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 레지스탕스 - 6
반파된 관리실은 어둡다. 안을 비추는 것이라고는, 반쯤 주저앉은 지붕 틈으로 새어 나오는 주간등의 빛이 전부. 산더미 같은 잔해와 뒤집힌 바닥, 그리고 무너진 벽 때문에 그 빛마저도 길을 헤매다가 흐려진다.
어둡고 그늘이 져서 작정하고 숨으면 보이지 않으면서도, 틈틈이 나타나는 빛과 마주하면 유령처럼 모습이 드러나는 장소. 그곳이 이 관리실이었다.
시체에서 노획한 총을 꼭 붙잡고 그늘에 몸을 숨겼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어둠을 틈타 몰래 숨어들어, 방심한 카니센의 급소에다가 철갑탄을 박아넣어야 한다.
일격에 죽이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
카니센은 한때 명망 높은 기사의 종자였으며, 그들에게서 유서 깊은 기공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기사들이 기공을 얻고 가장 먼저 익히는 게 반탄기공이다. 반탄기공을 두르고 있다면 평범한 화살이나 총알의 위력은 따끔한 빗방울 수준으로 격하된다.
반탄기공이 없어도, 단련된 육체의 단단함은 총알이 쉬이 꿰뚫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급소가 아니라면 총알 한 발 정도는 너끈히 버티고 나를 잡아 죽이러 올 것이다.
그렇기에 총은 그 유용성을 인정받았으면서도 그리 좋은 무기로 평가받지는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일반인들에게 최소한의 전력을 쥐여준다는 의미 정도만 있을 뿐.
안쪽으로 조심스레 걸어 들어가며 정신을 집중했다. 잔해 너머에서 생각이 들려온다. 카니센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지하로 통하는 통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감마는 이곳저곳 무너진 지하 통로를 로프 하나에 매달려 조사하고 있었다.
‘알아냈다! 이런 방식으로 무저갱에 바닥을 만들었구나! 그렇다면, 두 포인트에만 폭탄을 설치한다면 이곳을 통째로 무너뜨릴 수 있어!’
어이, 회귀자. 1년 정도는 버티는 거 아니었냐고. 아무래도 얘네들 뭔가 알아낸 듯한데. 어쩔 거야, 이거.
마음속으로 회귀자를 탓하던 나는 곧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긴 어째, 내가 살려면 쟤네를 다 치워야지.
다행스럽게 카니센은 통로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 테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겠다는 열망밖에 없었다. 좋아. 이 정도면 내가 들킬 염려는 없겠지. 각만 나오면 그걸로 끝이다. 조심스레 한 걸음 걸었다.
‘음? 기척이?’
독심술의 나쁜 점은, 상대 생각을 읽는다고 해서 딱히 내가 더 잘나지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독심술의 좋은 점은, 그래도 상대방의 경계심을 먼저 읽을 수 있다는 것.
카니센이 고개를 돌리기 직전 그 위화감을 읽어낸 나는 다급히 그늘 속으로 숨었다. 직후 그의 주의가 통로 쪽으로 향했다. 카니센은 미간을 찌푸리며 통로를 노려보았다.
‘기분 탓인가…? 조사하고 싶지만, 아쉽군. 감마가 아래 있는 이상 당장 자리를 뜰 수는 없다.’
지금 이 탄탈로스를 무너뜨릴 수 있는 능력자는 감마뿐이다. 기술적인 지식이 부족한 카니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는 무엇보다 감마 보호를 우선시하고 있었다.
‘그래도 통로에 간단한 트랩을 설치해놨다. 누가 밟는다면 알아차릴 수 있겠지.’
아, 꼼꼼하기도 하셔라. 이럴 때도 트랩 설치를 하며 지나가다니.
그렇지만 존재 여부가 드러난 트랩은 위험성이 십 분의 일로 줄기 마련.
조심하면서 잔해를 헤치며 나아가자, 마침 내 발목 언저리에 반짝이는 실이 보였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팽팽했다.
이 실 트랩이 네가 믿는 트랩인가? 우습구나. 조심스레 발을 들어 그 실 트랩을 살금살금 넘어갔.
딸랑딸랑.
이중 트랩이야?
이중 트랩이었네.
젠장. 생각을 너무 대충 읽었다. 이쪽 사람들은 이중 트랩을 만드는 게 일상이라 크게 의식을 안해서 헷갈렸어!
“누구냐!”
방울소리에 카니센이 즉각 반응했다. 거리는 지척이다. 그가 냉큼 달려오면 나는 바로 잡힌다.
어쩔 수 없다. 모퉁이 너머로 총을 내밀고 냅다 쐈다.
탕!
카니센이 양팔로 얼굴을 가리며 눈을 감았다. 총을 상대하는 모범적인 대처다. 전신으로 반탄기공을 발휘한다면 얼굴, 특히 눈동자에 맞지 않는 이상 무사하기 때문이다.
기사가 총을 상대하는 법은, 반탄기공으로 몸을 보호하며 무작정 돌진하는 것. 카니센은 그 교범을 착실히 따르려고 했다.
만일 내 총알이, 지하실로 향한 통로에 맞지 않았다면.
“윽!”
움찔하는 카니센을 비웃으며 그 틈을 타 잔해 속으로 몸을 숨겼다.
어차피 소용없을 걸 아는데 몸에다가 쏠 이유가 없다. 대신 그가 주저하도록 통로 쪽, 정확히는 통로에 걸친 로프를 노렸다. 그에게 있어, 지금 감마의 목숨값은 그 자신보다도 높았으니까.
“대장?! 무슨 일입니까!”
“가만히 있어라, 감마. 위로 올라오지 말고.”
“네?”
“습격이다. 아래 숨어있도록.”
“네!”
카니센은 단단히 경고를 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주변에 쌓인 잔해를 모으며 저쪽 너머를 노려보았다.
‘기둥에 묶어둔 로프는 감마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이 로프가 끊어지면, 갈라진 땅을 비집고 지하에 들어간 감마가 고립된다. 로프를 지켜야 해.’
설명 고마워. 나는 로프만 자르면 되네. 이 총으로 로프를 맞춘 뒤 도망치자. 가느다란 로프를 맞추기는 어렵겠지만, 저 기둥에 묶인 부분은 다섯 발 정도 쏘면 한 번은 맞겠지.
‘잔해를 쌓아서 로프를 지키자. 그리고 녀석을 잡으러 가는 거다.’
아니, 그건 반칙이지.
카니센은 부서진 철골과 판자를 겹쳐서 로프를 보호했다. 급조한 방벽이지만 총탄 두셋은 막아줄 것이다. 젠장. 망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조립을 끝낸 카니센이 사방을 경계하며 한 걸음 걸어왔다.
자. 조졌다. 내가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반탄기공은 극성으로 펼치고 있다. 철갑탄을 쏘아봤자 피부에 닿을까 모르겠다. 닿았다고 해서 기공으로 보호받는 피부를 뚫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이제 총은 기껏해야 눈가리개 수준이다. 총알은 그를 파고들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안녕하세요, 동지. 탈출 계획은 순조로우신가요?”
잔해 깊숙이로 몸을 숨기며 읊조린다. 카니센은 몇 분 전에 들었던, 하지만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목소리를 듣고는 흠칫거렸다.
뒤늦게 나의 정체를 깨달은 카니센이 목소리를 깔았다.
“…그 노역자로군. 델타를 어떻게 했지?”
“조만간 닥쳐올 그의 운명을 조금 일찍 맞이하게 해줬죠. 이 총은 그의 유품이고요. 한 번 쏴보았는데 소리가 맑더라고요? 평소에 총기 관리를 꼼꼼하게 잘한 것 같아요. 그의 성격처럼 말이에요.”
“네놈!”
분노에 떤 카니센이 근처에 있던 쇠파이프를 쥐어 들고 거세게 휘둘렀다. 위력적인 강검. 잔해 너머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난다. 저거, 내가 맞으면 허리가 끊어지겠지.
다만, 그의 기량으로는 잔해를 어느 정도 무너뜨릴 수 있을지언정 회귀자처럼 다 갈라버릴 수는 없다. 감각은 날카로우나 개의 왕에 비하면 귀머거리 수준이고, 공간 자체를 장악하는 흡혈귀와는 달리 무기를 휘두르지 않으면 나를 상처입힐 수 없다.
나보다 강하기는 하지만 초월적인 무언가는 아니다. 그냥 과거의 유산으로 사라진 기사 수준.
딱 평범하게 강하다.
그 정도라면.
그를 비웃으며 자리를 옮긴다. 완벽하게 숨을 필요는 없다. 그의 시야에 닿지 않는 곳, 그가 알 수 없는 곳으로만 가면 된다.
“누굴 구하러 온 것도 아니고, 탈출할 준비도 하지 않았어. 애초에 당신은 이곳을 통째로 무너뜨릴 작정이었죠?”
“처음부터 간파하고 있었나.”
“솔직히 조금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죠? 레지스탕스가 불나방 같은 존재라는 것도 다 아는 사실. 이곳이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무저갱이라는 것도 다 아는 사실. 다 아는 사실이 둘이나 있는데 모르면 제가 문제 아니겠어요?”
“다 연기였군. 나를 본 그 순간부터, 감쪽같이 속였어.”
목소리에 분노가 담겼다. 카니센은 나를 직접 찢어 죽일 요량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딜. 다시 한번 총을 쏜다. 그는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총에 맞을까 겁을 먹어서가 아니라, 내 목표가 감마라는 것을 알고 그쪽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좋아. 밑밥은 깔았고.
그가 경계하는 사이 무너진 지붕 뒤쪽으로 움직였다. 사방이 캄캄하고, 장애물이 많아 목소리가 이리저리 울린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그도 정확한 위치를 찾아낼 수 없다.
그래서 카니센도 이를 악물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알파와 베타를 보낸 것도 네가 판 함정이겠지.”
‘대답해라. 대답해서 네 위치를 나에게 보여라. 그때가 네 최후가 될 것이다.’
속이 빤히 보이는 작전이었지만 기꺼이 넘어가주지. 나도 말을 할 필요가 있으니까.
“무슨 소리예요? 제가 판 함정이 아니죠. 알파와 베타와 델타도 죽었고, 심지어 감마까지도 곧 죽겠지만, 그게 과연 저 때문일까요?”
내 목소리가 들리자 카니센이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 움직임을 독심술로 읽은 나는 크게 원을 그리며 그와 거리를 뒀다.
자아, 전술은 일반적인 총과 칼의 대결과 똑같다. 그가 나의 목소리를 듣고 근접하기 전 그를 후벼 파야 한다.
총? 그건 이제 무기가 아니라 도구다. 마술 도구와 비슷하게, 상대방의 시선을 끌고 주의를 돌리는 장치일 뿐.
“그들을 사지로 내몬 건, 바로 카니센 당신이잖아요?”
내 목표는 카니센의 정신. 그의 단단한, 하지만 세월의 모진 풍파를 겪으며 틈을 보이는 돌멩이 같은 마음이다.
총탄이 몸뚱아리를 못 뚫으면 마음에라도 구멍을 내야지. 그게 독심술사의 전투법 아니겠어.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그들은 목숨을 썼고, 거의 다 성공했다. 너만 아니었어도 그들은 임무에 성공했을 거야.”
“더러운 입으로 남의 목숨 운운하지 마세요. 제가 아니었어도 그들은 죽었겠지요. 탄탈로스 폭파는 어차피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임무이자, 해보았자 얻을 것 없는 계륵. 당신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목숨을 조금 더 가치 있고 명예로운 임무에다가 썼을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주제넘게 말하기는!”
그의 시야를 읽었다.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숨소리를 낮춘 뒤, 포복으로 넘어진 탁자 아래를 기었다. 어둠 속에서 카니센의 시선이 살짝 빗겨나간다. 위험한 위치에서 빠져나온 나는 무너진 캐비닛 아래쪽으로 기어 들어갔다.
자아. 나는 결국 카니센을 쓰러뜨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여기서 탈출하지도 못할 것이다. 어떻게 쓰러뜨리느냐, 는 더 생각해보아야겠지만.
그런 나의 눈에 저번에 아지와 함께 왔을 때 쓰러뜨렸던 캐비닛이 보였다. 교관복의 패킷이 들어있었던, 의복 패킷을 보관해두는 캐비닛.
저기에는 분명 ‘그게’ 있었지. 회귀자나 흡혈귀, 아지에게는 쓸 수 없지만. 카니센이라면 통할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캐비닛 안쪽으로 손을 뻗어 조금 독특한 모양의 의복 패킷을 꺼내 손 안에 숨겼다. 네모나고 딱딱한 회색의 패킷은 강철로 만든 마작패처럼 묵직했다.
좋아. 이것으로 조각은 다 모았다.
오랜만에 그걸 써보자. 도박이라는 합법적인 일거리를 찾은 이후 봉인해두었던 기술.
‘소매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