일. 그리고 말 한마디 꼬투리를 잡혀서 끌려가 고초를 겪는 일.

다만 평소와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카니센은 진짜로 반란분자였으며, 가까운 시일 내 군국을 향한 테러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카니센은 낌새를 느끼자마자 최소한의 장비만 챙기고 도주했다. 그와 함께 있던 동지들 역시 도망쳤다.

한번 툭 건드려 본 것이 광맥이었음을 확인한 군국은 냅다 그들을 쫓았다.

그러나 카니센 역시, 왕국 시절이라고 하나 한때 군부에 몸을 담았던 인물. 이 부산스러운 움직임에서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을 느끼고는 도망가는 대신 도리어 군국의 보급계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놀라운 사실을 알아내었다.

사상 최악의 범죄자를 모아놓은 대감옥 탄탈로스에서 수많은 흉악범들이 탈옥했으며, 군국은 그들이 끼칠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병력을 모았다는 사실을.

놀라운 정보를 얻었지만, 그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추격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적은 너무 많다. 여기서 저항해보았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압도적인 병력 차에 휩쓸려 스러질 뿐.

그때, 그의 앞에 기적처럼 하나의 탈출구가 나타났다.

죄수들이 탈옥하는 바람에 갈 곳을 잃고 방치된, 탄탈로스에 갔어야 할 보급상자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짧은 순간 정보를 얻기 위해 섬광처럼 반짝이는 기억들을 내 뇌리에 때려박았다.

머리가 아프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생각의 흐름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대규모 검문. 그리고 거기서 도망친 레지스탕스. 어쩌다 저들이 여기에 왔는지 독심술로 대강이나마 훑어내고는, 어이가 없어서 한탄했다.

군국 병신새끼들. 평소에는 치밀한 척 엄청나게 하더니 거기서 그 상자를 안 까보네.

보급품이 곧장 온다고 으스대던 골렘을 짤짤 흔들어대고 싶은 기분이다. 좀 보내기 전에 다시 확인하면 안 되냐? 물품 확인도 안해?

군국의 관리소홀 덕분에 안에서 식량을 까먹으며 아득바득 버티던 다섯 명의 레지스탕스.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고통에 신음하던 그들은, 착륙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곧장 뛰쳐나왔다.

그들이 가장 먼저 마주한 건 바로 나였고, 세상 만사에 불만을 품고 있던 그들이 나에게 적의를 쏟아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아. 레지스탕스라.

레지스탕스라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사회에 불만이 많은 젊은이들. 내가 아무리 이곳에서 밑바닥이라지만 고작 철부지 어린애들한테 질 생각은 없다. 어디, 꼬마들에게 참교육이나 해줄까. 너희들이 커서 된 게 바로 나란다, 얘들아.

내가 손을 풀고 있을 때, 건장한 청년이 총구를 들이밀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꼼짝 마! 손들어!”

나는 다급히 손을 들었다. 총은 어쩔 수 없지.

휴. 다행이다. 아지가 어깨를 핥아주지 않았다면 손이 안 올라가서 죽을 뻔 했잖아. 아지에게 감사해야겠네.

…아니, 잠깐만.

애초에 팔이 아픈 것도, 지금 타이밍에 마당에 나와 있던 것도 다 아지 때문이잖아. 너랑 공놀이만 하지 않았어도 내가 맨몸으로 레지스탕스와 마주할 일이 없었다고!

“멍?”

새로운 인간들이 반가운지 꼬리를 맹렬하게 흔들던 아지는, 나의 불타는 듯한 시선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팔을 위로 든 상태로 아지를 노려보았다.

너 때문에 내가 잡히게 생겼으니까 네가 알아서 처리해!

나는 온갖 인상을 쓰며 이런 뜻을 담은 메세지를 보냈다. 나를 빤히 보던 아지는 눈을 반짝이며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개의 왕. 드디어 밥값 좀 해 봐라.

“개 여자, 너도 손들어!”

“멍!”

아지는 경쾌하게 짖으며 나를 따라 손을 들었다.

그래. 너한테 뭘 바라겠니. 사람만 오면 곧장 반기는 꼬리 가벼운 녀석인데.

청년은 너무 해맑은 아지의 얼굴을 보고는 살짝 의심스러운 얼굴을 했다. 혹시라도 아지를 공격하나 기대했지만.

‘…더러운 개 수인 치고는 태도가 고분고분하군. 조금 모자라 보이지만, 일단 위험하지는 않아 보이니 가만히 ….’

아무래도 겉모습이 판단에 영향을 끼친 듯하다. 아쉽다. 총이라도 냅다 쏴서 아지와 싸웠다면 멍멍펀치 한 대씩 맞고 어딘가 하나씩 부러졌을 텐데 말이야.

청년은 총을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소리쳤다.

“자! 다 손 들었으면, 그대로 무릎을 꿇고 땅에…!”

“알파. 그만.”

상자 뒤쪽에서 중년의 사내가 소리 없이 나타났다. 그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서며 알파라 불린 사람의 어깨를 짚었다. 알파가 숨을 헛들이키는 사이 중년의 사내가 그의 총구를 손으로 잡고 천천히 내렸다.

알파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대장?”

나이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아니면 외모나 존재감으로 보나.

누가 봐도 대장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 사내, 카니센이 나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단단한 걸음걸이에서 그의 힘이 느껴진다. 세상이 무너져도 그는 그보다 조금 더 늦게 무너질 것 같다. 며칠 동안 상자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음에도 그의 육체와 정신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은 듯 굳건하다.

이 레지스탕스 그룹의 리더, 카니센이 알파를 타일렀다.

“우리는 아직 이곳에 대해 모른다. 네가 갑갑하고 불안한 것은 알지만, 지금 써야 할 것은 총이 아니라 혀다.”

“…죄송합니다. 조급했습니다.”

“그럴 수 있지. 이해한다. 너무 오래 갇혀있었으니.”

카니센은 까끌까끌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차가운 눈동자로 나와 아지를 한 번 훑었다. 그 다음 저 멀리에서 탐조등을 빛내는 탄탈로스를 흘끔거린 뒤, 계산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실례하오. 많이 놀라셨소?”

진짜로 놀라기는 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진심을 섞어 소리쳤다.

“아니, 그러면 당연하죠! 다, 당신들은 누구요? 느닷없이 총이나 겨누고는!”

“경계하지 마시오. 우리는 군국의 적이자, 당신의 편이오. 총을 겨눈 건 제 쪽에서 사과드리겠소. 당신은…?”

카니센은 나에게 소개를 요구하며 말꼬리를 끌었다.

예의를 갖췄으면서도 적절하게 기세를 뿜으며 대답을 요구한다. 자연스레 나에 대해 캐내는 모습은 모범적이라 칭해도 문제없을 정도였다. 그는 그러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젊다. 웃통을 벗고 있다. 군복은커녕 교관복도 입지 않은 것을 보니, 군국 소속은 아닌 것 같고. 마르고 날렵한 몸이나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죄수들은 대부분 탈옥했다고 들었으니, 이 와중에 가장 먼저 보급품을 받으러 나왔다면 그는 노역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이곳의 정보를 구할 수 있겠어.’

레지스탕스도 쭉정이를 리더로 삼지 않았는지, 생각이 합리적이고 판단이 빠르다. 무저갱 탄탈로스라는 전설의 감옥에 떨어지고, 조그만 상자 속에서 사흘 동안 버틴 이후 처음 밖으로 나온 것이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야.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지 명확하거든.

상대방이 마음속에 그린 하나의 상. 그것이 나를 정형한다. 그가 나를 노역자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가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노역자가 된다.

자세를 조금 삐딱하게, 지친 티를 숨기지 않고,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당혹을 살짝 섞는다. 교관복이 없어서 다행이다. 변명할 필요가 없어지니까. 나는 힘없는 시선을 일부러 흔들며, 노역자가 침입자를 만났을 때 하는 반응을 흉내 냈다.

“나, 나는 일주일쯤 전에 여기 잡혀들어온 사람입니다. 군인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치더니 나를 체포하고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나를 여기 던져넣으며 일하라고 시켰어요. 저,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돈도 없고요.”

“무슨 일을 맡고 있소?”

“요리나 청소 같은 잡일들이요!”

“과연, 간악한 군국에 의해 끌려온 분이셨군.”

“그래요. 저는 억울하다고요.”

카니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역시, 우리는 동지가 맞소. 우리도 군국에게 갚을 원한이 있으니.”

“네?”

내가 떨떠름하게 손을 내밀자, 카니센은 내 손을 낚아채고는 힘차게 흔들었다. 힘은 더럽게 세서 내 몸이 다 휘청거릴 정도였다.

“우리는 민중의 벗, 레지스탕스. 잔악한 군국을 무찌르고 자유와 평화를 찾으려는 자들이오.”

지금이 놀라야 할 때다. 나는 과장된 태도로 소리쳤다.

“레, 레지스탕스?!”

군부가 왕정을 몰아내고 집권한 뒤, 가혹한 노동, 낮은 임금, 철저한 통제와 무자비한 처벌, 급격한 도시화는 기존 질서의 붕괴를 낳았다. 군국에 의해 재산이나 가족을 잃은 이들은 음지로 숨어들어 군국에 대항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하지만 통일되지 않은 반란군 무리들은 군국의 정예병에게 대항하지 못했다. 산발적으로 생겨났다가 단숨에 진압되기를 수차례. 반란군들 역시 체계적인 지도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뛰어난 지도자 아래 하나로 뭉쳤다.

그것이 가장 큰 반란군 단체, 레지스탕스. 군정으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는 이들.

물론 군정이 집권한 지 한참이 지난 현재, 일반인에게 레지스탕스의 인식은 그리 좋지 않다. 여기서 살짝 경계심도 섞어주자. 그편이 더 자연스러울 테니.

“레, 레지스탕스라면, 그, 테러리스…. 헙!”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를, 일부러 말하다 말고 자기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는 잔뜩 겁먹은 눈으로 쳐다본다.

조금 무례하지만, 평범한 사람에겐 정상적인 반응.

예상대로 카니센은 내 태도를 보고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이해하오. 우리에 대해 안 좋은 소문만을 들었겠지. 군국은 우리가 무자비한 테러리스트라고 선동했을 것이오.”

“아, 음. 네.”

“하지만 알아두시오. 군국이 전하는 레지스탕스의 잔혹함, 그중 대부분은 사실… 군 당국이 해놓고는 우리에게 덮어씌운 것이니. 우리도 본질적으로는 군국에게 모함당한 당신과 똑같다오.”

한때 기사여서 그런가, 진중한 말에 무게가 담긴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나도 모르게 그 말을 신뢰했을 것 같다.

거기다 일단 같은 편이라며 안심시킨 뒤, 당신과 내가 다를 바 없다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까지 능숙했다. 한때 사람을 다스려 본 티가 제법 났다.

“우리를 믿으시오. 우리는 당신을 돕기 위해 여기 온 거요.”

이 사람.

사기를 치는 데 꽤 재능이 있다. 기사가 아니었다면 뒷골목에서 사기꾼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상대가 나빴다. 하필 뒷골목 제일의 사기꾼인 나라서, 대부분의 말이 소용없게 되었구나.

나는 두려움이 조금씩 걷혀가는 것처럼 연기하면서 대답했다.

“저를 도우러 왔다고요?”

“물론이오! 군국에게 억울하게 압제당한 자를 돕는다. 그것이 레지스탕스이기에! 당신은 물론, 여기 갇힌 억울한 이들을 모두 도울 거요!”

“아아.”

감탄했다는 듯 살짝 말을 흘려준다. 카니센은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내 반응을 보고 힘차게 웃었다.

잠시 나에게서 시선을 뗀 그는, 여전히 손들고 서있는 아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 이 아름다운 수인 아가씨는 어떤 분이시지?”

카니센의 물음에 아지는 해맑게 소리쳤다.

“멍! 나, 강아지야!”

“강아지? 특이한 이름이로군. 아가씨는 어쩌다 이곳에.”

“반가워! 반가워! 반가워!”

아지는 느닷없이 뛰어가서 카니센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워낙 빠르고 예상치 못한 일이라, 기사 출신인 카니센조차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흠칫 놀란 카니센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을 때였다.

상자 안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적의가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상자 안에서 이쪽을 경계하던 한 여자 레지스탕스가 아지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대장!”

확연한 경계심을 담은, 젊은 여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카니센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멈…!”

‘쏘면 안 돼!’

그러나 그의 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방아쇠는 당겨진 이후였다.

탕!

총구에서 총알이 뿜어져 나왔다. 총성보다 살짝 앞선 철갑탄이 정확히 아지를 노리고 빨려 들어간다. 순식간이다. 이 지근거리에서 총탄이 아지에게 도달하는 데에는 찰나도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카니센의 주위를 돌던 아지는, 문득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철갑탄을 빤히 바라보다가.

몸에 닿기 직전 이빨로 잡아챘다.

콰득.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이빨이 강철을 파고드는 소리. 금속이 사정없이 우그러지는 소리.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총구에서 시작된 총탄의 짧은 여행은 아지의 이빨 사이에서 끝나고 말았다.

으적.

그 누구도 이 광경을 제대로 목격하지 못했다. 그나마 카니센 정도가 상황을 빠르게 이해했다.

‘근거리에서 발사된 철갑탄을 잡아챘다고? 그것도 이빨로?’

총알에 맞고도 버티는 일은 흔하다. 기공을 조금 익히거나 튼튼한 옷을 입거나, 아니면 태생적으로 건강하게 태어나기만 해도 총알 한두 발쯤은 너끈히 버틸 수 있다. 총은 유용하지만 그리 강력한 무기는 아닌 탓이다.

하지만 날아오는 총알을 잡아채는 건? 고수라도 쉽지 않은 일이며, 설사 할 수 있더라도 이빨로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실패했다간 연약한 내피가 총탄에 찢어질 테니.

그러나 아지는 해냈다.

아지는 강철 탄환을 한번 으적 씹고는 얼굴을 구기며 뱉었다. 찌그러진 총탄이 땅 위를 통통 튕겼다. 아지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뜨거워! 딱딱해! 맛없어!”

찌그러진 총탄, 거기 있는 이빨자국.

그제야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다른 레지스탕스가 일제히 총구를 들어 올릴 때였다.

“사격 중지!”

카니센의 일갈에, 그들 모두 선생님한테 혼난 학생처럼 화들짝 놀라 총구를 내려놓았다. 카니센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누가 마음대로 쏘라고 했지? 베타, 내가 명을 내리기 전까지는 절대 쏘지 말라 하지 않았나?”

베타라 불린 청년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해요.”

“알면 가만히 있어!”

카니센은 그렇게 윽박지른 뒤, 정중하게 손을 모으며 아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저희가 배움이 짧아 귀인께서 어느 고명하신 분인지 잘 모릅니다. 귀인의 이름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저 개 수인, 여간내기가 아니다. 전투가 벌어지면… 다 죽어!’

오, 자기 주제를 알뿐더러 먼저 사과까지 하다니. 이토록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은 탄탈로스 내려오고 나서 처음이라 신선하다. 이 지하에 있으면 모범시민인 나조차도 비정상이 되어가는 것 같았는데 말이야.

물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라, 자기가 정상적으로 행동했다고 정상적인 반응이 나오지는 않지만.

“멍! 나, 강아지야!”

“강아지? 실례가 될지 모르나, 그것은 별호입니까?”

“이름! 멍! 멍! 반가워! 반가워!”

카니센은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얼굴로 멍하니 아지를 바라보았다. 잠시 행동의 방향을 잃어버린 그는 매달리듯 나를 보았다.

“저기, 이 귀인은.”

“아. 여기에 남아있던 교육생이래요. 이름이 강아지라나. 힘은 쎈데 진짜 개라도 되는지 말은 잘 들어서 이렇게 가끔 같이 다니고 있죠.”

“전설로만 내려오는 개의 왕? 아니, 설마 탄탈로스라 해도 그런 존재를.”

정답. 똑똑하기까지 하네. 이것저것 들은 지식도 많은 모양이다.

예의 바르고, 상대를 두려워할 줄 알고, 주제도 알면서 아는 것도 많다니. 만일 이 땅에 교육생이 있다면 이런 사람들만 있으면 좋을 텐데.

하아.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이런 사람을 죽여야 한다니 말이야.

정신을 차린 카니센은 다급히 물었다.

“이곳에 군인이나 다른 죄수… 아니, 교육생들도 남아있소?”

“어, 군인은 없어요. 대신 교육생이 두 명인가 더 있어요. 하지만 자빠져 자거나 자기 할 일 하느라 바쁘죠. 폭탄이라도 터뜨리지 않으면 안 나올걸요?”

“그런가. 천만다행이군.”

‘등골이 서늘하구나. 저런 존재가 최소한 둘…. 아니, 탈옥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으니, 그보다 훨씬 많은 수가 갇혀있었을 터. 군국은 도대체 어떻게 저딴 괴물들을 잡아넣은 거지?’

카니센은 한참 고민에 잠겼다. 시시각각 흘러가는 생각.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차분하게 그의 생각을 읽었다.

‘우습게 볼 곳이 아니다. 계획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다른 탄탈로스의 죄수들에게 저지당할 수도 있겠어. 최대한 빠르게 일을 끝내야 해.’

레지스탕스는 군국의 적.

죄수들 역시 군국의 적.

적의 적은 나의 친구이다. 만일 나의 적이 강대하다면 더더욱.

보통 레지스탕스라고 하면, 죄수들을 포섭하거나 아니면 아예 풀어주어 군국에게 커다란 부담을 안겨주는 전술을 택한다.

하지만 카니센은, 왠지 탄탈로스의 죄수들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게 목적이 아닌 것처럼.

테러리스트이자 레지스탕스인 카니센은 왜 탄탈로스로 왔는가? 왜 도망치는 와중에 탄탈로스로 향하는 보급품 상자에 숨어들었는가?

무저갱 탄탈로스, 대지모신의 저주를 받아, 탈출할 수 없는 땅에?

‘탄탈로스에 온 이상 빠져나갈 수 없다. 급히 도망친 우리가 챙긴 장비라고는 테러를 위한 폭탄이 전부. 이것으로 군국에 유의미한 피해를 줄 방법은….’

간단하지. 나는 냉소적으로 중얼거렸다.

테러리스트가 할 일이, 테러 말고 어디 있겠어.

‘압제의 상징, 탄탈로스를 완전히 파괴하여 무저갱 아래 가라앉히는 것뿐.’

저 놈들, 그냥 이곳을 폭파하러 왔다. 자기네 죽는 것도 상관없이.

내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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