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37화 (37/384)

EP.37 지저의 성

이들은 향상심도, 위기감도 없다. 이렇게 설명해도 그냥 헤, 하고 받아들일 뿐이다. 누군가를 가르쳐 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갑갑함이 가슴을 옥죈다.

아무도 뭐 느끼는 바가 없나?

그때 가만히 팔짱을 끼고 있던 회귀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오, 무슨 질문을 할까?

“이걸 왜 우리에게 알려주는 거야?”

에휴. 질문이 아니라 추궁이었네. 누가 의심병 말기 아니랄까 봐.

나는 실망감을 숨기지 않으며 대꾸했다.

“알려줘도 불만이에요?”

“그럴 수밖에. 탄탈로스는 5레벨 기밀시설. 군국 기밀시설에 대한 구조는 최소한 그에 상응하는 보안등급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안등급이라고는 아예 없는 우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네. 5레벨 차이에 이르는 기밀누설인데, 이유가 뭐야?”

알려줘도 지랄이다. 어떻게 세상 모든 것을 의심만 하고 사냐. 흡혈귀처럼 이야, 신기하구나 하고 좀 받아들이지.

회귀자는 마땅한 설명이 없으면 물러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나는 살짝만 이유를 말해주고자 했다.

“왜냐면, 이걸 알아야 여러분이 주인의식을 갖기 때문입니다.”

“주인의식?”

“그렇습니다. 어제 레지스탕스가 습격한 일 아시죠?”

“그런데?”

태연하게 ‘그런데?’ 이러네. 화가 치민 나는 반문하는 회귀자를 향해 소리쳤다.

“이 땅은 저 혼자 씁니까? 저 혼자 지킵니까? 왠지 불공평하게도 일은 저 혼자 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여러분도 이 땅에 살고 있으면 좀 신경 쓰십시오! 말 그대로 땅이 꺼지게 생겼는데 다들 가만히 자기 방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뭐 하는 짓입니까!”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이 금방 꺼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너희들도 위기감을 갖고 막으려고 들 거 아니야!

“이번에 보급 상자를 챙기러 간 사람도 나 하나, 레지스탕스를 미리 발견한 사람도 나 하나, 그들의 계획을 저지한 사람도 바로 나! 독박이에요. 저 혼자 독박을 썼다고요!”

“그게 네 일이잖아?”

“생존은 각자의 일이죠! 제가 안 살려주면 그냥 죽을 겁니까?”

“네가 나를 살려주기라도 했어?”

“잘 아는군요! 어제 침입한 레지스탕스가 어떤 계획을 세우려고 했는지 아십니까? 보십시오!”

성큼성큼 칠판으로 다가가 손가락으로 탄탈로스의 양쪽 끄트머리를 지웠다. 그리고 가운데까지 분필로 찍 그어버렸다.

“이쪽! 그 반대쪽! 가운데! 여기에 폭탄 세 개를 설치하고 동시에 터뜨려서, 이 탄탈로스를 반으로 갈라 떨어뜨리려고 했다는 말입니다!”

내가 칠판을 한번 쿵 두들기자, 그림 속 탄탈로스가 분필 가루를 떨어뜨리며 진동했다. 무너진 끄트머리를 기점으로,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있던 탄탈로스가 기우뚱거린다. 밸런스가 어긋난 육중한 구조물은 그 무게가 자신을 죽이는 가장 큰 적이다. 그러한 곳에 쐐기를 박듯 터진 중심에서의 폭발.

그 결말에 회귀자가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아.”

‘탄탈로스가… 이렇게 무너졌던 거야?’

탄탈로스는 버티지 못한다. 반으로 쩌적 갈라져서 저 아래로 떨어진다. 그림 속 탄탈로스는 그렇게 몰락하고 말았다.

다시 칠판을 쾅쾅 두들겼다. 회귀자가 상념에서 돌아왔다.

“네? 바로 여러분들 발아래 땅이 이 꼴 날 뻔했는데! 여러분들은 태연히 있다가 사태가 다 끝나고서야 어슬렁어슬렁 걸어왔죠! 제가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면 저를 포함한 여러분들은 다 무저갱의 미아가 되었을 거라고! 맞아요, 틀려요?”

팔짱을 낀 채 방어적인 태도를 견지하던 회귀자도 결국 수긍하고야 말았다. 슬그머니 팔짱을 풀고는, 살짝 시선을 돌리면서 툭 내뱉었다.

“…맞긴, 하네.”

“제가 고마워요, 안 고마워요?”

“고맙…다 말할 정도는 아니지. 너도 자기 살자고 한 일이면서.”

와중에 자존심은 끝까지 챙기는 거 봐. 고맙다라는 말 한 마디를 못하냐.

“우와. 누구는 침입자가 쳐들어왔는데도 태연하게 연습 상대 들어왔다고 좋아했으면서. 어떻게 사고방식이 그래요?”

“?! 어, 어떻게.”

“어떻게 알았냐고요? 제가 모를 것 같아요? 군장 챙겨 입은 놈이 빤히 1층으로 향하고 한참 있다가 세이 교육생이 그놈 모가지를 들고 나왔잖아요? 분명 셰이 교육생 능력으로는 목을 한 합에 날릴 수 있을 텐데, 왜 거기서 치고 박고 싸워줘요?”

“그, 그야. 실전이 부족해서.”

“실전이 부족하다고 자기 목숨 내놓고 싸우는 거 봐. 심지어 그때 다른 침입자들은 폭탄을 설치하고 있었는데! 그 안일함이 지금 같은 위기를 만든 거라고요! 그나마 제가 제때 대응한 덕에 탄탈로스가 안전한 거고요!”

하는 말 하나하나가 정론이다. 회귀자는 방어기제로 내 말에 트집을 잡으려고 했으나, 아무리 해봐야 그럴 건덕지를 찾지 못했다. 회귀자는 혀를 차며 수긍했다.

“쳇, 알았어. 다음부터는 나서면 될 거 아니야.”

“좋습니다! 그 말 꼭 기억해두세요!”

회귀자가 잠깐 떠올린 회상에 따르면, 앞으로도 이곳을 침입하는 사람들이 최소 몇 명은 더 있을 것이다. 아마 그중 누군가는 세상의 멸망에 관여할 정도로 대단한 놈이겠지.

그걸 내가 막아야 한다? 글렀다. 불가능할뿐더러 하고 싶지도 않다. 고작 카니센과 다른 레지스탕스를 잡는데도 목숨을 걸어야 했는데, 왜 그 이상과 마주해야 한다는 말인가.

“앞으로 여기 떨어지는 놈들, 다음엔 여러분이 알아서 처리하세요. 누군가는 해주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미루지 마시고!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처리하도록 합시다! 아시겠습니까!”

나밖에 없으면 몰라. 회귀자랑 흡혈귀의 시조가 있는데 왜 내가 일해야 하냐고! 무력이 강한 사람이 무력 필요한 일을 해야 선한 영향력이지!

“만일 다음에 의도가 불순한 녀석이 떨어졌다. 저는 다음 침입자 상대로 손 하나 까딱 안 할 겁니다!”

좋아. 이걸로 다음 침입자가 쳐들어왔을 때 내가 도망가도 되는 개연성이 생겼다. 후우. 까임 방지권 1회. 아주 소중한 것을 얻었어. 다음에 누가 오면 불사자 손발 늘어놓고 죽은 척하고 있어야지.

그렇게 도망칠 방법을 궁리하는데, 흡혈귀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작일 일로 너무 엄살을 부리는 것 아니냐?”

“어, 엄살이라고요?”

요즘은 목숨이 경각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엄살이라고 부르나?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흡혈귀는 거기에서 한술 더 떴다.

“정작 작일에 일어난 일은 네놈이 다 손쉽게 해결하지 않았느냐. 식사 후 입가심을 하듯 깨끗하게 치우고는 잔말이 많구나.”

“입가심이라니요?”

설마 내가 레지스탕스들을 손쉽게 정리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과대평가는 좋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과로를 떠맡기려는 이유로 쓰이는 순간 저주스러운 족쇄가 된다. 나는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제발 저를 믿지마요! 여러분과는 달리 저는 목숨 하나밖에 없는 평범한 인종이거든요? 티르칸쟈카 교육생처럼 총 맞아도 무사한 것도 아니고, 셰이 교육생처럼 별 해괴한 도구들도 없어요! 믿을 건 몸뚱아리 하나뿐이라고요!”

“그래. 몸뚱아리 하나로 셋이나 처리하지 않았더냐. 것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셋이 뭐가 중요해요? 그중 둘은 떨거지고, 하나도 별 보잘것없는 녀석이었어요!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고요! 저는 별로 대단한 게 아니라!”

“네 마지막 상대, 그는 분명 기사였다. 너는 그런 기사를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하고 구속하기까지 했지. 내가 그의 죽음을 느꼈을 때, 그의 몸에 난 상처는 네가 마무리 지은 것 하나 말고는 없었으니.”

“아니, 그건.”

“더불어 너는 셰이보다 한 수 위이지 않으냐. 본디 더 강하고 높이 선 자가 더 큰 의무를 져야 하는 법이다.”

큰일이다.

지금 흡혈귀는, 내가 회귀자보다 한 수 위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

요즘 세상을 하나도 모르는 흡혈귀는 지금 외부에서 주어지는 정보와 자극에 대단히 수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혹여나 내가 군국 사령부 뚜껑이 갈라지면서 거대 마도 골렘이 나타나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간다고 말해도 그대로 믿을 것이다. 갓 태어난 아기새가 세상을 인식하는 것과 비슷하게.

“애초에 교관이라는 직함이 달려있다면 나서서 이끌 생각을 해야지. 나랏일을 하는 자가 앞서 백성을 이끌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 와중에도 꼰대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는 그 판단 그대로 나를 훈계하고 있어!

내가 강하다고 착각하는 거야 좋다. 그건 나도 조금은 의도한 바였으니. 다만 이렇게, 나를 과하게 올려치는 건 위험하다.

지들 멋대로 오해해놓고 정작 오해가 풀리면 나를 원망하며, 그렇다고 풀리지 않으면 죽을 위기에 내몰리니까.

높이 올라갈수록 추락도 위험한 법. 어쩐다. 바람을 뺄 때가 되었는데.

그나마 회귀자가 보는 눈은 있으니 슬슬 알아차려주지 않으려나.

‘기사를, 상처 하나 없이 제압했다? 그것도 맨몸으로? …나는 할 수 있을까? 아니, 아직 몸을 다 만들지 못한 지금 상태로는 불가능해. 칫, 인정하기 싫지만… 나보다 강한 것 같네. 지금은.’

너는 사람 말만 듣고 판단하지 마! 제발 내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보고 판단하라는 말이야! 인정하기 싫으면 네 두 눈으로 확인하라고!

쳇. 여기서 더 있다가는 내 팔자에 회귀자를 지켜주게 생겼다. 어쩔 수 없지. 긴급 탈출이다.

나는 손톱을 세워서 그대로 칠판을 그었다. 소름끼치는 소리에 회귀자가 얼굴을 찡그리고 흡혈귀가 미간을 좁혔으며, 뒤쪽에서 배를 깔고 자고 있던 아지가 깨갱거리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비기, 칠판긁기.

끔찍한 소음으로 불리한 대화의 흐름을 끊고 위기에서 벗어나는 기술. 나는 금단의 기술로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는 외쳤다.

“그러면 순번제로 가죠. 어쨌건 이번에는 내가 치웠죠? 다음에 뭐 나쁜 놈 쳐들어오면 그쪽 중 한 명이 알아서 치우세요! 이상…!”

“왈! 왈왈! 왈!”

그러는데 이번에는 아지가 나를 향해 맹렬히 짖어댔다. 쟤는 또 왜 그래.

“으릉! 왈! 왈왈!”

대충 추측해보건대, 자는 도중에 칠판 긁는 소리 좀 났다고 화가 난 모양이었다.

개의 청각은 인간의 몇십 배를 웃돌며, 그 왕인 아지에 이르러서는 탄탈로스 반대편에서 속삭이는 소리마저 들을 수 있다. 아지가 지능이 좀 낮고, 의미 없는 소음을 그냥 흘려보내는 방법을 터득해서 무시하는 거지. 만일 내가 탄탈로스 어디서든 똥개라고 읊조린다면 탄탈로스 어디에 있든 듣고는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이를 드러낼 것이다.

그런 개한테 소음 공격, 효과는 매우 뛰어났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조금, 한 개털만큼 미안하네.

명색이 인간인데 개한테 먼저 고개를 숙일 수는 없지. 나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아지를 노려보았다.

“누가 수업시간에 쳐 자래? 그리고 뭐, 지는 자기 발톱으로 콘크리트를 긁고 있던데 인간이 칠판 좀 긁을 수 있지. 어쩔 건데? 반항이라도 하게?”

“으릉! 왈!”

반항한다는 뜻이다.

가당치도 않다. 개 따위가 인간에게 반기를 들다니. 건방지군. 인간과 개의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주지.

나는 아지를 향해 양손을 들어보이며, 어설프게 미소를 지었다.

“지금 다시 생각하니 조금 미안한 것 같아. 우리 여기서 화해하지 않을래?”

인간은 할 수 있고 개는 못 하는 것, 그것이 대화와 양보. 나는 개에게 타협을 시도했고.

개뿔도 먹히지 않았다.

“왈!”

가축의 반란은 너무나도 기습적이라 미처 대응할 새가 없었다. 아지가 교실을 가로질러 날아왔다. 아차하는 사이 어깨가 붙잡힌 나는 아지와 함께 땅을 뒹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운트 자세로 제압당한 상태였다.

공격할 생각은 아니었는지 발톱을 드러내지 않고 그냥 꾹 누르고만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나는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쇠말뚝이 내 어깨를 누르는 것 같다.

이런 꼴을 매일 보이는데 어떻게 나를 강하다고 생각하는지. 다들 눈이 삔 게 분명하다.

그래도 개에게 패배하는 꼴을 보일 수는 없지. 그건 인간의 자긍심이다.

나는 아지에게 제압당한 채로 말했다.

“오늘 수업 여기서 끝입니다. 자, 다들 돌아가세요.”

흡혈귀는 양산을 챙기고 관 위에 걸터앉았다. 새카만 관은 평소처럼 둥실 떠올라, 흡혈귀를 태운 채 문을 향해 날아갔다.

“오냐. 재미있었다.”

“재미있으라고 한 수업 아니거든요? 빨리 나가요. 나는 이 강아지에게 본때를 보여줄 테니까.”

잠깐 아지와 눈싸움을 했다. 불만이 가득한 눈동자가 보인다. 고작 칠판 좀 긁었다고 감히 하극상을 벌이는 발칙한 생물. 본때를 보여주지.

회귀자는 흡혈귀를 따라 걸어 나가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시선이 나와 아지쪽을 향했다.

‘싸우려는 건가? 만일 저 둘이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본다면 강함을 대충 알 것 같은데. 으음. 어디 구경이나 한번.’

“뭐하십니까. 구경났어요? 개 떨어뜨려줄 거 아니면 빨리 가세요.”

내가 누운 채로 휘휘 내젓자, 회귀자는 신음을 삼키고는 고개를 돌렸다.

‘역시 경계하는구나. 힘을 다 보여주지는 않겠다는 거겠지.’

땡. 너한테 보여줄 만한 힘이 없다는 뜻이다. 구경거리도 없으니까 빨리 가라고.

내가 손을 훠이훠이 내젓자, 회귀자는 침음을 삼키며 돌아섰다.

“그래. 둘이 잘 해결해 봐.”

회귀자는 쿨하게 몸을 돌려서 문밖으로 나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두꺼운 양철문이 굳게 닫혔다.

잠깐의 정적.

직후 문 너머에서 한 줄기 생각이 들려왔다.

‘꿰뚫어 보는 눈. 녹안….’

“나가라는 말이 나가서 지켜보라는 뜻은 아닙니다, 셰이 교육생. 엿보기는 별로 좋은 행동이 아니니, 더 추해지기 전에 빨리 가요!”

회귀자는 크게 움찔하고는, 바람걸음인지 뭔지 사용해서 발소리도 없이 복도를 달려갔다.

‘이, 이건 도망이 아니야. 그래. 나중에 더 확실한 기회를 잡기 위해 바깥에 없는 척하는 거야.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없는 척은 무슨. 다 느껴졌거든. 회귀하면서 날로 먹는 재미 좀 보니까 버릇을 못 버리네.

어쨌건 이제 나의 곁에는 이를 드러낸 채 마운트 포지션을 취한 아지밖에 없다. 아까부터 신경을 안 써주니까 더욱 난폭하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다 나갔나?”

“으르르르릉.”

“음. 다 나간 것 같네.”

생각이 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나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노려보는 아지와 마주했다.

세상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하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미안해. 아지야.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으르릉.”

“에이. 화 풀어. 너 있는 걸 깜빡해서 그랬어. 칠판 긁는 소리를 이렇게 싫어할 줄은 몰랐지.”

“왈!”

“쭈쭈. 착하지, 착하지. 강아지~. 강아지~. 화 안 내는 착한 강아지.”

“컹, 컹!”

“내가 너 사랑하는 거 알지? 자, 쓰다듬어줄게. 발 치워 봐.”

“멍!”

아지는 어깨를 잡고 있던 앞발을 치우고는, 그 상태로 몸을 홱 돌렸다. 귀가 씰룩거리는 게 아무래도 이쪽을 쓰다듬으라는 뜻인 것 같다. 아주 상전이야 그냥.

끙, 허리를 세우고 아지를 허벅지 위에 앉힌 채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몇 번 지나지 않아서 아지는 완전히 풀어진 얼굴로 갸릉거렸다.

“후. 인생.”

“멍!”

“내 인생에 너 같은 강아지와 함께할 수 있어서 참 좋다고.”

“멍멍!”

뭐,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탄탈로스에 남은 이들 중에서 가장 좋은 개체를 하나 뽑자면 그건 아지다.

호오의 문제가 아니다. 투자 대비 성과의 문제다.

이토록 멍청하고 인풋 아웃풋이 확실하게 이득인 존재가 어디 있을까. 조금 불쾌하게 만들어도 입에 발린 소리 조금 속삭인 뒤 무릎 위에 앉히고 쓰다듬어주기만 해도 풀리니까 말이야. 흡혈귀나 회귀자에 비해 얼마나 다루기가 쉬워.

평소에 밥해주고 산책도 시키고 놀아도 주지만, 뭐 그 정도야.

불만은 또 많아서 뭐 수틀리면 나한테만 계속 짖어대지만, 뭐 그 정도야.

정작 인간과 싸울 때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지만. 뭐 그 정도야.

…어라.

어쩌면 이 멍멍이가 가장 쓸모가 없는 존재일 수도?

하지만 손절하기에는 이미 쏟아둔 노력이 너무 크다. 눈물을 삼키며 손가락을 들고는, 털뭉치 매몰비용 덩어리에게 오늘의 유지비를 추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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